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대 출신 게임 개발자가 2년반 만에 사시 패스, 그리고..

조회수 2020. 9. 24. 13:4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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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소폰 부는 변호사..코딩과 법률, 연주는 다르지 않아요

게임 만들던 변호사가 색소폰도 분다. 국내 대표 게임 기업 넥슨에 다니는 이홍우(41) 법무실장의 이야기다. 이 실장은 게임을 만들고 싶어 넥슨에 들어왔지만, 연이은 실패로 게임 개발의 뜻을 접고 사법시험을 쳤다. 합격하고는 로펌에 다니다 다시 넥슨에 입사해 사내 변호사 생활을 했다. 그러던 중 색소폰을 배웠다. 자라섬 국제 재즈페스티벌에도 참가할 정도로 실력파다. jobsN에서 이홍우 실장을 만나 파란만장한 그의 변신 스토리를 들어봤다.

출처: jobsN
이홍우 넥슨 법무실장

게임 개발자로 입사…3번의 실패

이실장은 서울대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데이터베이스 분야 취업을 준비했다. 1999년 외환위기의 여파는 남아있었지만 전 세계적으로 IT기업이 호황을 누리고 있어 닷컴기업은 인기가 높던 시절이었다. 마침 캐주얼 게임 ‘퀴즈퀴즈’로 큰 인기를 얻은 넥슨에서 아르바이트생을 찾았다. 웹 개발과 데이터베이스 관리 업무였다. 일도 재밌을 거 같고, 졸업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알바로 넥슨에 들어갔다. 다니다 보니 괜찮은 회사였고 병력특례도 받을 수 있다니 정직원으로 다니고 싶었다.


꿈에 부푼 게임 개발자 생활은 그리 길지 않았다. 넥슨에서 개발에 참여했던 게임 3개가 모두 실패했다. 게임 개발자의 길은 내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정말 여러 가지 일을 탐색했어요. 회사를 그만둘까도 고민했죠. 실용음악 학원을 다니며 재즈피아노도 배우고 여러 책도 읽었어요.” 회사 안에서는 직무 변동이 있었다. 개발자에서 기획자로 변신이다. 그 와중에 딴짓을 멈추지 않았다. “생각해 본적도 없는 변리사 공부도 했어요. 회계사 시험을 보라는 사람도 있었죠. 그 와중에 사법시험을 오래 공부했던 기획자 한 명이 정리를 잘 하는 게 사시를 준비해도 좋을 거라는 거예요."


사시 도전 2년 반 만에 합격

그때까지 법에는 관심이 전혀 없었다. 처음에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게임 개발과 코딩에 회의감이 들자 법관 생활도 재밌을 거 같았다. 게다가 당시 사법시험 합격자가 1000명까지 늘면서 자신이 생겼다. “100등 안에 들 자신은 없었지만 1000등이라면 운이 좋으면 합격할 수도 있을 거 같았아요. 그래서 바로 회사에 이야길 했어요.”


"이직하고 싶은데 핑계가 없으니 별소리를 다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했다. 고시촌에 들어가 10년째 못 나온 사람도 있다며 퇴사보다는 휴직을 하라고 했다. 그 와중에 신림동 고시학원을 찾아 상담을 했다. 상담 결과는 부정적이었다. “법학을 전공하지도 않은 공대 출신 개발자에 나이도 서른을 앞두고 있었어요. 언제 합격하려고 이제 왔냐고 묻더군요."


휴직을 하면서 조급한 마음에 고시공부의 정석을 따르지 않고 마구잡이로 공부했다. 대다수 고시생이 민법∙형법∙헌법을 따로 공부한다면 이실장은 오전∙오후∙밤으로 나눠 같이 공부하는 식이었다. 모의고사를 봤는데 성적이 제법 잘 나왔다. 조금 더 하면 합격할 것 같아서 회사에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집에서는 반대가 많았다. 일 년만 해보고 1차에 붙지 않으면 포기하자고 마음먹었다. 결과는 준비 첫 해에 1차 합격. 2차도 다음 해에 붙었다.

 “법에서 중요한 게 요건을 보고 결과를 생각하는 ‘요건사실’이라는 것인데, 개발하는 과정에서 배운 논리적 사고가 도움이 됐습니다. 연수원에 가보니 나보다 빨리 합격한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도 공대생이더라고요.”

출처: jobsN
이홍우 법무실장

다시 넥슨으로

이실장은 연수원을 마치고 중견 로펌에서 1년을 일했다. 하루에 7차례 이상 재판에 출석하고 밤에는 서면을 쓰는 힘든 업무였지만 내가 하는 일이 사람을 돕는 일이라는 게 즐거웠다. 하지만 계속하다보니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과중한 업무와 반복하는 일상이 자신이 꿈꾸던 삶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그때 넥슨 사내 변호사가 그만둔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래서 지원을 했고 2010년부터 다시 넥슨에서 일했습니다.


