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4억원 어치 옷 사는, '삼촌'이라 불리는 남자

조회수 2020. 9. 22. 21:5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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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 없고 분실사고 잦아도 동대문은 기회의 땅

23살에 군대를 마친 청년에게 친구들이 같이 일하자고 제안을 한다. 주로 밤에 일하고 또래 젊은 친구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란다. ‘패션피플’이라 자부하던 청년은 기대 반 호기심 반으로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가 일을 시작해 20여년의 시간을 보낸 곳. 바로 동대문이다.

출처: 사진 한상휘 팀장 제공
한상휘 링크샵스 사입팀장

“이제 막 제대 한 저에게 동대문은 신세계였어요. 화려한 조명과 시끄러운 음악이 끊이지 않았죠. 패피들이 밤마다 모이는 곳이었습니다. 적응하기 애를 먹었지만 그래도 즐거웠어요.”


동대문 의류 중개 플랫폼 링크샵스에서 구매업무를 담당하는 한상휘 사입팀장을 사입 업무가 끝나는 새벽 5시에 만났다. 2001년부터 지금까지 동대문의 밤을 지켜온 한팀장의 이야기를 들었다.


밤낮이 바뀐 사입팀의 하루


패션한류의 메카 동대문 시장에서 소매상이 자신이 팔 물건을 사는 일을 ‘사입’(仕入)이라 한다. 동대문 도매시장은 늦은 밤에 문을 열기 때문에 소매상의 주문을 대신 해결해주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들이 바로 ‘사입 삼촌’이다. 링크샵스는 도매 구매를 대신하는 사입 삼촌의 업무를 하는 업체다. 

출처: 사진 링크샵스 제공
밤의 동대문에는 사입을 한 상품들이 늘어져 있다.

현재 한팀장이 이끄는 사입팀은 30명이다. 보통 동대문에서 일하는 사입팀은 규모가 크다해도 5명 수준이다. 그나마도 대형 주문이 있을 경우에만 아는 사이끼리 잠깐 뭉치는 수준이다. 동대문에서 일하는 사입삼촌은 모두 2000~3000명 정도로 추정된다.


한팀장이 이끄는 대규모 사입팀은 밤 9시에 출근한다. 출근 하자마자 이날 들어온 반품을 정리하는 작업부터 시작한다. 소매상이 보낸 반품 리스트와 실제 들어온 상품이 일치하는 지 확인한다. 이 작업이 끝나면 식사를 하고 반품을 도매상에게 다시 돌려보낸다.


자정부터 본격적인 사입 작업이 시작된다. 30명이란 대규모 인원이 움직이는 작업인 만큼 섬세한 관리가 필요하다. 팀원의 장점을 살려 깐깐한 도매상에게는 세심한 팀원을 보내는 식이다. 이렇게 동대문 각지로 흩어진 팀원이 계획대로 물품을 구매해 모이는 시간은 5시30분에서 6시 사이.


이들이 하루 동안 산 의류는 직배송용과 택배배송용으로 나뉜다. 직배송 상품만 5톤 트럭(부산, 청주 배송용) 2대에 1.5톤 트럭(수도권 배송용) 3대 정도다. 5톤 트럭에 보통 400대봉(큰 봉지∙1대봉은 100L 쓰레기 봉지와 비슷한 크기) 정도가 들어간다. 여기에 택배배송을 위해 사입한 상품이 사무실 창고를 가득 채운다. 하루 평균 4억원 어치의 의류를 사는 셈이다.


다시 사무실에 모인 팀원과 정리를 하고 퇴근하는 시간은 아침 7시 정도다. 다른 직장인이 이른 출근을 하는 시간에 한팀장은 퇴근한다.

출처: 사진 링크샵스 제공
사입한 상품을 트럭에 옮겨싣는 링크샵스 사입팀

가게 망했어도 재기 발판돼


“처음 사입 일을 시작해 한참 재미를 붙였어요. 돈도 제법 벌었죠. 내 가게를 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신림동에 새로 생긴 쇼핑몰에 상점을 내기도 했습니다.”


신림동 4거리에 새로생긴 쇼핑몰 르네상스에 의류점을 냈을 때 한팀장은 26살의 혈기왕성한 청년이었다. 동대문에서 3년 가까이 사입 일을 하면서 옷에 대한 안목도 생겼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결과는 실패. 한팀장은 “너무 준비 없이 뛰어들었다”며 “의류 소매상을 상대하는 것과 소비자를 상대하는 것이 너무 달랐다”고 말했다. 또 “동대문이 아닌 신림동에는 나름의 질서가 있는데, 그런 것도 전혀 생각하지 않고 덤벼든 것도 잘못”이라고 덧붙였다.


