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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서 3000만원 시계 완판, 세계가 주목하는 'IMF 키즈'

조회수 2020. 9. 21. 17:3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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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개로 스위스 시계 박람회 문 두드린 IMF 키드

“시계 안쪽 전복 껍데기(자개) 위에 반짝이는 건 에나멜인가요? 얼마인가요?”


눈이 푸른 외국인들이 질문을 던지자 뫼 워치 김한뫼 대표(39)는 “옻칠”이라며 “3000만원”이라 답했다. “한 번 칠하면 마르기까지 4일이 걸리는데, 벗겨내고 다시 칠하기를 8번 반복한다. 다른 색을 표현하려면 염료를 타서 새로 옻칠한다. 이 자개 시계는 만드는 데 약 100일 걸렸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2017년 3월 스위스, 세계 최대 규모 시계박람회장 바젤월드에 자개 시계가 등장했다. 김 대표가 스위스 시계 회사 아르티아와 함께 만든 시계다. 김 대표는 자개로 디자인한 제품 10개를 모두 팔았다. 개당 3000만원이 넘는 초고가 제품들이었다.


2017년 우리나라 시계 수출액은(약 496억원)으로 수입액(약 6919억원)의 14분의 1 정도다. 고가 명품 시계 시장엔 아예 한국 브랜드가 없다. 고가 명품 시장에 도전장을 낸 김한뫼 대표를 만났다.

출처: 김한뫼 대표 제공
자개 시계 앞(왼쪽)과 뒤(오른쪽)

외환위기 겪은 새내기 시계 중개까지


- 시계에 관심 둔 계기는

“1998년 연세대학교 교육과학대에 입학했다. 외환위기로 아버지께서 퇴직하시면서 등록금 220만원을 내기도 어려웠다. 어느 날 압구정 중고 시계 매장에서 명품 시계를 싼값에 파는 걸 봤다. 생계 때문에 명품 시계를 헐값에 파는 사람이 많았고, 중고 시계상은 그걸 사서 한국, 일본, 홍콩에 되팔았다. 중고 시계로 돈을 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중고 시계 매매 커뮤니티를 만들었다.”


“온라인 뱅킹이 없던 시절이라 나와 판매자, 구매자가 직접 만나 시계를 거래했다. 구매자 대신 진품인지 봐주고 중개 수수료로 3만~5만원을 받았다. 그때부터 시계를 공부했다. 백화점에서 명품 시계를 직접 만져보고 이태원에서 가품을 만져봤다. 다이얼(시계 숫자 판) 모양, 케이스(내부 부품을 감싸는 시계 겉면) 소재, 질감, 무게의 다른 점을 익혔다.”


- 중고 시계 매매가 아닌 제작을 시작한 이유는

“2002년 군 입대하면서 시계 수리, 제작을 혼자 공부했다. 2004년 전역해 중고 시계 매장을 작게 열 계획이었다. 시계에 애정이 커져 교사보다는 시계 관련 사업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군대에 있는 동안 큰 중고 시계 매장이 많이 생겼다. 다양한 상품을 도매가로 들이는 매장과 경쟁해 이길 자신이 없었다. 이럴 바엔 조금 더 준비해서 직접 시계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전까지 시계로 돈을 벌 생각만 했다. 이제는 시계를 직접 만들며 즐기는 일을 하고 싶었다. 스포츠 마케팅 회사에 들어가 창업 자금을 모으면서 밤마다 시계 제작을 공부했다. 그리고 2014년 퇴사해 내 이름 마지막 글자를 딴 뫼 워치를 세웠다.”

출처: 김한뫼 대표 제공
김한뫼 대표

- 뫼 워치에서 어떤 일을 하나

“시계 디자인과 제작을 맡는다. 주로 다이얼과 케이스를 만든다. 시곗바늘, 내부 장치, 시곗줄은 스위스에서 만들고 조립한다. 자개 다이얼뿐만 아니라 에나멜 다이얼 등도 만든다.”


나무 아닌 다이얼에 자개를 덮다


- 자개 시계는 어떻게 만들기 시작했나

“나만의 시계를 만들기 위해 고민하던 중 2014년 전통공예 전시에서 나전칠기를 봤다. 자개의 은은한 빛을 다이얼에 담고 싶었다. 나전칠기 무형문화재 보유자를 찾아가 자개 제작기술인 감입 기법을 배웠다. 하지만 나무로 만든 나전칠기와 달리 황동으로 만든 다이얼에 자개가 붙지 않았다. 카이스트 신소재 공학과 자료를 찾고, 혼자 화학 책과 접착 방식을 공부해 황동에 자개 붙이는 기술을 개발했다.”


- 다른 어려움은 없었나

“자개를 붙인 다이얼 두께가 0.76mm였다. 다이얼이 0.75mm보다 두꺼우면 핸즈(시곗바늘)가 글라스(시계 유리)와 다이얼 사이에 끼어 움직이지 않는다. 글라스와 다이얼 간격을 높이는 방법도 있었지만 파이프(시곗바늘을 고정하는 핀), 글라스, 케이스 등을 공장에서 특별 제작해야 했다. 연습 끝에 2016년 다이얼 두께를 0.61mm로 줄일 수 있었다.”


