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한복판서 스벅과 맞짱 뜬 한국 다방의 상상초월 무기

조회수 2020. 9. 25. 20:2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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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시작한 카페 알바가 운명으로
뉴욕 맨해튼 스타벅스 맞은편에 한국 다방
새까만 라테·계란 노른자 커피… 한국식 콘셉트와 이색적인 메뉴로 화제
우연히 시작한 카페 알바가 운명으로

계란 노른자를 넣은 커피·새까만 라테·고추냉이를 넣은 라테···.

출처: 라운드 케이 인스타그램
'매트 블랙 라테(MATTE BLACK LATTE) 빛을 비추어도 갈색 빛은 보이지 않은 새까만 색이다. 맛은 카페모카와 비슷하다 한다.

이 파격적인 메뉴는 한국인 바리스타 변옥현(32)씨의 작품이다. 2015년 5월 뉴욕 맨해튼 로어이스트사이드에서 ‘라운드 케이’라는 카페를 열었다. 1950년대 한국식 다방의 정서와 메뉴를 재현한 카페다. 바로 건너편에는 스타벅스가 있지만 한국 다방이 더 인기다. 손님들은 이색적인 메뉴를 신기해하다 어느새 매력에 흠뻑 빠져 단골이 된다. 평균 일매출은 100만원을 조금 넘는다. "라테아트나 커피를 내리는 기술도 중요하지만 ‘커피를 즐기는 문화’를 만드는 것도 바리스타의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변씨에게 라운드 케이가 뉴욕서 인기를 얻는 비결과 창업 이야기를 들었다. 

출처: 라운드 케이 인스타그램
변옥현 바리스타.

뉴욕에 퍼진 한국 다방 문화


변씨는 2015년 초 뉴욕에 레스토랑을 연 지인을 도와주러 갔다 창업을 결심했다. 로어이스트사이드는 19세기 미국 이민 역사를 주도한 곳으로 지금까지도 다양한 인종의 이민자가 산다. “‘여기가 맨해튼인가’ 싶을 만큼 이색적이었어요. 딱 ‘경계’의 느낌이었어요. 남쪽에는 월스트리트가 있고, 옆에는 소호가 있죠.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돌아보게 하는 매력이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에서 직접 가져온 ‘자개’·’도자기’ 같은 소품이 ‘다방’ 분위기를 만든다. 인삼과 고춧가루가 들어간 생강차인 ‘코리안 차이’, 보라색 깻잎인 자소엽으로 만든 차, 말린 오미자를 설탕 없이 우려낸 오미자차 등 한국적인 메뉴가 많다. “현지인들이 ‘이걸 어떻게 차로 만들 생각을 했지’라면서 놀라워해요.”


라운드 케이의 특색 있는 메뉴는 변씨와 직원 10명이 기획하고 개발한다. 손님과 대화를 나누다 아이디어를 얻는다. 단골손님이자 유명 재즈 가수인 레니 스턴이 제안해 만든 ‘레니의 아침’이라는 메뉴도 있다. ‘새까만 라테’인 매트 블랙 라테도 마찬가지. “커피 때문에 치아가 누렇게 변하는 걸 걱정하는 고객이 많아요. 이런 고민을 해결하고 싶었습니다. 또 설탕이나 우유가 들어가지 않은 ‘블랙커피’는 검은색은 아니라 진한 갈색입니다. 인식을 뒤집어 보고 싶었어요. 사실 물처럼 투명한 커피를 먼저 개발했는데 다른 카페에서 이미 메뉴를 냈더라구요. ‘게으르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3월부터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매트 블랙 라테엔 인공색소가 아닌 코코넛 애쉬(ash·재)와 카카오 가루가 들어간다. 코코넛 애쉬는 색은 까맣지만 치아를 하얗게 해주는 효능이 있다. 하지만 개발 과정에서 모래를 삼키는 듯한 식감이 문제였다. 목넘김을 부드럽게 하는 제조법를 만드는 데만 한달이 걸렸다. 오후 10시 문을 닫고 실험을 반복했다. “너무 까매서 몸에 좋지 않아 보이지만 인공감미료를 줄였다는 것도 반전 매력입니다. 우유에 있는 유당 단백질을 소화 못하는 서양인이 생각보다 많아요. 누구나 마실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했어요.” 5월 말 내놓은 매트 블랙 라테는 한국과 해외에서 앞다투어 소개할 정도로 인기가 좋다.

