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걷게된 아빠..착한 딸은 그날부터'꽃을 든 그녀'가 되었다

조회수 2020. 9. 23. 11: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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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반신 마비 아버지께 물려받은 뽀빠이 화원이 제 일터입니다
서촌에서 가장 오래된 꽃집 뽀빠이 화원
손님을 위한 하나뿐인 꽃다발 만들어
아버지 대신 직장 그만두고 꽃집 맡아

손님이 꽃집으로 들어왔다. “이 꽃다발을 만들어 주세요”라며 스마트폰에 저장한 사진을 내밀었다. 사장인 송수현(29)씨는 “직접 보기에 예쁜 꽃들을 골라 주세요”라 말했다. 안 예쁘면 어떡하냐고 묻자 “세상에 하나뿐인 꽃다발이 나오겠죠, 그걸로 충분해요”란다. 손님은 손바닥 만한 꽃다발을 받고 “사진보다 예쁘다”고 했다. 송씨가 거스름돈을 가지러 간 사이 스마트폰 카메라로 꽃다발을 여러 번 찍었다. 

출처: jobsN
뽀빠이 화원 내부

서울시 종로구 서촌에서 가장 오래된 꽃집 ‘뽀빠이 화원’엔 비슷한 일이 늘 생긴다. 의류회사 직원이었던 송씨는 2012년 부모님이 운영해온 뽀빠이 화원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하반신 마비 진단을 받을 정도로 아버지의 지체장애가 심해졌기 때문이다. 병간호로 어머니까지 바빠져 송씨는 회사를 그만두고 꽃집 일과 병간호를 도왔다. 직장에서 월급 받는 것보다는 집에 딸린 뽀빠이 화원 일을 돕는 편이 경제적으로 더 이익이라고 판단했다고 한다. 2014년 아버지가 녹내장과 백내장까지 앓자 병간호로 지친 어머니는 송씨에게 아예 꽃집 운영을 다 맡겼다. 송씨는 그 날부터 뽀빠이 화원의 사장이다.


송씨는 “꽃을 받은 손님들이 웃을 때면 뿌듯했지만, 패션 디자인 교수라는 꿈을 포기한 것은 아쉬웠다”고 한다. 24살에 생계를 책임지는 부담도 컸다. 그때마다 마음을 다잡기 위해 꽃다발을 들고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렸다. 아쉬움을 달래려 찍은 사진을 보고 사람들은 “꽃이 예쁘다”며 찾아왔다. SNS에서 소문을 타 뽀빠이 화원은 서촌의 명소로 알려졌다. 손님이 고른 꽃을 그 자리에서 손바닥보다 조금 크게 만드는 ‘미니 꽃다발’이 가장 잘 나간다. 꿈꿨던 일도, 연봉이 높은 직업도 아니지만 송씨는 “뽀빠이 화원에서 일하는 게 행복하다”고 한다. 그녀에게 직업은 어떤 의미인지 물어봤다.

출처: 송수현씨 제공
뽀빠이 화원 송수현씨

 꽃 사장님, 원래 꿈은 패션 디자인 교수


- 뽀빠이 화원은 언제 열었나


“제가 태어난 1989년 아버지는 집을 개조해 뽀빠이 화원을 열었어요. 지체장애로 키는 작지만 힘이 센 아버지의 별명 뽀빠이를 따서 화원 이름을 지었어요. 제 꿈은 패션디자인 교수였어요. 2012년 패션 디자인학과를 졸업해 의류회사에 들어갔어요. 그런데 하반신 마비 진단을 받을 정도로 아버지의 건강이 나빠졌고 어머니는 병간호로 꽃집 일을 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직장을 그만두고 꽃집을 맡았어요.”


