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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안된다" 유럽을 놀라게 했던 한국 청년들, 지금은..

조회수 2020. 9. 23. 00:1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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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매카트니의 리즈 시절 재현해 북미 사로 잡은 스타트업
VR·AR 전문 스타트업 '에이펀인터렉티브'
CG 10여년 베테랑 권도균 대표·유한 이사 창업
실감 나는 VR·AR 콘텐츠로 주목

1998년에 등장해 큰 인기를 끈 사이버 가수 아담. 2000년대 들어 갑자기 그가 사라지자 ‘밀레니엄 버그에 감염돼 사망했다’, ‘군대에 갔다’는 등 무성한 소문이 돌았다. 하지만 아담이 사망한 이유는 당시 기술의 한계였다. 아담은 가수 박성철씨의 표정과 움직임을 캡처한 뒤 CG로 만든 3D 캐릭터였다. 예능·광고 섭외가 들어왔지만, 방송에 나갈 수가 없었다.


아담을 제작한 아담소프트의 홍보팀장이었던 장덕현 칼럼니스트는 jtbc 슈가맨 2에서 ‘10글자 내외 한 문장을 말하기 위해 전직원이 일주일간 밤을 새야 했다’고 설명했다. 아담은 어쩔 수 없이 활동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이후로 CG기술은 계속 발전했다. 하지만 최근까지도 CG 애니메이션이나 영화를 만들려면 짧게 수개월, 길면 몇년이 걸렸다.


스타트업 ‘에이펀인터렉티브(이하 에이펀)’ 덕분에 CG 콘텐츠 제작 기간이 획기적으로 줄어들었다. 보통 1시간짜리 3D 애니메이션 한편을 만드는데 5~7일이 걸렸다. 에이펀은 1시간 안에 처리가 가능하다. 실시간으로 만든다 해서, 이를 ‘실시간 렌더링(Realtime Rendering)’기술이라 말한다. 렌더링이란 3D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해 평면 그림을 입체적으로 바꾸는 작업을 말한다. 

에이펀은 이 기술을 활용해 가수 ‘폴 매카트니’의 아바타를 만들었다. 그의 젊은 시절을 재현했다. 아담과는 달리 실시간으로, 정확하게 표정이 변한다.


실시간 렌더링 기술 덕분에 캐나다의 모션 캡처 기업 ‘페이스웨어’가 에이펀을 찾았다. 페이스웨어는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서 브래드 피트의 표정을 따내 노년의 모습을 만든 회사다. 기아자동차·엔비디아·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글로벌 기업도 에이펀을 찾았다. 최근에는 21세기폭스사와도 함께하기로 했다.


에이펀은 동갑내기 친구인 권도균(36) 대표와 유한 이사가 창업한 회사다. 권 대표가 경영을, 유 이사가 기술 개발을 맡고 있다. 유 이사는 디즈니사에서 ‘겨울왕국’, ‘주토피아’, ‘주먹왕랄프’ CG 작업을 했다. 5년간 일하다 창업에 뛰어들었다. 유 이사를 만났다. 

’노가다’로 불리던 작업을 신속하게


같은 CG라 해도 렌더링에 따라 그림자, 피부 표현, 털의 느낌 등이 확연히 다르다. 오랜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기 때문에 업계 종사자들 사이에서 렌더링은 일명 ‘노가다’ 불렸다. 에이펀은 렌더링 작업을 효율적으로 바꿨다.


“보통 슈퍼 컴퓨터로 1초당 24장의 프레임(이미지)을 처리하는데, 에이펀의 핵심 기술인 실시간 렌더링으로는 1초당 60~90장을 처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뽀로로 TV애니메이션 100부작이라면, 제작 기간을 반 이상 줄일 수 있는 겁니다.”


시간을 단축할 수 있던 이유는 게임 엔진 덕분이다. 게임 엔진이란 게임을 개발할 때 필요한 기술을 모아놓은 프로그램이다. “게임 업계에서는 보편적인 툴로 실시간 렌더링이 가능합니다. 게임 엔진을 애니메이션 등 다른 분야에 적용한 게 국내에서 저희가 처음입니다. 해외에서 그런 시도가 있긴 했지만 흔하지는 않았어요.”


게임 엔진을 다른 분야에 활용하기 위한 노하우가 에이펀의 경쟁력이다. 원천 기술을 이용했더라도, 영화나 애니메이션에 게임 엔진을 최적화할 수 있도록 CG 디자이너의 노하우와 기술력이 중요하다. CG 작업을 할 때도 한정된 그래픽 자원을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3D 배경과 캐릭터를 만들기 위한 그래픽 이미지는 영화에서 촬영장소와 배우에 해당한다. 연출력, 촬영기법은 렌더링이라 볼 수 있다.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인만큼 실시간으로 CG 작업을 할 수 있다. “기존에는 디자이너가 미리 만들어 놓은 CG 영상만 볼 수 있었습니다. 마우스를 클릭하거나 고개를 돌려 다른 곳을 봐도 변화는 없었죠. 단순히 감상만 했습니다. 실시간 렌더링이 가능하면 영상 속 캐릭터와 유저가 상호작용을 할 수 있습니다.” 

