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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부자냐"알바생·사장님들의 청와대 청원글 보니

조회수 2020. 9. 23. 14:5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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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님, 저는 '아르바이트생' 입니다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는 취지로 지난해 8월 청와대는 국민청원 게시판 운영을 시작했다. 3월 9일 현재까지 7개월 남짓한 기간에 13만건이 넘는 국민의 ‘목소리’가 표출됐다.


청와대는 청원 시작 후 한 달간 20만명 이상의 국민이 동의한 청원에 답변한다. 총 19건의 청원이 이 조건을 충족했고, 이 중 14건이 정부 혹은 청와대 관계자의 답변이 끝났다. 나머지 5건은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출처: 출처 : 청와대 홈페이지

이 중 가장 많은 동의를 얻은 것이 ‘조두순 출소반대’ 청원이다. 총 61만5354명이 청원에 동의했다. 아직 청원 기간이 끝나지 않았음에도 61만2979명의 동의를 받아 이례적으로 답변을 빨리 받은 ‘김보름, 박지우 선수 자격 박탈’ 청원이 그 다음이다.


이외에도 권역외상센터 지원에 관한 청원(28만1985명), 미성년자 성폭행범에 대한 형량을 올려 달라는 청원(23만3842명) 등 굵직한 사회 문제에 대한 청원이 20만명 이상의 동의를 받았다.


대학에 들어오면서부터 졸업을 앞둔 지금까지 한시도 아르바이트를 놓지 않은 필자는 국민청원 게시판에 알바와 관련된 청원은 어떤 것들이 올라와 있는지 궁금해졌다.


우선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청원 중 제목에 ‘알바’를 포함하고 있는 청원 글은 130여건, ‘아르바이트’를 포함하고 있는 청원들은 53건이다. 적다면 적고, 많다면 많은 수지만, 이들 중 2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은 청원은 없었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사람의 노력만 가치가 있는 게 아니듯, 굵직한 이슈들에 묻혔지만 나름대로 의미 있는 알바 관련 청원들이 꽤 있었다. 알바생의 청원에서부터 알바생을 고용한 고용주의 청원까지 알바와 관련된 청원을 유형별로 나눠 살펴봤다.


대통령님, 알바생의 권리를 지켜주세요

출처: 출처 : 청와대 홈페이지

당연한 일이겠지만, 알바생의 고충을 토로하는 글이 눈에 많이 띄었다. 우선 손님으로부터 이른바 ‘갑질’을 당했다는 유형이다.


자신을 국내 유명 커피 프랜차이즈에서 일하는 알바생이라고 밝힌 청원자는 “오랜 기간 일하며 하루에도 일을 그만둘까 수없이 생각하지만, 학업을 유지하기 위해 밤낮으로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고 청원 글을 시작했다.


그는 “손님의 갑질에 상처받고, 창피하고, 자괴감이 든다”고 했다. 이 청원인은 “직원에게 욕설과 반말을 하는 손님은 과태료를 부과하는 ‘갑질 금지법’을 청원한다”고 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갑질’을 고발하는 의미 있는 글이지만, 이 청원 글에 동의한 사람은 단 3명에 불과했다.


대학교 등록금을 벌기 위해 고깃집 알바를 시작했다는 한 청원자는 “손님이 잘못해도 제가 사과해야 하고 따로 직원에게 불려가 혼나야 했다”면서 “알바 중 모욕을 받으면 그 자리를 피할 수 있는 법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다.


그는 또 “손님들이 소주로 스트레스를 푼다고 하는데 알바생에게 스트레스가 전가된다”고도 했다. 이 청원 글도 단 2명의 동의를 얻고 종료됐다. 이와 유사한 청원이 몇 건 더 있었지만, 20만명은커녕 20명의 동의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손님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글뿐만 아니라, 고용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글도 많았다.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거나 고용주가 주휴수당, 퇴직금을 주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한 청원자는 문재인 대통령이 18대 대선 후보 시절 편의점에서 알바 체험을 했던 사실로 청원 글을 시작했다. 이 청원자는 “대통령께서도 편의점 알바생에 대한 고충을 아주 조금이라도 느끼셨을 것이라 생각한다“며 “수습기간에는 최저임금의 90%를 주는 조항을 정책적으로 고려해주고, 알바생에 대한 임금 미지급을 근절해달라”고 요구했다.


