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운 벗은 그가 밤마다 작은 방에서 하는 일
젊은 의사의 특별한 기록
환자 맨발 보고 시작
마음까지 보듬어주고파
3분을 위한 30분. 주요 대학병원의 대기 시간은 길지만 진료 시간은 짧다. 한 대학병원의 응급실 진료대기 평균 시간은 19.2시간이나 된다.
의사의 설명을 듣기에도 부족한 이 시간, 서로 마음을 나누기는 어렵다. 그런 현실이 안타까워 환자와의 시간을 놓치지 않고 기록하는 의사가 있다. 삼성창원병원 신경외과 의사 김정욱(32)씨. 그는 신경외과 4년차 전공의다. 수술실에선 매스를 잡지만, 퇴근 후 가운을 벗으면 펜과 붓을 잡는다. 아픈 사람들과 곁을 지키는 보호자들의 얼굴, 몸짓을 그린다. 그들의 웃음과 눈물, 병동의 일상을 그림일기로 남긴다.
-그림은 어떤 계기로 시작했나
“응급실에서 환자의 발을 본 게 시작이었습니다. 이동식 침대에 누워있는 환자의 벌거벗은 발을 봤어요. 뇌 질환으로 고통스러워하던 환자였는데 발까지 마르고 다 까졌더군요. 몇 달간 본 환자인데 그제야 안겁니다. 충격이었습니다. 제가 무심한 의사라는 사실이요. 그때 처음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림 옆에 짧은 글도 썼어요.”
-기록 수단으로 ‘그림’을 선택한 이유는
“그림은 사람의 마음을 두드리는 힘이 있습니다. 노래가 가사의 합이 아니듯이, 그림으로 전할 수 있는 느낌이 있어요. 직접적으로 내용을 전달하는 글보다, 그림은 보는 사람이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는 여지가 더 많습니다.”
-그림 그리는 과정이 궁금하다
“근무를 하면서 영감이 떠오르면 핸드폰에 한 줄로 적어둡니다. 퇴근 후 기숙사 방에서 그 한 줄을 그림과 글로 풀어냅니다. 그림은 시선을 끌만한 재미가 있는지, 글은 제 마음을 언어로 잘 표현했는지가 중요했습니다. 도화지에 붓 대신, 작은 노트에 펜으로 그릴 때가 많아요. 잘 그리는 것보다 지치지 않고 꾸준히 그리고 싶어서 택한 방법입니다."
페이스북에 그림일기를 연재했다. 2017년 9월 ‘병원의 사생활’이란 제목의 책으로 펴냈다. 그림일기 70편을 모으고 신경외과 의사로서의 일상도 담았다. 한 명의 의사가 고민하며 성장하는 모습을 통해 환자들의 병원에 대한 공포가 조금이나마 사라지길 바라서다.
-그림일기가 자신에게는 어떤 의미
“그림일기는 제 삶의 지표입니다. 살고자 했던 삶에 어긋나고 있지 않은지 되돌아봅니다. 그림일기가 누군가에겐 지쳤을때 다시 일어나는 법을, 환자와 보호자들에겐 힘든 경험이 나쁜 것만은 아니었음을 떠올리게 한다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신경외과 의사란 직업은 왜 선택했는지
“원래 의대생이 되는 것이 목표였던 고등학생이었습니다. 의사가 되고서야 직업의 매력을 알았어요. 해야 하는 일을 할 뿐인데 누군가에게 고맙다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직업이거든요.
신경외과를 선택한 이유는 의사의 길을 가장 험하게 가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신경외과 의사는 응급실, 중환자실 등 병원에서 의사가 존재해야할 모든 곳에 있어요. 인원수는 적고 담당해야 할 환자는 많아 가장 힘든 과에 속합니다. 그러나 그만큼의 보람이 존재하는 과이기에 선택했습니다. 지금은 다른 일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이 일이 좋습니다.”
아픈 환자들을 기록하는 건 참 어려운 일이라고 한다. 그는 건강하게 병원을 나선 사람들보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더 기억에 남는단다. 몸과 마음에 상처를 안고 신경외과를 찾아왔지만 그 상처를 다 해결하지 못한 분들이 여전히 마음에 남아있다. 그들을 위해 지금도 펜을 잡는다. 다음 스토리펀딩에 독거노인들을 돕기 위한 펀딩도 진행중이다.
-앞으로 꿈꾸거나 계획하는 일은
“마음을 보듬어주는 의사가 되고 싶습니다. 부끄럽지 않게 실력도 갖춰야겠죠. 앞으로 제 자리에서 계속 그림을 그릴 겁니다. 기록해야 감동이든 죄책감이든 순간을 잊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환자와 보호자를 대하며 느낀 점을 간직하고 싶습니다. 특히 노인분들에게 관심이 많아요. 앞으로 그림일기 속 주인공은 그분들입니다.”
글 jobsN 김민정 인턴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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