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가려고 29살 때까지 수능 본 수험생, 8년 후..

조회수 2020. 9. 23. 18:1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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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입시 실패한 '29살 수험생', 지금 하는 일은
스물아홉 살 때까지 수능 본 백태규씨
공무원 영어 과외로 시작해
TG교육그룹·잇올 스파르타 창업
"누구보다 많이 실패했기 때문에 성공했다"

백태규(37)씨는 20대 시절 내내 대입 수험생이었다. 입시를 다섯 번 넘게 치렀고, 스물아홉 살 먹던 해까지 수능 교재를 붙들고 있었다.


돈이 남아 공부를 했던 것도 아니었다. 아버지는 9급 공무원 출신, 넉넉한 봉급은 아니였다. 그나마 모아둔 재산도 사기를 당해 태반을 잃었다. 20만원 정도던 고등학교 기성회비조차 못 내는 때가 여러번 있었다 한다.


없는 형편을 딛고 줄기차게 도전했지만, 그는 결국 원하는 대학 진학에 실패했다. 의대를 지망했지만 문턱을 한차례도 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인생을 실패하진 않았다. 수험공부 경험을 바탕으로 독학자습관리학원 창업에 도전해, 지금은 ‘TG교육그룹’ 대표 자리에 올랐기 때문이다. TG교육그룹은 지난 2017년 매출액 14억원을 기록했고, 올해 들어선 현재까지만 해도 벌써 매출 30억원을 넘기며 연말 기준 100억원 돌파까지 넘보는 급성장 기업이다.

출처: TG교육그룹
백태규 TG교육그룹 대표.

-솔직히 입시에 성공한 사람이 교육 사업을 하는 경우는 흔하지만, 실패한 사람이 뛰어든 경우는 드물지 않나.


그렇긴 하다. 하지만 내 사업은 ‘공부 방법’보다는 ‘학업 환경’이 타깃이라 문제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실패 경험에 큰 도움을 받았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를 통틀어도 20대 내내 대입 준비만 해 본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그러다 보니 남들에 비해 공부 환경 문제를 고민해볼 기회가 훨씬 많았다. 어떤 자세를 잡아야 진득하게 앉아있기에 더 편할까, 공간 배치를 어떻게 해야 집중력이 보다 높아질까 등등의 고민 말이다. ‘실패한 수험생’ 생활이 오히려 큰 영감을 준 셈이다.


-그래도 우리나라 같은 학벌 지상주의 사회에선 ‘실패한 수험생’ 꼬리표가 꽤 부담스러울 텐데. 특히나 교육사업을 하는 사람이니 더욱 불편했을 듯하다. 별문제는 없었나.


지망했던 의대를 가지 못해 문제였지, 넓게 보면 완전히 실패라 말할 정도는 아니었다. 대구교대에 합격해 학적을 두고 있었고, 수능에서 상위 1%대 점수가 나와 서울대 공대까진 도전해볼 만했던 해도 있었다. 아무튼 결국 뜻을 이루진 못했으니, 내 입장에선 입시 실패가 맞긴 맞지만.

출처: TG교육그룹
백태규 TG교육그룹 대표.

-교대 복학 대신 학원사업에 뛰어든 이유는?


돈이었다. 그렇잖아도 가난한 집에 장수생으로 얹혀있는 게 너무 죄스러웠다. 2009년에 마지막으로 수능을 보고서 그다음 해부터 과외를 시작했다. 다만 그 과외가 좀 특별했다. 당시엔 드물던 ‘공무원 시험 영어 과외’를 한 것이다.


과외 사업을 결심하고 주변을 둘러보니, 대입 쪽은 이미 포화상태였다. 그런데 공무원 쪽은 이상하리만치 100여명씩 꽉꽉 채워 넣고 진행하는 ‘대형 강의’가 우세한 게 눈에 띄었다. 개인과외 사업자 신고를 하고 종잣돈 500만원으로 사무소를 열었다. 그리고 공무원 대비 영어 과외를 시작하자,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석 달 만에 순수익 월 1500만원을 넘겼다.


-공무원 과외가 잘 나가는 사업이었다면 계속해도 괜찮지 않았나?


처음엔 공무원 과외가 전국 통틀어도 매우 드물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비슷한 업체들이 생겨났다. 이대로는 오래가기 힘들겠다 싶었다. 그래서 구상한 아이템이 ‘관리형 학원’이었다.