“매일 아침 아버지를 간호하고 저녁에 꽃집에서 일했어요. 주말엔 카페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했고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경제적 여유가 생긴 2017년까지 아르바이트를 안 한 적이 없어요. 용돈을 받을 만큼 집안이 넉넉하진 않았거든요. 2013년 아버지의 건강이 나아져 새 직장을 구했는데, 2014년 아버지가 백내장과 녹내장 진단을 받아 다시 그만뒀어요. 어머니는 병간호로 힘이 든다며 제게 꽃집 운영을 부탁했어요.”

출처: jobsN
송수현씨 아버지가 지우개로 만든 뽀빠이 도장. 뽀빠이 화원 꽃다발엔 뽀빠이 도장이 찍혀있다.
출처: 송수현씨 제공
뽀빠이 도장이 찍혀있는 뽀빠이 화원의 '미니 꽃다발'

- 쭉 이 집에 살면서 장사를 했나

“서촌이 관광지로 알려져 월세가 올라 2016년에 서촌 안에서 가게를 한 번 옮겼어요. 2012년 40만원이었던 월세가 2014년 100만원으로 올랐어요. 2015년엔 집주인이 월세를 150만원으로 올렸고요. 그만한 돈은 없어서 2016년 단골과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골목 안에 있는 이 집으로 옮겼어요.”


- 매출은 어느 정도인가

“월 매출은 약 200만원 미만이에요. 관광지로 알려지기 전 서촌은 외부 사람이 잘 오지 않는 조용한 동네였어요. 뽀빠이 화원엔 동네 사람들만 왔고요. 이웃 주민과 단골들 덕에 지금까지 남았다는 생각으로 꽃값을 거의 올리지 않아요. 미니 꽃다발은 3년째 5000원이고, 꽃화분은 10년째 3000~6000원이에요. 꽃다발은 2만원 정도.”


10년째 화분값 올리지 않는 집


- 꽃값을 올리지 않는 이유가 잘 이해가지 않는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특별한 일이 있을 때 꽃을 사요. 외국처럼 자신을 위해서나 집에 두고 싶어서 꽃을 사는 사람은 드물어요. 부모님은 꽃값을 올리면 손님들이 특별한 날에 초라한 꽃다발을 들어야 한다고 하셨어요. 저 역시 자신을 위해 꽃을 사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바라서 값을 올리지 않으려 해요.”


“부모님은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어요. 돈이 아닌 자신의 삶을 좇아야 한다면서요. 저도 돈 욕심 때문에 꽃집이 지닌 의미를 흐리고 싶진 않아요. 돈은 생계를 이을 정도만 벌면 충분해요.”


- 꽃집이 지닌 의미가 뭐라고 생각하나

“1990년대만 해도 꽃집은 동네 사랑방 같은 곳이었어요. 동네 사람들은 졸업식이나 결혼 기념일에 꽃을 사러 와 수다를 떨고 고민을 털어놨어요. 부모님은 꽃으로 손님들의 기쁜 일을 축하하고, 슬픈 일을 위로했어요. 손님들의 세월을 꽃으로 장식하면서 인연을 쌓는 게 부러웠어요. 이제는 그분들의 자식이 커서 아이 손을 잡고 꽃을 사러 와요. SNS를 보고 온 단골들도 꽃을 사면서 고민을 말하고요. 앞으로도 사람들과 행복을 주고받고 싶어요.”

출처: 송수현씨 제공
송수현씨가 꽃을 들고 찍은 사진

- 미니 꽃다발로 유명하던데


“2014년 팔고 남은 꽃으로 미니 꽃다발을 만들었어요. 당시에 힘들 때마다 그 날 입은 옷에 어울리는 꽃다발을 들고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렸어요.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들을 보고 몇몇 손님이 찾아와 미니 꽃다발을 사 갔어요. 입소문을 타 손님이 많이 늘었어요. 인기가 가장 많았던 2015년엔 30팀 정도 줄 서서 기다린 적도 있어요. 골목 안쪽으로 이사한 뒤로 손님이 줄었지만 다섯 팀 정도 줄 서서 기다리는 날도 있어요.”


