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어과는 먹고살기 힘든 전공? '천만의 말씀'"

조회수 2020. 9. 21. 18:0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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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통번역 전문 '이란 아토즈' 정제희 대표
이란 통번역 전문 ‘이란 아토즈’ 정제희 대표
테헤란서 5년간 홀로 유학생활
‘어학원’부터 ‘기업 컨설팅’까지 서비스 영역 확대

1970년대 한국의 중동지역 건설 진출이 가장 먼저 이뤄진 나라 ‘이란’. 국내엔 한국외국어대학만 이란어과가 있다. 한 해 입학정원은 30명 남짓. 졸업생 모두가 이란어 관련 직업을 선택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국내 전문 인력이 부족한 상태다.


불모지와 다름없던 이란어 통번역 시장에 뛰어들어 창업 1년 만에 가파른 성장세를 이룬 주인공이 있다. ‘이란 아토즈(IRAN ATOZ)’ 정제희(30) 대표다. 정 대표는 테헤란에서 5년 동안 유학생활을 마치고 젊은 나이에 개인 회사를 차렸다.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란어 통번역 시장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잡스엔이 정 대표를 직접 만나 ‘기회의 땅, 이란’ 이야기를 들어봤다.

출처: 정제희 대표 제공
'이란 아토즈' 정제희(30) 대표는 5년 동안 테헤란에서 유학생활을 마친 뒤 국내 유일 이란 통번역 회사를 차렸다.

-‘이란어’를 전공으로 선택한 이유가 있나


“아버지가 상선회사에 몸담고 계셔서 외국을 많이 다니셨다. 유럽 초콜릿, 필리핀 바나나, 하다못해 외국 동전까지 어릴 때부터 이국적인 것들을 많이 접했다. 생경한 지역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커졌다. 다른 친구들은 수능 공부에 매진할 때도 포털사이트 카페를 뒤적이며 ‘터키어’를 독학했다. 어떤 나라 혹은 지역에 대해 이해하려면 언어 습득이 필수라고 생각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 진학하겠다는 결심은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었지만 학과를 선택할 때는 고민이 많았다. 많은 언어 가운데 ‘이란어’를 선택한 이유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한국외대만 이란어과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졸업하고 일반 기업에 취직했던데


“당시에도 취업은 녹록지 않았다. 일단 합격하는 곳에 들어가서 사회생활을 시작해보자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한 대기업 법무팀에 정규직 전환 전제로 인턴을 시작했다. 하지만 3개월 만에 때려치웠다. 수동적으로 나를 선택해주는 데에서 일하는 것보다 내가 원하는 대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렇게 유학 준비를 시작했다.”


-대학원 지원하는 데 두 번의 입학 거부를 당했다는 건 무슨 이야기인가


“한국외대는 ‘7+1’이란 프로그램이 있다. 7학기는 한국에서 공부하고 나머지 한 학기는 자신이 전공한 언어를 사용하는 국가에서 어학연수를 한다. 졸업생도 자비를 내면 어학연수를 신청할 수 있다. 그렇게 25살 나이에 후배들과 함께 이란으로 떠났다. 스물 한, 두 살 된 후배들을 보면서 ‘내가 너무 뒤처진 건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다. 더 악착같이 공부했던 이유기도 했다.


어학연수를 마치고 테헤란대학교 여성학 석사 과정을 지원했다. ‘우리는 외국인은 뽑지 않는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래서 사회학과를 지망했다. 이 또한 입학을 거부당했다. 오히려 학교 측에서 몇 개의 학과 리스트를 정해서 ‘그중 가고 싶은 곳을 선택하라’고 했다. 그나마 관심 갔던 학과가 ‘국제관계학’이었다.”

출처: 정제희 대표 제공
정제희 대표는 이란 테헤란대학교에서 국제관계학 석사 과정을 거쳤다.

