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어 입력폼

신발 판매원→국회의원 비서관→공기업→한샘..지금은?

조회수 2020. 9. 23. 11:18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신발가게 일하던 실업계 고등학생, 꿈의 직장 거쳐 창업까지

눈을 뜨니 응급실의 새하얀 천장이 보였다. 분명히 방금 전까지 자전거로 내리막을 달리던 기억이 났다. 간호사와 이야기를 마친 의사는 “내리막에 파인 홈에 자전거 바퀴가 끼어 몸이 날아갔다”고 했다. 다행히 쇄골과 손뼈만 부러졌지만, 땅에 머리를 부딪히고 의식을 잃어 사고가 난 줄도 몰랐다.


‘그대로 죽었다면 죽는 줄도 몰랐겠다’, ‘삶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면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퇴원한 달항 이서준(36) 대표는 다니던 한샘을 그만뒀다. 사고와 퇴사 모두 2015년 일이다. 이 대표는 오랫동안 꿈꿔온 창업을 준비해 2016년 디자인 상품 제조회사 달항을 세웠다.


달항의 대표 제품은 우리나라 도자기의 문양과 곡선을 따라 만든 플라스틱 물병이다. 회사 이름은 조선백자 달항아리의 가운데 두 글자에서 따왔다. 달항아리는 평창 올림픽 성화대로 쓸 만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도자기 중 하나다. 실업계 고교를 나와 계약직 판매사원, 국회의원 비서관, 홍보회사, 공기업, 한샘 재무팀을 거친 이 대표의 창업기를 들어봤다.

출처: 이서준 대표 제공
달항 물병

신발가게 일하던 실업계 고등학생, 꿈의 직장 거쳐 창업까지


- 고등학생 때 신발가게 판매원이었다고 들었다

“실업계 고등학교를 다녀 3학년 때 6개월간 신발가게 계약직 판매원으로 일했어요. 출근 시간은 근로계약서보다 1시간 빠른 8시였어요. 점심시간은 1시간이라 적혀있었지만 다른 직원들과 교대로 먹어야 해 실제로는 20분이었고요. 어느 날 매장 옆 본사 직원들이 정시 출근해 점심에 식사를 마치고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는 모습을 창문으로 봤어요. 같은 회사 직원인데도 대우가 달라 서러웠어요. 어린 마음에 반드시 사무직으로 성공해야겠다는 생각까지 했고요.”


“일을 그만두고 삼수 끝에 2003년 고려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에 입학했어요. 영화 인디아나 존스를 보고 어릴 때부터 유물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단순히 대학에 붙어서가 아니라, 제 의지대로 삶을 조금씩 바꿀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 행복했어요. 제 의지로 노력을 해서 얻은 첫 번째 성과였어요.”


- 창업은 언제부터 꿈꿨나

“대학생 때 무료 멘토링 서비스를 만들었어요. 배너 광고로 돈을 벌어 저소득층 청소년에게 과외·학원비를 지원했는데, 서비스 운영이 어려워 2012년에 폐쇄했어요. 앞으로 달항을 통해 사회 공헌 사업을 이어갈 예정이에요. 2017년에 달항 수익 일부로 여성용품을 사서 굿 네이버스에 기부했어요. ”


“두 번째 창업 아이템은 카디건이었어요. 대학생 때 일본 의류 브랜드 꼼데가르송의 카디건이 약 30만원에 팔리는 걸 봤어요. 의상학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면 흔히 볼 수 있는 카디건과 차이를 알기 어려울 정도로 평범한 디자인이었죠. 하지만 꼼데가르송 로고가 붙었다는 이유만으로 많은 이들이 샀어요. 그걸 보면서 ‘한국적인 로고가 붙은 카디건으로 우리나라를 알리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2012년 조선백자 달항아리 로고를 붙인 카디건을 만들었어요. 하지만 반응이 크지 않았고 취업으로 바빠져 생산을 그만뒀습니다.”

출처: 이서준 대표 제공
달항 CI

- 그 뒤로 취업준비를 시작했나


“2011년에 졸업해 학보사 경험을 살려 국회의원 비서관으로 들어갔어요. 하지만 정치 색을 띤 이력을 쌓고싶지 않아 몇 달만에 그만뒀어요. 그리고 홍보회사 광고기획팀, 중소기업기술정보진흥원 기획부를 거쳐 한샘 재무팀에 입사했어요. 점심시간마다 창업 관련 책을 볼 정도로 사업을 꿈꿨지만 안정적인 월급을 포기하는게 두려워 시작할 엄두를 못냈어요.”


