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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 15도, 5시간 동안 전단 나눠주고 손에 쥔 돈은?

조회수 2020. 9. 23. 15:3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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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추운데 장갑은 어디있어?" 최악 한파 속 전단 알바 체험기

청소년을 포함해 남녀노소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도 않다.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몇 달 간 해야 하는 보통 알바와 달리 원할 때 시작하고 그만 둘 수 있다. 바로 전단 ‘알바’다.


올 1월 23일, 서울 최저기온이 영하 15도로 뚝 떨어진 강추위 속 전단 배포 알바에 도전했다.


시급은 시간당 8000원. 전단은 한 시간에 300장 정도 뿌리면 된다고 했다. ‘초보 알바생’이라 할당량을 달성하지 못했지만, 날씨가 꽤 추워서인지 마음씨 좋은 사장님은 일한 만큼 시급을 챙겨줬다.


단순히 전단을 나눠주기만 하는 걸로 시급 8000원이면 꽤 할만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산이었다.


누구나 지원 할 수 있지만, 아무나 못하는 일


전단 알바를 구하기 시작한 건 알바 시작 약 일주일 전인 17일 수요일. 알바천국 어플 상단에 위치한 단기 · 급구알바 지원을 통해 약 스무 개의 업체에 전화 혹은 문자로 지원했다.


쉽게 구해질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대부분 업체는 연락을 주지않거나 기다리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나중에 채용을 담당한 업체 매니저에게 물어보니 하도 지원자가 많아 나름의 기준을 갖고 선발한다고 했다. 헬스장 직원A씨는 “지원자 수가 많은 만큼 무책임한 펑크도 많다” 면서 “웬만하면 기존 경력자 혹은 주변에 거주하는 주부 등을 먼저 채용하려 한다”고 말했다. 노원구에 위치한 한 헬스장은 아예 모든 지원자를 카톡방에 초대한 뒤, 매일 다음날 알바 스케줄을 공지해 선착순으로 지원자를 받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23일 서울의 최저기온이 영하 15도까지 떨어진다는 일기예보가 나왔다. ‘펑크’가 속출했다고 한다. 22일 저녁, 서초구의 한 스포츠마사지샵에서 “내일 점심때 당장 일할 수 있느냐”며 연락이 왔고, 23일 오전에는 광진구의 한 헬스장에서 “저녁 때 당장 와달라”며 ‘SOS’를 쳤다.


아이구, 추운데 장갑은 어디있어?


23일 오전 11시 50분, 알바 시작 전 개업 이후 3개월 간 전단 알바와 함께 거리에서 전단을 배포한 스포츠마사지샵 매니저 B씨는 나름의 노하우를 전했다.


“저희는 지역 특성이 주변에 법조인이거나 법에 관련된 사람들이 많고, 대부분 직장인이에요. 때문에 최대한 공손히 다가가 인사하고 주면 좋아하세요. 눈 마주치며, 정중하게 다가가면 잘 받아줍니다.”


서초구 교대역 사거리에서 전단 알바를 시작했다. 첫 타깃은 50대로 보이는 한 남성. 추운 날씨 탓인지 두꺼운 패딩을 입고 두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은채 잔뜩 움츠리고 있었다. 

“ㅇㅇ마사지샵입니다.”


전단을 건넸지만, 그 남자는 눈조차 마주치지 않았다. 첫 술에 배부를 순 없다지만,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시작부터 ‘퇴짜’를 맞으니 의욕이 확 꺾였다.


그래도 함께 나온 마사지샵 직원의 눈치를 보며 길가는 사람을 붙잡고 전단을 한 장씩 건넸다. 처음의 어색함은 시간이 지날수록 무뎌졌고, 첫 실패의 아픔을 위로라도 해주듯 사람들은 열에 여섯, 일곱은 전단을 받아줬다. 다만, 하라고 하니 했지만 시간이 가도 받지 않는 이의 등 뒤에 ‘감사합니다’를 외치는 건 적응이 안됐다.


그렇게 두시간에 470장 정도를 돌렸다. 장갑을 끼지 않은 손은 얼어붙었고,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오후 4시부터는 광나루역 근방 교통섬에서 전단을 배포했다. 시간이 갈수록 바람은 거세졌다. 5시를 넘어서자 해가 떨어졌다. 오가는 사람들의 반 이상은 주머니에서 손도 꺼내지 않았다. 어찌나 추웠는지 점퍼 바깥주머니에 들어있던 휴대전화가 죽어버렸다. 분명 한 시간 전엔 배터리가 30%나 남아있었는데…


아이들과 함께 길을 가던 한 아주머니는 “왜 추운데 장갑을 끼고 오지 않았냐”며 타박했고, 한 학생과 아주머니는 불쌍해보였는지 각자 주머니에서 핫팩을 꺼내 건네줬다. 저녁이 되자 3명의 남학생 무리가 다가와 전단을 “열장씩 주세요”라며 서른 장을 받아갔다. 그분들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6시쯤 되자 돈도 좋지만, 이러다 얼어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호등을 기다리던 사람들에게 전단을 억지로 들이밀었다. 체면치레할 수준인 500장을 딱 채운 7시. 원래 9시까지 하기로 했지만, 미련없이 헬스장으로 돌아가 직원에게 말했다. “이러다 죽을 것 같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직원은 “겨울에 하려면 이렇게 입고 오면 안된다”면서 “좀 더 껴입고 다음에 또 하자”고 했다. 비록 중간에 그만 뒀지만, 2시간 분의 시급은 챙겨줬다.


웃으며 건네면 성공률 높아… 멘트는 요점만


총 5시간 추위에 떨었던 대가로 손에 쥔 돈은 4만원. 많으면 많고, 적다면 적은 돈이다. 당장 눈 앞에 있는 돈보다도 다음에 전단 알바를 구할 때 ‘저 경력있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이 더 큰 수확이었다.


5시간 해보고 ‘팁’이라고 내놓는 게 진짜 ‘베테랑’들이 보면 우스울 것 같다. 하지만 초보 전단 알바들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에 나름의 팁을 정리해봤다.

웃으며 예의 바르게 다가갈 때, 성공률이 더 높았다. 당연하지만 지키기 쉽지 않다. 전단을 나눠주다 보면 나도 모르게 표정이 없어진다. 손에 쥔 전단의 두께가 잘 줄지 않았다.


직장인이나 학생의 경우 여러 명이 몰려다니는 경우가 많다. 빠르게 나눠줘야 하므로 전단을 든 손으로 몇 개의 낱장을 밀어 놓고 쥐면 편했다.


호칭도 상당히 중요했다. 40대 이상으로 보인다면 성별에 따라 사장님과 사모님으로 나눠 불렀다. 60대 이상으로 보이면 ‘어르신’이라 부르면서 말을 시작했다. 다짜고짜 상표나 업종을 이야기하는 것보다 반응이 훨씬 부드러웠다. 비록 추위 때문에 주머니에서 손을 빼지 않더라도,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하지 않으려 웃으며 인사하고 지나가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물론 스쳐지나가는 순간에 모든 게 판가름나니까 ‘요점’만 또박또박 말하는 것도 중요하다.


알바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자연스레 군에서 겪은 혹한기 훈련이 떠올랐다. 한겨울 전단 알바는 그보다 열배쯤은 힘들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갑자기 돈이 필요하다거나, 정기적으로 일할 여건이 되지 않는 사람이라면 전단 알바를 고려해 볼 순 있겠다. 다만, 겨울에 도전하려면 장갑은 두툼한 걸 끼고, 옷에 달린 모든 주머니에 핫팩을 터뜨려 넣어놓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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