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도, 기자도 그만둔 그가 뒤늦게 '꽂힌 일'은?

조회수 2020. 9. 24. 12:5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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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 마, 달라질거야

장강명이 세계와 대결하는 방식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어쩔 수 없다. 이기고 살아남은 자가 기록을 남길 권세도 갖는다.

그런가 하면 문학은 이기지 못한 자들의 기록이다. 주목받지 못한 이들과, 기억나지 않는 이름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무대에 선다. 사르트르는 ‘지는 것으로 이기는 자가 예술가다’라는 말을 했다는데 ‘흔적을 남겼다’는 것만으로도 어떤 이들은 기어이 살아남았다.

장강명 작가가 쓴 《당선, 합격, 계급》은 역사도 문학도 아닌 어디 즈음에 있다. 그는 승자의 기록을 남겨 ‘승리의 비법’을 전수하지도 않고, 체제에서 낙오한 이들의 서러운 사연을 복기하지도 않는다. 다만 분석한다. 현대사회를 유지하는 시스템은 어떤 이들을 선택하고 어떤 이들을 거절해 승자와 패자를 만들어내는 게 아닌가. 그 기준은 온당하고 공정한가. 만약 이 시스템에 선택받지 못해 좌절한 자가 이 글을 썼다면 한풀이로 보였을지 모른다. 장강명 작가는 대기업 공채와 언론사 공채, 문학상 심사를 모두 통과했다. 안으로 들어가기는 어렵지만 한 번 들어가면 안온한 삶이 보장되는 성벽 안의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성벽 밖으로 나와, 성벽의 구조를 살핀다.


“스물여섯에 대기업을 그만두고 나왔던 순간이 어쩌면 ‘제 인생의 한 컷’이었는지 몰라요. 그 전에는 선택지에 있는 삶을 살았는데, 선택지를 벗어난 선택이었거든요. 부모님의 반대도 컸고요. 건설회사에서 한 시절을 보내보니 앞으로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게 될지가 보였어요. 핸들을 돌리고 싶었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비를 벌고, 고시원에 살며 시험을 준비했다. 기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건 군대에서였다. 늦게나마 ‘글 쓰는 직업’을 갖고 싶었다. 공채에 붙어 동아일보 기자가 됐다. 그리고 11년 동안 기자로 살았다. 기자의 삶은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 ‘취재의 기본기’를 배웠다. 이달의 기자상, 관훈언론상, 씨티대한민국언론인상 대상 등은 그 성과다. 상복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뜻밖에 그는 2011년 소설 《표백》으로 한겨레문학상을 받았다. 이후 그는 《열광금지, 에바로드》로 수림문학상을, 《댓글부대》로 제주4・3평화문학상과 오늘의작가상을,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으로 문학동네작가상을 받았다. 문학상 5관왕인 그를 혹자는 ‘연쇄수상범’이라고 불렀다.


“기자라는 직업에 만족감이 있었어요. 보람도 있었고요. 한동안은 소설가와 기자를 겸하려고 했어요. 그러다 우발적으로(?) 회사를 관두게 됐죠. 돌아보건대 아마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건 이전에 그런 결정을 한 뒤로도 ‘별일 없이 잘 살아올 수 있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거예요.”


장강명 작가는 당시 느꼈던 마음을 에세이 《5년 만에 신혼여행》에 이렇게 적어두었다.


‘기자라는 일을 하다 보면 이런저런 자기혐오와 회의감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 업무 자체가 양립할 수 없는 가치(예를 들어 ‘신속’과 ‘정확’ 같은 것)를 하나의 이야기에, 또 한 개인에게 과도하게 요구한다. 단순히 노동 강도만 높은 게 아니라 사람을 계속해서 강한 도덕적 긴장 상태로 몰아넣는다.(19~20p)’


질문으로 시작하는 소설

그가 출입(합격)증을 받아 드나들었다가 빠져나온 대기업과 언론사, 심지어 문학상에는 공통점이 있다. 대규모 공개시험을 거쳐 합격자를 선발한다. 이른바 현대판 과거제도다. 이런 제도는 블랙홀처럼 시대의 젊음과 재능을 빨아들인다. 소수의 합격자와 다수의 패배자를 낳는다. 합격자는 다시 그 질서의 열렬한 수호자가 되어 사회의 창조적 역동성을 막는다. 이 지적은 조선 시대에도 있었다. 실학자 박제가의 말이다.