“어머니는 제게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위로금’이라고 쓴 돈 봉투를 줬어요. 적은 돈이었지만 위로금이라는 말만으로 힘이 났어요. ‘나를 위한 하나뿐인 꽃다발’을 만들어 사람들을 축하하고 위로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서촌 밖에서 찾아오는 손님이 많아진 뒤로, 손님에게 어울리는 새 꽃을 골라 미니 꽃다발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부케를 만들 때도 신부 화장, 드레스, 부모님 한복까지 여쭤보고 꽃을 골라요.”

출처: 송수현씨 제공
뽀빠이 화원 내부. 거울을 보면서 자신에게 어울리는 꽃을 고를 수 있다.
출처: jobsN
뽀빠이 화원에 붙어있는 안내판

- 손님들은 만족하나

“마음에 든다며 인스타그램으로 10줄 넘게 쪽지를 보내주시는 분이 많아요. 최근 한 학생이 졸업식 때 “내 꽃이 가장 예뻤다”고 쪽지를 보냈어요. 평소에 단골들이 자주 응원해주세요. 꽃을 사 가는 길에 합격 전화가 왔다는 분도 있고, 뽀빠이 화원을 옮겼을 땐 산속까지 따라가겠다는 분도 있어요. SNS에 피곤하다는 글을 올리면 약을 가져다 주는 분도 있고요. 저야 감사할 따름이죠. 옛날 시골 동네같은 정을 SNS로 느낄 때면 꽃다발을 만드는 게 일이 아닌 낙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사랑해주는 만큼 예뻐지는 게 꽃이라서


- 일과는 어떤가

“매일 11시쯤 열어 꽃을 가꿔요. 보통 7시에 닫는데 그보다 늦게 온다는 손님이 있으면 오실 때까지 열어요. 가게를 닫고 나면 꽃시장이 열리는 밤 12시 반에 꽃을 사서 새벽 2~3시쯤 들어와요. 들여온 꽃을 정리하면 새벽 5~6시쯤이에요. 잠시 잠을 자고 11시에 꽃집을 열어요.”


- 낮밤이 바뀌고 일도 많은데 힘이 들진 않나

“꽃과 종이에 지문이 닳아 스마트폰이 제 손을 인식하지 못 할 때가 있어요. 임파선염, 하지정맥류 등으로 자주 아프기도 해요. 병원에선 과로 때문이라고 해요. 처음엔 일보다 사람 때문에 힘들 때가 더 많았어요. 어리다고 무시하는 손님이나, 제가 못 미덥다며 꽃 가위를 뺏어서 직접 포장하려던 손님도 있었어요. 이젠 제가 즐겁고 행복해서 힘들지만은 않아요.”

출처: jobsN
일본인 단골이 직접 그려 선물로 준 그림

직업은 꿈을 위해 가지라고 하죠


- 꿈이 있다면

“공부해서 원예치료를 함께 하고 싶어요. 사랑받고 자란 사람이 사랑을 줄 수도 있다는 말이 있잖아요. 경제적으로 넉넉하게 자라진 못했지만, 남들보다 많이 사랑받고 자랐어요. 그래서 정성스럽게 꽃을 키울 수 있고, 그 꽃으로 누군가를 위로해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뽀빠이 화원에 온 사람들이 자신을 위한 꽃다발을 만들면서 위로받고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


- 직업은 누군가에게 꿈이고, 누군가에겐 돈벌이다. 송수현 사장에게 직업이란

“직업을 갖는 이유는 행복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해요. 직업을 꼭 꿈으로 삼거나, 반대로 돈을 위한 수단일 뿐이라며 삭막하게 살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꿈과 돈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해 자신의 삶과 행복을 놓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어떻게 살면 행복할지 솔직하게 고민하고, 주어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부터 해나가면 좋겠어요.”


글 jobsN 주동일 인턴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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