-테헤란에서 유학하면서 우리 사회와 다른 점을 많이 느꼈을 것 같다


“교내에서 ‘생활지도’를 한다. 한 번은 단추가 안 달려 있어서 옷깃을 여미기 어려운 재킷을 입었더니 옷을 갈아입고 오라고 집으로 돌려보냈다. 수업 시간에 이란 여학생들은 웃긴 포인트에서도 별로 웃질 않는다. 외국 유학생이자 여학생인 제가 수업 시간에 의견을 분명히 발표하고 감정 표현을 서슴없이 하는 것에 대해 되레 이란 학생들이 신기해했다.


이미 이란 유학 생활을 시작한 지 3년이 흘렀는데도 길거리를 지나다니다 보면 이란 남성들이 갑자기 길을 막고 ‘웰컴 투 이란(Welcome to Iran)’이라고 소리 지르기 일쑤였다. 교문을 나서면 오토바이를 탄 남성이 홈스테이 하는 집까지 쫓아오기도 했다. ‘어디까지나 이 사람들에게 나는 이방인일 뿐이구나’하는 생각에 지쳐갈 때도 있었지만 잘 극복하고 5년간의 유학생활을 잘 마쳤다.”


-유학 후 한국에 돌아와서 ‘이란아토즈’를 차렸는데


“2015년 한국에 돌아와서 대기업에 좋은 조건으로 입사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그러나 ‘내 회사’를 차리고 싶었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제대로 된 이란어 통번역 회사가 없었고 일반인들을 위한 이란어 학원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2016년 7월, ‘이란 아토즈’를 설립했는데, 지난해 매출이 1억5000만원이었다.


이란 아토즈는 기업 컨설팅을 한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굉장히 비싼 값을 치르고 외국 컨설팅 회사에 이란 시장 조사를 의뢰한다. 하지만 결과물로 받은 정보들이 정확하지 않을 때가 많다. 이란이 정보 공개를 하는 데 있어 굉장히 폐쇄적이고 그 나라 통계청 웹사이트에 들어가 봐도 최신 자료 업데이트가 안 돼 있다. 그런 관점에서 ‘이란 아토즈’는 기업에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우리는 정보 취합을 위해 필요한 기관에 직접 콘택트를 한다. 전화를 할 수도 있고 직접 찾아가기도 한다. 언어가 자유롭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란의 엔진오일 시장’ ‘이란 인스타그램 이용자 수’ 등을 조사하기도 했다.


기업에 출강해서 언어와 문화를 가르치는 일도 한다. 유학 시절 틈틈이 통역 아르바이트나 과외를 했던 게 밑거름이 됐다. 일당 7만원부터 50만원까지 닥치는 대로 일을 했는데 그때 경험 덕분에 기업 관계자분들이 실질적으로 배우고 싶어 하는 언어와 개념들을 꿰뚫고 있다.” 

출처: 정제희 대표 제공
'이란 아토즈'는 이란어 통번역 뿐만 아니라 기업 컨설팅 서비스도 제공한다

-이란이 ‘기회의 땅’이라고 생각하나


“그렇다. 비공식적으로 이란 인구가 1억명인 것으로 추산된다. 최근 인도네시아로 민간과 기업이 다수 진출하듯 머지않아 이란도 우리에게 중요한 시장이 될 거라고 확신한다.


우리가 이란에 대해 가지고 있는 선입견 중 하나가 ‘여성 인권’에 관한 것이다. 이란 여성들은 사우디아라비아나 파키스탄처럼 여권이 낮지 않다. 법적으로 한 명의 남성이 4명의 부인을 둘 수 있긴 하지만 그렇게 사는 사람들은 굉장히 소수이고 사회적으로 그런 행태를 좋게 보지 않는다.

호메이니가 주도한 혁명 이후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사회 참여를 시작했다. 다만 남성들과 철저히 분리된 사회 참여이긴 하다. 우리나라는 의대에 진학하려 해도 여성과 남성이 함께 경쟁하지만 이란은 여성은 여성끼리 경쟁한다는 의미다. 결국 한 사회 내에서 여성 인력이 필요한 포션이 항상 존재하기 때문에 여러 면에서 기회의 땅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이란어를 공부하는 것은 그 기회를 잡는 가장 기초적인 키(key)가 될 거다.”


글 jobsN 박가영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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