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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의 사고로 접한 트로트..중학교 교사의 직업을 바꿨다

조회수 2020. 9. 25. 22:4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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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딸내미' 트로트 가수 지혜
‘국민 딸내미’ 트로트 가수 지혜
언니의 사망으로 트로트에 심취
“신인상 목표…예쁘게 봐주세요”

“안녕하세요~” 하는 소리가 신명 난다. 딸 하나면 동메달, 딸 둘이면 은메달, 그렇다면 딸 셋은? 당연히 금메달이겠다. 그게 또 가사에 녹아있다.


‘국민 딸내미’라는 별명으로도 알려진 트로트 가수 지혜(30ㆍ본명 박지혜)를 최근 JobsN이 만났다. 젊은 층에서는 아직 생소할 수도 있는 신인가수지만, 전국 행사장에서는 귀하디귀한 몸이다. 간드러지는 목소리에 흥겨운 추임새는 지혜의 트레이드마크다.


지난 2016년 5월 타이틀곡 ‘딸이 더 좋아’로 데뷔했다. ‘비 내리는 영동교’를 작곡한 스타 제조기 남국인 선생의 작품이다. 같은 앨범에 있는 상남자는 설운도의 ‘다함께 차차차’를 만든 이호섭 작곡가의 작품이다. 지혜의 스타성과 열의, 트로트 가수로서의 포부와 자세를 보고 흔쾌히 곡을 써줬다고 한다. 2017년 12월에는 아침마당에 출연하면서 ‘안방 팬’들에게도 얼굴을 알렸다.


하지만 지혜는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중학교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도대체 교사가 트로트가수로 전업한 이유는 무엇일까.

출처: 본인제공
트로트 가수 지혜

음치에 박치…노래방 다니며 극복


지혜는 기술·가정 교과 교사 출신이다. 전주대학교 사범대학 가정교육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임용고사를 본 그는 전북 전주 아중중에서 처음 교편을 잡았다. 어릴 적부터 노래를 좋아했다. 하지만 좋은 평을 꼭 받았던 것은 아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변성기가 와 음역대가 낮아졌다. “전화를 받으면 아들 같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음역대 뿐 아니라 자신감도 낮아졌다. 한때 동요제도 나갈 만큼 실력자였는데 예전처럼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자꾸 주눅 들었다.


중학교 2학년 가창시험에서는 담당 교사의 질책에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했다. 가창시험을 심사한 선생님은 “너는 음치에 박치까지 있다”고 말했다. 얼굴이 빨개진 지혜는 매일같이 노래방을 다녔다. 다음 해 음악 실기평가에서는 만점을 받았다.


자신감을 찾은 이후 연예기획사의 스카우트 제의도 있었다. 유치원과 초등학교 다닐 때 출전했던 동요제 영상을 본 연예기획사에서 “아이돌 가수로 키우고 싶다”면서 지혜의 부모에게 제안을 했다. 하지만 학교를 중퇴하고 서울로 올라가야 한다는 조건에 포기했다.


언니의 교통사고로 접한 트로트


지혜가 처음부터 트로트를 부른 것은 아니다. 그는 전주대에 들어가 학내 록밴드 동아리 ‘파랑새’에서 활약했다. 트로트를 접하게 된 것은 그의 언니가 교통사고를 당한 다음이다. 지난 2006년 6월 독일 월드컵 중계를 앞두고 밤늦게 편의점을 다녀오겠다던 언니는 사라졌다. 다음 날 아침까지 오지 않아 실종신고를 했단다. 하지만 전날 밤 11시쯤 뺑소니 사고를 당한 신원미상의 여자가 있다고 경찰은 말했다. 지혜의 언니였다.


지혜의 큰 버팀목이자 멘토였던 언니는 병상에 환자로 누워있었다. 바로 수술을 했지만 의식불명이라고 했다. 어머니는 사업을 접고 언니 간호에 매달리고, 지혜 역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언니 수발에 나섰다. 그때 mp3 플레이어에 트로트 가요를 담아갔다. 언니가 좋아했던 노래들이었다.