넥슨에서 이실장은 사내 변호사로 회사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사건에 관여하고 있다. 새로운 계약을 하거나 사업을 할 때 법률적인 문제가 없는지 검토하고, 문제점이 있으면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사내 변호사의 역할. 사용자나 이해관계자와 분쟁이 발생하면 법정으로 가기 전까지 조정을 하기도 한다. 회사 내부 행정에서 법적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한 임무다.


“사내 변호사는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일이 더 커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게이머들과 분쟁의 경우는 더 그렇죠. 우리가 이기면 이용자가 지는 셈인데, 법정에서 패한 이용자가 느끼는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거든요. 반대로 우리가 패소하면 게임업계 전반에 선례를 남기는 일이라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닙니다.”


게임 기업 법무팀에서 일하면서 개발을 아는 건 큰 경쟁력이었다. 법적 분쟁이 발생할 소지가 있을 경우 개발자들의 복잡한 설명을 단숨에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은 다른 변호사에게는 없는 무기이기 때문. 법정까지 간 사건에서는 개발자의 언어를 소송을 담당하는 변호사나 재판관이 이해하기 쉽게 통역해주는 것도 이실장의 역할이다.  

출처: 넥슨 제공
NDC에서 재즈를 연주하는 더놀자 밴드

오랜 꿈, 색소폰을 연주하다

개발자로 일하다 변호사로 업을 전향했지만, 그에게는 멋진 연주를 하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악기를 다룰 줄 아는 게 멋있어 보였어요. 교양 있어도 보이고요. 그래서 처음 방황하던 시절 실용음악학원에 다녔는데 재즈 화성부터 시작했어요. 무슨 소린지 모르는 이야기만 하더라고요. 감만 잡고 그만뒀죠.”


그렇게 악기와 멀어져 지낸 그에게 다시 기회가 찾아왔다. 2012년 넥슨에서 창의력 증진 프로그램 ‘넥슨포럼’의 하나로 재즈밴드를 만든다는 것. 이실장은 색소폰에 지원했다. 주변에서는 “법무 하는 사람이 무슨 창의력이 필요하냐”며 말렸다. 그래도 꼭 해보고 싶다는 열망에 게임 업계 최초의 재즈 밴드 ‘더놀자’의 메인 색소포니스트가 됐다. 한국 재즈계의 거장 색소폰 연주자 홍순달씨의 지도도 받았다.


7월부터 3개월 맹연습을 하고 자라섬 국제 재즈페스티벌 무대에 섰다. 주 무대는 아니었고, 아마추어들도 참가할 수 있는 주변 무대였다. 단독 공연은 아니었고 홍순달씨가 이끄는 서울솔리스트 재즈오케스트라와 합동 공연이었다. 많은 관객 앞에서 연주한다는 게 마냥 설렜다.

출처: 이홍우 제공
자신의 결혼식에서 색소폰을 연주하는 이홍우 실장

내친김에 그해 12월 자신의 결혼식에서도 직접 노래를 부르고 색소폰을 연주하기로 했다.


 "색소폰을 연주하려면 입술이 촉촉하게 젖어 있어야 하는데 먼저 노래를 부리고 나서 입술이 바짝 말랐어요. 연주를 하면서 ‘삑사리’(음이탈)가 많이 났죠. 장인어른은 멋있다고 좋아하셨고 신부 측에서는 감동의 물결이었다고 하네요. 그런데 신랑 측 하객들은 ‘생전 이렇게 웃긴 결혼식은 처음’이라는 반응이었어요. 처가 식구들은 그때 이야기를 두고두고 하십니다.”

더놀자밴드는 이제 사내 공식 동아리로 활동하고 있다. 넥슨개발자컨퍼런스(NDC)에서 게임 음악을 주제로 공연하고, 결혼식 축하공연도 자주 다닌다. 9월에는 천안에서 열리는 재즈페스티벌에도 참가하기로 했다. 이제 결혼식을 여는 넥슨 구성원은 더놀자밴드를 부를 수 있는지 물어보기도 한다.


재즈를 연주하는 게 직접적으로 창의력을 길러주지는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회사 다닐 맛을 나게 해주는 것으로도 넥슨의 실험은 성공적이라고 평가했다. “전혀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것도 큰 도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악기를 연주한다는 것은 소리를 내는 시스템을 배우는 것이에요. 악기를 배우는 건 시스템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글 jobsN 최광

jobarajob@naver.com

잡스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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