에이펀은 ‘게이메이션(게임+애니메이션)’이란 새로운 장르를 만들었다. 게임을 하듯,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와 소통을 할 수 있다. ‘넛잡’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한 레드로버와 함께 만든 ‘버디VR’이 대표작이다. “VR기기를 쓰면 버디가 놀고 있는 공간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버디가 가져가려는 치즈를 VR기기를 쓴 유저가 툭 쳐서 떨어뜨릴 수 있죠. 그러면 버디가 후다닥 도망갑니다.”


폴 매카트니를 만든 ‘아바타 라이브’ 기술도 실시간 렌더링에 기반한다. 아바타가 사람 얼굴에 있는 미세한 근육의 움직임을 그대로 표현할 수 있다. “제가 웃으면 폴 매카트니도 동시에 웃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상대방의 감정을 인식하는 아바타를 만드는 게 꿈입니다. 아이언맨의 자비스처럼요.”


디즈니사에서의 경험 살려 창업 준비


유 이사는 2011년 여름 인턴십 프로그램을 시작으로 디즈니와 처음 인연을 맺었다. 인턴 기간이 끝난 후에도 HR 담당자에게 계속 연락해 ‘자리가 있냐’ 물어볼 만큼 기회를 잡기 위해 노력했다. 2012년 3월 디즈니에 정식 입사해 룩뎁(Look development) 아티스트로 일했다. 룩뎁이란 색감을 조절하거나 결을 다듬는 등 캐릭터와 배경을 매끄럽고 세련되게 다듬는 작업이다.


유 이사는 원래 부산 동아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을 공부했다. 대학교 2학년 때 우연히 3D 애니메이션의 매력에 흠뻑 빠져 미국행을 결심했다.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예술아카데미대학(Academy of Art University)에 입학했다.


“3D 작업은 밤새도록 해도 지치지가 않았습니다. 이렇게 재밌는 일을 직업으로 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시 스타워즈나 니모를 찾아서가 인기 있을 때라 미국으로 가고 싶었습니다. 빨리 꿈을 이루기 위해 군대부터 다녀왔죠. 미술학원 강사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벌었습니다.”


디즈니는 내로라하는 인재들이 모여있는 회사이기에 배울 점이 많았다. “디즈니에서는 프로젝트마다 리더가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주토피아’ 프로젝트가 있다면, 지원자를 받아 평가를 거쳐 팀장을 뽑습니다. 오래 일했다고 리더가 되지 않고, 리더 자리도 수시로 바뀐다는 뜻이에요.”


글로벌 회사 디즈니에서 일했지만,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스타트업을 꿈꿨다. “디즈니는 좋은 회사이지만, 일찍이 미국 청년들 사이에서 스타트업 붐이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을 모아 AR(증강현실) 콘텐츠나 SNS 관련 서비스를 개발하긴 했는데, 성과를 내진 못했습니다.” 

2014년 말, 평소 알고 지내던 권 대표와 창업을 결심했다. “스타트업에 도전해보니 저는 경영 체질이 아니었습니다. 마침 권 대표가 AR, VR 분야 창업을 생각하고 있어서 함께하기로 했습니다.”


권 대표는 한국에서 3D설계 관련 사업을 하고 있었다. 그도 미국 산타모니카대학에서 3D와 영화를 전공했다. 대학생 때 이미 그룹 레드핫칠리페퍼스(RHCP)의 californication 뮤직비디오 CG 작업을 한 경험이 있었다. 데상트, 미즈노에서 전면 광고 총괄을 맡기도 했다.


유 이사는 미국에서, 권 대표는 한국에서 1년 반 동안 수익없이 원격근무를 하며 창업을 준비했다. 유 이사는 실시간 렌더링 기술을 연구했다. 권 대표는 동료를 모으고 스타트업 지원 사업을 알아보러 다녔다. 시차 때문에 거의 하루 종일 깨어있다시피 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창업에 도전해보니 올인을 안하면 절대 무언가를 이룰 수 없겠다는 걸 깨달았어요. 죽기 살기로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너희가 한 것 맞냐’는 소리 듣기도


에이펀이 이름을 알린 계기는 2016년 파리 모터쇼에서 선보인 VR 콘텐츠다. 벤츠 C63 AMG 모델을 VR로 만들어 자동차 시승을 가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원래 벤츠와 협업하기로 한 건 아니다. 에이펀이 유튜브에 올린 영상을 보고 벤츠에서 파리 모터쇼에서 영상을 쓰겠다고 먼저 연락을 했다. 

“VR 콘텐츠로 제품을 미리 경험해볼 수 있는 걸 ‘비주얼 카탈로그’라 부릅니다. 모터쇼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와아’하고 탄성을 질렀어요. 이것도 실시간 렌더링 기술로 만들었는데, 당시 ‘말도 안된다’, ‘너희가 한 거 아니지’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습니다. 다른 회사 전문가분들도 저희를 찾아오셔서 어떻게 한거냐고 물어보셨죠.” 유 이사는 이때 확신을 얻고 퇴사를 했다.


에이펀은 그동안 자금을 모으기 위해 기업에서 의뢰를 받는 외주작업을 주로 했다. 이젠 자체 콘텐츠에 집중할 예정이다. “디즈니와 픽사가 주목 받는 이유는 그래픽 기술도 뛰어나지만 이야기가 재밌어서입니다.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습니다. 저희가 이 분야에서 10년 넘게 종사하면서 쌓은 노하우에 대한 자신감은 있어요. 하지만 저희는 초기 스타트업이고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이런 저런 설명을 하지 않아도, 보기만 하면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콘텐츠를 만들겠습니다.”


글 jobsN 이연주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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