“같은 해 시계 부품을 만들 사람을 찾아 스위스로 떠났다. 공장을 찾아다니고 곳곳에 메일을 보냈다. 며칠 뒤 세계적인 시계 디자이너 이반 아르파에게 함께 시계를 만들자고 답장이 왔다. 이반 아르파는 스위스 시계 회사 아르티아의 대표이자 삼성전자의 스마트 워치 기어S3 디자인에 참여한 디자이너다. 그와 함께 시계를 만들어 2017년, 2018년 바젤월드에 나갔다.”


- 많은 시계 마니아들이 다이얼 디자인보다 내부 장치인 무브먼트를 중요시하지 않나

“지금 스위스에서는 다이얼을 잘 디자인한 시계가 유행이다. 시계의 핵심 부품인 무브먼트가 중요한 것은 맞다. 하지만 경쟁이 치열해져 소재, 기능 등 여러 측면에서 다양한 무브먼트가 나왔다. 그러다 보니 다이얼 디자인으로 우열을 가르는 경향이 생겼다.”


“스위스에서 역사가 길기로 유명한 시계 회사 바셰론 콘스탄틴은 1755년에 세워졌다. 감입 기법은 생겨난 지 1000년이 넘었다. 감입 기법의 전통과 자개의 아름다운 색이라면 디자인 경쟁에서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스위스 무브먼트에 자개 다이얼을 쓰고 있다.”


- 핵심 부품인 무브먼트를 한국에서 만들 생각은 없나

“무브먼트를 만들고 싶은 마음은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스위스보다 뛰어난 무브먼트를 만들긴 어렵다. 스위스는 뛰어난 무브먼트 제작 기술과 체계적인 교육 기관, 시계 제작을 전업으로 삼을만한 큰 시장을 모두 갖췄다. 반면 한국은 기술, 교육, 시장 모든 면이 부족하고 무브먼트 경쟁력 역시 낮다. 현재로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분야는 디자인이다. 지금은 스위스 무브먼트를 사용하고 있지만 기회가 있다면 한국 무브먼트도 쓰고 싶다.”

출처: 김한뫼 대표 제공
모스크 모양 자개 시계

- 자개 시계를 본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나

“2017년 시계 10점을 바젤 월드에 출품했다. 바젤 월드가 끝나자마자 주문이 들어와 모두 팔렸다. 지금도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사우디아라비아, 미국, 러시아, 중국, 네덜란드 등에서 주문을 받아 꾸준히 수출하고 있다. 화려한 디자인을 좋아하는 러시아, 시계 마니아가 많은 일본에서 주로 산다. 모스크(이슬람교의 예배 장소) 모양 자개를 붙인 시계는 중동에서 인기가 많다.”


- 연 매출과 시계 가격이 궁금하다

“시계 주문은 메일로 받는다. 시계마다 가격이 다르다. 2017년 바젤월드에 전시한 시계는 약 3000만원, 2018년 전시한 시계는 1억 5000만원에서 2억원 정도다. 모두 이반 아르파와 함께 만든 시계다. 올해는 투어빌론(시계 오차를 줄이는 기능) 무브먼트를 사용하고 케이스를 금으로 만들어 가격이 높다. 2018년 바젤월드에선 아쉽게도 시계를 판매하지 못해 주문을 기다리는 중이다. 수익은 아르파와 나눈다. 뫼 워치에서 만든 시계는 약 195만원이다. 2017년 연 매출은 약 3억원이다.”

출처: 김한뫼 대표 제공
스위스 시계 제작자 앙트완 프레지우소(오른쪽)와 김한뫼 대표

성공보다는 첫 시도 꿈꿔


- 앞으로 목표가 있다면

“처음엔 시계로 돈을 벌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나라에 시계 산업이 발전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고 싶다. 시계 독학을 시작한 스무 살 때부터 우리나라에선 시계 제작을 배우고 직업으로 삼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시계 교육 기관이 적고, 국산 시계를 사는 사람이 드물어 수익도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시계 제작을 꿈꾸는 이들이 나를 참고하면 좋겠다. 내 사업이 실패했을 때 누군가 나를 보면서 ‘저러면 망한다’고 손가락질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느 시계 제작자의 미래에 도움을 준다면 그것대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 시계 제작을 꿈꾸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재질, 디자인, 무브먼트 중 무엇이든 좋으니 자신만의 특징을 만들길 바란다. 자신만의 시계를 구상했다면 어느 나라의 어떤 고객에게 어떻게 팔지 고민해봤으면 좋겠다. 시계 제작에 드는 인건비, 임대료, 협업할 회사 선정 등 현실적인 부분도 함께 생각해라.”


“시계 제작 말고도 시계로 성공할 방법은 많다. 시곗줄 제작, 판매, 수리 등 진로는 다양하다. 전자 공학이나 컴퓨터 공학을 공부해 스마트 워치를 만들거나, 시계 수리를 전문적으로 배우는 것도 좋은 전략이다. 시계 수리의 경우 명품 시계 소비가 많을수록 전문 수리공을 찾는 사람도 늘기 때문이다. 예물 문화와 명품 소비 증가로 2005년부터 우리나라 고급 시계 매출이 꾸준히 늘고 있으니 관심이 있다면 알아보길 추천한다.”


글 jobsN 주동일 인턴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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