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들이 무서워요"라는 청원글이 등장한 사연

조회수 2020. 9. 21. 17:0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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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년자에게 모르고 술 팔다 적발되면 정말 끝.. "청소년 무서워요"

“하루 평균 매상이 50만원도 안 되는 지호네 가게는 벌금을 690만원 내야하고, 청소년법을 악용한 미성년자들은 그날로 훈방조치 되었다는 것입니다.”


지난 4월 10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불합리한 식품위생법 개정과 청소년 음주 관용에 대한 청소년 보호법 개정을 위한 국민청원’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랐다. 글쓴이 자신을 ‘지호의 엄마’라고 했다. 지난해 추석 무렵 자신과 남편이 운영하는 술집에서 싸움이 벌어졌고, 경찰에 신고하려고 하자 손님 중 하나가 ‘미성년자인데, 신고하겠느냐’고 협박 아닌 협박을 했다는 내용. 

청원인의 남편은 협박에 굴하지 않고 신고를 했지만, 청소년법을 악용한 미성년자들은 훈방조치됐고, 자신들은 과징금 690만원을 받았다고 한다. 청원인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9분짜리 단편 영화까지 제작했다. 지호네 엄마는 “이게 과연 옳은 일인지 법조인을 비롯해 정치인과 국민에게 묻고 싶다”면서 “억울함에 무너지는 자영업자들이 더 이상 쓰러지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신분증 확인 철저히 해도 속을 수밖에…”


청소년 보호법은 미성년자에게 주류나 담배 등 유해물질 판매를 금지하고 있다. 이를 어길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이다. 여기에 식품위생법과 시행령 등에 의해 영업정지 처분을 받는다. 첫 번째로 적발됐을 땐 영업정지 2개월, 두 번째는 영업정지 3개월, 세 번째는 허가 취소나 영업장 폐쇄 처분을 받는다. 영업정지 처분은 1년간의 매출액 등에 따라 산정한 과징금으로 대체할 수 있지만, 영세 자영업자들에게는 부담이 크다.

출처: SNS캡처
SNS에서는 주민등록 위조 관련 정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서울 성북구에서 술집을 운영하는 이모(48·여)씨는 “주변에서 하도 조심하라는 얘기를 많이 들어 신분증 확인을 철저히 한다”면서도 “비슷하게 생긴 사람의 신분증을 빌려와도 솔직히 구별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자신의 주민등록증을 칼로 긁어 생년(生年)을 바꾸는가 하면, 아예 전문 업체에서 위조 신분증을 구하기도 한다. 실제로 청소년들이 많이 쓰는 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민증’이라고 검색해보면, 위조 신분증을 제작, 판매한다는 글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출처: 유튜브 캡쳐
'지호네 엄마'가 만든 단편영화 중 청소년 역의 배우가 술을 마시고 싸운 뒤 "나 청소년인데"라고 말하는 장면

게다가 일부 미성년자들은 자신이 미성년자임을 이용해 술값을 내지 않거나 문제가 생긴 경우 도망가는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부산에서 조그만 식당을 운영하는 강모(37)씨는 “미성년자가 포함된 일행이 술을 마시고 계산할 때 ‘미성년자가 있었다’면서 밥값을 내지 않고 가려고 한 일이 있었다”면서 “적발되면 타격이 커서 어쩔 수 없이 보내줬다”고 말했다. 한국외식업중앙회가 조사한 바로는 2010~2012년까지 미성년자 주류 판매로 적발된 업소 3339곳 중 78.4%(2619곳)가 청소년의 고의 신고로 적발됐다.


술 산 청소년도 처벌하자 주장 거세


2016년 8월 식품위생법 시행규칙 개정으로 모르고 청소년에게 술을 판 업주들에게 내리는 처벌의 강도가 약해지기도 했다. 청소년이 신분증을 위조·변조하거나 도용해서 청소년인 사실을 알지 못했거나, 폭행 또는 협박으로 청소년임을 확인하지 못한 사정이 인정돼 형사재판에서 불기소 처분 혹은 선고유예 판결을 받으면 영업정지 등의 행정처분을 10분의 9까지 감경할 수 있다.


미성년자에게 술을 팔다가 처음으로 적발됐을 경우 2개월의 영업정지 처분을 받는데, 이 기간이 6일로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영업정지 처분을 경감받기 위해서는 신분증 확인을 제대로 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이 작업에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어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출처: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청원

업주를 속이고 술을 마신 미성년자도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지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청소년들이 무서워요’라는 제목의 청원 글을 올린 청원인은 자신을 일반음식점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라고 소개하면서 “요즘 경기가 너무 안 좋아서 이것 말고는 할 게 없어서 겨우 버티고 있다”면서 “미성년자에게 모르고 술을 팔다 적발되면 정말 끝이다”고 했다.


사실 이 같은 주장은 이미 한참 전부터 나왔다. 지난 2013년 12월 양승조 의원 등 10명은 청소년 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위반행위의 원인을 제공한 당사자인 청소년에 대해서는 처벌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면서 “현행법을 악용해 나이를 속이거나 법 준수 의무자(업주)를 강박(強迫)하는 등 적극적인 방법으로 법 위반행위를 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양 의원 등은 이어 “청소년이 주류를 샀을 때 학교에서 봉사나 사회봉사,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해 청소년의 법 위반행위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재범을 방지하고자 한다”고 개정안 발의 취지를 설명했다. 하지만 이 법은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채 19대 국회 임기 만료와 함께 폐기됐다.


이번 20대 국회에서도 비슷한 취지의 식품위생법 개정안이 발의돼 국회에 계류 중이다. 서영교 의원 등 13명과 김영호 의원 등 19명은 지난해 7월 식품위생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에는 청소년이 적극적인 방법으로 업주를 속여 주류를 마신 경우 행정처분을 감경하거나 아예 면제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법안을 검토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문위원은 “영업자에게 과도한 책임을 물을 수 있어 불합리한 측면이 있다는 점에서 타당한 입법조치라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글 jobsN 안중현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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