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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가장 돈 잘 버는 회사 직원 "생전 처음 만져봤어요"

조회수 2020. 9. 23. 11:1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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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업계의 '이단아', SK하이닉스

“반도체 회사 4년째 다니는데 웨이퍼(wafer·반도체의 기본 재료)는 오늘 처음 만져보네요.”


SK하이닉스 데이터 사이언스(Data Science) 조직 이석형(34) 책임은 들고 사진을 찍기 위해 가져 온 반도체 원재료를 들고 신기하다고 했다. 요즘 반도체로 그야말로 돈을 쓸어 담고 있는 SK하이닉스다. 작년 SK하이닉스의 매출액은 30조 1094억원, 영업이익은 13조 7213억원. 2016년에 비해 매출은 75%, 영업이익은 무려 319%나 늘었다. 요즘 '가장 돈 잘 번다고 소문난 회사'를 꼽으라면, 하이닉스가 빠질 수 없다.

출처: SK하이닉스 제공
SK하이닉스 이석형 책임. 그는 입사 4년만에 반도체의 원재료인 웨이퍼를 처음 만져본다고 했다.

SK하이닉스의 호(好)실적의 배경엔 2016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반도체 시장 ‘수퍼 호황’이 있다. ICT(정보통신기술) 산업이 발전하면서 서버(server) 수요가 늘었고, 여기에 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기 신제품이 쏟아지면서 D램·낸드(NAND)플래시 수요가 꾸준하다.


하지만 세계 반도체 회사 간 경쟁이 심화한 가운데 반도체 호황만으로 SK하이닉스의 성과를 설명하긴 어렵다. SK하이닉스 사람들은 ‘숨은 공로자들’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반도체 회사에 다니면서 반도체는 하나도 모른다는 '반알못'인 이 책임과 그의 동료들도 외부 심지어 내부에서도 잘 모르는 반도체 대박의 숨은 공로자들이다. 바로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라 불리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반도체 업계의 ‘이단아’


고려대학교에서 통계학을 전공한 이 책임은 박사과정을 마친 2014년 진로를 두고 고민에 빠졌다. “보통 통계학을 전공한 사람들은 증권사나 보험사, 카드사 등 금융권으로 많이 진출합니다. 통계학 전공자들이 쓰임새가 많거든요. 증권사에선 맡은 종목을 분석하는 애널리스트로, 보험사에선 통계 등을 활용해 보험료를 산출하는 계리(計理) 업무, 카드사에선 데이터 분석을 통해 부정사용을 잡아내는 업무를 주로 합니다.”


이 책임 역시 한 보험사 상품 계리 담당자로 입사하기로 돼 있었다. 그 와중에 우연히 SK하이닉스의 채용공고를 봤다. 통계·분석 전문가를 모집한다는 내용이었다. “대체 반도체 회사에서 왜 통계 분석 전문가를 뽑는지 궁금해졌습니다. 개인적으로 공부도 해보고, 지도 교수님과도 상의했죠. 제조업 쪽에 진출한 데이터 분석 전문가가 많지 않다는 결론이 나왔죠. 이 분야로 먼저 진출하면 시장을 선점할 수 있겠다 싶어 SK하이닉스를 택했습니다. 물론 데이터 분석 전문가를 찾는 곳이 많으니, 하다 안되면 다른 길로 갈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죠.”

출처: SK하이닉스 제공
SK하이스의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이 책임 등 3명의 박사급 전문가들이 모여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SK하이닉스엔 전자공학이나 화학공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많지만, 데이터 사이언스 조직엔 산업공학이나 통계학, 수학 등을 전공한 사람이 다수다. 그는 “우리는 반도체 회사에서 일하지만, 반도체를 실제로 다루지 않는 사람들”이라면서 “서로 ‘반도체 업계의 이단아’라고 불렀다”고 말했다.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고’가 화제가 되면서 2016년 SK하이닉스는 조직별로 흩어져 있던 전문가들을 모아 데이터 사이언스 조직을 구성했다. 지난해 9월 SK하이닉스는 상무급 임원급을 조직의 리더로 배치하고, 30명이던 조직원 수도 60명 정도로 늘리는 등 데이터 사이언스 역량을 강화했다.


고물 더미 속 보물을 찾아라


어느 제조업이나 마찬가지겠지만, 반도체로 돈 버는 것도 간단하다. 다른 회사보다 더 빨리, 더 많이 만들면 된다는 게 이 책임의 설명이다. “우선 반도체 제조 과정을 아주 간단하게 설명하면, 원재료인 웨이퍼에 회로를 그리고, 그려진 대로 웨이퍼를 잘라냅니다. 이것을 칩(chip) 혹은 다이(die)라고 부르는데요, 이 칩들이 수많은 전자기기들 안에서 각각 맡은 역할을 수행하게 되는 겁니다.”


