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 선진국 덴마크에 '농장'을 수출한 한국 청년

조회수 2020. 9. 23. 15:2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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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 농장'으로 미래 농업의 대안을 제시하다
김혜연 ‘엔씽’ 대표

최첨단 ‘스마트 농장’을 만들어 농업 선진국인 덴마크에 수출한 기업이 있다. 사물인터넷을 활용해 미래 농업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있는 ‘엔씽’이다. ‘엔씽’의 김혜연 대표를 서울 서초구 나루터로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지난해 덴마크의 한 호텔 체인이 26.5㎡(8평)의 수출용 컨테이너에 만든 수직 농장(vertical farm) 두 동을 사 갔습니다. 아직 실험 단계인 모델이었죠. 컨테이너 농장 한 동만 있어도 1322㎡(400평)의 땅에서 농사짓는 만큼 농산물을 재배할 수 있습니다. 재배기를 수직으로 쌓아 올릴 수 있는 데다 실내 환경을 조절하면서 땅에서 키울 때보다 훨씬 여러 차례 수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밀폐된 공간에서 온도, 조도, 습도, CO₂ 농도 등을 조절하면서 원하는 맛과 영양분을 지닌 농산물을 생산할 수 있으니까요. 보통 일교차가 큰 지역에서 자란 과일의 당도가 높잖아요? 그런 환경도 인위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컨테이너를 여러 동 쌓아 올리면 같은 땅을 수백 배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땅이 부족한 도시에서도 충분히 농사를 지을 수 있죠.


호텔이나 식당, 급식업체, 식재료 회사들이 필요한 농산물을 직접 무공해로 재배할 수도 있습니다. 병충해 걱정이 없으니까요. 물을 재활용해 최대한 절약하는 시스템이라 중동 지역에서 특히 관심을 많이 보입니다. 올해 초 미아사거리에 세 동을 설치해두고 농산물을 직접 재배할 계획입니다. 모델하우스처럼 보여주면서 세계시장을 겨냥하려고요.”


외국 뉴스로 접하던 수직 농장을 우리나라에서 만들어 세계로 수출한다는 이야기였다. 한양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다 농사에 사물인터넷 기술을 접목해 스마트 농장을 만들기까지 그의 인생 역정도 재미있다. 그는 공부에는 그리 관심이 없는 학생이었다고 말한다. 어렸을 때부터 일 벌이기를 좋아했고, 고등학교 때는 홈페이지 동아리를 만들었다. 대학 입학 후에는 밴드 동아리에 들어갔고, 군대에 다녀와서는 잠시 로드 매니저 생활도 했다.

“누나 친구의 쇼핑몰 홈페이지를 만들어주다 한 매니지먼트 회사의 홈페이지 리뉴얼을 맡았습니다. 제가 방송에 흥미를 느낀다고 했더니 매니저로 일해보라고 하더군요. 얼마 후 그 회사가 망하는 바람에 다시 아르바이트 거리를 찾다 통신회사에서 일했습니다. 2007년 말에서 2008년 초까지 일하면서 앞으로 어떤 트렌드가 세계를 주도할지 미래 보고서 작성을 도왔습니다.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 후 어떤 사업이 유망할지 분석하는 일이었죠. VR(가상현실), AR(증강현실),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3D프린터 등 지금 화두가 되는 기술을 그때 다 훑어본 것 같아요. 미래 트렌드에 관해 전반적인 맥락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급속도로 변화하는 사회에서 경쟁력을 갖추려면 영어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2009년 1년 동안 런던에서 어학연수를 받고 돌아왔습니다. 스마트폰이 나오면서 세상이 급변하던 시기였죠.”


영국에서 본 새로운 개념의 카페를 해볼까 고민하고 있을 때 ‘장사가 아니라 사업을 해보라’면서 농자재 회사를 하던 외삼촌이 불렀다. 그곳에서 그는 우즈베키스탄에 합자회사를 세운 후 비닐하우스로 토마토 농장을 만들어주는 일을 했다.


