비누칠만 했는데 때가..대박난 '때르메스'에 이런 사연이

조회수 2020. 9. 24. 23:4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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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심으로 만든 때장갑이 대박 상품으로..'때르메스' 발명한 이 사람
박재범 팬카페 그분 아직 찾습니다
때장갑으로 창업한 정준산업 배정준
‘박재범 팬카페’서 입소문 시작
“반짝 대박 상품 아니라 오래 가고 싶다"

한국인의 목욕 문화는 때밀이 문화를 빼고 말할 수 없다. 한국인은 휴일이면 뜨거운 탕에 들어가 때를 불려 이태리타월로 벗겨낸다. 목욕탕에서 아프다고 도망 다니던 아이들도 어른이 되면 자연스레 이태리타월을 산다.


한국 목욕 문화의 오랜 동반자 이태리타월에 강력한 도전자가 등장했다. 목욕 바구니 속 네모난 이태리타월 대신 분홍색 장갑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정체는 요술 때밀이 장갑, 별명은 때르메스. 네이버에 때르메스를 검색하면 비누칠만 했는데도 때가 녹아 나온다는 간증이 줄을 잇는다. 20대에 때장갑 하나로 1인 기업을 시작한 정준산업의 대표 배정준(42)씨를 만나 때르메스 탄생 비화와 그의 경영철학을 들었다.

출처: jobsN
배정준 대표

천연 소재 때장갑의 탄생


-어쩌다 때밀이 장갑을 만들었나

"아버지가 효자셔서 연로한 할머니를 일주일에 한번은 꼭 집에 모셔와 씻겼다. 그런데 목욕을 하고 나면 두 분다 진이 빠져 늘어졌다. 아버지를 도울 방법을 고민하다 이태리타월을 손가락 모양으로 잘라 목장갑에 붙였다. 장갑이 벗겨지지 않고 손가락이 자유로워져 더 빠르게 씻길 수 있었다."


-그 때장갑으로 창업경연대회까지 나갔다고

"23살 때 우연히 '전국 대학생 창업경연대회' 포스터를 봤다. 상금을 타 유럽 여행을 가고 싶어 참가했다. 출품할 아이템을 고민하다 아버지가 할머니를 씻기던 게 떠올랐고, 피부가 상하지 않게 몸을 씻는 장갑을 아예 새로운 소재로 짜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자작나무에서 뽑은 천연 섬유로 장갑을 만들었고 대구·경북 예선에서 일등을 차지했다."


-자작나무에서 뽑은 천연 섬유로 만든 이유가 있나

"대회에 참가할 때 한국 섬유 개발연구원과 학교 교수님을 찾아가 조언을 구했고, 추천받은 여러 소재 중 러시아산 자작나무에서 뽑은 천연 섬유를 선택했다. 연교차가 큰 곳에서 자라다 보니 내구성이 좋아서 천연섬유치고 튼튼한 장갑을 만들 수 있었다. 또 러시아가 한국과 가까워 원료 수입이 원활할 것 같았다.


물론 나일론으로 1000원대의 장갑을 만들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 제품은 아버지가 할머니를 씻기는 데서 시작한 것이다. 내 가족을 씻기는데 기왕이면 천연섬유가 더 좋을 것 같았다. 이건 다른 고객들도 마찬가지 아니겠나. 만약 내 가족이 피부가 약하거나, 질환이 있다면 직접적인 효과가 없어도 천연 소재로 만든 장갑을 택할 거다. 이편이 장기적으로도 시장성이 있겠다고 생각했다."


23살 청년의 창업 도전기


-창업경연대회가 끝나고 얼마 만에 창업을 했나

"대회가 끝나고 몇달이 지난 후 예선에서 1등을 해 받은 상금을 기반으로 경북 테크노파크라는 벤처육성지원기관에 입주해 1인 기업을 차렸다. 하지만 가격이 4000원으로 당시 300원이었던 이태리타월보다 10배 넘게 비싸다보니 도무지 팔 수 없었다. 지금은 소비자들이 비싸더라도 나를 위한 일이면 지갑을 열지만 회사를 창업한 1999년엔 그렇지 않았다.


보통 이틀에 두세개 팔았고 가끔 종교 단체에서 봉사활동 하는 사람들이 몇개씩 사간 덕에 겨우 명맥을 유지했다. 봉사단체서 스무개쯤 사면 대박이라고 고기를 구워 먹었는데 그 비용이 더 많이 들었다. 6000만~7000만원을 빌리고 3년 동안 분할상환 하기로 했는데 실패해 신용불량자로 전락했다. 빌린 돈을 갚지 못해 의절한 친구까지 생겼다. 인생의 가장 밑바닥을 쳤던 시절이다."


-어느 날 갑자기 주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고

"2013년쯤 갑자기 주문이 조금씩 늘었다. 무슨 일인지 알아봤더니 가수 박재범씨 팬클럽에서 누가 우리 때장갑을 좋다고 했다더라. 거기서 돌던 입소문이 맘카페까지 퍼졌고 공동구매 신청이 들어왔다.


그때 동네에 월세 30~35만원짜리 한옥을 빌려서 아주머니들이 부업처럼 검수·포장작업을 했다. 그런데 갑자기 몇백개씩 주문이 들어오니 감당하기 힘들었다. 주문을 받고 한달 반이 지난 뒤 물건을 보냈다. 감당을 못해서 전화기를 아예 꺼놓았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그 한옥 앞에 사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가장 멀리서 온 사람은 제주도에서 왔다."