우연히 시작한 카페 알바가 운명으로


2004년 건국대 전기공학과에 입학했다. 1학년을 마치고 휴학했다. “내 진로가 고등학생 때와 크게 달라진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히려 대학 때는 전공에 맞춰 대기업 취업만 바라보니까 꿈이 좁아진 것 같았습니다.”


‘원하는 걸 찾아보자’는 생각에 부모님에게 지원받지 않고 여러 아르바이트를 했다. 놀이공원·영화관·볶음밥 가게·주물 공장·변압기 회사 등에서 일했다. 서비스직이 적성에 맞다는 걸 깨달았다. 전환점은 2006년 스타벅스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다. “‘핫초코를 공짜로 마실 수 있다’는 생각에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원래 마시지도 않던 커피에 빠졌죠. 온도·시간·가루 굵기·누르는 힘·물 붓는 법에 따라 달라지는 맛이 흥미로웠어요. 또 사람들 취향이 어찌나 다양한지, 100명 중 99명이 맛있다 해도 1명은 만족하지 못하더라구요. 모두가 만족할 커피는 무엇일까 궁금했습니다.”


2007년 제대로 커피를 공부하기 위해 모아둔 돈을 들고 일본으로 갔다. 남쪽인 후쿠오카부터 북쪽인 도쿄로 올라가며 하루에 카페 한군데씩 방문했다. 3개월이 걸렸다. 24시간 만화카페 등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맛뿐만 아니라 커피를 즐기는 자세와 문화가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2011년 제대 후 복학했다. 학기 중에는 학교에서, 방학 때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좌판을 깔고 커피를 만들며 내공을 쌓았다. 2012년 12월 마지막 시험이 끝나자마자 유럽으로 떠났다. 런던·프랑스·벨기에·독일·체코를 거쳐 이탈리아 피렌체에 정착했다. 요리 학교 아피츄스에서 2년 동안 이탈리아 요리를 공부했다. 카페·레스토랑에서 일하며 학비·생활비를 벌었다. “커피 고장인 이탈리아 문화와 정신을 그대로 배우고 싶었어요.”


뉴욕에서 창업을 결심한 건 2015년 4월쯤이다. 2개월 만에 속전속결로 카페 문을 열었다. “급하게 연 것 같지만 처음부터 그때까지 거친 모든 과정이 커피를 하려는 이유였어요. 제가 만든 커피를 많은 사람들에게 내보여도 괜찮겠다는 기술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어요. 또 지역 특성상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돌아볼만한 곳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맨해튼에 있는 한인 타운에서도 한국식 다방은 없어서 경쟁력 있겠다 싶었어요.”


개업 초기 서너달 동안 시행착오도 있었다. 나무 간판으로 ‘라운드 케이’라 걸어놓고 유리창에도 한글로 디자인했다. “뉴욕에는 ‘나무 간판=일본 라멘집’이라는 생각이 강했어요. 뭐하는 곳인지 정확히 모르니까 손님이 섣불리 들어오질 못하더라구요. 또 한글을 한국 손님은 반가워하지만 이곳의 다수는 미국인입니다. 메뉴와 콘셉트를 잘 만들었으니 겉모습에 집착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간판과 한글 디자인을 떼자 바로 반응이 왔습니다.”  

출처: 변옥현 바리스타 제공
(왼쪽부터) 라운드 케이 메뉴판과 외부 모습.

세계에서도 통할 한국 커피


라운드 케이가 문을 열기 전까지 이 지역에 있는 가게는 밤 8시면 문을 닫았다. 뉴욕 현지인도 무서워할 만큼 어두침침했던 동네는 이제 가게마다 각종 모임을 즐기는 직원과 손님들로 시끌벅적하다. “직원과 손님이 서로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다방 문화가 저희 정체성입니다.”


‘바리스타’를 꿈꾸는 이들이 많다. “손님과 함께 커피 그리고 시간을 나누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멋있어 보이는 겉모습에 집중하면 실망만 할 것 같아요. 인생 경험을 쌓은 아버지·어머니 세대 분들이 바리스타에 도전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의 목표는 한국, 나아가 세계 커피 문화를 바꾸는 것이다. “요즘 베트남 연유 라테가 유행입니다. 또 한국에 ‘콜드브루’라 알려진 커피는 해외에서 ‘교토 드립’이라 불러요. 각 나라마다 상징 메뉴가 있는데 한국에는 없어요. 계란 커피로 가능성을 봤으니 세계에서 통할 한국의 커피와 문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글 jobsN 이연주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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