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어 입력폼

여상졸업→10급 타자수→사시패스, 노력 기적을 만들다

조회수 2020. 9. 24. 01:25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법조인이 된 타자수

의정부시 녹양동은 의정부지방법원이 있어 변호사 사무실이 많다. 그곳에 법률사무소 '지윤'이 있다. 지윤 정영미(45) 변호사는 이곳에서 좀 특별한 존재다. 그녀의 원래 직업은 타자수였다. 검찰청 소속 10급 기능직 공무원. 검사의 말을 타자기로 입력하고 서류를 날랐다. 그랬던 그녀가 사법고시에 합격해 이제 6년차 법조인(法曹人)이다.  

출처: 본인 제공
정영미 변호사

-검찰청 타자수로 일했다던데.

"신덕여상(현 세그루패션디자인고등학교)을 졸업했습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대학에 못갔어요. 도덕, 상식, 타자 3과목 시험을 통과해 타자수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일했습니다. 검사 지시대로 타자기로 공소장을 썼습니다."


-왜 사법고시에 도전했나.

"신입시절 함께 일한 양부남 검사님(현 광주지검장) 덕분입니다. 공고를 졸업하고 검사가 되신 분인데 '실업계 고등학교를 나와도 사법고시에 합격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처음 했어요.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일하는 검사들이 매력적으로 보였습니다. 그들처럼 되고 싶었어요."


5년간의 타자수 생활을 그만두고 1996년 숭실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했다. 4년을 공부와 아르바이트로 채웠다. 졸업 후 신림동 고시촌에 들어갔다. 월 10만원짜리 고시원 방을 얻었다. 아르바이트로 생활비와 학원비를 벌었다. 보험회사 상담원부터 식당, 오락실, 독서실총무, 화장품 판매, 주유소, 모범택시 야간 접수원 안해본 일이 없다. 그 외 시간은 전부 공부에 쏟았다.


어려운 형편에도 신림동을 택한 이유가 있다. 매일 술주정하는 아버지 때문에 집에서는 도저히 공부할 수 없었다. 힘들땐 하루 종일 공장에서 서서 일하시는 엄마를 생각하며 자신을 채찍질했다. 쌓으면 천장에 닿을 만큼의 책을 보고 또 봤다. 위기도 있었다.


2005년 3월 고시원 방에 도둑이 들었다. 그동안 열심히 정리해둔 민사소송법과 행정법 책이 없어졌다. 급히 새 책을 사서 한번 읽고 밑줄을 그으니 어느덧 시험이 다가왔고 그해 낙방했다. 3번 도전 끝에 1차 시험에 붙었고, 2차시험은 4번만에 붙었다. 7년 공부 끝에 2008년 제50회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1000명의 합격자 중 300등이었다.

출처: jobsN
서류 검토중인 정영미 변호사

-무슨 힘으로 해낼 수 있었나.

"법조인이 되고 싶은 절실한 마음이요. 그땐 사법고시 합격이 인생을 단번에 바꿔줄 유일한 동아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발표 전날 갑자기 너무 자신이 없어져 밤새 울었어요. 다음날 점심을 먹는데 엄마가 울면서 전화를 하셨어요. '됐다'. 순간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그저 다행이라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그리고 감사했어요."


-처음 검사를 꿈꾸며 사법고시에 도전했는데 현재는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나이가 너무 많아 검사를 하기 힘들다고 생각했습니다. 공식적으로 나이 제한은 없지만 현실은 좀 달랐습니다. 변호사로 진로를 정했어요. 연수원 시절 변호사 업무가 더 적성에 맞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사법연수원 수료하고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다. 실무경험이 쌓일수록 형사사건의 불합리한 면이 보였다. '억울한 피해자를 구제해 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현재 그가 맡은 변호의 30%는 국선 변호다. 한국가정법률사무소 '100인 변호사단' 소속으로 이주여성, 가정폭력 피해 여성들을 위해 변호한다.


-사법고시 폐지와 존치 논란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사법고시를 일부라도 병행했으면 좋겠어요. 국민들이 더 많은 법률서비스를 받게 해주자는 게 로스쿨 도입의 취지라면, 사법고시 합격자를 늘려도 되니까요. 과거 저처럼 어려운 조건에도 법조인을 꿈꾸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필요합니다."

출처: jobsN
본인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모습

노력 끝에 꿈을 이룬 정 변호사. 어려운 시절을 잊지 않고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보호자가 없는 미성년 피해자들의 변호엔 더욱 신경쓴다. 변호사 자격증을 얻은 직후부터 '굿네이버스'에 7년째 후원중이다. 돈이 없어 꿈을 포기하는 아이들이 없길 바란다.


-청년들에게 조언 한마디.

"돌이켜보면 고비마다 도움을 준 분들이 있었어요. 이 길을 걸을 수 있게 정신적인 스승이 되어 주신 양부남 검사님, 선덕중학교 3학년 시절 3개월치 독서실비를 지원해주신 학부모회 어머님, 어려운 사정을 알고 고시원비를 받지 않으셨던 성림고시원 아주머님. 그분들 덕택에 꿈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감사하고, 희망을 놓지 마세요. 사소한 말 한마디도 긍정적 의미를 부여하고 자신을 믿으세요."


글 jobsN 김민정 인턴

jobarajob@naver.com

잡스엔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