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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현송월도 감탄했다는 '이 사람'이 만든 음식은?

조회수 2020. 9. 23. 15:3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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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호텔 중식당 '도림' 여경옥 셰프
롯데호텔 중식당 ‘도림’ 여경옥 셰프
중국집 배달원에서 시작해 신라호텔 거쳐
95년 장쩌민 중국주석 방한 땐 자라요리
"'한 번 더 체크' 마음으로 40년 요리"

2018년 1월 21~22일 방남한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 단장 일행은 한국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동해 바다가 보이는 강릉의 신축 고급호텔 스카이베이경포호텔에서 묵었다. 그가 북으로 돌아가기 직전 먹은중국 요리도 관심을 모았다. "짬뽕을 추가로 시켜 먹었다"는 말이 퍼지면서 인터넷 포털과 주요 온라인 커뮤니티를 달궜다.


이날 현 단장이 먹은 중국 요리는 롯데호텔 '도림'에서 중국요리를 책임지는 여경옥(55) 셰프(상무)가 만들었다. 여 셰프는 화교 2세로 중국집 접시닦이에서 시작해 우리나라의 스타 중식 셰프로 성장한 인물이다. jobsN이 여 셰프를 만났다. 

출처: jobsN
여경옥 셰프.

식사 마친 현송월, "짜장면이 더 맛있어" 미소도


일단 현송월 단장 이야기부터 물어봤다. 현 단장에 대한 기억은 ‘당당함’이었다고 여 셰프는 말했다. 현 단장과 일행은 코스요리인 '오룡(烏龍)'을 선택했다. 전채요리와 샥스핀, 어향소스와 가지로 요리한 새우, 통 전복, 한우 안심, 쌀밥 등으로 이어지는 13만 8000원짜리 코스다.


현 단장은 코스 요리를 다 먹은 뒤 추가로 짬뽕과 짜장면을 시켰다. "짬뽕은 많이 맵다"는 말을 건네자 "괜찮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에 여 셰프는 짬뽕과 짜장면을 약간 작은 사이즈로 내왔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현송월은 당당함 속에 무표정한 모습으로, 흐트러지지 않은 자세를 유지했다.


약간의 '내심'을 보인 것은 나오면서였다. 식사를 마친 현 단장은 "짬뽕보다는 짜장면이 더 맛있었다"면서 "정말 잘 먹고 간다”고 답했다. 미소와 함께 인사도 했다. 해빙 무드인 남북 관계 속에서 북한 측 대표로 내려온 당국자의 마음을 헤아려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출처: 조선DB·도림 홈페이지 캡처
현송월 단장과 도림 내부 모습.

접시닦이에서 시작…장쩌민 주석 등 VIP 만찬 만들어


지금은 주요 내외 귀빈들의 음식을 요리하지만, 여 셰프의 시작은 ‘접시닦이’였다. 중국 요리 대가라는 타이틀 이전에 '인간승리'라는 말이 먼저 나오는 이유다.


지난 1978년 중학교를 졸업한 여 셰프는 곧장 인천에 있는 중국음식점에서 배달직원으로 일했다. 고교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집에 돈이 없었다. 화교 2세인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중식당 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후 영등포에 있는 중국음식점으로 옮겼다. 먹고 자면서 접시닦이와 연탄 교체 등을 담당했다. 당시 월급은 2만5000원. 당시 가치로 짜장면(200원) 125그릇을 먹을 수 있는 돈이었다.


79년 중식당 '거목'으로 옮겨 한 단계 ‘등급 업’했다. 면을 삶고 만두와 빵을 찌는 일을 맡았다. 선배 요리사들의 칼을 갈면서 칼질도 배웠다. 거목이 문을 닫으면서 들어간 곳은 서울 4대 중식당으로 꼽히던 '홍보석'. 이곳에서는 삶은 면을 그릇에 담는 것만 6개월을 했다. 하지만 당시 10대 소년 여경옥은 중국 요리의 대가가 되겠다는 꿈에 새벽같이 식당에 나와 가스·재료를 점검하고 칼을 갈았다. 그 덕에 주방에 입성해 요리를 배울 수 있었다. "어린 녀석이 기특하다"는 주방장의 평가와 함께. 82년 그의 월급은 40만원으로 올랐다. 당시 짜장면 1000 그릇을 먹을 수 있는 돈이었다.


여 셰프는 스물한 살인 84년 '호텔 요리사'라는 타이틀을 달았다. 1만명 이상이 지원해 1000대1의 경쟁률을 뚫고 10명이 선발됐다. 면접과 실기시험 등 평가만 5단계를 거쳤다. 그다음부터는 중식 셰프로서 실력을 키워갔다.


