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무슨' 수많은 악플에 시달렸던 남자, 지금은..

조회수 2020. 9. 24. 12:5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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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수길에 새숨 불어 넣은, '화장발 세우는 남자'
그루밍족 1세대 뷰티 마케터 장영환씨
K-뷰티 주역 닥터자르트 커뮤니케이션 팀장
삭막해진 가로수길 되살리는 프로젝트 주도

2017년 여름 신사동 가로수길에서 파란색 물고기들이 하늘을 날았다. 천을 꿰매어 만든 400여마리 물고기 인형들은 가로수길을 색다른 관광 장소로 만들었다. ‘물고기의 꿈’을 주제로 도심에서 일상 탈출을 꿈꾸는 현대인의 모습을 담았다.

화장품 회사 닥터자르트가 강남구청에 제안한 공공미술 프로젝트였다. 미술작가 오수연·오혜선씨가 함께했다. 젠트리피케이션(유명 프랜차이즈 등 상업 자본이 몰려들어 기존 지역민을 밀어내는 현상)으로 변해버린 가로수길의 옛 명성을 되살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닥터자르트는 2016년부터 ‘자르트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미술 전시를 기획했다. 자르트 프로젝트는 닥터자르트에서 뷰티 마케터로 일하는 장영환(36) 팀장이 주도하고 있다.

장씨는 남자 뷰티 마케터 1세대다. 대학생 때 뷰티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가 10여년 전 화장을 했을 때 ‘남자가 무슨 화장이냐’는 편견과 싸웠다. 남자 뷰티 마케터의 삶을 듣기 위해 장씨를 만났다. 화려한 화장을 했을 거라는 기대와는 달리, 뽀얀 피부와 깔끔한 눈썹 말고는 특별해보이지 않았다. 체격도 건장했다. “화장하는 남자라고 하면 더 유별날 거라 생각하는 분들이 계세요. 그것도 일종의 편견 아닐까요. 전 평범합니다.”

출처: jobsN
신사동 가로수길 닥터자르트 '숙면연구소'에서 만난 장영환 팀장

그루밍족 1세대···하지 말라고 하니 더 하고 싶었다


어릴 적엔 그저 ‘남자치곤 화장품에 관심있는 정도’였다. 유별나게 화장을 하는 편도 아니었다. 뷰티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2007년 대학교 3학년 때다. ‘그루밍족’이라는 단어가 이때 처음 등장했다. 그루밍족은 패션과 미용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남성을 말한다. 취업 준비를 막 시작할 무렵이었다. 장씨는 중앙대학교 경영학과 01학번이다.


“뷰티에 관심 있다보니 화장품 회사에서 하는 공모전이나 대외활동을 했는데, 전부 여자이고 저만 남자였습니다. 잘하면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사람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남자인 제게 뷰티업계는 취업 틈새시장이었습니다.”


장씨는 그루밍족 1세대로 활동했다. 자신의 블로그에 화장품 리뷰를 올렸다. 그루밍족이 정보를 공유하는 커뮤니티에서도 활동했다. 화장품을 이것저것 써보느라 1년에 30~40개씩 화장품을 샀다. 뷰티 관련 잡지란 잡지는 닥치는 대로 읽었다. 화장품 회사가 주최하는 공모전이나 대외활동이라면 가리지 않고 참여했다.


스스로를 가꾸는 데도 신경썼다. 기초 화장품을 꼼꼼히 바르고 헤어스타일에 신경 썼다. 외출 할때는 비비크림을 바르고 깔끔하게 눈썹을 정리했다. 남자가 화장한다는 게 흔하지 않아서인지, 주변 시선은 곱지 않았다. “한번은 그루밍족 청년으로 인터뷰를 한 적이 있어요. 화장품이 들어있는 가방을 공개했는데 ‘남자가 무슨 화장이냐’며 악플이 어마어마하게 달렸죠.”


그때 꿈은 뷰티 MD. 뷰티 상품을 기획하고 마케팅하는 일이다. MD 학원을 다니며 취업을 준비했다. 뷰티와 관련해 많은 활동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취업은 쉽지 않았다. 화장품 회사부터 인터넷 쇼핑몰까지 MD를 할 수 있는 회사에는 모두 이력서를 냈다. 채용 모집을 하지 않는 회사에도 이력서를 보냈다.


“면접까지는 순탄하게 간 것 같아요. 그런데 면접관들이 자꾸 다른 분야를 권유하더라구요. 뷰티 말고 자동차는 어떠냐, 주류는 어떠냐. 주로 남자들이 많은 분야였죠. 심지어 면접에서 우리는 여자를 원한다고 퇴짜를 놓은 곳도 있었습니다. ‘할 수 있겠냐, 못할 거다’라는 말을 들으니 더 하고 싶었습니다.”


