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생→문제아→유학→PC방 사장→삼성 직원..지금은?

조회수 2020. 9. 21. 17:2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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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방 사장, 삼성전자 직원, 컨설턴트, 스타트업 대표..

PC방 사장, 삼성전자 직원, 컨설턴트, 스타트업 대표…


올해 34살인 패션 인텔리전스 스타트업 ‘이스트엔드’ 김동진 대표가 그간 경험한 직업들이다. 의류 사업으로 자수성가한 아버지 덕분에 부족함 없는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아버지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이런저런 자리를 맴돌 수밖에 없었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실패를 여러 번 맛봤던 그는 어릴 적 뛰어놀던 옷 창고의 기억을 떠올리며 의류 사업을 시작했다. 설립 2년 만에 직원 40여명, 연 매출 300억원을 바라볼 정도로 회사를 키운 그는 이제 대한민국 패션 산업의 중심인 동대문을 살리기 위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싸움 일삼던 문제아, 삼성전자에서 사회생활 시작


김 대표는 중학교 때까지 최상위권 성적을 유지했지만, 고등학교 진학 후 말썽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중학교 졸업할 때 받은 상장을 다 더해보니 130개 정도였어요. 모범생이었죠. 하지만 고등학교 들어선 왠지 모르게 공부도 하기 싫었고, 하루가 멀다 하고 친구들과 싸우는 등 사고를 치기 시작했어요.”


결국 김 대표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하루는 사고를 치고 집에 들어왔는데 그날따라 아버지께 정말 많이 맞았어요. 이러다 죽겠다 싶어 ‘공부 열심히 할 테니 유학 보내달라’고 했더니 ‘마지막 기회’라며 허락하시더라고요.”

출처: jobsN
김동진 이스트엔드 대표

미국에서도 김 대표는 말썽을 일으켰다. “역사가 오래된 사립학교였는데, 교칙이 엄했어요. 몇번 흡연으로 걸렸고, 싸움도 했더니 결국 퇴학을 당하고 말았어요. 정신 못 차렸던 거죠.” 이대로 한국으로 돌아갔다간 아버지의 불호령이 떨어질 게 뻔했다. 수소문 끝에 미국의 다른 고등학교에 갈 수 있었고, 이때부터 정신을 차린 김 대표는 공부에 매달렸다. “다른 건 못해도 수학과 과학은 자신 있었어요. 진짜 정신 차리고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는 2004년 미국의 명문대학교 퍼듀(Purdue) 대학교에 입학해 산업공학과 경영학을 전공했다.


미국에서 한 학기를 마치고 한국에 들어와 군에 입대한 그는 2007년 7월에 제대했다. 하지만 바로 미국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아버지 사업이 쫄딱 망했어요. 경험이 부족한 쪽으로 사업을 확장하다가 그렇게 됐죠. 집안 사정이 어려워져 미국으로 돌아갈 엄두를 못 냈습니다.”


이대로 주저앉을 수 없었던 김 대표는 여기저기서 돈을 끌어모아 PC방을 차렸다. 프랜차이즈 사업을 염두에 뒀는데, 다행히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됐다. 1년쯤 뒤 그는 미국에서 공부를 계속 할만큼의 돈을 받고 PC방 사업을 매각했다. 가지고 온 돈이 빠듯해 하루라도 빨리 졸업해야 했다. 남들은 한 학기에 12~15학점 들을 때 김 대표는 19~24학점을 들었다. 미국으로 돌아간 지 3년 만인 2011년에 졸업과 동시에 삼성전자에 취업했다.


온라인 쇼핑몰 성공의 관건은 물류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에서 재무 쪽 일을 담당한 김 대표는 2년 만에 회사를 그만뒀다. “월급쟁이 생활로는 아버지 사업 실패의 뒷감당을 할 수 없었어요. 마음이 급했죠. ‘내 사업’을 해서 빨리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의류사업을 했던 아버지의 영향 탓인지, 패션 쪽 사업에 관심이 갔다. “주변에 친한 친구들을 끌어들여 의류 관련 스타트업을 시작했는데요, 팀원들과 의견이 맞지 않아 6개월 만에 손을 떼고 말았습니다.” 이후 김 대표는 외국계 전략컨설팅 회사 '아서디리틀'(ADL)과 삼성 SDS의 자회사인 ‘오픈타이드’에서 컨설턴트로 일했다. “오픈타이드에서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으로 컨설팅을 나갔는데요, 마음이 착잡하더라고요. 삼성전자에서 나갈 땐 꿈에 부풀어 있었는데, 잘 안 풀렸으니까요.”