이후 의식을 되찾은 언니는, 지혜에게 트로트를 불러달라고 했다. 기타를 어깨에 메고 등하교할 정도로 록 음악에 심취했던 지혜에게 트로트를 병실에서 부르는 것은 창피했다고 한다. 하지만 언니가 좋아하는데 어쩌겠나. 덕분에 간호사나 다른 환자들의 환영을 받았고, 병원 연말 행사에도 초대됐다. 

출처: 본인제공
전국노래자랑 정읍편 출연 당시 최우수상을 수상한 지혜

심사위원이 “연락하라” 제의…교사에서 전직


지혜의 언니는 2008년 8월 세상을 떠났다. 언니가 사망하자 어머니에게는 우울증이 찾아왔다. 그때 지혜 인생에 트로트가 한 번 더 다가왔다. 어머니에게 깜짝 이벤트로 보여주기 위해 광주광역시에서 열리는 무등가요제에 몰래 출전을 했다. 그리고는 어머니에게 무등가요제를 가자고 졸랐다. ‘짠~’하고 나타난 작은딸의 모습에 엄마는 웃음을 찾았고, 이 대회에서 지혜는 대상을 받았다.


이후 주말마다 지혜는 엄마를 모시고 전국 가요대회를 섭렵했다. 박달가요제, 포항해변가요제, 진청 농다리 가요제 등에 참가해 각종 상을 받았다. 딸기축제, 철쭉축제 등에도 주요 인사처럼 나타나 노래를 불렀다.


물론 걱정도 있었다. “학교 선생님이 주말마다 가요제에서 노래를 하면 학부모들이 걱정한다”는 의견이 꽤 있었다. 이에 지혜는 전국노래자랑을 끝으로 ‘은퇴’를 고민했다. 인근 정읍에서 열리는 대회였다. 하지만 이 대회에서 지혜는 최우수상을 받았다. 심사위원이던 이호섭 작곡가는 연락하라며 명함을 줬고, 방송으로 보던 남국인 작곡가는 직접 지혜를 찾아왔다. 이에 두 사람의 노래 ‘상남자’ ‘딸이 더 좋아’를 부를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교편은 2015년 놓았다. 

출처: 본인제공
(왼쪽부터)행사에서 노래하는 지혜, 아침마당 출연 모습, 처음엔 반대 했지만 지금은 누구보다도 열심히 응원하는 아버지

“반대하던 아버지, 지금은 가장 큰 후원자”


교편을 놓겠다고 할 때 가장 반대를 한 사람은 아버지였다. “기념음반이나 내지 그러느냐”면서 지혜를 설득했다. 하지만 지혜는 이렇게까지 온 기회를 놓치기가 싫었다. 이에 트레이닝과 녹음 등을 거쳐 2016년 5월 1일 전주MBC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 데뷔했다.


“취미로 가요제에 나간 것과 실제 데뷔는 천지차이더군요. 가요제는 마음 먹으면 무대에 설 수 있고, 또 참가자인 제가 주인공이었어요. 하지만 가수로서는 내가 무대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었죠. 초반에 불러주는 곳이 없어 ‘멘탈붕괴’가 오기도 했어요.” 지혜는 가요제에 참가했던 지자체에 직접 CD를 돌리기도 하고, 카드와 함께 택배로 앨범을 보내기도 했다.


2017년 12월에는 KBS1 ‘아침마당’ 프로그램에 있는 ‘도전 꿈의 무대’ 코너에도 출연했다. 부모님도 함께 출연했다. 그동안 가수를 반대했지만, 지금은 소셜미디어 계정에 온통 지혜의 출연 사진을 도배하고 있는 사람이 아버지다. 팬클럽 ‘으샤’도 생겼다. 회원 수는 약 300명. 행사 때마다 지혜를 응원하기 위해 따라온다고 한다.


현재 목표는 신인상이다. “사실 신인상은 데뷔했을 때 한 번 말고는 받을 수 없잖아요. 비전이 있는 신인에게 주는 상이기도 하고요. 언니에게 노래를 불러주면서 트로트를 접했던 그때 마음을 잊지 않고 열심히 해볼게요.”


그는 전통가요 분야의 메이저리그 격인 KBS ‘가요무대’에 서는 날을 꿈꾸며 오늘도 노래를 부른다. 매니저 겸 무대의상 제작을 자처하는 어머니와 함께 오늘도 내일도 승합차에 오르면서.


글 jobsN 이승아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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