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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하다 목소리 좋아 된 아나운서, 진짜 직업 따로 있었다

조회수 2020. 9. 23. 16:1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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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엔 대학교, 주말엔 링 위로 출근하는 이 사람의 정체는?
종합 격투기 장내 아나운서 이원록
평일엔 대학교로 주말엔 경기장으로 출근
”발전하는 TFC 됐으면”

"It's real surprise time~!"


어두컴컴한 경기장을 밝히는 조명이 켜지자 정장을 입은 한 남자가 마이크를 들고 링 위에 등장한다. 중저음의 굵은 목소리로 경기 시작을 알리는 멘트를 외치니 관객들이 열광한다. 목소리 하나로 경기장을 들어다 놨다 하는 이 사람. 13년차 종합격투기 장내 아나운서 이원록(45)씨다.


장내 아나운서는 경기에 참가하는 선수를 소개한다. 동시에 경기의 흐름을 파악하고 장내 분위기를 끌어 올리는 역할을 한다. 이씨는 경기가 한창인 시즌엔 마이크를 잡고 링 위에 오르지만 평소엔 용인대학교 학생지원처로 출근하는 직장인이다. 장내 아나운서와 교직원을 오가면서 이중생활을 하는 그의 사연을 들어봤다.

출처: 본인 제공
이원록 장내 아니운서

학생들이 좋아 모교로 출근


어린 시절부터 태권도, 합기도, 유도 등 여러 스포츠를 접했다. 그중 유도의 매력을 느껴 용인대학교 유도학과에 입학했다. 유도선수를 꿈꾼 것은 아니었다. 교직에 계셨던 아버님의 영향을 받아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었다. 대학 졸업 후 조교 생활을 하면서 체육 교육학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중등 정교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그러나 그는 중고등학교 대신 모교에 둥지를 틀었다.


"대학 교수님이셨던 유도 스승님 권유로 대학교 교직원이라는 직업을 알게 됐습니다. 학문을 가르치는 일을 아니었지만 모교와 후배를 위해 이바지 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2000년에 면접을 보고 일을 시작했습니다. 단과대학 교학과부터 시작해 경영대, 교무과 등 다양한 부서에서 일했습니다."


스피릿MC 심판에서 아나운서로


2005년 용인대학교 사회교육원에 종합격투기 지도자 과정이 생겼다. 워낙 격투기에 관심이 있어 수강신청 했다. 한국 토종 격투기 단체 '스피릿MC' 심판 교육과정도 동시에 들었다. 2005년 말 교육 수료 후 이론과 실기시험을 거쳐 심판 자격증을 취득했다.


2006년 상반기 동안 스피릿MC 심판으로 활동했다. 이원록씨가 심판으로 활동하는 것을 본 경기 관계자들이 그에게 장내 아나운서를 권했다. 콜 사인을 하는 그의 목소리가 좋다는 것이었다. 콜 사인은 선수들이 상대에게 쓴 기술이 걸렸을 때 '캐치'라고 외치거나 시합 시작을 알리는 'Let's go fight' 'Let's get it on'등 멘트를 외치는 것이다.


타고난 중저음과 자신만의 콜 사인을 연습한 결과였다. 결국 장내 아나운서 오디션 요청이 들어왔다. 외국 대회 영상을 보면서 연습했다. 학교 스포츠 마사지 실기실에 학생들을 모아놓고 리허설도 했다. "작은 사무실에서 오디션을 봤는데 그곳이 떠나갈 정도로 멘트를 했습니다. 창피함은 한 번이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했습니다. 다 보여 주기도 전에 PD님께서 멋진 목소리를 가졌다면서 앞으로 있을 경기에 대비하라고 했습니다."


곧 아나운서로 데뷔할 기회가 찾아왔다. 2006년 10월, 이씨는 추석 연휴를 맞아 부산에 내려가 있었다. 그때 담당 PD에게서 장충체육관에서 스피릿MC 웰터급 그랑프리 개막전을 하는 데 와줄 수 있냐는 전화를 받았다. 바로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처음엔 비방송용 오프닝 두 경기만 서기로 했지만 메인 링 아나운서 두 명 중 한 명이 못 오는 바람에 그 자리에 대신 섰다. 얼떨결에 생방송 데뷔 경기를 치른 셈이다. “셔츠가 흥건히 젖을 정도로 긴장을 했습니다. 그때 기억이 전혀 없어요. 나중에 방송을 보니 경직된 표정으로 카메라만 보고 있더군요. 선수 소개할 때 카메라가 아닌 대본을 보고 읽었습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데뷔 전을 마무리했습니다.”

