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 코비 브라이언트도 반한 '이것'은?

조회수 2020. 9. 22. 10:5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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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키 신발 만든 1세대 피규어 아티스트 쿨레인

나이키의 인기 운동화를 손에 넣었다. 신발을 산 게 아니라 정말로 손 위에 올려놓고 쥐었다. 쿨레인(Cool Rain)이라는 이름으로 활동중인 한국 1세대 피규어 아티스트 이찬우(46)씨가 만든 피규어다. 크기는 실제 운동화의 약 6분의 1(5.5cm). 이씨는 연 수입이 약 2억~3억원에 달하는 세계적인 피규어 아티스트다.


그가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건 2007년 나이키 코리아와 협업해 신발 피규어를 만들면서부터다. 그 뒤로 나이키 미국 본사, 미국 프로 농구 연맹(NBA), 애니메이션 월레스와 그로밋을 만든 아드만 스튜디오 등과 협업했다. 이찬우씨를 만나 직업으로서의 피규어 아티스트에 대해 들었다.

출처: 이찬우씨 제공
이찬우씨가 만든 나이키 신발 피규어
출처: 이찬우씨 제공
이찬우씨가 만든 나이키 신발 피규어

애니메이션에 빠진 화학도


- 쿨레인은 무슨 뜻인가

“외국인들이 내 이름을 잘 발음하지 못해서 지었다. 내 이름 이찬우에 ‘비 우’(雨) 자를 쓴다. ‘찬비’, ‘차가운 비’를 영어로 바꿔 ‘쿨레인’(Cool Rain)으로 지었다.”


- 어릴 때부터 피규어 아티스트를 꿈꿨나

“2004년 애니메이터로 일하면서 피규어를 만들기 시작했다. 시골이었던 경상북도 청송에서 나고 자라 진로의 폭이 좁았다. 직업 정보를 구할 곳이 없어서 피규어 아티스트 같은 직업이 있는 줄도 몰랐다. 성적에 맞춰 1990년 안동대학교 화학과에 진학했다. 요즘 학생들이 일찍부터 진로를 정해 그에 맞는 전공을 택하는 걸 보면 부럽다.”


“1991년 대학교 축제 때 서울에서 온 학생들이 강의실에서 일본 애니메이션 아키라 비디오를 틀었다. 그때 애니메이션을 처음 보고 푹 빠졌다. 1998년 애니메이션 산업의 시장 가치가 크다는 기사를 보고 애니메이터(애니메이션 제작자)를 꿈꿨다. 그해 서울로 올라와 애니메이션 제작을 가르치는 학원에 등록했다.”

출처: 이찬우씨 제공
이찬우씨

- 애니메이터 생활은 어땠나

“1999년 신림에 있는 애니메이션 외주 업체에서 애니메이터 일을 시작했는데 미술을 전공하지 않아 어려움이 많았다. 그때 컴퓨터로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업체가 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전까진 손으로 그림을 그려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는데, 컴퓨터그래픽, 스캔, 채색 프로그램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업계에 남고 싶어서 1999년 디지털 제작부로 옮겨 2D와 3D 애니메이터로 일했다.”


- 피규어에 관심 가진 계기는

“3D 애니메이터로 일했던 1999년 크리스마스 악몽이라는 애니메이션의 피규어를 샀다. 화면으로 보던 캐릭터를 눈앞에서 보고 손으로 만졌을 때 정말 설렜다. 피규어를 모으다 보니 직접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2004년 취미로 피규어 제작을 시작했다.”

출처: 이찬우씨 제공
이찬우씨가 만든 픽시 자전거와 인물 피규어. 자전거는 안장, 핸들, 체인 작동까지 가능하다.

 ‘한국 1세대’에서 세계적인 피규어 아티스트로


- 한국에 피규어 제작을 가르쳐줄 사람이 없었을 텐데

“외국책과 동영상을 봤다. 점토 인형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아드만 스튜디오의 책을 많이 참고했다. 조형사들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캐릭터 설정부터 피규어 제작까지 하는 피규어 아티스트와 달리, 실존 인물이나 기존 캐릭터로 피규어를 만드는 이들이다. 피규어를 만드는 데 익숙해지기까지 약 3년이 걸렸다. 그 사이 100개 넘는 캐릭터를 습작했다.”


- 2007년 피규어를 직업으로 삼은 계기는

“2007년 몬스터즈 크루라는 비보이 크루 피규어 시리즈를 만들었다. 그걸 보고 같은 해 11월 나이키 코리아에서 ‘나이키 덩크 23주년 기념 전시’에 쓸 신발 피규어를 만들어달라고 연락이 왔다. 나이키 운동화 모델인 덩크 약 100켤레와 옷 100여 벌을 만들어 2008년 전시했다. 나이키 코리아 협업을 계기로 피규어 아티스트를 전업으로 삼았다.”


