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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집 가는 것이 두렵고 민망한 남성들을 위해 만들었죠

요즘 '사람 좀 모인다' 싶은 곳이면 있는 꽃자판기… 누가 만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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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안모(35)씨는 지난해 크리스마스이브에 서울의 한 여대 앞에서 부인, 아들과 함께 ‘데이트’를 즐겼다. 길에서 마주치는 연인들, 특히 여성의 손에는 어김없이 꽃다발이 들여있었다. 안씨의 부인 박모(33) 씨는 “크리스마스인데, 꽃다발도 하나 준비하지 않았느냐”며 안씨를 타박했다.


위기의 순간을 넘기기 위해 변명을 늘어놓으려던 찰나, 그의 눈엔 꽃이 가득 든 자판기가 눈에 띄었다. 안씨는 “당연히 준비했다”면서 자판기로 달려가 꽃을 꺼내 부인에게 건넸다. 그는 “꽃 자판기가 아니었다면 지금까지도 부인에게 욕먹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난만플라워 김진호(좌), 고민규(우) 대표

출처난만플라워 제공

요즘 ‘사람 좀 모인다.’ 싶은 곳이면 꽤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특별한 자판기가 있다. 홍대에서 시작해 전국에 약 70개가 설치된 꽃 자판기다. 이 자판기엔 ‘NANMAN FLOWER’라는 이름과 함께 여성이 꽃을 들고 있는 로고가 붙어있다. 위기의 순간을 기회의 순간으로 바꿔 줄 이 자판기를 누가 만들었는지 궁금해졌다. ‘난만 플라워’ 고민규·김진호(27) 대표를 만났다.


꽃다발 한 번 선물해보지 못한 무뚝뚝남, 꽃 자판기를 떠올리다


제주도에서 온 27살 동갑내기 두 대표는 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20년 지기 동네친구다. 원래부터 꽃에 관심이 있던 건 아니다. 대학에서 각각 중국어, 에너지 공학을 전공했다. 자유롭게 일하는 매력에 끌려 창업을 하자며 졸업까지 유예하고 매일 만나 창업 아이템을 의논했다. 그러던 중 고 대표가 꽃을 이용해 창업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꽃집 가는 것이 부담스러워 꽃다발 한 번 선물해주지 못해 여자친구에게 핀잔을 들은 적이 있어요. 꽃집에 들어가서 기다리는 게 너무 민망할 것 같았거든요. 친구들과 연애상담을 하다가 나만 이런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꽃집을 가지 않아도 꽃을 살 방법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고민규)

난만플라워가 만든 꽃 자판기

출처난만플라워 인스타그램

“조사해보니 우리나라의 꽃 소비량은 동남아보다도 낮았어요. 꽃을 낭비라고 생각하죠. 꽃에 대한 소비패턴과 가치의 반전을 원했습니다. 어디에서나 다가갈 수 있게 ‘습관’에 초점을 맞춰 자판기를 접목했습니다.”(김진호)


2014년 두 사람은 본격적으로 구상을 실천으로 옮겼다. 하지만 실제 사업을 시작하기까진 우여곡절이 있었다. 초기 자본 마련을 위해 대출한 5000만원 중 3000만원을 사기당한 것이다.


“7개월간 연락했던 공장에서 기계를 제작해주겠다고 계약을 유도했어요. 돈은 받아갔지만, 기계 개발은 이뤄지지 않았죠. 민사소송에서는 이겼지만, 아직 돈을 못받고 있어요. 형사소송은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중학교 1학년부터 일식집 주방, 서빙, 배달, 공사 현장, 토목, 전기공사, 군고구마장사까지 온갖 종류의 알바는 다 해봤기에 자신감도 넘쳤죠. 하지만 제작환경을 세심하게 살펴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경험하며 배운다’는 말을 제대로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김진호)


젊음의 거리 홍대에 첫 자판기 설치


두 사람은 다른 공장을 찾아서 겨우 자판기를 완성하고, 2016년 5월 ‘난만 플라워’로 사업자 등록을 마쳤다. 난만(爛漫)은 ‘꽃이 활짝 피어 화려함’이라는 뜻이다. 사업이 활짝 피어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7월엔 꽃 자판기로 특허까지 냈다.


