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뷰 본문

타일러 ‘한글왕’ 만든 게임, 그뒤엔 개발 못하는 문과생 있었다

게임 개발 못하는 문과생, 보드게임으로 새 한류 만들다
프로필 사진
jobsN 작성일자2018.04.14. | 54,874 읽음
댓글

보드게임 마니아라면 한 번쯤 보길 꿈꾼다는 독일 보드게임 박람회 슈필(Spiel). 2006년 이곳에서 한 한국인이 직접 만든 보드게임 300개를 3일 만에 모두 팔았다. 직장에 다니면서 주말마다 만들었다고 한다. 많은 수를 판 것은 아니지만, 한국에서 한 해에 약 100개씩 팔던 것에 비하면 큰 성과였다. “가능성을 봤다”며 뿌듯해한 그는 한국으로 돌아가 회사를 그만두고 40개가 넘는 보드게임을 만들었다. 2017년 한국과 유럽, 미국, 대만, 일본 등에서 약 15만개가 팔렸다. 누적 판매 수는 75만개가 넘는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한류를 만들고 있는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보드게임 회사 젬블로의 오준원(41) 대표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2016년 국내 보드게임 시장 규모는 약 1500억원으로 2015년(약 1000억원)보다 50% 성장했다고 밝혔다. 2012년(약 500억원)에 비하면 세 배 이상 성장했다. 보드게임 시장이 커지는 건 한국만이 아니다. 미국완구협회는 2015년 미국의 보드게임 시장 규모가 약 16억 달러(1조7992억원)로 2014년보다 약 11% 성장했다고 밝혔다. 오 대표를 만나 보드게임 개발자로 지내온 이야기를 물어봤다.

젬블로 오준원 대표

출처 : jobsN

회사 다니면서 만든 보드게임


- 보드게임 개발은 언제부터 시작했나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해 2000년 기획팀에 취업했다. 직장인 대부분이 그렇듯 의욕을 잃을 때가 많았다. 열심히 기획한 아이디어는 내는 족족 거절당하고, 힘들게 통과한 기획안에 이름이 빠진 적도 있다. 창업을 해서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펼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부터 게임을 좋아했다. 게임을 개발하고 싶었지만 프로그래밍을 공부한 적이 없어 디지털 게임을 개발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2002년 친구를 따라 보드게임 카페에 갔을 때 ‘바로 이거다’라고 생각했다. 프로그래밍을 못 해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유치원생부터 노인까지 모두 즐길 수 있는 간단한 규칙, 심오한 내용, 세련된 디자인도 마음에 들었다. 카르카손이라는 보드게임 상자에 개발자 이름이 쓰여 있는 것도 좋았다. 성과를 고스란히 인정받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해부터 보드게임을 조사하고 개발을 시작했다.”

보드게임 젬블로. 지금까지 판매한 젬블로의 블록을 이으면 3300km를 넘는다고 한다.

출처 : 오준원 대표 제공

- 회사에 다니면서 개발한 건가


“2002년 보드게임 젬블로를 개발해 2003년 같은 이름으로 회사를 차렸다. 게임 젬블로는 육각형 판자에 보석 블록을 놓는 단순한 게임이다. 가장 많은 공간을 차지하는 사람이 이긴다. 2003년 겨울 갖고 있던 1억2000만원을 모두 들여 젬블로 샘플을 만들고 제품 5000개를 제작했다. 결혼자금, 기술보증기금, 아버지에게 빌린 돈을 모두 모은 돈이었다. 샘플 제작 100만원, 금형 제작 6000만원, 제품 생산 5500만원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6000만원만 들여서 만들 수 있었는데, 사업 경험이 없어서 많이 낭비했다. 제품도 1000개 정도만 생산해야 했는데 “이 정도는 만들어야 한다”는 공장 직원의 말에 5000개나 만들었다.”


“영업에 쓸 돈이 없었다. 주말마다 보드카페(보드게임 카페)를 돌아다니면서 사장에게 “우승자에게 상품을 줄 테니 젬블로 미니대회를 열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대회를 한 번 치르는 데 3시간 정도 걸렸다. 그래서 주말 동안 보드카페를 3~4곳 밖에 가지 못했다. 2004년부터 2005년까지 2년 동안 주말마다 보드카페를 돌았다. 한 해에 100개 정도 팔았다. 당시 보드게임 가격은 약 2만원이었다.”


보드게임 강국 독일에서 인정받은 젬블로


- 젬블로는 언제부터 인기를 끌었나

“2006년 보드게임 강국 독일에서 열리는 세계적인 보드게임 박람회 슈필에 참여했다. 외국에라도 팔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론 외국에서 평가를 받아보고 싶었다. 보석 모양 블록이 예쁘다면서 많은 사람이 관심을 보였다. 준비해 간 샘플 300개가 3일 만에 모두 팔렸다. 한국에서 반응이 없어 좌절했는데 처음으로 희망을 봤다. 한국에 돌아와 직장을 그만두고 게임 개발을 전업으로 삼았다.”