출처: 더쿠, 네이버 블로그 캡처
(왼쪽부터)박재범 팬사이트에서 시작된 때장갑 대란, 최근 네이버 블로그에 올라온 때장갑 후기

-상품의 인기에 '때르메스'라는 별명도 생겼다고

"때장갑의 품귀현상 때문에 붙은 별명이다. 때르메스는 때와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의 합성어다. 처음 입소문이 나고 주문이 몰렸을 때는 상품을 받으려면 한달 넘게 기다려야 했다. 회사가 있는 대구까지 내려와 한옥 앞에서 무작정 기다리는 고객까지 생기자 이 때장갑이 돈이 있어도 살 수 없는 에르메스같다고 사람들이 때르메스라고 불렀다. 이렇게 한번 입소문을 타니까 이태리타월의 열배가 넘는 가격에도 고객들이 사더라."


-상품이 대박 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상품이 잘 안 팔릴 때도 품질엔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누구든 한번만 쓰면 비싸도 계속 사용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 한번이 정말 어려웠는데 박재범씨 팬 덕분에 기회가 생겼다. 나중에 나름대로 분석을 해봤는데 당시 SNS 이용이 활발해져 입소문을 탈 수 있었고, 웰빙이 트렌드기도 했다. 아토피에 대해 말이 많던 때기도 했다. 이 여러가지가 다 맞아 들어서 대박이 터졌다고 생각한다."


대구 작은 공장의 때장갑이 세계로


-과거와 지금의 회사를 비교하면 어떤가

"예전에는 OEM 방식으로 물건을 만들었고, 장갑을 짜는 직조 기계가 2대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직접 우리 공장에서 만들고 기계도 35대가 있다. 두달 전에는 지하에 있던 공장을 지상으로 옮기기도 했다. 훨씬 회사다운 모양새를 갖췄다. 처음엔 하루 두세개 팔던 장갑이 지금은 하루 1000개 이상 나가고 한달엔 4만~5만개의 장갑을 출고한다."

출처: 배정준씨 제공
정준산업의 새 공장 모습.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공장의 외관, 직원들이 불량품을 검수하는 모습, 장갑 짜는 기계

-판매 경로가 어떻게 되나

"국내에서는 대부분 온라인으로 판매한다. 우리 공장에서 직접 팔지는 않고 계약을 맺은 판매자들에게 공급하고 있다. 오프라인으로는 농협 하나로 마트·아트박스 매장에서 판매한다. 그것도 원하는 점주들만 받아 파는 거라 모든 매장에 있지는 않을 거다.


해외에는 개인 보따리상까지 하면 치면 10개 넘는 나라에 파는 것 같다. 우리 상품을 외국에 소개할 때 샤워문화와 때밀이 문화의 중간이라고 한다. 외국은 샤워를 매일 하고 한국인은 며칠에 한 번 목욕하면서 때를 민다. 이 장갑으로 2~3일에 샤워하듯 가볍게 때를 밀면 목욕한 것처럼 개운하다고 홍보한다."


-해외에서는 때미는 문화가 없는데 어디서 많이 찾나?

"가장 먼저 거래를 튼 건 아일랜드였다. 요양병원에 납품하고 싶다며 공장까지 와서 계약했다. 미국에는 인구도 많고 한인들도 많아 잘 팔린다. 일본 거래처 사장은 때장갑을 쓰고나서 샤워했는데도 온천을 한 느낌이라며 사 갔다. 동남아 쪽에서는 한류상품 페어에 출품 가기도 했다.


최근 6월에는 대한민국 소비재 수출 대전에 상품을 내서 조선족 바이어를 만났다. 상품은 좋지만, 중국인은 위생 관념이 부족하고 가격도 비싸 2~3년 후에나 팔 수 있겠다고 했다. 그래서 써보기나 하라고 샘플을 주고 대구로 돌아갔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일곱시에 자기가 써보니까 너무 개운하다며 거래하자고 전화가 왔다."


-회사를 운영하는 본인만의 원칙이 있나

"판매자들과 계약 할 때 최소 6000원은 받으라고 얘기한다.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덤핑이 생긴다. 실제로 카피 상품을 만드는 업체들은 덤핑으로 많이 팔고 있다. 하지만 서로 많이 팔려고 가격을 낮추다 보면 제품의 질이 떨어진다.


평소 길게 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싸게 이곳저곳 많이 팔 수도 있지만 그러면 기존 판매자들이 피해를 본다. 그래서 온라인 판매를 주로 하고, 가격 하한선도 정했다. 공장에 직접 찾아와서 사가는 사람들에게도 무조건 6000원을 받는다. 당장 이윤은 크지 않더라도, 일인자가 아니라도 괜찮으니 길게 가고 싶다. 그게 강한 거라 생각하고."


-20대 때 창업했던 사람으로서 요즘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정말 주제넘은 말이란 걸 알지만 요즘 젊은이들이 안타깝다. 공무원 하려는 노력으로 왜 자기 걸 안 하는지 모르겠다. 제 눈에는 젊은 사람들이 해볼 만한 게 많이 보인다. 사회 경험이 부족해서 안 보일 수도 있고, 우리나라가 대기업 위주의 구조라 엄두가 안 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도 했다. 나보다 똑똑하고 능력 있는 젊은이들이 못 할 이유가 없다. 특히 경기가 나쁠수록 소자본으로 창업을 하기 좋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돈을 빌려주는 곳도 있고, 컨설팅 해주고 지원해주는 곳도 있지 않나. 조금만 더 생각해서 기회를 찾았으면 좋겠다. 내 걸 하려고 시도해봤던 사람으로서 조심스럽게 하는 말이다."


jobsN 주윤규 인턴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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