“사업을 시작하면서 특허를 가장 먼저 준비했어요. 특허가 등록된 직후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됐습니다. 마음을 굳게 먹고 ‘원조’라고 얘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죠. 사업을 포기할까 고민할 때에도 든든한 버팀목이 됐습니다.”(김진호)

난만플라워가 서울 홍대에 처음으로 설치한 꽃 자판기

출처난만플라워 인스타그램

그해 11월 5일, 두 사람은 서울 홍대 상상마당 근처 편의점 옆에 처음으로 꽃 자판기를 설치했다. 꽃을 살만한 20~30대가 많이 지나다니는 홍대 근처에서 시작하면, 얼마나 흥행할지 감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적당한 장소를 찾아서 기계를 설치할 만큼의 공간을 빌렸습니다. 초기 자본금은 자판기 개발에 다 써버려서 대부업체에서 대출 받아 임대료를 해결했어요.”(고민규)


첫 자판기는 두 달 만에 누적판매액 1000만원을 기록했다. 성공가능성을 엿보았지만, 이들은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모든 자판기를 직접 설치하고자 했지만, 그러기엔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았어요. 누구에게나 로맨틱하고 따뜻한 분위기 만큼은 꼭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여유가 되는데로 직영 자판기를 늘리고, 자판기 팔라는 사람에겐 자판기를 팔기도 했습니다. 대신 그 안에 들어가는 꽃은 저희가 잘 골라서 납품하는 식으로요.”

꽃 손질 중인 고민규, 김진호 대표

출처난만플라워 제공

난만의 꽃은 1만2000~1만8000원 정도다. 농장에서 직접 꽃을 떼와 단가를 낮췄다. “꽃을 선정하는 과정에서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야 했습니다. 무엇보다 오래가고 모양이 보존되는 꽃들을 우선순위로 선정했습니다. 그리고 계절에 맞춰 유행을 반영하기도 합니다.”(고민규)


설치장소에 따라 매출은 천차만별이라는 게 두 사람의 얘기다. 자판기 하나당 적게는 월50만원에서 많게는 월400만원어치가 팔린다. 현재까지 전국 70여개의 꽃 자판기에서 누적판매액은 10억원가량이다.


동업에 성공한 난만의 목표는 ‘청년 창업 후원’


난만플라워의 단기 목표는 여느 스타트업이 그렇듯, 우선 난만을 알리는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난만을 알려서 많은 돈을 버는 것이 그들의 목표는 아니다.


“사기 당하고 제가 가지고 있던 돈은900만원에 불과했습니다. 자판기 제작 비용으로는 턱없이 부족했어요. 부족한 부분은 공장 대표님께서 도전하는 모습에 신뢰가 간다면서 벌어서 갚으라고 하셨습니다. 대표님의 도움으로 저희가 시작할 수 있었던 것처럼, 저희도 시작을 앞둔 청년들에게 도움을 주고싶어요.”(고민규)


“어린 나이에 사기도 당하고 한겨울 매출도 없는 사무실에서 먹고 자며 힘들었던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모든 것이 하나의 관문이라 생각했던 것은 동업자가 옆에 있었기 때문이에요. ‘함께’라는 말의 힘을 믿었으면 좋겠어요. 의견을 조율하면서 최선의 결과가 나오더라구요.”(김진호)


앞으로 홍콩에 국내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다수의 ‘난만 플라워’가 설치된다고 한다. 국내에서는 꽃의 소비를 위한 움직임을 계속하며 자판기 개수를 늘려나갈 예정이다. 전국 곳곳에 로맨티시스트가 넘쳐나는 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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