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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가수들 열창 뒤엔 '대기실 책임 매니저' 그녀 있었다

조회수 2020. 9. 24. 14:5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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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여팀 가수들의 무대 뒤 대기실을 책임지는 이 사람
공연·축제 기획자 서희경 컴퍼니루 대표
좋아하는 일 찾아 직업만 5번 바꿔
취준생 인기 직업 공연·축제 스태프 되려면

매년 여름 인천 송도에서 열리는 펜타포트 락페스티벌. 국내 야외 페스티벌의 시초다. 1999년 '트라이포트 락 페스티벌'로 시작해 19주년을 맞았다. 올해 70개가 넘는 팀이 무대에 오른다. 그래미상을 두번 받은 나인 인치 네일스, 5년만에 내한하는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 린킨파크 출신 마이크 시노다, 대중에게 익숙한 자우림과 혁오 등 국·내외 락밴드가 함께한다.


세계 정상급 밴드가 마음놓고 열창할 수 있도록 무대 뒤를 책임지는 사람이 있다. 무대 뒤 아티스트들의 대기실을 책임지는 사람을 ‘백스테이지 매니저’라 부른다. 이번 펜타포트 락페 백스테이지 매니저는 서희경(44) 컴퍼니루 대표다. 무대를 누비는 아티스트가 준비하고 쉴 곳을 만든다.


그의 본업은 공연·축제 기획자. 직업만 5번 바꿨다. 첫 직업은 공연과 전혀 상관없는 백화점 마케터였다. 두번째 직업은 게임 디자이너. 이후 미술 전시 기획자, 음반 기획자를 거쳐 지금은 공연·축제 분야에서 자리를 잡았다. 공연 스태프는 평소 자신이 선망하는 가수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청년들이 꿈꾸는 직업이다. 펜타포트 락페스티벌 준비에 정신이 없는 서 대표를 만나 공연·축제 스태프의 삶을 물었다.

출처: jobsN
서희경 공연·축제 기획자. 8월 10일부터 12일까지 인천 송도에서 열리는 펜타포트 락페스티벌에서는 백스테이지 매니저로 활동한다.

아티스트의 일거수 일투족 관찰해야


공연·축제 스태프는 크게 5개 분야로 나눈다. 축제 방향과 콘셉트를 기획하는 ‘기획팀’, 무대를 만들고 조명·음향 등을 준비하는 ‘프로덕션 팀’, 축제를 안전하고 원활하게 운영하는 ‘운영팀’, 홍보를 담당하는 ‘프레스팀’이 있다. 그리고 출연 가수를 안내하고 보살피는 ‘아티스트 케어팀’이 있다. 서 대표가 펜타포트에서 맡은 백스테이지 매니저는 아티스트 케어팀에 속한다. 펜타포트와는 4년째 함께한다. 처음 2년 간 운영팀에서 일했고, 나머지 2년은 백스테이지를 관리했다.


“무대 뒤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총괄합니다. 특히 백스테이지, 즉 무대 뒤 대기실은 관계자 중에서도 일부만 들어올 수 있는 곳입니다. 어떤 업무를 하는지 알 수 없어 더 호기심을 갖는 분야예요.”


아티스트 측에서는 축제 스태프에 ‘라이더(RIDER)’라는 메일을 보낸다. ‘추가 사항’ 또는 ‘부칙’이라는 뜻으로 아티스트에 관한 모든 내용이 들어있다. 몇성급 호텔에서 묵었으면 하는지부터 시작해 어떤 악기가 필요한지 상세히 적어둔 문서다.


대기실 필요한 물품이나 먹을 음식도 라이더에 적혀 있는대로 준비한다. 최고의 공연을 만들기 위해 미리 알아둬야 할 내용이다. 공연을 앞두고 민감해진 아티스트를 편안하게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들어 있다. “아티스트가 채식주의자일 수도 있고, 특정 차(茶)을 마셔야 하는 징크스를 갖고 있을 수도 있어요. 언뜻 사소해 보이지만 아티스트에게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폴 매카트니는 유제품이나 계란도 먹지 않는 완전 채식주의자다. 스태프의 식사도 채식으로 준비해 주기를 바란다. 영국 락 밴드 콜드플레이는 현지 엽서를, 미국 가수 제이슨 므라즈는 되도록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말아달라고 요구한다고 알려졌다. 엘튼 존은 2012년 내한했을 때 대기실 곳곳에 나무와 꽃을 놔두고 소파를 실크 커버로 덮어 달라고 요청했다.  

