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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신 뒷주머니에 꽂힌 통장 3개..너무 착잡했어요"

조회수 2020. 9. 23. 17:4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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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들어가면 출입구부터 찾는다"는 男 직업은
에스원 김일호 구조팀장
국내 최초 민간 긴급 구조기관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일⋯매 순간 목숨 걸어”

무언가를 버리는 일보다 지키는 일이 더 어렵다. 사람의 목숨을 지켜내는 일은 두말할 나위 없다. 하물며 누군가의 생명을 구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살아가야 하는 이들이라면 어떨까. 사지의 문턱에서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이들이 있다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달려가는 사람들, 바로 구조대원들이다.


에스원 삼성3119구조단(이하 3119 구조단)에서 가장 오랜 경력을 쌓은 김일호 구조팀장(41)도 그중 하나다. 3119구조단은 에스원이 안전한 사회 구현에 일조하겠다는 취지로 1995년에 발족한 국내 1호 민간 긴급 구조기관이다. 서울 중구 신당동 3119구조단 센터에는 20여 명의 구조단원이 상시 근무 중이다.


국가적 재난이나 대형 사고가 발생하면 지역 소방서와 협력해 사고 현장으로 직행한다. 긴급 현장에 출동하는 횟수는 한달 평균 3회. 평시에도 예방 교육과 안전 지원을 위해 현장으로 달려간다. 17년째 3119구조단을 지키고 있는 김 팀장을 만나 민간 구급대원의 삶에 대해 들어봤다. 

출처: jobsN
김일호 삼성3119구조단 구조팀장

구급대원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가 있었다. 해군첩보부대인 UDU에서 4년을 근무한 그는 전역 후 대전보건대에 원서를 냈다. 군에서의 경험을 살릴 수 있는 일이고 적성에도 맞을 것 같다는 판단에서 택한 전공이었다. 진로에 대한 막연한 생각을 품고 지내다 여름 방학을 맞았다.


“속리산 근처 수영장에서 구급대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때였어요. 열 살짜리 아이가 물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죠. 소방대원이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을 수만 없었어요. 학교에서 배운 대로 소생술을 했죠. 15분쯤 지난 때였을까, 맥이 살짝 잡히더라고요. 순간 ‘아, 사람을 살리는 일이 이런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머리를 때렸어요.”


대학을 졸업할 즈음 3119구조단에 들어갔다. 3119구조단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사람을 구하는 '구조'활동과 구조한 사람을 치료하는 '구급'활동을 동시에 할 수 있는 민간 구조단이다. 지역 소방서 등과 핫라인을 구축하고 있는 구조단은 국가적 재난현장에 일 순위로 투입된다. 2006년 강원도 집중호우 사태, 2007년 제주도 태풍 ‘나리’로 인한 재해 현장, 2008년 경기도 이천 냉동 물류센터 화재 현장 등을 겪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이천 화재 현장을 생각하면 그는 아직도 가슴이 먹먹하다.


“당시 밤 근무를 하던 때였어요. 뉴스로 속보를 접하고 단원 스무 명과 달려간 현장은 참혹했어요. 우리는 민간 구조단이라 현장 지휘소통제를 받습니다. 1차 수색이 이미 끝난 현장을 다시 살펴달라는 요청을 받았어요. 추가로 발견한 시신들의 주머니 속에서 검게 타버린 여권이 나왔어요. 희생자들 상당수가 해외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이었습니다. 한 시신의 뒷주머니에 꽂힌 통장 세 개를 봤어요. 돈 벌려고 온 타지에서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한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많이 착잡했죠.”

