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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에 ‘국내 여성 1호’로 출연했던 그녀의 직업은?

고인의 마지막을 편안하고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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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부터 장례지도사로 근무한 심은이씨
고령화시대 유망직업, 아직까진 편견과 싸워야
"고인의 인격도 존중해야"

취업을 준비하다 돌연사한 대학생, 신체와 조직을 기증해 50여명을 살린 건설 노동자, 세월호 침몰로 희생된 여학생, 아버지 영정 앞에서 재산·종교 싸움하는 형제들, 우울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딸에게 ‘지금 자고 있는 것 같으니 심폐소생술 한번만 해달라’며 애원하는 아버지, 수의를 입은 어머니를 보며 “다음 생애에는 만나지 말자”고 말하는 아들, 대장암을 앓다 간 어머니에게 “다음에는 내 딸로 태어나요. 내가 잘해줄게요”라며 손 잡는 딸···.


올해 18년차 장례지도사 심은이(40)씨가 그동안 배웅한 고인과, 그 고인의 빈소 모습이다. 1996년 중환자실 간호조무사로 일하다 우연한 계기로 장례지도사 길을 걷기 시작했다. 가톨릭대학교 성빈센트병원 장례식장에서 12년째 근무 중이다. “저를 친손녀처럼 예뻐해 주는 할머니셨어요. 어느 날 돌아가셨는데, 영안실 직원들이 고인을 마치 짐짝처럼 다루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아무리 생이 다했어도 자신이나 가족의 몸이 함부로 다뤄지는 걸 원하는 사람을 없을 거예요.”


장례지도사는 장례 절차와 제례 의식, 각종 행정 절차를 안내하고 대신하는 사람을 말한다. 예전에는 ‘장의사’로 통했지만 정식 명칭은 ‘장례지도사’다. 2015년 ‘장례지도사’ 국가자격증이 생긴 이후부터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다. 장례지도사는 고령화 사회에서 유망직업으로 꼽힌다. 하지만 고인을 만지고 들어 올려야 해 ‘고된 직업’이라는 인식이 있다. “이 일을 하면서 단 한번도 ‘왜 이 일을 택했을까’하며 후회해본 적이 없다”고 말하는 그에게 장례지도사의 삶을 들었다.

장례지도사 심은이씨

출처jobsN

삶의 마지막을 배웅하는 직업


장례식장마다 근무 환경은 다르다. 2·3교대로 일하는 경우도 있고, 24시간 일한 후 하루를 쉬는 격일제 근무를 하는 곳도 있다. 심씨는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하는 ‘주간 근무자’다. “과거엔 격일제 근무를 했어요. 오래 하다보니 몸이 지치더라구요.” 심씨가 일하는 장례식장에선 24시간 근무자가 6명, 주간 근무자가 3명이다. 심씨를 포함한 과장 2명, 대리·주임·사원급 후배들이 있다.


장례지도사는 2인 1조로 움직인다. 사망선고를 받고 안치실에 누운 고인을 소독하는 게 첫번째 일이다. 이후 고인을 뉘고 머리와 몸을 가지런하게 정리해 수시이불로 묶는다. 굽은 손이나 다리도 꼼꼼히 주물러 곧게 핀다. 이 과정을 ‘수시(收屍)’ 또는 ‘수세(收洗)’라 한다. “생이 다하면 외부로 몸에서 균이 퍼지기 시작하기 때문에 일하는 저희뿐만 아니라 유족이 감염에 노출됩니다. 위생에 철저해야 합니다.”


유족과 장례 상담을 한다. 화장(火葬)을 한다면 화장장을 예약하고 납골당을 안내한다. 매장을 한다면 장지를 알아본다. 그다음 빈소를 마련하고 영정 사진과 꽃, 상복을 준비한다. 둘째날 고인에게 화장(化粧)을 한 후 수의를 입히는 '염습' 후 입관한다. 종교 의식에 따라 장례 절차를 설명한다. 셋째 날 발인 준비 후 출상을 한다.


육체적인 노동뿐만 아니라 정신적·감정적 스트레스를 함께 받는 직업이다. 심하게 다치거나 부패가 심한 고인을 마주할 때는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경황이 없어 예민한 유족도 배려해야 한다. 안타까운 사연이 있는 고인의 유족과 함께 울 때도 있다. 반대로 항상 죽음을 마주하다 보니 감정이 무뎌질 때도 있다. “고인이나 유족에게 감정이 이입될 때는 되도록 빨리 잊으려 하고, 무뎌질 때는 ‘내 가족이라면’이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아요. 고인의 인격을 존중하려 합니다.”


날이 쌀쌀해지는 11~12월이면 장례지도사는 더욱 바빠진다. 환절기 때 고혈압이나 심장질환으로 사망하는 고령자가 많기 때문이다. 또 우울증의 경우, 겨울에 증세가 심해져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젊은 청·장년도 많다.


한국직업전망 조사를 보면 장례지도사의 상위 25% 임금 수준은 296만원, 중위 50% 183만원, 하위 104만원이다. “병원마다 급여 차이가 큰 데다 회사 내규상 급여를 공개적으로 말씀드리기는 어렵습니다.” ‘노잣돈이 쏠쏠하다’는 인식이 있지만 심씨는 없어져야 할 악습 중 하나라고 말한다. 노잣돈이란 죽은 사람이 저승길에 편히 가도록 유족이 꽂아주는 돈을 말한다. 과거에 화장 또는 매장 전 장례지도사가 가져가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엔 노잣돈을 일절 금하면서 투명하게 운영하는 곳이 늘고 있어요. 제가 일하는 가톨릭대 성빈센트병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심씨는 2014년 KBS1TV '강연 100도씨'에 '국내 1호 여성 장례지도사'로 출연했다. (오른쪽) 심씨의 책 '아름다운 배웅'을 읽은 독자가 심씨게 보낸 감사 편지.