출처: PRM 제공
(왼쪽부터) 2017 펜타포트 락페스티벌 전경 사진, 2018 펜타포트 락페 최종 라인업.

백스테이지 매니저는 축제 현장에 최소 3~4일 전 도착해 일을 시작한다. 아티스트가 먹는 특정 브랜드의 물이 있다면 해외에서 직접 공수하기도 한다. “만약 축제를 얼마 앞두지 않은 상태에서 국내에서 구할 수 없는 물품이 있다면, 아티스트 측에 양해를 구하고 대체품을 준비합니다.”


아티스트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만나는 사람이 백스테이지 매니저다. 현장에서 맞이해 대기실로 안내한다. 이후 가수가 무대에 올라가기 전과 후를 관리한다. 가수의 컨디션을 최고의 상태로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 필요하다면 언론사 인터뷰 일정을 정리하기도 한다.


아티스트에게 사고가 생겼을 때 먼저 알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백스테이지 매니저의 역할이다. “최근 한 아티스트가 몸이 좋지 않아 제시간에 오지 못할 것 같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출연 순서를 뒤로 바꿨는데도, 공연 3분전까지 못왔어요. 이미 관객들에게 한번 약속을 어기고 출연 순서를 바꾼 상태라 초조했습니다. 공연 직전에 거의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아티스트가 탄 차량을 무대 바로 뒤까지 오게 해서 내리자마자 인이어를 채워서 무대에 올렸어요. 이럴 땐 007작전을 방불케합니다.”


꿈을 찾기 위한 여정


서 대표는 원래 공연·축제 기획자다. SG워너비 김진호와 락밴드 부활 콘서트를 기획했다. 여의도에서 매년 열리는 ‘벚꽃피크닉페스티벌’ 무대를 제작하고 연출한 사람도 서 대표다. 올해는 연말까지 8개 축제를 기획할 예정이다. “공연에는 기획자의 사심이 많이 들어갑니다. 기획자가 꿈꾸던 것을 현실화 하는 경우가 많아요. 돈이 되는지 파악하는 안목도 중요합니다. 이슈나 유행을 잘 알아야 좋은 기획을 할 수 있어요. 요즘 친구들이 좋아하는 장르나, 지금은 아니지만 앞으로 뜰 가능성 있는 아티스트를 발굴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출처: 서희경 대표 제공
(왼쪽부터) 서 대표가 기획한 벚꽃피크닉페스티벌과 마케팅과 아티스트 케어팀 운영을 맡은 아카디아 코리아.

그는 울산 출신으로 전산학을 전공했다. 1997년 외환위기 전 운좋게 백화점에 취직했지만 직장을 다니는 내내 ‘이 길이 내 길인가’ 고민했다. 스타크래프트, 파이널 판타지 같은 PC게임이 유행하던 2001년 회사를 그만뒀다. 그리고 게임 그래픽을 공부했다. 게임이 미래 유망 산업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게임아카데미 교수님의 연구소에서 인턴으로 일했어요. 그러다 교수님 연구소가 캐나다로 가면서 저도 따라갔습니다. 하지만 회사가 어려워져서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2005년 전시 기획사를 창업하는 지인 제안으로 미술 전시 기획에 발을 들였다. “백화점 그만두고 서울에 올라왔을 때 가장 좋았던 게 공연·전시보는 거였어요. 하루가 멀다하고 연극이나 전시, 콘서트를 보러갔어요. 라이브 클럽도 자주 갔습니다.”


하고 싶고 잘하는 일을 찾았지만 안정적이진 못했다. 첫 직장 동료들은 과장님 소리를 듣기 시작했지만 서 대표는 아직 한곳에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도 못했다. 2007년 문화콘텐츠 회사 클럽데이로 이직해 기획 팀장을 맡고서야 안정 궤도에 올랐다. 하지만 40대를 앞두고 이직병이 돋았다. “너무 익숙한 일만 하는 것 같았습니다. 전환점이 필요했어요.”

