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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위한 향수 팝니다" 윤동주 시에 향기를 입히다

조회수 2020. 9. 24. 14:5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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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니처 '북퍼퓸' 누적판매 2만개
군대에서 처음 붓펜들어···
캘리그라피 작가에서 기획사 대표까지
시그니처 ‘북퍼퓸’ 누적판매 2만개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윤동주 시인의 시 ‘별 헤는 밤’의 배경은 가을이다. 시에도 향기가 있다면 ‘별 헤는 밤’에서는 선선한 가을밤의 향기가 날 것이다. 시집을 읽으며 그 향을 느낄 수 있다면 어떨까? 이런 상상에서 시작해 문학을 향기로 만든 상품이 있다. 책을 위한, 책에 뿌리는 향수 ‘북퍼퓸’이다.


‘별 헤는 밤’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윤동주 시인 북퍼퓸은 출시 사흘 만에 초기 물량 1200병이 모두 팔렸다. 단순히 작가의 이름만 따온 향수가 아니다. 책에 뿌렸을 때 향이 작품의 분위기와 어우러져 읽는 즐거움을 더해줄 수 있도록 만들었다. 문학 전문 굿즈 업체 글입다 공방이 내놨다. 굿즈란 유명인, 스포츠 등 특정한 인물이나 장르를 이용해 만든 상품이다. 문학에, 문학의 향기를 더한 글입다 공방 대표 안동혁(25)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출처: jobsN
안동혁 대표

악필에서 캘리그라피 작가로


-캘리그라피로 ‘글입다’라는 이름을 처음 알렸다.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캘리그라피는 ‘손으로 그린 문자’라는 뜻이다. 한마디로 예쁜 손글씨다. 군 복무 중에 캘리그라피를 처음 시작했다. 의무경찰 행정병이라 자유시간이 많았다. 그 시간에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군대에서는 남는게 시간이라 쓰고 또 쓰고 하다 보니 조금씩 실력이 늘었다. 나중에는 소문이 났는지 선임들이 찾아와 써달라고 하기도 했다. 지금 보면 굉장히 부끄러운 글씨인데 다들 ‘예쁘다, 고맙다’고 말해줬다. 그런 말들 덕분에 꾸준히 연습했고 작가로서 활동할 만큼 성장할 수 있었다.”

출처: 본인 제공
안동혁 씨가 쓴 캘리그라피

-원래 글씨를 잘 썼나?


“전혀 아니다. 중학교때까지는 악필이었다. 캘리그라피는 워낙 글씨를 못썼기 때문에 잘 쓰고 싶은 욕심에서 시작했다. 2014년 쯤 페이스북에 예쁜 손글씨를 올리는게 한창 유행했다. 그런 예쁜 필체를 동경하는 마음에 쓰기 시작했다.”


윤동주, 이상 등 작가의 개성 담은 굿즈 만들어


-사업 생각은 언제부터?


“처음엔 캘리그라피로 사업할 생각이 없었다. 순전히 취미였다. 혼자 기록해두려고 인스타그램에 내가 쓴 글씨를 찍어 올렸는데 좋게 봐주는 분들이 생겼다.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3000명을 넘었다. 그때 이벤트로 몇 분께 캘리그라피가 쓰인 핸드폰 케이스를 보내 드렸다. 그걸 보고 많은 분들이 판매할 생각은 없냐는 연락을 주셨다. 아 이거 괜찮겠다 싶어서 주문제작 방식으로 팔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월 매출이 20만원이었다. 그러다 미니북, 캔들, 노트 등 품목을 늘리면서 매출이 올랐다. 지금은 월 매출이 1억원 정도다. 올해 팔기 시작한 북퍼퓸은 누적판매 2만개를 넘어섰다.”


-왜 하필 ‘문학’ 굿즈였나.


“솔직히 첫 시작은 상업적이었다. 원래 문학 애호가였던 것은 아니다. 내가 순수하게 창작한 글도 꽤 있고 그런 글이 담긴 상품도 제작해봤지만 생각만큼 팔리지 않았다. 나도 내 글보다는 내 ‘디자인’을 알리고 싶다는 욕심이 컸다. 그래서 유명한 작가들의 글귀를 캘리그라피로 쓰고 디자인해서 팔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문학 공부를 많이했다. 얼마전 윤동주 시인의 시를 시대순으로 구성한 미니북을 디자인·제작했다. 그 작업을 위해 윤동주 시인 공부를 정말 많이 했다.”


