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8000줄 코딩했던 '주산 영재' 초등생, 지금은..

조회수 2020. 9. 23. 00:1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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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해커의 실리콘밸리 도전기

2009년 7월7일 청와대와 국방부, 주요 은행과 언론사가 DDoS(Distribute Denial of Service∙분산서비스거부) 공격을 받았다. 누가 공격했는지를 두고 정부와 민간 연구소 사이에서 설왕설래가 이어졌다. 국가정보원은 해킹의 진원지가 북한이라는 추정 결과를 발표했다. 한 해커가 악성코드를 분석해 실제 공격지가 어딘지 역추적했다. “공격명령서버 중 하나가 미국에 있다” 국정원 조사결과와 다른 발표였지만 보안업계는 그 말에 이견을 달지 않았다. 그가 한국을 대표하는 해커 중 한명인 홍민표(41) SE웍스 대표였기 때문이다. 홍대표는 DDoS 전용 백신 Vguard를 제작해 무료로 배포했다. Vguard 사용자는 200만명이 넘었다. 

출처: 사진 홍민표 제공
홍민표 SE웍스 대표

초4학년 때 주산 1급∙8000줄 코딩한 천재


“해커가 되기로 마음 먹은 건 10대 때였어요. 그때부터 실리콘밸리에서 회사를 세워 성공하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죠. 한국은 시장이 너무 작고, 구매나 계약연장도 기술력 외에 다른 부분이 작용했어요. 그래서 한국에서 사업하는 것보다 수십배 힘들겠지만 미국 본토에서 사업을 하기로 했어요.”


주산실력이 뛰어났던(주산 1급) 홍대표는 초등학교 4학년때 처음 컴퓨터를 만났다. 컴퓨터 게임을 하고 싶었지만 게임을 할 수 있는 곳이 컴퓨터 학원 뿐이 없었다. 그래서 엄마의 권유에 바로 다니겠다고 답했다. 그런데 정작 학원에서 게임을 하기위해서는 프로그램 언어를 배워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다.


그렇게 입문용 프로그램 언어 베이직을 배웠다. 명령어를 치면 그림이 그려지는 컴퓨터가 마냥 신기했다. 나중에는 8000줄 짜리 코딩도 했다. 중학생 시절 정품 소프트웨어의 시리얼넘버(고유번호)를 해킹해 PC통신 게시판에 올리기도 했다. 불법 소프트웨어 복제가 그의 첫 해킹인 셈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본 영화 ‘해커스’가 그를 해커로 이끈 계기였다. 18살 짜리 천재 해커가 해킹을 통해 악과 싸워 세상을 구한다는 영화를 보고 주인공처럼 살고자 한 것. 그렇게 홍대표는 해커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한국 대표 화이트해커로 성장, 7.7 DDoS 공격지도 발견


홍대표가 보안업계에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 건 2000년 카이스트가 주최한 세계해킹방어대회였다. 당시 산업기능요원이었던 홍대표는 함께 일하는 친구와 대회에 참가했다. 전세계 수백명의 해커를 이기고 우승했다. 1998년 후배해커들과 함께 만든 화이트해커 그룹 와우해커 멤버들과 해커 월드컵이라 불리는 데프콘(DEFCON)에 7번 참가 5번 본선에 진출했다. 단일팀 출전기록으로는 세계 최고다. 이후 사이버 시큐리티 스타트업 쉬프트웍스를 창업했다.

출처: 사진 조선 DB
7.7 DDoS 사건 당시 청와대 홈페이지

7.7 DDoS 사건 때 해킹 진원지를 찾고 백신을 개발한 것도 쉬프트웍스 시절이다. 회사가 유명해지면서 인텔, 삼성에스원 등에서 인수제안이 이어졌다. 홍대표의 선택은 인텔이나 에스원에 비하면 작은 규모인 인프라웨어였다. 인수금액은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 인프라웨어에서도 안정적인 조직에서 나이만 먹기 싫었던 홍대표는 다시 해커의 길을 걸었다. 2012년 SE웍스를 창업했고, 창업 첫달 1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창업 6개월이 지나지 않아 소프트뱅크벤처스와 퀄컴벤처스로부터 20억원을 투자받았다. SE웍스는 사이버 시큐리티 전문 스타트업이다. 모바일 앱 보안솔루션 앱솔리드를 게임, 금융 앱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홍대표는 “매출액은 전략상 이유로 공개하기 어렵지만 매년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에서 인재채용이 제일 힘들어


한국에서 승승장구할 것 같았던 홍대표는 2013년 홀연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떠났다.