“사업이라고는 하나도 모르는 공대생이 정관을 만들어 사업자등록을 받는 등 하나하나 배워가며 일했습니다. 일단 우즈베키스탄에서 길을 뚫고 나니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러시아 등 인접 국가에서도 주문이 밀려들고, 회사 규모가 금방 커지더라고요. 세계로 시야를 넓혀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농장을 만들어준 뒤에도 한국에서 재배사가 가서 농사를 지도해야 했습니다. ‘한국에서 인터넷으로 조정할 수 있는 농장을 만들면 좋겠다’고 그때 생각했습니다.”


스마트 화분부터 시작

‘내 사업을 하겠다’며 외삼촌 회사를 나온 그는 2012년, 한국전자부품연구원의 사물인터넷 플랫폼 개발팀에서 일을 도왔다.


“블로그를 통해 알게 된 연구원이 사물인터넷에 관해 써놓은 글을 보고 연락했더니, ‘놀러 오라’고 하시더군요. 그리고 사물인터넷을 활용하는 사업이나 서비스 아이템을 내보라고 하셨습니다. 젊은 애가 다양한 경험을 해보았다 하니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나올 줄 아셨나 봐요. 농장에 센서를 설치해 모니터링하면서 농사를 짓는다는 생각도 그때 나온 아이디어 중 하나입니다. 농업을 해본 경험이 바탕이 되었죠.”


그때의 아이디어를 계속 발전시키면서 지금의 스마트 농장을 만들 수 있었다고 말한다. 2013년 7월 그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언제 어디서든 관리할 수 있는 스마트 화분 ‘플랜티’를 개발했다. 조도, 온도, 토양습도 등을 측정하는 센서와 원격으로 물을 줄 수 있는 물통과 펌프가 달린 화분이다. 이 화분으로 2013년 말, 미래과학부와 인터넷진흥원, 구글이 공동 주관한 ‘글로벌 K-스타트업’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2014년 ‘엔씽’을 설립한 그는 2015년 5월 크라우드펀딩 사이트인 킥스타터를 통해 선주문을 받고, 2016년 봄부터 스마트 화분을 판매했다.


“스마트 화분은 저희가 구상한 최종 모델이 아닙니다. 농장에 사물인터넷을 접목하려고 하니 너무 규모가 커질 것 같아 가장 작은 단위인 화분부터 시작해보기로 했습니다.”

올해 초에는 모듈형 수경재배 키트인 ‘플랜티 스퀘어(Planty square)’도 판매할 예정이다. 수경재배용 작은 화분이 4개씩 꽂힌 스퀘어를 원하는 대로 연결해서 사용할 수 있는 키트다.


“샐러드용 채소나 허브 등을 직접 길러 먹으면서 재미를 느끼게 하는 제품입니다. 허브는 허브티, 입욕제 등으로 활용도가 높으리라 생각합니다.”


식량난 해결의 열쇠

스마트 화분과 플랜티 스퀘어가 일반 소비자를 위한 상품이라면, 스마트 농장은 미래 농업의 대안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세계 인구가 급속도로 늘어나면서 심각한 식량난을 겪게 된다는 전망이 속속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농업인구의 고령화가 더욱 심각해 농사지을 사람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죠. 사물인터넷을 활용한 실내 농장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노동력을 많이 쓰지 않고도 어떤 환경에서 어떤 작물이 잘 자라는지에 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질 좋은 농산물을 생산할 수 있으니까요.”


그는 수직 농장에 들어가는 부품들을 대량생산하는 체계를 갖추었기 때문에 단가를 낮출 수 있다고 말한다. 이케아 가구처럼 부품을 조립해서 단시간에 농장을 만들 수 있다고 설명한다.


“컨테이너는 아니지만, 센서를 활용해 재배 환경을 조절하는 농사는 이미 지어보았습니다. 한여름에 딸기를 수확해 비싼 가격에 판매했죠. 올해 초 설치하는 컨테이너 농장에서는 신장병 환자를 위해 칼륨이 들어 있지 않은 채소를 재배할 계획입니다. 병원과 건강관리 회사들한테 주문을 받아 계약재배를 할 수 있습니다. 농업도 이런 식으로 주문을 먼저 받아서 생산하는 시스템을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는 2018년을 ‘우리가 이제까지 준비해온 사업 모델을 한꺼번에 보여주는 시기’라고 말한다. 공상 같이 들리던 미래가 한 발 앞으로 다가온 느낌이다.


글 jobsN 이선주 조선뉴스프레스 객원기자, 사진 김선아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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