-책에 뿌리는 향수라니 특이하다. ‘북퍼퓸’은 무엇인가?


“책을 위한 향수, 책에 뿌리는 향수다. 작품이나 작가와 어울리는 향을 맡으면서 책을 읽으면 문학을 좀 더 깊이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만들었다. 작품에서 떠올린 시각적 이미지를 향으로 해석하는 작업을 했다. 예를 들면 윤동주 시인의 시 ‘별헤는 밤’을 작품으로 정하고, 가을밤 호숫가에서 별을 바라볼 때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향기의 컨셉을 정하는 식이다. 향은 전문 조향업체가 만든다. 책에 ‘뿌리는’ 컨셉의 향수는 글입다 공방이 최초로 내놨다.”

출처: 글입다 공방 제공
(왼쪽부터) 북퍼퓸 '작가 시리즈' 9종. '동주의 소포'. 캘리그라피가 들어간 연필, 포스트잇, 육필원고 노트 등이 소포 안에 들어있다.

-윤동주 시인이 북퍼퓸 첫 대상이었다. 왜 윤동주였나.


“한국에 윤동주 시인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 같았다. 가장 진입장벽이 낮은 시인이라고 생각한다. 누가 읽어도 어렵지 않고, 시각적 이미지가 선명한 시들이 많다는 것도 이유였다. 북퍼퓸 뿐 아니라 윤동주 시인 굿즈는 다 잘 나간다. 시인이 과거로부터 보낸 소포라는 컨셉의 ‘동주의 소포’도 베스트 상품이다.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시인이고, 사업적으로는 참 고마운 분이다. 최근에는 레미제라블, 빨강머리 앤 같은 세계 명작도 북퍼퓸 시리즈로 내놓고 있다.”


“성공해서 ‘회장님’ 돼 보려구요”


-스카우트 제안도 받았다고.


“작년 말에 한 기업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안을 받았다. 사업을 하면 매출이 늘어도 그게 다시 투자비로 쓰일 때가 많다. 또 상품이 얼마나 나가느냐에 따라 매출도 들쑥날쑥하다. 제의가 왔던 회사는 대기업이었고 정규직 자리를 제안했다.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받는다고 생각하니 조금 흔들리더라. 그런데 나는 애초에 누구 밑에서 일 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 일이 많은 건 좋은데 남이 시키는 일을 하는 건 싫다. 구시대적인 기업 문화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 회사는 야근, 회식 잘 안하려고 한다. 사실 내가 회식을 싫어한다. 이런 사람이다보니, 그냥 끝까지 내 사업을 해서 회장님 한번 해 보자고 마음 먹었다.”


-앞으로의 목표는?


“최근 에이블디자인 엔터테인먼트라는 회사를 세웠다. 디자이너들을 위한 ‘기획사’다. 연예 기획사처럼 디자이너들을 발굴하고, 그들이 본인의 컨텐츠를 상업화 해 수익을 만드는 과정을 가이드해주고 싶다. 아무리 디자인을 잘 해도 그 능력만으로 돈을 벌기는 쉽지 않다. 내가 캘리그라피 작가를 하면서 직접 느꼈던 거다. 어떤 업체와 유통계약을 할지, 저작권 관리는 어떻게 해야할지 등 상업화 과정 진입장벽이 너무 높다. 그래서 결국 외주만 받아 일하거나, 대기업 디자이너로 들어가 요청하는 디자인만 뽑아내게 된다.


에이블디자인 엔터테인먼트는 자기 브랜드를 상업화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디자이너들을 도와주기 위한 국내 최초의 디자인 기획사다. 글씨만 잘 쓰고 그림만 잘 그리면 나머지 상업화 과정은 우리가 맡아서 해 주자는 거다. 지금 운영하는 글입다 공방은 그 상업화 과정의 시행착오를 먼저 겪고 있다. 이 과정에서 배운 것들을 바탕으로 좋은 디자인 기획사로 성장하는 게 목표다.”


글 jobsN 서은수 인턴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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