피부 하나 만큼은 자신있게


2009년 홍보 대행사에 입사했다. 화장품 회사를 홍보했다. 뷰티MD는 아니었지만 화장품 관련 업무를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초반에는 좀 애를 먹었어요. 선배들이 모두 여자였습니다. 또 블러셔(생기 있어 보이도록 볼에 바르는 화장품) 같은 색조 화장품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어요. 기본적인 화장품 용어를 몰라 인터넷에 검색하고 책을 찾아보며 공부했어요.”


2011년 닥터자르트를 운영하는 해브앤비로 이직했다. 2004년 이진욱 대표가 설립해 6년밖에 안된 벤처 회사였다. 뷰티 마케터로 입사했지만 광고·카탈로그·행사 기획, 기업 홍보, 언론 대응, SNS 홍보까지 모두 했다.


장씨는 화장품 업계에서 드문 남자다. 상대에게 인상을 남기기 쉬운 점을 영리하게 이용했다. ‘피부 좋은 남자 마케터’를 자신의 캐릭터로 삼았다. “당연히 여자인 줄 알았는데 제가 나오니까 다들 놀랍니다. 오히려 그게 좋아요. 또 저는 첫 미팅에서 ‘피부가 저보다 좋으시네요’라는 말을 듣는 게 목표였어요. 그래야 기억에 남으니까요.”


그가 입사했을 때 직원수 40명이었던 회사는 미국·중국·유럽·태국·멕시코 등 전세계 36개국에 진출한 K-뷰티 주역으로 성장했다. 2017년 매출액은 3800억원, 직원수는 130명이다. 

출처: jobsN

지금도 피부 관리가 제 1순위다. 클렌징이 중요하다. 클렌징 오일-클렌징 폼으로 이중 세안을 하고 스킨 토너를 화장솜에 듬뿍 적셔 닦아낸다. 일요일 밤 10시 전에는 항상 모공 팩을 한다. 피부 상태가 좋지 않을 때는 며칠 간 1일 1팩을 하며 집중관리를 한다. “여성분들이 보면 이 정도는 기본입니다. 남자라서 특별해 보이는 걸거예요. 남들 하는 정도로만 합니다.”


가로수길에 새숨 불어넣은 변종 마케터


닥터자르트는 2016년부터 신사동 가로수길에 ‘필터스페이스 인 서울’이라는 플래그십 스토어를 운영하고 있다. 보통 플래그십 스토어는 기업 이미지를 나타내는 상품 몇가지를 파는 곳이다. 하지만 필터스페이스 인 서울에선 주로 ‘자르트 프로젝트’ 전시가 열린다. 닥터자르트가 만든 전시관인 셈이다.  

출처: 닥터자르트 제공
자르트 연구소에서 선보인 각종 전시들. 위 2개 사진은 블루피쉬 프로젝트. 아래 왼쪽부터는 핑크힐 프로젝트, 수면연구소 프로젝트.

장 팀장이 제안하고 기획했다. 인지도가 낮은 신진 작가들과 협업한다. 삭막해진 가로수길에 새숨을 불어넣어 이색적인 관광지로 만들었다. 닥터자르트는 신진 작가의 독특한 아이디어를 이용하고, 신진 작가는 일감을 얻어 서로 윈윈(win-win) 할 수 있다. 하지만 정작 닥터자르트에는 수익성이 떨어지는 일이다.


“저희 제품 신뢰도는 높습니다. 믿어주시는 고객분들이 많아요. 하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도 닥터자르트가 무슨 고민을 하는지 메시지를 보여줄 때라고 생각했습니다. ‘근본적으로 건강하고 아름다워지려면 어떻게 해야할까’하는 고민을 예술로 표현했어요. 저희가 이런 고민을 한다는 걸 아는 고객분들은 더 저희를 좋아해주세요.”


이번에는 숙면연구소를 차렸다. ‘잠’에 관한 전시다. 숙면에 좋은 향기를 맡아 볼 수 있다. 뇌를 자극해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소리인 ASMR을 들을 수도 있다. “처음에 일을 벌리기 전에는 ‘잘 할 수 있을까’, ‘회사에서 뭐라고 하진 않을까’ 머뭇거리기도 했어요. 그런데 저희 회사에선 일을 벌리라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지원합니다. 결과가 좀 좋지 않다고 바로 문책하지도 않아요.”


K-뷰티가 성장하면서 뷰티업계 취업을 꿈꾸는 청년들이 많다. “제가 ‘변종’이라는 소리를 많이 들어요. 옛날에는 화장하는 남자라서, 지금은 여러가지 일을 하는 마케터라서요. 남의 눈과 시선에 얽매였다면 지금까지 뷰티업계에서 일하지 못했을 겁니다. 좋아하는 일을 해야 힘든 일도 이겨낼 수 있어요. 자기가 하고 싶은 일만큼은 포기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글 jobsN 이연주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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