“사실 미국과 한국에 큰 차이가 있지는 않아요. 세상에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하죠. 하지만 깊에 들어가 사업을 하면 다른 점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문화나 생각 자체가 달라 한국에서 했던 방식 그대로 했다가 크게 낭패를 봅니다.”

출처: 사진 홍민표 제공
SE웍스 직원들

미국에서 사업하는 데 가장 큰 어려움은 인재 채용이었다. 회사에서 적합한 인재를 찾는데 사람이 없거나 몸값이 비싼 경우가 허다했다. 미국에서 사업하려면 미국 흉내를 내는 것으로는 부족했다. 제품이나 회사도 완전히 미국화 해야했다.


무엇보다 정에 이끌려 팀을 꾸려가기 보다는 냉정하게 공동의 목표에 따라 기업을 운영하는 게 다르다고 했다. 능력이 부족하거나 성과가 나지 않으면 오래 기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반만 만들면 현지인 대표를 뽑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실리콘밸리 스타일이 딱 내 스타일인거에요. 현지에 아는 사람이 없어 도움되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느라 시간 낭비도 많았어요. 그런데 모든 게 배울 것이 있더라고요.”


실리콘밸리 생태계에 녹아들기 위해 조급함을 버렸다. 그들의 문화와 생각을 먼저 이해하자고 접근했다. 그랬더니 1년도 지나지 않아 현지인 3명이 합류했다. 미국 스타트업처럼 자리잡기 시작했다. 현재 SE웍스 샌프란시스코 오피스의 80%가 미국인이다.


비자 만료후 재발급 안되기도


한국 해커들 사이에선 전설이지만 홍대표에게도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가 있다. 실리콘밸리의 한국인으로 산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미국인도 아니고, 한국인도 아닌 경계인으로 산다는 기분이 들 때는 매우 힘이 빠졌다.


특히 지난해 10월 비자가 만료됐을 때,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변화로 비자 재발급이 늦어져 곤란을 겪고 있다. 월급도 받을 수 없었고, 운전면허 재발급도 안됐던 것. 평소 고민이 있을 때 드라이브로 해변가를 돌며 스트레스를 풀었던 홍대표에게 운전을 못한다는 것은 무엇보다 참기 어려웠다.


"그냥 버티면서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어요. 안좋은 일이 한꺼번에 몰려왔지만 티내지 않고 평상시처럼 지냈는데 어느새 시간이 지나고 정책도 변하더라고요. 힘든 시기가 오히려 성장의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비자가 만료됐지만, 불법체류 상태는 아니다. 노동카드가 있어 비자신청 후 대기자 신분으로 체류는 할 수 있다. 다만 한국으로 돌아오면 비자 발급 전까지 미국에 입국하기는 어렵다.

출처: 사진 홍민표 제공
홍민표 대표

해커와 사업가의 길 다르지 않다


홍대표는 실리콘밸리에서 보안사업은 경쟁과 협력이 동시에 이뤄지는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SE웍스와 비슷한 사업모델을 가진 회사가 파트너십을 요청하기도 하고 공동마케팅이나 세일즈를 한 적도 있다는 것. “서로 경쟁하지만 전략적 제휴를 통해 규모를 키우고 윈윈(win-win) 전략으로 가는 부분이 존재합니다.”


해커란 끊임없이 문제점을 찾고 개선하는 사람이다. 사업가도 어떤 문제점을 어떻게 해결할지, 그래서 세상에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그래서 해커홍이 홍대표가 될 수 있었다. “ 저는 취미가 직업이 됐는데 단지 즐겁기만 해서는 곤란합니다죠. 함께하는 팀과 팀의 가족들에게 젊은 시간에 대한 보상을 꼭 받도록 하고 싶습니다.”


글 jobsN 최광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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