반도체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선 두 가지 길이 있다. 첫 번째가 한정된 웨이퍼 면적 안에 더 많은 회로를 그리는 방법이다. 그러면 한장의 웨이퍼에서 얻을 수 있는 다이의 개수가 많아진다. 이 방식으로 반도체 생산 효율을 높이는 게 공정 미세(微細)화다. 언론 등에서 ‘반도체 공정이 몇 나노미터(nm)까지 갔다’는 보도는 이 맥락에서 나온 얘기다. 

출처: SK하이닉스 제공
반도체 제조 공정을 점검 중인 SK하이닉스 엔지니어들(좌), 웨이퍼를 들고 있는 직원들(우)

또 하나의 방법은 불량을 줄이는 것이다. 웨이퍼에서 나온 다이는 생산 환경의 문제 혹은 공정상의 한계로 불량이 발생한다. 불량을 줄이면, 다시 말해 수율(收率)을 높이면 반도체 생산량이 늘어난다. SK하이닉스의 데이터 사이언스 조직은 수율을 높이는 쪽으로 접근해 생산량을 늘리고자 한다.


“반도체 생산 과정에서는 공정별로, 제품별로 데이터가 쏟아집니다. 초당 수 기가바이트(GB)나 되죠. 예전엔 이 데이터는 갖고는 있지만, 사용·분석을 하지 않는 데이터 즉, ‘다크 데이터’(dark data)로 남아있었죠. 이걸 가공하고 분석해 수율을 높이는 방법을 찾는 게 저희가 하는 일입니다. 쉽게 말해 방치되던 고물 더미에서 보물을 찾는 거죠.”

출처: SK하이닉스 제공
SK하이닉스 제품 개발자들이 웨이퍼와 기존의 하드디스크를 대체할 SSD(Solid State Drive)를 들어보이고 있다.

하루에도 수천장씩 만들어지는 웨이퍼는 어느 하나 똑같은 게 없다. 웨이퍼가 수천장이면, 데이터 세트(set)도 수천개인 셈이다. 각각의 세트에 또 데이터가 수백개씩 들어 있으니, 그야말로 ‘빅데이터’다. “수많은 데이터를 머신러닝 기법으로 분석해 어떤 공정에서 문제가 생겼는지 찾아내거나, 웨이퍼를 이미지로 만들어 불량이 나타나는 패턴을 찾기도 합니다. 그 외에도 다양한 방법들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방법은 정해진 게 없으니까요.”


제품의 수율은 반도체 회사엔 극비사항이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구체적인 수치는 밝힐 수는 없지만,데이터 사이언스 조직의 활약으로 의미 있는 수율 향상이 있었다”고 말했다.


‘워라밸’은 물론 자기계발의 기회까지


이 책임은 망설임 없이 “재밌어서 회사 다닌다”고 했다. “데이터 분석으로 문제점을 찾아내 현업부서에 전달하고 나면, 또 다른 ‘일거리’를 찾아나섭니다. 하고 싶은 방식으로 실험을 진행해볼 수 있어요. 게다가 누가 ‘넌 이거 해’라고 시키는 게 아니라, 모두가 함께 토론해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니 재밌을 수밖에요. 게다가 30~40대 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활력도 넘칩니다.”

출처: SK하이닉스 제공
이석형 책임

일과 삶의 균형을 의미하는 ‘워라밸’도 좋다는 게 이 책임의 얘기다. “오전 8시부터 오후 10시 사이 하루에 4시간, 주당 40시간만 일하면 됩니다. 자신의 생활리듬이나 일정에 따라 자유롭게 일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죠. 저 또한 하루에 4시간만 일하다가 가는 날도 꽤 있습니다.”


새로운 연구결과를 끊임없이 흡수해야 하기 때문에 자기계발의 기회도 넉넉히 주어진다는 게 이 책임의 얘기다. “데이터 분석에는 통찰력이 필요합니다. 의미 없는 데이터를 하나로 꿸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한 것이죠. 이를 위해선 끊임없이 공부해야 합니다. 회사에서도 이런 사실을 정말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학회 참여나 연구 개발을 위한 지원을 ‘빵빵하게’ 해줍니다. 게다가 실제 산업 현장에서 생산된 데이터가 무수히 많기 때문에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꼭 해볼 만한 일입니다.”


글 jobsN 안중현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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