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엔 "아빠들의 스벅" 밤엔 직장인 노맥의 성지

조회수 2020. 9. 24. 14:2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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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들 바글바글.. 낮엔 '아버지의 스타벅스'라는 이곳
서울 을지로 노가리 골목
지역상권 성공사례로
미국, 일본에서도 관심
싼 값은 덤, 차별화가 성공 비결

‘노가리와 생맥주가 단돈 천 원’.


6월 22~23일 서울 을지로 3가에서 열린 ‘2018 을지로 노맥(노가리+맥주) 축제’. 이틀간 2만여명이 다녀갔다. 연탄불에 노릇노릇 구운 노가리, 고소한 맛과 저렴한 가격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서울 지하철 2호선 을지로3가역 4번 출구로 나와 안쪽으로 들어가면 ‘을지로 노가리호프 골목(이하 노가리 골목)’이 있다. 철물점과 타일 가게가 빽빽한 곳에서 맥주와 노가리를 즐길 수 있다. 지역 명소로 떠올라 CNN, BBC, NHK에서도 다녀갔다. '노가리·호프 번영회' 회장 정규호(75)씨에게 성공 비결을 물었다. 

출처: jobsN
노가리 골목을 찾은 회사원들

-언제부터 노가리 골목이 탄생했나

“황해도 출신 강효근씨가 1980년 이곳에 맥줏집을 열었습니다. 땅콩, 김 대신 노가리를 안주로 내놓았습니다. 시원한 맥주와 궁합이 잘 맞는다고 입소문이 났습니다. 이후 노가리를 파는 맥줏집이 하나둘 생겼구요.”


노가리 골목엔 16곳의 맥줏집이 있다. 노가리 한마리에 1000원, 15년째 가격이 그대로다. 500cc 생맥주 한잔은 노맥축제때만 1000원이고, 평소엔 3500~4000원 정도(가게마다 차이가 있음)다. 이 가격도 저렴한 편이다. 남는 게 있을까.


-노가리 원가가 1300원 정도라는데, 이윤이 남나

“물론 노가리로 수익이 나진 않죠. 사실 매출에 영향을 주는 건 맥주와 기타 안주입니다. 그래도 모든 상인들이 노가리 가격을 올리지 않기로 했습니다. 많은 이익보다 노가리 골목 특성을 지키는 게 더 중요하니까요. 사람들이 여기 오는 이유는 싼 가격과 이곳만의 분위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돈을 더 벌겠단 욕심을 부리면 올 이유가 없어집니다.”  

출처: jobsN, 플리커 제공
인적이 뜸했던 골목이 이제 '노맥'을 즐기는 사람들로 붐빈다

노가리 골목은 죽어가던 지역 상권을 살렸다는 평을 듣는다. 해가 지면 인적이 드물었는데 하루 평균 300~400명이 찾는 곳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작년 5월부터 가게 밖에도 테이블을 놓았다. 넥타이를 맨 채 삼삼오오 모여 잔을 부딪치는 직장인들이 골목을 가득 메웠다. 왁자지껄한 소리, 어둠 속 반짝이는 불빛 때문에 ‘여기 뭐하는 곳이지’란 호기심이 생긴다.


원래 옥외영업은 불법이다. 하지만 서울 중구청은 상인들의 옥외영업 허가 요청을 받아줬다. 노가리 골목이 지역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중구청은 도로법 제61조(시설로 도로를 점용하려는 자는 도로관리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에 근거해 노가리 골목을 옥외영업이 가능한 '지역상권 활성화 사업구역'으로 지정했다.


-성공 요인이 무엇인가

“억지로 꾸며내지 않고 원래 있던 문화를 트렌드에 맞춰 발전시킨 점입니다. 1990년대 을지로 골목엔 인쇄소가 많았어요. 인쇄소 직공들이 퇴근할때 맥주 한잔에 노가리를 먹던 문화를 그대로 살렸습니다. 화려한 인테리어, 고급 안주, 수입 맥주 등 유행만 좇았다면 차별화하지 못했을 겁니다.


상인들간 협동도 성공에 한 몫 했습니다. 공정한 경쟁을 위해 영업 시간도 똑같이 정했습니다. 낮 12시부터 자정까지로요. 어느 한 가게라도 가격을 올리거나 규칙을 지키지 않았다면 지금의 노가리 골목은 없었을 거예요. 서로 욕심을 내려놓고 힘을 합쳤기에 이룬 결실입니다.”

출처: Unsplah 제공
2018 노맥축제

노가리 골목이 전보다 유명해졌지만, 상인들은 ‘감을 잃지 않기 위해’ 꾸준히 노력한다. ‘나이든 사람은 들어올 수 없다’며 문전박대를 당해도 강남, 홍대 등 유명 상권의 맛집들을 자주 찾아간다. 요즘 사람들이 뭘 좋아하는지 끊임없이 연구한다.


노력 끝에 나온 아이디어가 올해로 4번째 연 ‘노맥축제’다. 맥주 한 잔에 1000원만 받고, 버스킹 공연도 열었다. 일본, 중국 관광객들이 축제 일정에 맞춰 방문할 정도로 성공적이다. 대구, 부산, 광주 등 다른 지역 상인연합회들이 벤치마킹하러 오기도 했다. 이번 노맥축제 수익금 약 3000만원은 중구청을 통해 전액 기부할 예정이다. 노가리 골목을 찾아준 사람들 덕분에 얻은 돈이므로 어려운 이웃에게 쓰자고 뜻을 모았다.


-노가리 골목의 독특한 분위기도 있다는데

“낮 손님이 밤에 오는 손님만큼 많습니다. 주로 중장년층입니다. 퇴직한 분들이 대부분이예요. 그런데 이분들이 외출해도 마땅히 갈 곳이 없잖아요. 카페는 주로 젊은 사람들이 많으니 들어가기 꺼려지구요. 이곳이 그런 분들에게 안성맞춤인가 봐요. 많은 돈 안 쓰고 눈치 보지 않고 편하게 오래 머물다 갈 수 있는 곳이라 합니다. ‘아버지가 가는 스타벅스’란 별명이 그렇게 나왔습니다. 30년 장사하면서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어요. 취업이 안돼 고민하는 대학생, 승진 탈락에 좌절하는 직장인. 이곳에 와 희노애락을 많이 풀어놓습니다. 앞으로도 모두의 편안한 쉼터로 남았으면 좋겠어요.”

출처: jobsN
'노가리·호프 번영회'를 이끄는 정규호씨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와 이루고 싶은 목표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당장 인건비가 올라 고민이 많습니다. 그렇다고 맥주나 안주 가격을 올릴 순 없구요. 그래도 임대료와 인건비 감당할 정도의 매출은 나옵니다.


사람들이 꾸준히 이곳을 찾도록 하는 게 가장 큰 목표예요. 우선 제각각인 간판 디자인을 똑같이 만들 계획입니다. 당장 눈앞의 이익보다 이곳 문화를 지키는 게 중요합니다. 노맥축제를 한국의 '옥토버페스트'(독일 뮌헨에서 9~10월중 2주간 열리는 세계적인 맥주 축제)로 키우고 싶습니다.


지역 상권 활성화를 위해 관련 부처의 지원도 필요합니다. 구멍 가게가 사라지면 오로지 대형마트만 남아요. 우리 동네 가게들이 없으면 똑같은 프랜차이즈만 남지 않겠어요? 개성있는 골목, 작은 가게도 살아남을 수 있어야 합니다.”


글 jobsN 김민정 인턴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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