출처: 본인 제공, 부산팀매드
케이지 안에서(좌), 이원록씨가 지어준 별명 '마에스트로'로 활동 중인 김동현 B 선수(우)

국악인·뮤지컬 감독에게 발성 전수 하기도


2006년 데뷔전 이후 정식 장내 아나운서로 활동을 시작했다. 이씨는 정식으로 아나운서 교육을 받은 사람이 아니다. 스스로 부족함을 느꼈다. 용인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던 국악 교수와 뮤지컬 감독을 겸하고 있는 교수를 찾아갔다. “처음엔 그저 신기하게 보시더군요. 그러나 진지한 모습을 보이니 교수님들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셨습니다. 국악 교수님에게는 단전 호흡법을 배웠죠. 향수병을 코에 대고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는 연습부터 배에서 소리를 낼 수 있게 도와주셨습니다. 뮤지컬 교수님에겐 목관리 법을 배웠어요. 안면 마사지부터 목 마사지 법까지 뮤지컬 배우들이 직접 하는 것들을 알려주셨죠. 6개월 정도 틈틈이 찾아가 배웠습니다.”


호흡과 발성, 발음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선수를 소개하거나 경기를 시작할 때 멘트라고 말한다. 평소 해외 격투기 경기를 보는 것도 좋지만 이원록씨는 게임, 잡지, 영화 등에서 나오는 대사를 조합해서 멘트를 만든다. 그렇게 만든 이씨만의 고유 멘트가 바로 ‘It’s real surprise time’이다. 수백 번의 고민 끝에 탄생한 것이라고 한다.


선수들에게 별명을 지어주는 것도 이씨의 몫이다. 생각날 때마다 닉네임을 적어 놓는데, 이렇게 탄생한 ‘닉네임 목록’이 200여개에 달한다. 부산팀매드 소속 김동현 선수를 위해 지은 ‘마에스트로’가 가장 마음에 든다고 한다. “‘경기를 지휘하는 선수가 돼라’는 뜻에서 지어줬어요. 김동현 선수에게는 챔피언에게 어울리는 닉네임이니 꼭 챔피언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UFC에 진출해 세계 속의 격투 마에스트로로 성장 중인 것 같아 뿌듯합니다.”

출처: 본인 제공
링 위에서는 항상 혼신을 다 한다는 이원록 장내 아나운서

"발전하는 TFC가 됐으면"


TFC는 1년에 8번 정도 넘버링 시리즈가 열린다. 경기가 금요일 밤과 토요일, 일요일에 열리기 때문에 교직원 생활과 병행하기 어렵지 않다. 장내 아나운서의 수당을 물었지만 밝힐 수 없다고 답했다. 한 경기 방송 출연할 때 입는 괜찮은 양복 한 벌 값은 버는 정도라고 한다. 이원록씨는 이렇게 교직원과 장내 아나운서를 겸하는 모습이 우리나라 격투기 시장의 현실이라고 말한다.


“연간 대회 개최 수, 팬 규모도 작아 장내 아나운서를 본업으로 삼기는 어렵습니다. 아나운서뿐 아니라 심판진, 대회 스텝도 마찬가지입니다. 꼭 한 분야에서만 활동하라는 법은 없습니다. 제가 교직원을 겸하고 있듯이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열정이 있다면 어디서든 행복하게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원록씨는 교직원과 장내 아나운서로서 지금처럼 활동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한다. “어느덧 모교에서 일한 지 20년이 됐습니다. 얼마 전엔 20년 근속상도 받았죠. 사랑하는 모교에서 후배들과 호흡하면서 나의 일터를 가꾸고 싶습니다. 장내 아나운서로서는 선수들을 응원해주고 싶습니다. 김동현 선수의 은퇴 경기에서 제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외치는 것도 작은 꿈입니다. 끝으로 격투기 선수들이 간절하게 훈련한다면 누구나 챔피언의 꿈에 도전할 수 있듯이 자신의 꿈을 위해 간절함으로 무장하고 달린다면 우리 모두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글 jobsN 이승아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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