“2007, 2008년에도 슈필에 참여했다. 2008년 독일의 3대 보드게임 회사 중 하나인 슈미트와 수출 계약을 맺었다. 슈미트에서 내 게임을 1년에 한두 번씩 사기로 했는데 한 번 사갈 때 5000개씩 주문했다. 젬블로가 유럽, 미국, 대만, 일본 등에 팔리자 소문을 타고 한국에서도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블로커스

출처 : 사진 플리커

- 젬블로가 외국 보드게임 블로커스와 비슷하다는 말도 있던데

“젬블로를 만들 땐 블로커스를 몰랐다. 오히려 아발론 클래식이라는 보드게임을 참고했다. 젬블로와 블로커스 모두 판자에 블록을 놓는 게임이다. 그래서 구성품과 게임 방식이 비슷하다. 하지만 판에 블록을 놓는 보드게임은 많다. 그중에서 블로커스만 한국에 알려지다 보니 ‘베꼈다’는 말이 나온 것 같다. 1990년대 후반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만 보면 사람들이 ‘스타크래프트를 베꼈다’고 말했던 것과 비슷하다. 오히려 독일에서는 블로커스와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못 들었다.”


- 그 뒤로 어떤 게임을 만들었나

“지금까지 보드게임을 40개 이상 만들었다. 가장 유명한 것은 젬블로 시리즈와 라온이다. 라온은 한글 자음과 모음 카드로 낱말을 만드는 게임이다. 2016년 tvN 예능프로그램 ‘문제적 남자’에서 전현무와 타일러 라쉬가 하기도 했다.”

라온을 하는 타일러 라쉬

출처 : tvN '문제적 남자' 캡처

라온을 하는 전현무

출처 : tvN '문제적 남자' 캡처

- 보드게임을 만들 때 지향하는 바가 있다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쉬운 게임. 그리고 시각적으로 호기심을 일으키는 게임. 누구나 3분 만에 규칙을 배워서 즐길 수 있는 게임을 만들고 싶다. 부루마불의 원조인 모노폴리처럼 오랫동안 사랑받는 게임도 만들고 싶다. 1930년대 중반에 만들어져 2002년까지 2억개 넘게 팔린 보드게임계의 고전이다. 디지털 게임과 달리 보드게임은 한 번 명성을 얻으면 오랫동안 사랑받는다. 죽더라도 만든 게임이 세상에 남아 사람들을 웃게 만든다는 게 보드게임 개발자로서의 가장 큰 자부심이다.”


게임은 책과 같다


- 앞으로 계획은

“보드게임 유통, 보드게임 교육 프로그램 개발 등 보드게임과 관련된 일은 다 하고 있다. 한국 게임 회사 네오플, 넥슨, NHN엔터테인먼트, NC소프트 등에서 신입사원·재직자 교육도 한다. 보드게임과 연관이 없어 보이는 것들을 보드게임에 접목하고 싶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 교수님과 함께 유교를 배경으로 한 보드게임을 만들고 있다.”


“보드게임은 제작자의 의도에 맞게 구상한 사회다. 보드게임을 하는 사람은 규칙과 스토리에 따라 움직이면서 제작자가 의도한 감정을 느끼거나 메시지를 파악한다. 책처럼 보드게임 안에 수많은 이야기와 체험 거리를 담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NHN엔터테인먼트 강연 중인 오준원 대표

출처 : 오준원 대표 제공

- 매출이 궁금하다

“보드게임 가격은 2만~4만원이다. 구체적인 매출은 밝힐 수 없지만 2017년 15만개를 팔았다 소비자가로 환산하면 45억 정도다. 실제 매출은 그 3분의 1 정도다. 큰 매출은 아니지만 앞으로 매출이 잘 줄어들지 않는 보드게임 특성상 큰 걱정은 없다. 다른 콘텐츠 사업이 복권이라면 보드게임은 연금복권이다.”


- 보드게임 개발을 꿈꾸는 이에게 하고 싶은 말은

“반응이 좋지 않다고 2~3년 만에 포기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2003년에 만든 젬블로는 2008년에야 국내에서 좋은 반응을 얻기 시작했다. 소비자에게 사랑받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인기를 얻을 때까지 기다리는 게 부담스럽다면, 보드게임 샘플만 만들어서 주위 사람들과 함께 즐겨라. 사람들과 직접 해보면서 규칙 등을 보완하다가 경제적인 여유가 생겼을 때 제품을 생산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은 버리고 즐기면서 개발하면 좋겠다. 스티브 잡스는 창의성을 “한마디로 무언가를 조합하는 능력”이라고 했다. 기존의 것들을 완성도 높게 연결하는 데서 시작하는 것도 좋은 게임을 개발하는 방법이다.”


글 jobsN 주동일 인턴

jobarajob@naver.com

잡스엔

jobsN 더보기

놓치지 말아야 할 태그

#카톡

    많이 본 TOP3

      당신을 위한 1boon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