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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9시간 일하고 7만3000원 받은 단기알바는?

조회수 2020. 9. 23. 15:2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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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런타인 데이에 당신이 받은 초콜릿, 내 손에서 탄생했다

2월 12일부터 14일까지 초콜릿 시장은 전쟁터가 된다. 2월 14일, 여자가 남자에게 초콜릿을 선물한다는 ‘밸런타인 데이’가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전국 백화점과 마트는 밸런타인 데이를 앞두고 온갖 브랜드의 초콜릿을 한 군데에 쌓아두고 여심을 저격한다. 필자는 밸런타인 데이를 하루 앞둔 지난 13일, 잠실의 한 백화점 지하 초콜릿 매대에서 단기 아르바이트에 나섰다. 하루 9시간 일하고 받는 돈은 7만3000원. 최저 시급을 조금 웃도는 돈이지만, 단기로 근무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밸런타인 데이 분위기를 공유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1분에 하나씩 팔려나가는 초콜릿

밸런타인 데이를 하루 앞둔 지난 13일, 필자는 잠실의 한 백화점 지하 초콜릿 매대에서 단기 판촉 아르바이트를 했다.

이날 L 제과에서 수입하는 초콜릿이 한가득 진열된 매대에는 사람들로 붐볐다. 잔뜩 쌓인 초콜릿을 보면서 ‘오늘이 무슨 날이냐’고 묻는 사람들, 초콜릿 전문점에서 초콜릿을 사서 나오다가 더 싼 가격을 보고 다시 초콜릿을 사는 사람들까지 온갖 사람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G 초콜릿입니다. 밸런타인데이 맞이 초콜릿 한 번씩 구경하고 가세요!” 목청을 가다듬고 최대한 크게 한 마디를 외친다. 손님이 초콜릿을 골라 계산하고 영수증을 보여주면, 이미 포장된 제품으로 바꿔주는 게 필자의 임무다. 계속 서 있어야 하고, 끊임없이 외쳐야 하지만, 일 자체는 크게 어렵지 않았다. 다만 밀려드는 인파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포장된 초콜릿을 담을 쇼핑백을 30개쯤 들고 있었는데, 30분에 한 번씩 포장 부서를 찾아가 쇼핑백을 받아와야 했다. 1분에 1개씩 팔려나가는 셈이다.


“달지 않은 초콜릿은 없습니다, 고객님”

큰 목소리의 20대부터 노련한 모습을 자랑하는 50대까지, 매대를 지키는 ‘알바생’은 다양했다.


이들은 이른바 ‘진상’ 손님이 별로 없어 편하지만, ‘둘 중 어떤 초콜릿이 낫느냐’는 질문을 받을 땐 답하기가 쉽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로 한 할머니는 “오늘이 초콜릿을 주는 날이냐”며 “할아버지가 단 걸 안 좋아하니 가장 덜 단 초콜릿을 추천해달라”고 묻기도 했다. G 초콜릿 종류 중 달지 않은 제품은 없었다. 하지만 할아버지를 생각하는 할머니의 마음을 생각해서 카카오 함량이 높은 초콜릿을 추천했다.


포장이 안 되는 제품이지만, 정성스레 포장하고 리본까지 달아서 전달했건만, 10분 뒤 할머니는 매장을 다시 찾아 “할아버지 당뇨 때문에 영 걸려서 안 되겠네! ”라며 환불해갔다. 남편에게 줄 초콜릿을 찾는다는 40대 여성도 기억에 남았다.


그는 “녹차 맛 초콜릿이 낫느냐, 커피맛 초콜릿이 낫느냐”고 물었다. “남편 취향에 따라 다를 것 같다”고 대답하자, “파는 사람이 다 먹어보고 어떤 게 나은지 설명할 줄 알아야지”라며 화를 냈다. 알바생이 맛볼 수 있는 시식용 초콜릿이 있다면, 더 많이 팔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한국의 ‘밸런타인 데이’ 진풍경

많은 사람이 밸런타인 데이를 제과업계의 ‘상술’이라고 생각할 줄 알았다. 하지만 실제로 알바를 해보니 ‘그날’을 대하는 사람들의 자세는 확실히 달랐다.


엄마와 딸로 보이는 손님은 대부분 ‘남편 겸 아빠’의 초콜릿과 딸 남자친구의 초콜릿, 이렇게 사갔다. 이들은 꽤 비싼 1만9000원짜리 ‘50주년 한정판’ 초콜릿을 주로 사갔다. 남자친구에게 줄 초콜릿을 사는 젊은 여성들은 상자가 예쁜 10개들이 초콜릿을 주로 사갔다. 점심때를 이용해 회사 동료에게 줄 초콜릿을 사러 온 인근 사무실 직원들도 있었다.


작업복을 입고 단체로 나온 손님 3명은 30개나 샀다. 6000원짜리니까, 총 금액은 18만원. “큰 금액에 놀라 부담스럽지 않느냐” 묻자 “안 챙기고 넘어가면 섭섭해할까 봐 일부러 챙기러 왔다”고 말했다. 이들은 “세련된 포장은 부담스럽다”면서 일부러 포장되지 않은 초콜릿을 챙겨갔다. 이 밖에도 손녀, 손자들의 몫을 일일이 준비하시는 할아버지, 홀로 사는 아들의 초콜릿을 준비하는 엄마도 있었다.


오늘 당신이 받은 초콜릿은 내 손에서 탄생했다 

초콜릿 박스가 층층이 쌓인 진열장 뒤 한 켠에 간이 포장 부스가 마련돼 있었다.

사실 가장 바쁜 곳은 초콜릿을 포장하는 부서다.


층층이 쌓인 초콜릿들 뒤쪽엔 간이 포장 부스가 마련돼 있었다. 작은 공간이지만 3명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초콜릿 상자를 포장했다. 워낙 많이 팔리기 때문에 포장 알바가 감당하지 못하면, 판매 알바도 포장 작업에 뛰어들었다.


필자도 이날 족히 100상자쯤은 포장했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그 초콜릿 중 하나가 오늘 당신이 선물 받은 초콜릿일지도 모른다. 어떤 초콜릿은 빨간 포장지로, 또 다른 초콜릿은 투명한 비닐로, 빵 끈과 리본도 붙였다. 초콜릿을 계속 팔다 보니 초콜릿이 먹고 싶어져 집까지 하나를 포장해왔다.


하나의 초콜릿이 얼마나 많은 사람의 손을 타서 만들어지는지 알게 되니 뜯어 먹기가 아까워 모셔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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