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명 중 9명은 도망간다는 시급 1만4000원 알바, 뭐길래?
어릴 적, 휴대전화 대리점 앞에는 신상품을 홍보하는 나레이터, 그 옆에는 아이들에게 풍선 강아지를 나눠주는 ‘키다리 피에로’가 있었다. ‘저 높은 곳에서 일하면 무섭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마침 1월 하순, 몇몇 이벤트회사에서 키다리 피에로 알바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봤다. 어릴 적 호기심을 해결할 수 있겠다 싶었다. 게다가 시급이 1만원을 넘는다니, ‘꿀알바’가 분명해 보였다.
다만 한가지 마음에 걸렸던 건 다리를 늘리고 춤을 추고, 분장하는 일. 그러나 막상 연습실에 도착하자, 전혀 다른 복병에 당황했다.
10명 중 9명은 도망간다는데…
면접 약속시간 1시쯤, 약속장소인 먹골역에 도착했다. 키다리 피에로 경력 5년차 ‘베테랑’ 신씨(22)가 마중 나왔다. 신씨는 근처 연습장으로 길을 안내하며 주의를 줬다. “오늘은 면접이자 첫 교육 날이 될 텐데, 아마 다른 알바랑은 많이 다를 거에요.” 그는 또 “10명이 이 일을 하겠다고 오면 9명은 도망간다”면서 “왜 그런지는 가보면 안다”고 덧붙였다.
묵동의 한 골목길 담벼락에 달린 문을 열고 들어갔다. 지하 1층으로 내려가자 50㎡(15평) 정도 돼 보이는 연습장이 나왔다. 이내 실장과의 짧은 면접 겸 통성명이 이어졌다. 그리고 교육 시작.
1시 30분부터 4시 30분까지 ‘스틸트’라고 불리는 ‘쇠다리’에 올라 걷기를 연습했다. 무릎과 발등에 스틸트를 고정하는 요령, 그 상태에서 일어서고 앉는 법을 배웠다. 50 ~ 80cm로 조절 가능한 스틸트에 오르자 필자의 키는 웬만한 농구선수보다 커졌다. 길이를 최대한 늘려 2m 50cm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정신이 아찔했다. 하지만 걱정과는 달리 30분 정도 연습하자 도움 없이 홀로 걸을 수 있었다. 물론 처음 걷는 아기처럼 뒤뚱거리며 한 발씩 조심스럽게 내딛어야 했다. ‘베테랑’들은 뒤뚱거리는 필자를 놀리듯 스틸트를 타고 걸그룹, 힙합 댄스와 묘기를 선보였다.
1시간이 넘어가자 허리가 이상신호를 보냈다. 다리에도 쥐가 날 것 같았다. 계속 연습했다. 점점 익숙해져 힘을 빼고 앉았다 설 수 있게 되자 그나마 좀 나았다.
그러나 필자를 괴롭힌 건 ‘스틸트’가 아닌 ‘요술풍선’이었다. 놀이공원에서 수차례 봤던 그 긴 풍선 말이다. 그깟 풍선 불기가 뭐 그리 어려울까 생각했지만, 맘대로 되지 않았다. 볼에 바람을 수십 번 채워보니 어느새 볼거리 걸린 사람처럼 귀밑이 부었다. 유튜브에서 요령을 찾아보기도 했고, 심지어 남이 한번 불어서 늘어난 풍선으로도 해봤다. 결론은 실패였다. 왜 열에 아홉이 이 알바를 포기하는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오후 4시 30분, 교육시간이 끝나자 또 다른 피에로 알바가 와서 풍선 3개를 건넸다. “밥 먹을 때 빼고는 자꾸 불어보세요.”
4~5일 교육 받고 두 번 실습… 이후엔 6시간에 7만원 받아
평균 4~5일간 하루 3시간씩 연습을 하며 ‘스틸트’와 ‘요술풍선’을 익힌다. 이후 두 번 정도 실습 명목으로 다른 선배 키다리 피에로를 따라 일을 나간다. 이때는 말 그대로 실습이기 때문에 3시간에 3만원 정도를 받는다. 그리고 실장의 엄격한(?) 심사를 통과하면, 6시간에 7만원으로 시작하는 기본 알바비를 받으며 정식으로 일할 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 2~3번 일을 하면 교육시간에 따른 ‘교육비’도 준다. 물론 최저 시급이다.
5년 이상 키다리 피에로 알바를 했다는 베테랑 두 명에게 이 일의 장단점에 대해 물었다. 장점으로는 높은 시급과 정해진 휴식시간, 성격의 변화 등을 꼽았고, 아이들이 몰려들 때의 고충, 무거운 장비를 들고 이동할 때의 어려움 등은 단점으로 꼽혔다.
“이 일을 오래 한다는 건 그만큼 시급이 세다는 거에요. 6시간 중의 1시간은 식사시간이고, 45분 일하면 15분 쉬는 시간 보장되니까, 실제로 스틸트에 올라 일을 하는 시간은 4시간이 채 안 되죠. 여기에 지나가는 분들이나 가게 주인이 참 잘해주잖아요. 고생한다고. 사람을 하도 대하니 누구나 이 일을 하면 외향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어요. 분장 속에서 자신감을 갖고 사람을 대하죠. 목소리도 마음대로 바꿔가면서요.”
6년째 일을 한다는 최모(23세)씨는 단점을 이야기했다. “애들이 그렇게 몰려요. 풍선만 불기 시작하면, 피리부는 사나이가 된다니까요. 45분 끝나면 쉬어야 다음 타임을 하는데, 얼마나 극성인지. 엄마들은 왜 우리 아이는 안 불어주느냐고 따지기도 해요. 게다가 집에서 장비를 들고 이동할 때, 스틸트, 피에로 복장, 각종 도구 하면, 군대 군장 못지않아요. 대중교통을 주로 이용하는데, 죽을 맛이죠.”
집으로 돌아온 뒤 그날 받은 풍선 세 가닥을 계속 불었다. 하지만 끝내 풍선은 부풀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온몸이 쑤셨다. 그리고 이틀 뒤, 실장에게 “포기하겠다”고 전화했다. 시급 14,000원의 장벽을 느꼈다. 요술풍선을 불 수 있다면, 몸이 가볍고 날씬하다면, 피에로 분장에 흥미있다면, 무엇보다 고소득 알바에 뜻이 있다면, 키다리 피에로 알바에 도전해보는 건 어떨까.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