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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명 중 9명은 도망간다는 시급 1만4000원 알바, 뭐길래?

조회수 2020. 9. 23. 15:3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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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급 14,000원 준다는 키다리 피에로 알바 모집 가보니..

어릴 적, 휴대전화 대리점 앞에는 신상품을 홍보하는 나레이터, 그 옆에는 아이들에게 풍선 강아지를 나눠주는 ‘키다리 피에로’가 있었다. ‘저 높은 곳에서 일하면 무섭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마침 1월 하순, 몇몇 이벤트회사에서 키다리 피에로 알바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봤다. 어릴 적 호기심을 해결할 수 있겠다 싶었다. 게다가 시급이 1만원을 넘는다니, ‘꿀알바’가 분명해 보였다.


다만 한가지 마음에 걸렸던 건 다리를 늘리고 춤을 추고, 분장하는 일. 그러나 막상 연습실에 도착하자, 전혀 다른 복병에 당황했다.


10명 중 9명은 도망간다는데…


면접 약속시간 1시쯤, 약속장소인 먹골역에 도착했다. 키다리 피에로 경력 5년차 ‘베테랑’ 신씨(22)가 마중 나왔다. 신씨는 근처 연습장으로 길을 안내하며 주의를 줬다. “오늘은 면접이자 첫 교육 날이 될 텐데, 아마 다른 알바랑은 많이 다를 거에요.” 그는 또 “10명이 이 일을 하겠다고 오면 9명은 도망간다”면서 “왜 그런지는 가보면 안다”고 덧붙였다.


묵동의 한 골목길 담벼락에 달린 문을 열고 들어갔다. 지하 1층으로 내려가자 50㎡(15평) 정도 돼 보이는 연습장이 나왔다. 이내 실장과의 짧은 면접 겸 통성명이 이어졌다. 그리고 교육 시작.

‘스틸트’라고 불리는 ‘쇠다리’에 올라탄 모습.

1시 30분부터 4시 30분까지 ‘스틸트’라고 불리는 ‘쇠다리’에 올라 걷기를 연습했다. 무릎과 발등에 스틸트를 고정하는 요령, 그 상태에서 일어서고 앉는 법을 배웠다. 50 ~ 80cm로 조절 가능한 스틸트에 오르자 필자의 키는 웬만한 농구선수보다 커졌다. 길이를 최대한 늘려 2m 50cm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정신이 아찔했다. 하지만 걱정과는 달리 30분 정도 연습하자 도움 없이 홀로 걸을 수 있었다. 물론 처음 걷는 아기처럼 뒤뚱거리며 한 발씩 조심스럽게 내딛어야 했다. ‘베테랑’들은 뒤뚱거리는 필자를 놀리듯 스틸트를 타고 걸그룹, 힙합 댄스와 묘기를 선보였다.

스틸트에 올라타 30분 정도 연습하자 필자도 도움 없이 홀로 걸을 수 있었다.

1시간이 넘어가자 허리가 이상신호를 보냈다. 다리에도 쥐가 날 것 같았다. 계속 연습했다. 점점 익숙해져 힘을 빼고 앉았다 설 수 있게 되자 그나마 좀 나았다.


그러나 필자를 괴롭힌 건 ‘스틸트’가 아닌 ‘요술풍선’이었다. 놀이공원에서 수차례 봤던 그 긴 풍선 말이다. 그깟 풍선 불기가 뭐 그리 어려울까 생각했지만, 맘대로 되지 않았다. 볼에 바람을 수십 번 채워보니 어느새 볼거리 걸린 사람처럼 귀밑이 부었다. 유튜브에서 요령을 찾아보기도 했고, 심지어 남이 한번 불어서 늘어난 풍선으로도 해봤다. 결론은 실패였다. 왜 열에 아홉이 이 알바를 포기하는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오후 4시 30분, 교육시간이 끝나자 또 다른 피에로 알바가 와서 풍선 3개를 건넸다. “밥 먹을 때 빼고는 자꾸 불어보세요.”


4~5일 교육 받고 두 번 실습… 이후엔 6시간에 7만원 받아


평균 4~5일간 하루 3시간씩 연습을 하며 ‘스틸트’와 ‘요술풍선’을 익힌다. 이후 두 번 정도 실습 명목으로 다른 선배 키다리 피에로를 따라 일을 나간다. 이때는 말 그대로 실습이기 때문에 3시간에 3만원 정도를 받는다. 그리고 실장의 엄격한(?) 심사를 통과하면, 6시간에 7만원으로 시작하는 기본 알바비를 받으며 정식으로 일할 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 2~3번 일을 하면 교육시간에 따른 ‘교육비’도 준다. 물론 최저 시급이다. 

요술풍선을 불고 있는 최 씨의 모습. / 최 씨 제공

5년 이상 키다리 피에로 알바를 했다는 베테랑 두 명에게 이 일의 장단점에 대해 물었다. 장점으로는 높은 시급과 정해진 휴식시간, 성격의 변화 등을 꼽았고, 아이들이 몰려들 때의 고충, 무거운 장비를 들고 이동할 때의 어려움 등은 단점으로 꼽혔다.


“이 일을 오래 한다는 건 그만큼 시급이 세다는 거에요. 6시간 중의 1시간은 식사시간이고, 45분 일하면 15분 쉬는 시간 보장되니까, 실제로 스틸트에 올라 일을 하는 시간은 4시간이 채 안 되죠. 여기에 지나가는 분들이나 가게 주인이 참 잘해주잖아요. 고생한다고. 사람을 하도 대하니 누구나 이 일을 하면 외향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어요. 분장 속에서 자신감을 갖고 사람을 대하죠. 목소리도 마음대로 바꿔가면서요.”

아이들에게 요술풍선 만들어 나눠주고 있는 최 씨의 모습. / 최 씨 제공

6년째 일을 한다는 최모(23세)씨는 단점을 이야기했다. “애들이 그렇게 몰려요. 풍선만 불기 시작하면, 피리부는 사나이가 된다니까요. 45분 끝나면 쉬어야 다음 타임을 하는데, 얼마나 극성인지. 엄마들은 왜 우리 아이는 안 불어주느냐고 따지기도 해요. 게다가 집에서 장비를 들고 이동할 때, 스틸트, 피에로 복장, 각종 도구 하면, 군대 군장 못지않아요. 대중교통을 주로 이용하는데, 죽을 맛이죠.”


집으로 돌아온 뒤 그날 받은 풍선 세 가닥을 계속 불었다. 하지만 끝내 풍선은 부풀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온몸이 쑤셨다. 그리고 이틀 뒤, 실장에게 “포기하겠다”고 전화했다. 시급 14,000원의 장벽을 느꼈다. 요술풍선을 불 수 있다면, 몸이 가볍고 날씬하다면, 피에로 분장에 흥미있다면, 무엇보다 고소득 알바에 뜻이 있다면, 키다리 피에로 알바에 도전해보는 건 어떨까.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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