'꿈의 무대' 격인 국가 정상 만찬은 이로부터 11년이 지난 95년에나 가능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 때에는 음식 보조 요리사를 하다가, 김영삼 전 대통령 때부터 메인 셰프로 음식을 했다. 청와대에 출장을 가는 일도 잦아졌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도 그의 고객이었다.


첫 외국 국가정상 고객은 바로 장쩌민(江澤民) 당시 중국 국가주석이다. 92년 한중 수교 이후 첫 중국 주석의 방문으로 온 국민의 관심을 모았을 때다. 당시 여 셰프는 제주신라호텔에서 음식을 만들었다.


"당시만 해도 장 주석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었죠.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도 주한 중국 대사관에 전화를 걸어 간신히 물어봤어요. 장 주석의 부인인 왕예핑(王冶坪) 여사가 자라를 좋아한다고 해서 자라 요리를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자라는 당시 제주도에서 구할 수 없는 식재료였다. 이에 전국 각지의 자라를 수소문해 마늘과 함께 볶아서 요리로 내놨다. 제주도의 대표 식재료인 다금바리 요리, 불도장 등도 곁들였다. 

출처: jobsN
여경옥 셰프

"꾸준히 공부해라" 사비 들여 해외대회 관전


여 셰프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중국 음식 요리사다. 그 비결 중 하나로 그는 '해외 요리대회 관전'을 꼽았다. 그의 형 역시 유명 중식 셰프인 여경래 홍보각 대표다. 두 형제는 90년대 중국 등 아시아권에서 열리는 주요 요리대회를 보러 다녔다. 물론 사비를 털었다.


98년에는 두 형제가 직접 대회에 참가했다. 지인 요리사 등과 함께 5명 팀을 꾸려 참가했지만 예선에서 탈락했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다음 해에는 6개월을 꼬박 준비했다. 6개월간 매일 회의하고 요리를 직접 하면서 머리를 맞댔다. 예선 1등, 결선 장려상을 받았다. 이것도 한국 최초의 국제 중국요리대회 수상 기록이다. 이후에는 몇 곳의 해외 대회에서 상을 받았다. 수상이 이어지자 심사위원 제의도 왔다.


그가 신라호텔을 떠난 것은 2007년이다. 당시 24년 근무한 고참 셰프가 떠난다는 이유로 업계에서는 화제였다. 자신의 식당을 운영해 보고 싶었다고 한다. 루이와 수엔190을 인수해 운영했다. 이후 2013년 롯데호텔에 이사로 입사해 다시 호텔업계로 복귀했다.


40년간 중국요리만 연구한 고수가 말하는 것은 '기본기'다. "칼질, 면 삶기 등 재료를 대하는 기본기도 중요합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입니다. 요리를 만들고 '됐어, 손님 드려'라고 말하기 전에 한 번 더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TV 요리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적절한 경계'를 권했다. "화면에서는 조리 장면과 완성한 요리가 주로 나옵니다. 하지만 재료선별부터 손질, 정리까지 하는 게 요리입니다. 입문하는 요리사들이 꼭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광둥요리는 와인, 사천요리는 고량주와 먹어라"

출처: 롯데호텔 제공

여 셰프는 인터뷰 말미에 ‘중국요리를 맛있게 먹는 법’에 대해서도 귀띔했다. 우선 중국요리는 술과 함께 먹어야 한다. 느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술이 없다면 차(茶)를 곁들여 먹는 것이 좋다. 광둥요리는 약간 싱거워서 와인과 어울린다. 하지만 사천요리처럼 맛이 강한 경우에는 고량주 같은 독주와 먹어야 좋다고 여 셰프는 덧붙였다.


여 셰프는 집에서 손쉽게 만들 수 있는 중국요리 한 가지도 알려줬다. 채소볶음이다. 취향에 따라 채소를 살짝 물에 데친다. 이후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 스푼 두르고, 간장 한 스푼, 굴 소스 한 스푼을 넣는다. 소스가 적당히 묻을 정도로 볶은 뒤 먹으면 된다. "거창하지는 않지만 별미인 반찬이나 안주"라고 그는 설명했다.


또 중국 요리의 30% 정도는 관련된 스토리가 있다. 예컨대 동파육은 송나라 때 시인인 소식(蘇軾·소동파·1037~1101)이 즐겨 먹었던 요리로, 그의 호를 따서 이름이 생겼다. 여 셰프는 "모든 음식이 그렇듯, 중국 요리도 유래와 스토리를 알고 먹으면 더 재미가 있고 식사가 즐겁다"고 강조했다.


글 jobsN 이승아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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