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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이 더 바쁜사람들 ①]목수→장사→사범대→30살에 수능 보고 선택한 직업은?

조회수 2020. 9. 23. 15:2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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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KTX 기관실 속 그의 손은 2.5초마다 한번씩 움직인다
[설이 더 바쁜사람들 ①]
KTX 지승환 기장 동행 르포
열차 기관사 12년 후 전직
“늘 명절에 일해 설 못 쇤다”

지난 9일 오전 9시 40분 서울역. 객실이 아니라 기관실. KTX121호의 운행을 맡은 지승환(46) 기장의 손은 빠르게 움직였다. 기관실에 있는 수십여 개의 버튼을 일일이 호명하면서 확인하는 작업 중이다. 무전기 테스트도 했다. 

출처: jobsN
낮은 속도로 제한되는 '운전 서행' 구간을 확인하는 지승환 기장.(좌) 관제실과 연결하는 무전기.(우)

20분가량 테스트가 끝났다. 열차 팀장이 기차에 올라타 문을 닫았다. 지 기장의 운전석 계기판에도 빨간색 불이 들어왔다. 지 기장은 “121 열차 발차 기장 이상”이라며 기차를 운전하기 시작했다. 물 흐르듯 떠난 KTX는 약 1시간 뒤 대전역에 도착했다. 1시간 동안 지 기장의 몸은 흐트러짐이 없었다. 앞을 보면서 계기판을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드는 정도였다.


다만 손가락은 꾸준히 움직였다. 꾸준히 터치를 하지 않으면 주의 경보가 울리는 VDS(기관사 운전 경계장치ㆍVigilance Driver System) 때문이다. 기관사가 졸음이나 신체적 이상 때문에 장치를 2.5초 이상 터치하지 않으면 1차 주의 경보가 2.5초간 울린다. 그래도 반응하지 않으면 KTX는 자동으로 멈추고 관제실에 경보음이 울린다. 역으로 55초 이상 계속 누르고 있어도 VDS가 열차를 세운다.


늦깎이 공부로 철도대 입학…부산서 기관사 시작


지 기장은 15년 기관사 경력이 있다. KTX 기장이 된지는 3년차다. 기관사 3년 경력에 10만㎞ 이상 주행 경력이 있어야 KTX 기장에 지원할 자격이 생긴다. 하지만 실제로는 더 많은 경력이 필요하다. 지 기장은 12년간의 무사고 경력을 살려 기장이 됐다.

출처: jobsN
11일 인터뷰차 다시 만난 지승환 기장. 이 날은 KTX 107호를 운행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기관사로서의 커리어를 목표로 하지는 않았다. 그는 고교 시절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아니었다. 고교 졸업 이후 바로 군대를 다녀왔고, 전역 후에는 목수로 6년간 일했다. 모든 돈으로 장사를 시작했다. 1997년 경제위기로 장사를 접어야 했다. 새로운 삶을 꿈꾸며 입시학원으로 달려갔다.


노량진 학원가에서 공부를 해 사범대에 들어갔지만, 나이가 걸림돌이었다. 다시 ‘n수’를 결심한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한국철도대(현 한국교통대) 홍보책자. 졸업하면 한국철도공사(현 코레일)에 특채로 들어가는 등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나이 제한도 35세 이하로 넉넉했다. 다시 수능을 쳐서 30살에 철도대(운전 전공)에 들어갔다.


이후 부산기관차승무사업소·부곡기관차승무사업소에서 3년 부기관사를 지냈다. 새마을·무궁화 등의 일반열차와 화물차를 맡았다. 병점승무사업소의 기관사로 진급해 처음으로 혼자 운전대를 잡았다. 신창역에서 광운대역까지 지하철을 몰았다. 그리고 2015년 드디어 KTX 기장으로 첫 발을 내디뎠다.


KTX를 처음 몰 때 기분은 어땠을까. 그는 “빠른 속도를 체감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일반 열차는 시속 100㎞만 넘어도 흔들림이 느껴지는데, KTX는 시속 300㎞로 달려도 흔들림이 적다. 선로 정비 상태가 좋고 첨단 기술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70만㎞ 무사고 자부심…하지만 ‘식겁’한 적도


그는 70만㎞를 무사고로 주행했다. 서울-부산 구간을 900번 왕복할 거리다. 지 기장에게도 아찔한 순간은 있었다.

출처: jobsN
VDS 감지기를 터치하는 지 기장.(좌) 대전역에 들어서는 KTX 121호.(우)

최근 서울로 올라오는 길이었다. 세종시 인근을 지나는데 1㎞ 전방에서 인부들이 선로 보수 작업을 하고 있었다. 대개 이럴 때에는 선로 위에 감시하는 사람이 1명 있고, 이 사람이 하얀 깃발로 신호를 준다. 깃발을 흔들면 인부들이 기차를 피하는 식이다. 하지만 이날 공사현장에는 감시자가 없었다.


지 기장은 기적을 두 차례 울렸지만 인부들은 듣지 못했다. 결국 비상브레이크를 걸었다. 공사현장에서 약 200m 떨어진 곳에 접근해서야, 인부들은 간신히 기차를 보고 선로를 급히 벗어났다. 그는 “빨리 브레이크를 잡지 않았다면 사람이 죽었을 수도 있었다”며 “당연한 말 같지만 전방 주시를 목숨처럼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설에도 부산행 KTX 몰아…명절 제대로 쇠지 못해”


KTX 기장이기 이전에 지씨도 아빠다. 열한 살 딸아이 앞에서는 어깨를 으쓱하고 싶다. 한 번은 가족여행으로 부산을 가려고 KTX에 탄 적이 있다. “어때? 좋아? 아빠가 이 열차 몰잖아.” 하지만 야속하게도 딸은 “안다”고 짧게 답했다.


때로는 기관실을 가족들에게 구경시켜주고 싶은 욕심도 있다. 10여년 전만 해도, 관행적으로 상관의 허락을 받고 가족들을 운전실에 태워줬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큰일 날 소리다.


일상에서 KTX를 타도 정차는 부드러운지, 고장은 나지 않았는지 긴장을 놓지 못한다. 항상 사고 위험에 놓여있는 기장이라 생긴 직업병이다. 역에 정차하면 시계부터 눈이 간다. 정시에 도착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출처: jobsN
서울역에서 KTX를 이용하는 승객들

지 기장은 이번 설 연휴 중 15~17일 부산행 KTX를 몬다. 가족과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것은 연휴 끝자락인 18일에나 가능하다. 그는 “KTX는 평소 자주 보지 못하는 사랑하는 가족들을 잇는 수단”이라며 “국민들의 행복에 일조한다는 생각으로 명절에는 더 열심히 열차를 몬다”고 말했다. 세배는 어떻게 받느냐고 묻자 “늘 명절에 일을 하느라 제대로 쇠지는 않는다”고 답했다.


글 jobsN 이현택, 대전=최하경 인턴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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