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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 세브란스에 가면 아주 특별한 'OO천사'가 있다

조회수 2020. 9. 21. 17:5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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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말하는, 세브란스병원 '통역 천사'
세브란스병원 수어통역사 김선영씨
국내 3차 병원 유일한 의료수어통역사
"늦었지만, 늦게나마 시작해서 다행"
출처: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제공
지난 7일 턱 부위 통증 때문에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을 찾은 40대 청각장애인 여성이 김선영씨에게 수어로 증세를 설명하고 있다.

“관절이요? 아니에요, 긴장성 근육통이네요.”(의사)


농인(聾人, 청각장애인)인 이 40대 여성 환자는, 오래도록 턱을 앓았다. 내버려 둔 통증이 심해지다 못해 두통으로까지 번졌다. 하지만 목소리로 의사 표현을 못하는 탓에 의사에게 증상을 제대로 설명하질 못했었다. 턱뼈가 움직이는 부분에서 아픔이 퍼지니, 관절 문제가 아닐까 혼자 짐작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선 달랐다. 의료진에게 몸 상태를 정확히 전달해, 바른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국내 3차 병원(상급 종합병원) 통틀어 유일한 의료수어통역사 직원인 김선영(41)씨 덕분이었다.

출처: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제공
김선영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의료수어통역사.

어떻게 수어통역사가 됐나


김씨는 지난 3월부터 세브란스병원 가족이 됐다. 병원 역대 세 번째 의료수어통역사 직원이다. 처음부터 수어통역사를 꿈꾼 것은 아니다. 실제로 세브란스병원과 인연을 맺기 전엔 15년 정도를 미술강사로 일했다. “수어를 처음 접한 때는 대학 시절이었어요. 다니던 성당에서 성탄제 공연을 했는데, 종목이 수어 노래여서 10분 정도 배웠어요. 해 보니 너무 매력적인데다, 저랑 잘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오랜 세월 한 일을 하다 보니, 새 배움에 목마르게 됐다. 잊고 지냈던 수어가 새삼 떠올라 서울수화전문교육원에 등록해 수어 전반을 배웠다. 그리고 수어통역사 보수과정에서 의료 수어 수업을 들었다. 그리고 2014년 11월부터 세브란스병원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하다 공채 시험에 합격해 계약직 직원이 됐다. “마흔 다 돼가는 나이에 잘 다니던 직장 버리고 새 길 찾겠다 말하기 민망해, 직원으로 붙기 전까진 가족에게도 수어 일하는 걸 감췄어요. 제 기우였는지, 털어놓고 나니 ‘원하는 일하게 됐다니 좋구나’라며 오히려 격려를 들었지만요.”


일은 고되지만


세브란스병원을 찾는 청각장애인은 하루에 많아도 3~4명 정도 뿐이지만, 김씨는 쉴 새가 없다. “수어로 의료 용어를 표현하려면, 복잡한 말을 아주 쉬운 일상어로 풀어헤쳐야 하죠. 예를 들어 ‘심방 중격 결손’이라 하면, 우선 글로 의학 용어를 써준 뒤, ‘심장 왼쪽방 오른쪽방을 나누는 벽에 구멍이 뚫려 서로 피가 새는 병’이라 말하는 식으로 증상이나 원인 등을 설명해야 합니다. 한 분 한 분마다 큰 공을 들여야 해서 언제나 시간이 모자라요.”


정신적 긴장도 놓을 수 없다. “치료를 아무리 받아도 배 아픈 게 낫질 않는다 하신 청각장애인 분이 계셨는데, 세브란스병원에서 제 통역을 거쳐 진료를 받아보니 부정맥에 심장 혈관 막힌 증상까지 있던 위급환자라는 게 밝혀진 거예요. 일선 병원에선 증세를 정확히 전달받지 못해, 영문을 몰라 소화제만 계속 처방했다 하더군요. 만일 저마저 그분의 호소를 제대로 읽지 못했다면 큰 사고가 날 뻔했죠. 이처럼 실수 한 번이 생명을 좌우할 수 있으니, 언제고 방심할 틈이 없어요.”


그럼에도 지금 하는 일이 진심으로 좋다 한다. “물론 예술 분야가 수어통역보다 덜 재밌거나 덜 중요한 건 아닙니다. 다만 자유롭고 창의적인 표현력이 필요한데다 오래 하면 자신만의 색이 생긴다는 점에서, 수어 또한 미술과 비슷한 데가 있어 제가 매력을 느끼게 됐을 뿐이죠. 강사 때보다 버는 돈은 줄었지만, 매일같이 생명을 살려낸다는 보람 덕에 아까울게 전혀 없어요. 비록 시작이 남들보다 퍽 늦었지만, 그럼에도 주저 없이 뛰어들어서 참 다행이라 생각해요.”

출처: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제공

영원한 수어통역사


김씨는 앞으로도 수어 관련 일을 계속할 계획이라 한다. “앞으로 제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어요. 대통령이 장래희망이라 해서 다 대통령이 되는 건 아니듯, 제 미래를 제 소원대로만 밀어붙일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하지만 어쨌든 마음만은 계속 수어 쪽에 기울어 있으니, 그 일을 쭉 해나갈 수 있도록 노력할 생각입니다.”


글 jobsN 문현웅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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