출처: /jobsN

2015년 그는 또 이직했다. 옐로모바일 산하 옐로쇼핑미디어의 패션사업부에 스카우트된 것이다. 쇼핑몰을 인수·합병(M&A)하는 것을 사업모델로 한 ‘팀그레이프’의 CSO(최고전략책임자)로 활동했고, 그때의 경험을 발판삼아 2016년 8월, 이스트엔드를 창업했다. “팀그레이프 시절 연 매출 120억원을 내던 쇼핑몰을 인수해서 1년 반 만에 330억원까지 매출을 늘렸습니다. 이 경험 덕분에 자신감이 생겼죠. 마침 회사와 사업 방향을 놓고 이견이 생겨 독립했습니다.”


이스트엔드의 초기 사업 모델은 소규모 의류 쇼핑몰을 인수해 키우는 것이었다. “사장 혼자 혹은 가족 몇명이 제품 구매부터 주문 처리, 배송까지 모두 처리하는데요, 월 매출 1억원을 넘어가면서 이 규모로는 슬슬 한계에 부딪힙니다. 쇼핑몰 창업자는 MD로서 좋은 물건을 고르는 데 집중하도록 하고, 나머지를 저희가 맡는 거죠.”

출처: 조선DB
의류 도매상가가 밀집한 동대문

대게 쇼핑몰은 동대문에서 물건을 가져다 판다. 규모가 작은 쇼핑몰은 재고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먼저 주문을 받은 뒤 동대문에서 물건을 받아와 포장 후 배송한다. 이 과정에서 배송이 늦어지는 경우가 많다. 요즘처럼 오늘 주문하면 내일 받을 수 있는 시대에, 배송 지연은 치명적이다. 결국 고객은 주문을 취소하거나 다시 그 쇼핑몰에서 물건을 사지 않는다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쇼핑몰의 물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동 주문 시스템’을 만들었다. 빅데이터를 분석해 제품별 예상 판매량을 계산한 뒤, 2~3일 정도 치의 재고를 항상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이스트엔드는 실제로 월 매출 1억원 정도였던 쇼핑몰 ‘로즐리’를 인수해 10개월 만에 월 매출 10억원을 낼 정도로 성장시켰다.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올해 초 ES인베스터 등 벤처캐피털(VC)에서 40억원 가량을 투자받았다. ‘시티브리즈’  ‘제나’ 등 직접 인큐베이팅 한 4개의 브랜드까지 포함, 이스트엔드는 올해 300억원가량의 연 매출을 올릴 것으로 보고 있다.


“동대문 살리는 생태계 만들 것”


김 대표는 공부하면 할수록 동대문이란 존재가 우리 패션 산업의 중심이라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과거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넘어서면서부터 획일화된 옷보다는, 개성 있는 다양한 옷을 선호하게 됐죠. 옷이라는 게 나를 표현하는 수단이기 때문에 남들과 같은 옷은 잘 안 입으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다품종 소량 생산이 가능한 곳이 경쟁력이 있습니다. 디자인부터 완제품까지 빠르면 하루 만에도 가능한 동대문이 딱 그런 곳입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동대문이 위기를 겪는 것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중국 보따리상 '다이궁'(代工)의 감소를 비롯해 다양한 원인이 있습니다. 온라인 의류 쇼핑몰이 대형사 위주로 획일화되고 있다는 것도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중소형 쇼핑몰이 고전하다 보니 이들과 거래하는 도매상, 그리고 도매상에서 물건을 사다가 쇼핑몰에 갖다주는 ‘삼촌’들까지 어려워지는 거죠.” 

출처: 조선DB
썰렁한 동대문 도매상가(좌), 이름표를 달고 '사입삼촌'을 기다리는 옷봉투

그래서 김 대표는 '사입 삼촌’들과 함께 이스트엔드가 개발한 자동 주문 시스템을 플랫폼화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온라인 쇼핑몰, 소매상 등에서 필요한 옷 목록을 받아 도매상을 돌며 옷을 사는 것을 사입(仕入)이라고 하는데, 이걸 직접 해주는 사람들을 업계에서는 '삼촌'이라고 부른다.


“도매상이나 쇼핑몰은 적정한 재고를 유지할 수 있고, 공장도 이에 따라 생산 스케쥴을 짤 수 있을 것입니다. 플랫폼이 완성되면 이를 무료로 제공해 동대문 생태계 복원에 한몫을 하고 싶습니다. 한국 온라인 패션 브랜드들이 더욱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됐으면 합니다.”


글 jobsN 안중현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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