대통령님, 알바생의 의무를 지켜주세요


알바생의 고충 못지않게 보이는 글이 고용주의 고충 토로 글이다. 대표적인 것이 알바의 무단퇴사다. 한 청원자는 “알바생들말고 자영업자들도 알바의 횡포로부터 보호해달라”며 알바비를 당겨 받고 나오지 않는 알바, 월급날 월급만 받고 갑자기 잠적하는 알바 때문에 겪은 피해를 호소했다.


‘추노알바 방지책’이라는 제목의 청원들을 올린 한 고용주는 “무단결근을 하는 알바를 사업주 입장에서 거를 수 있도록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인사이트에 만들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출처: 출처 : 청와대 홈페이지

보통의 청원이 각자의 입장에서 권리를 주장한다면, 특이하게 의무를 주장하는 글도 있었다. 한 20대 알바생은 고용주의 입장에서는 권리가 될 수 있는 ‘무단퇴사 방지법’을 주장했다.


그는 “근로기준법에 따라 알바 역시 존중받아야 할 근로자이기에 알바로서의 의무를 주장한다”며 “알바가 계약을 체결하고도 의무를 회피한다면 임금을 체불하는 사업주와 다른 게 뭐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 청원은 15건의 동의를 받았다.


자영업을 하고 있다는 한 청원자는 “어떻게 해야 올바르게 아르바이트생과 함께 긍정적으로 업장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공생공존 관계가 유지되는지 잘 모르겠다”면서 “갈등이 없도록 자영업자와 아르바이트생이 함께 교육받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다.


이 청원은 2명의 동의를 받고 끝났지만, 알바생과 고용주가 서로 다른 고충을 토로하는 상황에서 역지사지할 수 있는 합리적인 제안이다.


대통령님, 현장과 동떨어진 제도를 바꿔주세요


권리와 의무를 주장하는 것 외에 현장과 제도가 동떨어진 부분을 지적하는 청원들도 보였다. 편의점 알바생들은 미성년자가 술·담배를 살 경우 판매자만 처벌받는 법 조항에 문제를 제기했다. 

한 편의점 알바생은 “신분증을 보여 달라고 하면 욕하는 사람이 많고, 위조 신분증은 알 방법이 없다”고 했다. 또 다른 알바생은 “일본처럼 구매자가 전적으로 벌을 받게 해달라”고 청원했다. 그는 “왜 선량한 판매자가 죄를 뒤집어써야 하느냐”면서 “점주들이 부자냐, 알바생이 부자냐”라고 반문했다.


이 외에도 알바생의 경고를 무시하고 편의점 내에서 술을 마시는 손님들에 대한 처벌, 비닐봉지 유상 판매에 대한 홍보 요청 등 편의점 알바의 고충을 털어놨다.


편의점 알바생은 “바쁘게 일하는 중에 할아버지가 준 5000원을 5만원으로 착각, 4만 5000원을 거슬러 주는 바람에 직접 그 돈을 채운 적이 있다”면서 “5000원권과 5만원권의 색을 다르게 해달라”고 청원하기도 했다. 이 청원엔 5명이 동의했다.


지금도 정치개혁, 일자리, 육아/출산 등 총 17개 분야에서 다양한 청원이 쏟아지고 있다. 비록 동의를 많이 받지 못했지만, 청원게시판을 둘러보니 이 땅의 100만 알바생과 500만 자영업자의 ‘목소리’엔 진심 어린 고민이 담겨있었다. 그들의 ‘외침’에도 ‘동의합니다’라는 댓글이 잔뜩 달릴 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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