“어린아이 때부터 과거 문장을 공부하여 머리가 허옇게 된 때에 과거에 급제하면 그날로 그 문장을 팽개쳐 버린다. 한평생의 정기와 알맹이를 과거 문장 익히는 데 전부 소진하였으나 정작 국가에서는 그 재주를 쓸 곳이 없다.(《당선, 합격, 계급》 100p)”


장강명 작가에게 《당선, 합격, 계급》은 아픈 손가락이다. 애초 기획보다 난산이었다. 취재에만 3년이 걸렸다. 대기업 공채 현장, 각 출판사의 담당자, 문학상 심사위원, 등단을 준비하는 예비 작가들 등을 취재했다. 자신이 참여했던 문학상 심사를 예로 들어 잘못 알려진 미신과 루머에 대한 오해도 풀었다. ‘르포’라는 장르로 채워진 이 책은 ‘북저널리즘’으로 읽힌다. 446쪽의 이야기는 영화 〈록키〉의 한 장면을 빌려 지망생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건네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여전히 낙방하고 좌절하는 이들에게 전하는 합격에 도움이 될 만한 꿀팁이다.


“제도의 좋은 점은 좋다고 말하고, 한계는 한계라고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지금의 제도는 많은 이에게 공평한 기회를 준다는 장점이 있어요. 하지만 이 제도가 너무 성공하는 바람에 다른 가능성을 막고 있다는 한계가 있죠. 그렇다면 이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그 질문에 대한 답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장강명 작가의 글은 ‘질문’으로 시작한다. 한국을 떠나는 젊은이들이 궁금해 쓰게 된 《한국이 싫어서》, 국정원 댓글 조작 사건을 본 후 충격으로 쓰게 된 《댓글부대》 등이 그렇다. 이번 책 역시 질문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질문을 던지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발품을 팔아 채운 글의 답은 역시 현장에 있었다.


“정보의 비대칭성을 해결하는 것만으로도 성벽 안팎의 경계가 느슨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지망생들에게는 너무 정보가 없어요. 거짓 정보에도 현혹되기 쉽죠. 현대사회는 정보를 공개할 수 있는 인프라가 이미 갖춰져 있잖아요. 사용하지 않을 뿐이죠.”


어떤 책이 좋은 책인가를 결정하는 건, 문학상 심사위원이 아니라 독자여야 한다. 독자의 서평이 공유되는 문예운동을 바라는 이유다. 이는 자연스레 문학상의 독점적 권위를 흔든다. 이미 영화의 경우 전문평론가의 평론보다, 네티즌의 한 줄 평이 더 힘이 세다. 기업에 대한 정보도 홈페이지에 나온 ‘인재상’이 아니라 실질적인 내용이어야 한다. 연봉의 수준, 재정의 건전성 등이다. 응시생이 ‘중소기업’을 기피하는 건, 작아서가 아니라 ‘(중소기업인지 강소기업인지) 잘 몰라서’다.



세계와의 대결 의지


얼마 전 종영한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주인공 박성훈(이선균)의 직업은 ‘건축구조기술사’였다. 건축의 구조와 시공이 안전하게 이루어졌는지 평가하는 직업이다. 그는 말했다. “건물도 인생도 결국 외력(外力)과 내력(內力)의 싸움인데, 무슨 일이 있어도 내력이 세면 버틴다”고. 장강명 작가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 사회 시스템 성벽의 내력은 제법 세다. 한 번의 합격은 기득권으로 갈 수 있는 프리패스다. 그의 책 제목에 ‘계급’이 붙은 건 그런 이유에서다. 결국 이를 이길 수 있는 건 외력, 즉 외부의 움직임이다. 성벽 안과 밖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만드는 흐름, 내부의 정보가 외부로 유통될 수 있게 만드는 투명함. 그 정도의 바람만 불어도 성벽은 의외로 무너질 수 있다.


“저를 움직이는 동력은 ‘세계와의 대결 의지’예요. 왜 그렇게 됐는지 질문하고,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죠. 제 삶 역시 세계와 대결해 본 경험의 축적이라고 생각해요.”


당연한 것을 당연하다고 말하는 대신, ‘왜 당연한지’를 묻는 습관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 질문이 계속되는 한 그의 글쓰기 역시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세상은 ‘질문하는 자’들을 통해 조금씩 균열이 생긴다. 그 때문에 장강명의 이야기는 여전히 ‘승리한 자’와 ‘패배한 자’ 사이에서 ‘질문하는 자’의 기록이다.


글 jobsN 유슬기 조선뉴스프레스 기자

사진 jobsN 김선아 조선뉴스프레스 기자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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