달항, 가장 한국적인 게 세계적인 것


- 직장을 그만두고 창업한 계기


“2015년에 자전거를 타다가 눈을 떠보니 응급실이었어요. 내리막길에 파인 홈에 바퀴가 끼어 몸이 날아갔는데 머리를 땅에 부딪히고 의식을 잃어 사고가 난 줄도 몰랐어요. 다행히 쇄골과 손만 부러졌지만, 머리를 심하게 다쳤다면 제가 죽는 줄도 모르고 삶을 끝냈을 거예요. 그대로 죽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보니, 하고 싶은 일을 제대로 못 한 게 정말 아쉬울 것 같았어요. 삶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면 행복한 일을 하면서 살기로 다짐했어요. 사표를 내고 그동안 직장생활로 모은 돈으로 2016년 달항을 세웠죠.”


- 달항에 담은 한국적인 아름다움은 뭔가


“직장 다닐 때 우리나라 도자기를 물병처럼 들고 다니면 재밌겠다고 생각했어요. 2016년 4월 28일 충무공 탄신일에 달항을 설립해, 대학에서 배운 우리 도자기의 곡선과 문양을 따라 물병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8월 15일 광복절에 출시했어요. 물병은 13세기 라인과 14세기 라인 두 종류에요. 13세기 라인은 무신 정권기 미술의 특징을 담아 크기가 작고 곡선이 화려하게 휘었어요. 14세기 라인은 문인들의 실용성을 담아 곡선이 덜 휘고 용량이 커 실용적이에요.”

출처: 이서준 대표 제공
페트병을 통째로 넣을 수 있다

- 특별한 기능은 없나


“물병을 샀다가 씻기 귀찮아 사용하지 않은 경험이 한번씩 있을 거에요. 달항 물병 뚜껑 안쪽에 페트병 입구를 끼울 수 있는 나사선을 만들었어요. 편의점에서 산 페트병을 열어 통째로 물병에 넣을 수 있어요. 다 마신 페트병을 버리면 물병을 씻을 필요가 없고, 보온·보냉으로 병 표면에 물방울이 맺히지도 않죠. 물병 뚜껑은 한 손으로 열 수 있어 차나 자전거를 탈 때 편하고요. 달항 물병을 사용하는 분이 유명 편의점·마트에서 산 페트병을 매장에 반납하면 마일리지를 주는 재활용 제휴도 기획하고 있어요.”


- 매출과 고객 반응이 궁금하다


“연매출은 1억원을 조금 넘어요. 아직 3년 차라 매출은 적지만 응원해주는 단골 고객이 많아 힘을 얻고 있습니다. 일본이나 프랑스에 사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달항 물병을 사고 나서 고맙다는 편지를 보낼 때가 있어요. 한국인인 걸 드러낼 수 있게 해줘 고맙다면서요. 외국인 친구에게 선물로 주는 분도 많고요.”

출처: 이서준 대표 제공
이서준 대표

창업을 꿈꾸는 직장인에게


- 한국적인 디자인 제품으로 창업하려는 이들에게 해줄 말은


“한국적인 선·색·문양 등을 사용할 땐 시대 배경도 함께 공부하셨으면 해요. 무신과 문신이 추구하는 미술이 다르듯, 시대마다 미술 작품은 조금씩 달라요. 그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여러 작품에서 선·색·문양 등을 가져다 쓰면 한국적인 것을 흉내 내는데 그칠 수 있어요. 고객도 어떤 점이 한국적인지 역사 배경을 설명해주는 제품을 더 좋아할 거고요.”


- 창업을 꿈꾸는 직장인들에게 해줄 말은


“규칙적인 출퇴근, 업무 스트레스 등에 지쳐 회사생활을 그만두고 창업하려는 분들이 있어요. 사업을 하면 예상치 못한 일이 잦아요. 그래서 업무량이 많고 스케줄은 불규칙하면서 바빠 직장생활보다 힘들 때도 있어요. 확실한 뜻을 품고 즐기는 분이 아니면 견디기 어렵죠. 창업이 자신의 길이 맞다면, 자신의 아이디어가 매일 눈앞에 실현되는 걸 즐기면서 최선을 다하길 바라요.”


글 jobsN 주동일 인턴

jobarajob@naver.com

잡스엔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