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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눈 맞추기 불가능해 늘 미안한 선생님이 있습니다

조회수 2020. 9. 21. 18:1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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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수 없어서 특별한 게 아닙니다"
어릴 때 시력 잃어
점자 더듬으며 공부
아이들의 꿈 찾아주고파
출처: jobsN
교무실 앞에서

‘톡..톡...’


서울 구룡중학교에서 복도를 울리는 소리를 따라가면 김헌용(32)씨를 만날 수 있다. 소리의 정체는 그가 지팡이로 땅을 짚는 소리다. 아이들은 반갑게 인사를 건네며 팔에 매달리고 품에 안긴다.


그가 세상을 본 건 단 6년. 여섯살때 사고로 시력을 잃었다. 외부충격으로 인한 ‘망막박리’. 깜깜한 세상을 살아내기 위해선 배워야했다. 서울맹학교에서 초·중·고등교육 과정을 마쳤다. 먹고 살 일이 필요했다. 친구들은 안마나 침술을 택했다. 안정적이고 정당한 대우를 받는 일을 하고 싶었다. 살이 까지도록 점자를 더듬고 공부해 대학에 갔다.


4년 후 임용시험에 합격했다. 특수교육을 전공했지만 일반 과목 교사가 됐다. 나와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야 하는 세상에서 교단을 지키는 김씨의 존재는 잔잔한 울림을 준다.

출처: 본인 페이스북, jobsN
(왼)김헌용 교사 (오)수업중인 모습

-임용시험 합격이 쉽지 않았을텐데

“2010학년도 서울시 교원 임용 영어교과 시험에 합격했어요. 장애인 구분 모집에 응시했습니다. 일반 전형에 비하면 커트라인이 낮아요. 장애인이기에 받을 수 있었던 혜택이죠. 하지만 뽑는 인원이 3명 뿐이어서 만만하게 여길 순 없었어요. 부끄럽지 않게 최선을 다했습니다.


현재도 전체교원의 3%를 장애인교사로 채우도록 의무조항을 두고 있어요. 교육부는 3.4%로 올리겠다는 방침도 세웠습니다. 장애인 구분모집 응시인원이 미달되는 경우도 있지만, 요즘은 지역에 따라 1.5대1, 2대1 정도는 됩니다. 물론 일반 전형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경쟁률이죠. 그래도 모든 시험이 그렇듯 쉬운 건 없어요. 합격한 사람의 노력도 그만한 가치를 인정해줬으면 합니다.”


-어떻게 공부했나

“영어는 기본기가 중요한 과목이라 틈틈이 쌓아둔 실력이 도움이 됐습니다. 영어교육학 원서, 교육학 책을 매일 읽었어요. 통째로 외우다시피 했죠. 기출지문도 꼼꼼히 분석해 활용했습니다.”


주 19시간 수업을 한다. 인터뷰를 위해 오후 수업에 방문했을때 영어로 말하는 소리와 웃음소리가 교실에 가득했다. 업무보조원이 동석하지만 수업 진행은 그가 직접 한다. 점자기계를 누르고 아이들이 말할땐 고개를 숙여 가까이 듣는다. 학생들은 꼭 선생님의 눈을 바라보며 시선을 맞추고 말했다.

출처: jobsN
(왼) 점자 영어교과서 (오)점자정보단말기

-왜 영어교사를 직업으로 선택했나

“장애인이기에 현실적으로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고용을 보장하면서 장애인을 채용하는 기업은 많지 않으니까요. 좋아하는 영어로 사회에 보탬이 되고도 싶었습니다. 한 사람을 올바르게 가르친다는 건 살만한 세상을 만드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그에겐 잊을 수 없는 날이 있다. 구룡중학교에 부임한지 두 달이 지난 어느날 구룡역 출구로 나와 첫 발을 떼고 깜짝 놀랐다. 전날 없던 점자 보도블록이 생긴 것이다. 1학년 학생들이 그를 위해 강남구청과 국가권익위원회에 민원을 넣어 설치했다. 감동이었다. 동료 선생님들과 학교도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교내에도 점자 보도블록을 깔고 교무실에서 가까운 2층 교실을 그의 전담 교실로 만들어줬다.


-현장에서 교사로 어려운 점이 있나

“아이들에게 미안할 때요. 먼저 눈맞추고 그러지 못해 마음이 아프죠. 대신 사소한 것도 기억하려 하고, 다정하게 말 건네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출처: 본인 페이스북
(왼)출퇴근시 이용하는 구룡역 근처 점자보도블록 (오)기타 연주중

2011년 교직생활 2년차에 접어들었을 때 4개월간 공부해 번역사 2급을 땄다. 2013년 2년간 휴직하고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에 입학해 한영 번역 전공으로 2015년 졸업했다. 6인조 밴드 ‘다카포’에서 베이스 기타 연주도 한다. 다양한 활동을 하는 건 아이들의 시야를 넓혀주는 경험 많은 교사가 되고 싶어서다.


-어떤 선생님이 되고 싶은지

“영어교사로서 학생들이 시험에만 몰두하지 않고 호기심을 갖도록 가르치고 싶습니다. 통역도 기계가 해주는 시대에 영어를 배우는게 무슨 소용이 있나 싶을 수 있지만, 자기와 다른 것에 대한 호기심을 언어를 배우면서 터득할 수 있죠.


학교엔 장애 학생들도 있어요. 제가 있음으로 학교에서 아이들이 다양성을 배울 수 있길 바랍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더불어 살아야 하니까요.


앞으로는 담임도 맡아보길 소망하고 있어요.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필수적인 업무거든요. 단순히 임용에 합격한 교사를 넘어 교육현장의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싶어요. 시각장애인이 영어선생님이란 것이 조금도 특별해지지 않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글 jobsN 김민정 인턴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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