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중 급사한 한국인..중국이 10배 비싼 관 강요한 배경

조회수 2020. 9. 24. 14:1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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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ssul]중국 진출의 핵심 키워드 '꽌시'
'비전'이 일치할 때 형성 가능한 관계
꽌시를 맺는 방법은 케이스 바이 케이스
과거보다 영향력 줄었지만 무시 못 해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 한국인 A씨가 중국 광둥성 출장 중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급히 현지로 달려온 유가족은 시신을 인도받아 장례를 치르려 했지만, 중국 당국이 방해했다. 규정에 따라 외국인은 내국인보다 10배 이상 비싼 고급형 관을 써야 한다고 강요했다.


이를 해결해준 곳은 광저우 한국상회였다. 이들은 당시로부터 1년 전쯤 광동성에 수재의연금을 전달한 적이 있었다. 상회 관계자는 이 인연에 기대 관련 부처에 도움을 청했고, 무사히 내국인용 관을 수령해 A씨의 장례를 마칠 수 있었다 한다. 당시 광저우 한국상회 회장이었던, 지성언 차이나다(CHINADA) 대표가 실제로 겪은 일이다.


인맥과는 다르다


이처럼 중국에선 만남을 거듭하거나 은혜를 주고받으며 쌓은 인연이 매우 중요하다. 흔히 말하는 ‘꽌시(关系)’ 문화가 바로 그것이다. 이를 모르거나 무시하면 중국에서 취업·창업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말까지 나오는, 아주 중요한 개념이다.

출처: 블로그 '단델라의 세상보기'
tvN 드라마 '미생'에서 꽌시를 거스르다 낭패를 본 최전무(우측 상단)와 영업 3팀원들.

한국의 ‘인맥’과는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당히 차이가 있다. 한국에서는 인맥이 개인관계뿐 아니라 학연이나 지연 등 집단에 기대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꽌시’는 개인 대 개인 관계다. 나와 상대가 개인적으로 맺은 인연이 있어야 꽌시를 만들 수 있다. 물론 집단적 인연이 겹치는 사람끼리는 아무래도 접점이 많으니, 꽌시를 맺기 쉬운 면은 있다.


또한 ‘과거의 공통점’을 주춧돌로 쌓는 경우가 많은 인맥과는 달리, 꽌시는 미래의 접점을 중시한다. 실제로 조동성 인천대 총장(서울대 경영학과 명예교수)은 2014년 한 강연에서 꽌시와 관련해 “한국인의 인연은 혈연, 지연, 학연, 공통 지인 등 과거의 공통점을 더듬어 잇지만, 중국의 꽌시는 ‘비전’이 같아야 맺어진다”며 “과거는 묻지 않고 같은 대의만으로 뭉친 ‘도원결의’가 바로 그런 성격”이라고 했다.

출처: 코에이 게임 '삼국지 13' 캡처
도원결의.

꽌시를 설명하는 글에선 이를 맺으려면 뇌물을 주거나 밥을 같이 먹어야 한다 말하는 경우가 많다. 100% 틀린 말은 아니지만, 100% 맞는 말도 아니다. 친구를 사귀거나 인맥을 쌓는 과정을 생각해 보자. 왕도는 없다. 상황에 따라 달라지며, 사람 스타일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말 그대로 케이스 바이 케이스다. 꽌시도 마찬가지다. 식사를 함께하는 게 가장 보편적이고 정석적인 방법일 순 있지만, 무조건 통하는 것도 아니며 방법이 그것뿐인 것은 더더욱 아니다.


꽌시의 단계


꽌시는 단계가 있다. 처음엔 새친구(新朋友·신펑요우)다. 하지만 중국인이 나를 ‘신펑요우’라 부른다 해서 친구 관계라 생각하면 곤란하다. ‘신펑요우’는 그저 ‘얼굴은 안다’ 정도 의미일 뿐, 생판 남도 원수질 사람도 모두 포괄하는 단어다. 코에이 삼국지 게임으로 치자면 ‘미지’에서 ‘무시~대면’ 정도 단계로 바뀐 것에 불과하다.


좋은 친구(好朋友·하오펑요우)라 불릴 정도면 어느 정도 도움은 주고받을 단계라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오랜 친구(老朋友·라오펑요우)라는 칭호까지 얻으면 상당히 깊은 관계라 자부해도 괜찮다. 이쯤이면 별 허락을 받지 않고도 상대 물건을 마음대로 쓰거나, 제3자에게 소개를 시켜주는 경지다. 그보다 더 위로는 의형제 격인 시옹디(兄弟) 꽌시가 있지만, 이는 현지 중국인들끼리도 맺기 어려운 인연이다.


물론 고도의 꽌시를 쌓기까지는 품도 많이 들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이 때문에 중국에서 사업을 할 때엔 거래처와 꽌시가 있는 현지인을 고용하는 것이 차라리 싸게 먹힐 수도 있다. 실제로 이욱연 서강대 중국문화학과 교수가 네이버 지식백과에 기고한 ‘모든 사람을 차등하여 대하는 중국인’이란 글을 보면, 중국 칭다오 부근에서 공장을 운영하던 한국 기업인이 현지 토박이 공장 직원 덕에 물건을 싸게 산 이야기가 나온다. 사장이 형광등 값을 물었을 때엔 16위안이라 답한 가게가, 토박이 공장 직원에게 교섭을 시키자 8위안에 물건을 팔았다는 내용이다.


그래도 아직은 꽌시


최근엔 근대화나 공산주의 영향으로 꽌시 문화가 사라졌다 주장하는 목소리도 꽤 나오고 있다. 실제로 시진핑 정권이 부패 척결 정책 드라이브를 걸어, 비공식적이며 사적인 인연에 의존하는 꽌시는 설자리를 많이 잃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도 모바일 국가정보 중국 항목에서 꽌시 관련해 ‘사유기업은 괜찮으나 국유기업 혹은 정부인사들은 사치한 식사장소를 부담스러워하고 값진 선물 수수를 꺼려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국유기업과 비즈니스를 진행할 때는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소개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꽌시가 중국인 삶에서 완전히 지워졌다 말하기도 어렵다. 전근대 시절에 비해 색채가 엷어지며 꽌시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마스터키’ 기능을 잃은 것일 뿐, 여전히 그 영향력은 무시 못 할 수준이다. 지난 7월 2일 류허(劉鶴) 부총리가 중국 국무원 금융안정발전위원회 주임 자리에 오르자 그와 시진핑 사이의 ‘꽌시’를 분석하는 글들이 나왔을 정도다. 한국 사회가 발전하며 학연이나 지연의 힘이 많이 줄었다 말하지만, 아직도 현실에선 의미 있는 개념인 것과 비슷한 이치다. 좋은 관행이라 말할 수는 없더라도, 아무튼 중국 진출을 원한다면 제쳐두고 무시할 수만은 없는 문화라는 것이다.


중국 석학들 또한 꽌시는 여전히 현지 시장을 개척하는 중요한 열쇠 중 하나라 말한다. 자이신 북경대 광화관리학원 교수는 “최근 중국 경제가 민간 중심으로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다”며 “한국 기업들이 중국 시장에 안정적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이런 민간 파트너들과 꽌시를 잘 맺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글 jobsN 문현웅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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