- 대표적인 작품이나 협업이 있다면

“나이키 협업 작품을 보고 영국 현대 미술가 데이브 화이트, 국내 유명 음악 제작사 아메바컬쳐, NBA, 나이키 영국, 아드만 스튜디오, 나이키 미국 본사 등에서 협업 연락이 왔다. NBA와는 매년 농구 선수 피규어 시리즈를 만든다.”


“2009년 예술의 전당에서 덩키즈 시리즈를 전시했다. 피규어 아티스트로서는 최초다. 덩키즈는 농구하는 유인원으로 2008년 피규어 아티스트 박성균, 그래픽 디자이너 grafflex와 함께 만들었다. 예술의 전당 전시를 끝낸 뒤 일본 신주쿠, 독일 베를린, 프랑스 파리, 이탈리아 밀라노, 미국 샌디에이고 등에서 전시했다.”

출처: 이찬우씨 제공
미국 농구팀 레이커스의 선수 코비 브라이언트가 자신을 본뜬 이찬우씨의 피규어를 들고 있다.
출처: 이찬우씨 제공
피규어 아티스트 박성균, 그래픽 디자이너 grafflex와 함께 만든 덩키즈 시리즈 중 일부

- 피규어를 만드는 데 드는 시간은

“디자인이 복잡할수록 만드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1/6 신발 한 켤레는 1~3일이 걸린다. 사람 한 명 만드는 데엔 20~30일이 든다.”


- 대량생산은 안 하나

“NBA시리즈, 아메바컬쳐 시리즈 등은 대량생산했다. 하지만 대부분 손으로 만들어 세상에 하나뿐인 피규어다. 대량생산한 피규어는 지금까지 디자인한 작품의 10% 미만이다.”

출처: 이찬우씨 제공
신발 피규어와 부속

피규어 아티스트로 살기


- 힙합·스트릿 문화를 소재로 한 작품이 전부터 좋아했나

“전혀 관심이 없었다. 화학과를 나와 그림을 못 그리거나, 피규어 제작을 전문적으로 배우지 못한 건 큰 문제가 아니었다. 매체를 자주 접하지 못하고 자라 문화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게 힘들었다. 그래서 비보이 피규어를 만들 때 비보이를 인터뷰하거나 연습실을 찾아갔다. 직접 춤을 추지 않는 이상 수박 겉핥기 식이란 걸 알았지만 조금이라도 더 잘 알고 싶었다.”


- 첫 애니메이션이었던 아키라의 영향을 받은 게 있나

“아키라는 컴퓨터 그래픽이 없던 1988년 모든 장면을 손으로 그려 만든 공상과학 애니메이션이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든 최근 애니메이션만큼 생생해 명작으로 꼽힌다. 감독 오오토모 카츠히로는 “애니메이션에 나오지 않더라도 각 인물의 서랍 안에 어떤 게 들어있을지 설정한다”고 했다. 아키라의 인물들이 현실적이고 강렬한 인상을 주는 건 이 섬세함 때문이다. 나도 피규어를 만들 때 주머니나 지갑 안에 어떤 물건이 있을지, 평소에 누굴 만날지 등을 설정한다.”


- 지향점이 있다면

“지금도 고민 중이다. 처음엔 지향점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고민한다고 답이 나오진 않았다. 그래서 작업을 하면서 찾기로 했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피규어를 만들고, 아쉬운 점은 기억해둔다. 다음 작업 때 같은 실수를 안 하기 위해서다. 아티스트로의 정체성은 끝없이 작업하면서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출처: jobsN
이찬우씨의 작업실

- 수입이 궁금하다

“수입은 매년 다르지만 연 2억~3억 정도다. 2012년 피규어가 유행하기 전까지 수입이 많지 않아 3D 애니메이터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피규어로 돈을 버는 게 쉽지 않다. 내 수입만 보고 피규어 제작을 꿈꾸는 사람은 없었으면 좋겠다. 수입이 적을 때 경제적으로 버틸 수 있는지 생각해보길 바란다.”


- 피규어 아티스트를 꿈꾸는 이에게

“세 가지를 고민했으면 좋겠다. 자신이 좋아하는 게 뭔지, 남들에게 공감 받을 수 있을지, 팔릴 날이 올 때까지 버틸 수 있을지. 요즘은 3D 프린터가 발달해 피규어를 만드는 기술 자체는 덜 중요하다. 대신 뭘 만들지가 더 중요해졌다. 이 세 가지에 확신이 있다면 살아남기 위해 꾸준히 작업하고 버티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길 바란다.”


글 jobsN 주동일 인턴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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