출처: 서희경 대표 제공
(왼쪽부터) 2006년 와우북페스티벌에서, 2009년 클럽데이에서 일할 때 모습.

2009년 부활엔터테인먼트 창업 멤버로 합류했다. 락 밴드 부활 소속사였다. 부활은 한국 대표 락 밴드였지만 당시 팀은 침체기였다. 직원은 3명뿐. 서 대표는 이전 회사에서 받던 월급의 60%만 받았다. 요즘 신입 로드 매니저 수준이었다. “음반 기획은 처음 해보는 분야였어요. 25주년 음반 기획할 때 포스터, 앨범 표지 하나 발품 팔아다니며 만들었습니다.”


전국 투어도 기획 했다. “멤버들에게 300석 규모 소극장 공연을 제안했어요. 부활이 이전에 소극장 공연을 한 적이 없었지만, 팬들하고 가깝게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반응이 좋을 것 같았습니다.”


소극장부터 시작해 중극장, 대극장으로 점점 공연장 규모를 키웠다. 1년 4개월간 30개 도시에서 공연했다. 군산, 여수 등 가수들이 잘 가지 않는 지역도 갔다. 부활 사상 가장 오랜 기간, 많은 지역에서 팬들을 만났다. 결과는 전석 매진. 부활이 다시 부활하는 순간이었다. 

출처: 서희경 대표 제공
부활 25주년 콘서트 때 기타리스트 김태원씨. 12집 뮤직비디오 시사회에서 부활 멤버들과 서희경 대표.

공연업에 대한 환상보다, 꿈을 정확히 조준하길


2014년 독립했다. 서 대표와 직원 1명이 팀으로 일한다. 6~7번 이직 한 그에게 많은 이들이 이직 상담을 한다. “저는 잘하는 것보다 하고 싶은 걸 했던 것 같아요. 직업관의 무게를 어디에 두냐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직장 다니는 게 즐거워야 합니다. 업무 스트레스는 별개예요. 이 업계는 출퇴근이 일정치 않고 몸이 망가져요. 그런데 성취감이 큽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하나씩 완성해나가는 재미가 있어요. 스트레스 받고 짜증나지만 하지 않고 못배기는 매력입니다.”


스포트라이트, 관객들의 함성, 심장을 울리는 음악소리. 청년들이 공연·축제 업계 취업을 꿈꾸는 이유다. 펜타포트 락페 자원봉사자는 인기 스펙 중 하나다. 매년 150명이 함께한다. 19세부터 38세까지 연령이 다양하다. 유학생이나 직업이 있는데도 공연 분야를 경험해보고 싶어 참여하는 사람도 있다.


“이 분야는 놀기만 하는 것 같고,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맘껏 볼 수 있으니 좋아 보여요. 이런 환상에 빠져있다면 절대 이 분야에서 일할 수 없습니다.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왔다고 넋놓고 볼 시간이 없어요. 동요하지 말고 계속 긴장하고 있어야 합니다. 대기실은 아티스트가 편하게 쉴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예요. 사진을 찍어도, 사인을 요청해도 안됩니다. 또 사적 공간이기 때문에 대기실에서 보고 들은 걸 외부에 말해도 안되요.”

출처: 서희경 대표 제공
(왼쪽부터) 2017 월드클럽돔 코리아, CASS 콘서트

전문직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급여는 천차만별이다. 서 대표의 경우, 축제나 공연 규모·업무 범위에 따라 프로젝트 건당 200만~1000만원을 받는다. 막연한 꿈을 꾸기보다 뭘 하고 싶은지 정확히 해야 한다. “기획을 하고 싶은지, 연출을 하고 싶은지, 조명을 하고 싶은지를 알아야 합니다. 음반 기획을 하고 싶다면 기획사 A&R(Artist and Repertoire·아티스트 발굴 및 음반 기획) 팀에 들어가야 해요. 꿈을 정확히 조준해야합니다.”


그는 협업과 의사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기획자가 기획을 잘한다고, 라인업을 잘 구성한다고 그 공연이 성공하진 않아요. 아티스트와 스태프, 그리고 각 팀끼리 의사소통이 원활해야 합니다. 능력도 중요하지만 이 일을 즐기고, 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록 이곳에 오래 남습니다.”


글 jobsN 이연주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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