꾸준히 친분을 이어오던 장수생 넷과 상의를 했다. 내 경험에 이들 경험만 더해도 우리나라 공·사교육계 장단점은 모조리 훑을 수 있었다. 재수학원은 비싼 건 둘째치고 개인 맞춤형 학업지원이라는 점에서 너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반대로 인터넷 강의 독학은 부족한 과목만 집중적으로 공략하기엔 좋지만 생활 관리를 해 주는 이가 없어 해이해지기 쉽다는 게 공통 의견이었다.


논의 끝에 이 둘의 단점을 버리고 장점만 취하는 ‘독학관리학원’을 택했다. 각 수험생에게 개인 공간과 인터넷 강의를 제공해 편의에 따라 마음껏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되, 학원 차원에선 개개인의 학습 태도가 풀어지지 않도록 관리만 해주는 시스템이다.


공부를 방해하는 물품을 뺏고, 태도가 흐트러질 때마다 주의를 주고, 정기적으로 시험을 치르게 하는 식이다. 이름이 '독학재수학원'이 아닌 건, 재수생만 받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공무원 시험 등 수험과정이 있는 다양한 분야를 망라한다.


-그 구상이 국내 ‘독학관리학원’의 시초였나?


그건 아니다. 이미 서울 쪽 독서실에서 ‘독학재수학원’ 이름으로 비슷한 업체가 있었다. 실제로 첫해엔 경쟁 학원들의 집중 견제를 받아 폐업 직전까지도 갔었다. 하지만 한 해를 버티며 우리 밑에서 공부한 학생 60명 중 절반 이상이 서울대 등 본인 지망 대학 합격에 성공한 덕분에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2012년 11월 오픈해 2년 만에 직영점을 여럿 냈고, 2015년엔 프랜차이즈 가맹본부까지 세웠다. 지금은 지점이 40개 정도 있다. 내년까지 100개 지점 달성이 목표다.


-어떤 차별점을 뒀기에 후발로 시작하고도 경쟁업체들을 제칠 수 있었나?


공간을 지배했다. 학생 중엔 닫힌 방에서 공부하는 걸 좋아하는 이도 있고, 반대로 탁 트인 공간을 선호하는 경우도 있다. 나는 공간 트임을 6~7종류로 구분해 제공했다.


학생들이 100% 트인 방, 70%만 트인 방, 꽉 닫힌 방 등을 취향 따라 고를 수 있게 해주는 식이다. 그뿐만 아니라 조명 밝기나 의자 컨트롤도 학생 개개인 취향에 따라 조절 가능하게 해줬다.


또한 랭킹 시스템으로 경쟁심을 자극해 학업 동기를 부여했다. 내 학원 소속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해 공부시간 랭킹, 상벌점 랭킹, 모의고사 랭킹 등을 실시간으로 보여준 것이다. 우리가 자체 개발한 시스템으로, ‘관리형 독서실 전문 키오스크’라 부른다. 본디 수험생 공부 패턴이나 성적 등 정보를 수집해 정밀한 합격 패턴 빅데이터를 만들고자 도입한 시스템인데, 랭킹 산출에도 응용하며 일석이조 효과를 내고 있다.

출처: TG교육그룹
TG교육그룹의 독서실 '잇올' 공간 중 일부.

-이번 사업은 계속할 계획인가? 아니면 또 새 영역에 도전할 계획인가?


둘 모두다. 지금의 사업 모델을 꾸준히 다듬되, 이를 우리 학원에서만 쓰는 걸 넘어 초·중·고·대학까지 공급하는 게 목표다. 즉, 빅데이터를 활용한 수업 플랫폼이나 개인 맞춤형 학업 공간을 각급 학교에 제공하는 것이다. 벌써 일부 대학에서는 관심을 주고 있다.


-자기 학원으로 학생을 부르는 대신, 공교육 진출을 시도하는 이유는?


나도 이래저래 교대 출신이다 보니 공교육 발전에 관심이 크다. 사교육도 사교육이지만, 우선 공교육 영역에서부터 아이들이 편히 공부할 환경이 갖춰져야 옳다 본다. 추구하는 목표는 ‘스마트스쿨’이다. 가전제품을 비롯한 집안 모든 장치가 인터넷으로 이어져 거주자 편의를 위해 작동하는 ‘스마트홈’처럼,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생 개개인에 맞는 공부 환경을 제공해주는 학교다. 현재 우리가 활용하거나 개발 중인 기술들을 잘 키워나가면, 현실에 충분히 구현 가능한 개념이라 생각한다.


글 jobsN 문현웅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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