출처: 본인 제공
(사진 왼쪽부터) 2006년 강원도 수해복구 현장·2008년 경기도 이천 냉동 물류센터 화재 현장

제주도에 태풍 ‘나리’가 몰아쳤을 당시 기억도 생생하다. 태풍의 피해는 지역 소방본부에서 해결이 안 될 정도로 컸다. 당시 김 팀장은 열여섯 명의 구조단과 함께 구조 활동에 필요한 장비들을 싣고 거제도로 간 다음 다시 제주로 들어가는 배를 타고 현장에 도착했다. 3119구조단은 땅 속에 갇힌 사람들의 심박수, 호흡 등을 탐지하는 생존자탐지기, 수색에 사용하는 드론 등 최신 장비도 두루 갖추고 있어 구조활동을 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4박 5일간 구조 활동을 마치고 복귀 하려던 날 제주소방본부에서 실종자 한 명을 찾아야 한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쌌던 짐을 풀고 수색에 나섰지만 찾지 못해서 포기하려던 차에 시신이 발견됐다는 제보를 받았습니다. 달려갔더니 방파제에 시신 한 구가 끼어 있었어요. 부식이 될 대로 돼서 빼내기조차 어려운 상황이었죠. 마침 우리가 준비해 간 장비들 중 적합한 것이 있어서 무사히 수습은 했지만 워낙 훼손이 심해 처참했습니다. 수습이 다 끝난 뒤에 이렇게라도 시신을 찾아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지만 좀 더 빨리 찾아드리지 못해 고인 가족들께 죄송한 마음도 들었어요.”


구조대원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는 없는 직업 중 하나다. 365일 24시간 대기상태로 일해야 한다. 급여도 소방공무원과 큰 차이는 없다. 구조대원이 사건 현장에서 겪는 트라우마를 견디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부패 정도가 심한 시신을 구조하면 시취가 일주일 정도 따라 다닌다. 끔찍한 사고 현장과 오열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잠자리에서도 쉽게 잊히지 않는다. 구급차를 운전할 수 있는 1종 대형면허증이나 응급구조사, 기업재난관리사 등의 자격증을 갖추면 좋지만 민간구조단원이 되기 위해 필수로 취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수년째 해오고 있지만 늘 어려워요. 구조, 구급대원은 라이선스가 있으면 좋지만 인성도 필요하고 내성도 강해야겠죠. 우리가 하는 일은 사람의 목숨과 관계된 일이라 기본적인 마음가짐이 정말 중요해요. 높은 경쟁률을 뚫고 굳은 심지로 소방관이 됐지만 막상 참혹한 현장을 보면 견딜 수 없다고 포기하는 경우도 여전히 많다고 해요."

출처: jobsN
서울 중구 신당동 3119구조단 센터에는 20여 명의 구조단원이 상시 근무 중이다.

그는 앞으로 구급활동과 함께 예방 분야에 전력을 다할 계획이다. 민간구조대원은 구조활동뿐 아니라 예방을 위한 강연 활동도 한다. 학생, 사업주, 기업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등을 대상으로 생활안전과 응급처치, 비상시 행동요령, 어린이집 소방교육을 진행한다.


“늘 사고가 벌어진 다음에 알고 고치는데, 미리 준비했더라면 인명피해가 나지 않았을 일들이 정말 많아요. 우리 같은 경우 구조대원의 성격과 함께 민간기업의 이미지를 함께 갖고 가기 때문에 예방활동에 힘을 더 쏟고 있습니다. 전면에 나서서 사람을 구하는 것 못지않게 예방을 통해 사고를 막는 것도 중요하니까요.”


구급대원을 직업으로 삼고 싶어 하는 후배들에게 전해주고픈 말이 있을까. “저는 건물에 들어서거나 주변이 어수선한 상황일 때 출입구부터 찾는 버릇이 있어요. 직업병이죠. 핸드폰은 머리맡에 두고 자요. 혹시 깊은 잠에 들어서 위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오는 전화를 못 들을 수 있으니까요. 예방교육 강연 도중 위기 상황이 발생해 양해를 구하고 현장으로 달려간 적도 있어요. 이 일을 하고 싶다면 일단 심각하게 의심부터 해보라고 얘기해주고 싶어요. ‘정말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생계를 꾸려나가면서 동시에 이 일을 독하게 해낼 수 있을까’라고요. 불이 난 건물을 미쳐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들처럼, 우리도 어두운 건물 안에서 무사히 빠져나온다는 보장은 없으니까요.”


글 jobsN 김지민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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