출처KBS '강연 100도씨' 캡처·출판사 푸른향기 공식블로그

편견 깨기 위해 억척같이 노력


중환자실 간호조무사로 일하던 심씨는 1999년 어머니 제안으로 서울보건대(현 을지대) 장례지도과에 입학했다. 2년 동안 전통 장례·장사 등에 관한 법률·시신 위생 처리·공중 보건학을 배웠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을 참관하고 장례식장에서 실습도 했다. “고인을 배웅한다는 ‘사명감’만 있었던 건 아니었어요. 적성에 맞고 재밌었습니다. 지금도 천직이라 생각합니다.”


2001년 부산 영락공원에서 일을 시작했다. 처음엔 지방에서 일할 생각이 없었다. “졸업 후 여성 장례지도사를 뽑는 곳이 거의 없었어요. 울며 겨자 먹기로 ‘원서라도 내보자’, ‘면접 한번 보자’하며 편하게 했더니 최종 합격했죠. 지금 생각해보면 부산에서 일을 시작한 게 잘한 일이었어요. 지역마다 장례 문화가 제각각입니다. 관을 묶는 법, 수의 입히는 법이 다 달라요. 묘지마다 봉분과 비석 모양도 달라요. 전통 장례인 ‘유림장’을 어르신들에게 배워 치른 적도 있습니다.”


심씨는 지난 18년 동안 장례지도사를 보는 곱지 않은 시선과 싸웠다. 어머니를 빼곤 그를 응원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초반에는 상담을 하려고 앉아있으면 ‘남자 데려오라’ 말하는 유족도 많았습니다. 편견을 깨기 위해 일부러 억척같이 했어요. 그래도 쉽진 않았죠. 이 일을 시작한 지 4~5년째였을 거예요. 버스에서 옆 승객과 이야기를 하다가 제가 장례지도사로 일한다니까 ‘시신도 만지냐’고 물었습니다. ‘그렇다’고 했더니 갑자기 일어나더니 다른 자리에 앉더라구요. 그때 많이 울었어요.” 이젠 그에게 ‘내 마지막을 부탁한다’며 연락하는 어르신들도 있다.


그는 일기 형식으로 적었던 글을 모아 2012년 ‘아름다운 배웅’이란 에세이를 낸 적이 있다. 고인과 유족을 보며 그가 느낀 점이 담겨있다. ‘기억에 남는 고인이 누구냐’는 질문을 받을 때면 항상 떠오르는 고인이 있다.


“처음 난소암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어린아이들이 클 때까지만 데려가지 말아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셨대요. 다행히 10년이 흘러서 아이들이 모두 대학생이 됐죠. 그동안 남편과 자식들, 형제자매 한명 한명에게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었어요. 행복했다고, 울지 말라고, 먼저 가 있을 테니 나중에 보자고···. ‘이 분처럼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너무 늦기 전에 사랑한다 말해주길


통계청 연도별 사망자 수 현황을 보면 2014년 26만7692명, 2015년 27만5895명, 2016년 28만827명으로 매년 사망자 수가 꾸준히 증가한다. 또 장례문화 발달로 방식이나 절차가 세분화되면서 장례지도사를 필요로 하는 곳이 점차 늘어날 전망이다.


“학교에서 또는 일하면서 배우면 되니까 꼭 필요한 기술은 없어요. 아, 고인의 이름표인 ‘명정’을 쓰기 때문에 서예를 잘하면 좋습니다. ‘앞으로 유망하다’, ‘돈을 많이 벌 거다’라는 생각만으로 시작하는 후배들은 오래 버티질 못했어요. 이 직업도 적성에 맞아야 하고, 고인의 마지막을 모신다는 마음가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최근 서울사이버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했다. 고독사 또는 무연고자의 장례 절차와 제도를 만들기 위해서다. 그는 올바른 장례문화를 위해 ‘가족장’이 더 늘어야 한다고 본다. 최근 허례허식을 없애고 가족과 가까운 지인만을 초대하는 ‘작은 결혼식’이 유행인 것과 마찬가지다. “유족이 원하면 빈소를 마련하지 않아요. 고인에게 수의 대신 평소 좋아하는 옷을 입혀도 됩니다. 지역마다 문화가 다르고, 잘못된 예법도 있습니다. 요즘엔 상복을 안입는 유족도 많아요. 고인을 추모하는 마음이 중요하지, 꼭 큰 돈 들여야 좋은 건 아닙니다.”


심씨는 20년 가까이 누구보다 가깝게 죽음을 마주하며 보냈다. 죽음에서 삶을 배웠다. “산 사람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라 내 삶을 진지하게 돌아볼 기회라 생각해요. 죽음은 무거운 단어이지만 비현실적이죠. 다들 마지막 이별의 순간이 언제 올지 모른 채 살잖아요. 하지만 ‘내일 죽는다면’이라고 생각했을 때, 주변 사람들에게 못해준 것들을 떠올리지 않으신가요. 너무 늦기 전에 ‘사랑한다’, ‘고맙다’는 말을 해주세요.”


글 jobsN 이연주

jo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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