1년 동안 하던 매장을 정리하고 한달 정도를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동대문 사람들이 다시 같이 일해보자고 했다. 그렇게 다시 동대문과 인연이 이어졌다.


한팀장은 동대문에서 특유의 붙임성과 냉정한 계산으로 이름을 알렸다. 동대문에서만 있는 게 아니라 서울 곳곳의 소매상을 돌아다녔다. 이들과 친분을 쌓고 정보를 교환했다. 소매상에게 원단과 가격도 비교해가면서 제품을 추천해 주고 소매상에게서 어느 도매상의 상품이 품질이 좋다는 정보도 얻었다.


제법 손에 꼽히는 사입 삼촌으로 인정받은 그는 31살에 자신의 도매 매장을 2곳이나 열었다. 한 곳은 정리했고, 지금 남아있는 매장은 그의 부인이 운영한다.


동대문 유통도 IT 만나니 혁신 시작


두 번의 성공과 한 번의 실패를 경험한 한팀장이 링크샵스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계기는 단순했다. 링크샵스에서 팀장으로 일하는 동생이 자신에게 사입을 의뢰했다. 제법 규모가 컸다. 하루에 의류 1만 장 정도의 주문을 처리했다. 도매가로 따지면 1억원 정도 되는 셈이다. 동대문 들어 온 IT 시스템을 직접 경험해보니 새로운 세상이 보였다. 그래서 매장을 부인에게 맡기고 링크샵스에 합류했다.


“팀원들이 지금 진행하고 있는 일을 어디서나 확인할 수 있어요. 이전에 혼자나 소규모 팀으로 움직일 때 5개 소매상의 주문을 처리하기도 시간이 부족했는데 이제는 20개 정도는 혼자서도 거뜬합니다.”


스마트폰으로 주문 받은 리스트를 관리하고, 각 팀원은 필요한 품목을 사들인다. 이렇게 모인 물건을 주문대로 분류해 배송하는 것이 링크샵스의 기본 업무다. 단순해 보이는 일이지만, 동대문 사람들과 의류 소매상에게 믿음을 주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링크샵스 이용금액을 할인해주는 제휴카드도 나왔지만, 현금결제에 익숙한 상인들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아침 11시 전까지 주문하면 다음 날 바로 받아볼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주문이 폭증했다. 이전까지는 짧게는 이틀에서 길면 일주일까지 기다려야 했다. 링크샵스는 부산에도 다음날 배송을 하기 위해 매일 새벽 5톤 트럭 한대를 부산으로 보낸다.


그가 합류했을 때 3명이 있던 사입팀도 10배로 커졌다. 링크샵스에 상품을 공급하는 도매상은 7000개가 넘었다. 한 달에 사고 파는 옷은 150만벌 가량이다. 최근 월 거래액이 100억원을 넘어섰다.

출처: 사진 링크샵스 제공
한상휘 팀장(두번째 줄 제일 왼쪽)과 링크샵스 사입팀원

휴일 없고 분실사고 잦아도 동대문은 기회의 땅


링크샵스에 오기 전까지 사입 거래에 현금을 썼다. 항상 가방에 수천만원씩 넣어 놓고 다녔다. 그러다보니 도매상에 줄 돈을 잃어버리는 사고도 터졌다. 보통 사입 물품은 길가나 상점 앞에 쌓아둔다. 다른 사람이 자기 물건인 줄 알고 가져가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이럴 땐 CCTV를 돌리거나 주변 상인들에게 수소문 해야 한다. 경험이 쌓여 CCTV만 봐도 보통은 누군지 쉽게 알 수 있지만 가끔 못찾는 일도 생긴다. 물품을 잃어버리면 사입삼촌이 변상해야 한다. 대봉 하나라면 150만~200만원 정도가 그냥 사라지는 셈이다.


동대문 사입 생활의 또 한가지 어려움은 밤낮이 바뀐다는 것과 휴일이 없다는 점이다. 토요일 밤을 빼면 언제나 동대문은 불야성이다. 사입 일을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연말 링크샵스에서 송년회를 할 때도 사입팀은 저녁만 먹고 업무를 봐야 했다.


그러나 동대문은 한팀장에게 아직도 정이 넘치는 곳이고, 기회의 땅이다. “패션에 관심있는 젊은이라면 한 번쯤은 경험해봐야 하는 코스입니다. 열심히 일하면 큰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아직 동대문에는 있습니다.”


글 jobsN 최광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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