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가 밥 먹여줍니다" 덕업일치 성공한 경마 덕후

조회수 2020. 9. 24. 00:2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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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보고 듣고 배우는 자세가 중요"
한국 마사회 알라스테어 미들턴 사원
'덕업일치' 이룬 경마 '덕후'
“항상 보고 듣고 배우는 자세가 중요"

“취미가 밥 먹여주냐?”


취미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사람을 핀잔 줄 때 흔히 하는 말이다. 하지만 요즘엔 ‘취미가 밥 먹여 준다’고 말하는 사람이 꽤 있다. 자신의 관심사를 직업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이른바 ‘덕업일치’다.


마사회에도 덕업일치를 이룬 사람이 있다. 경마를 좋아해 10년 동안 한국 경마 블로그를 운영하다가 입사했다. 경마를 보며 일하는 덕업일치 주인공은 알라스테어 미들턴(Alastair Middleton·36). 마사회 영어 실황 중계와 해외마케팅 관련 업무를 맡고 있다.

출처: 마사회 제공
알라스테어 미들턴 사원

어린 시절 자연스럽게 접한 경마


미들턴씨의 고향인 영국은 경마 종주국이다. 총 60여 개의 경마장이 있다. 일요일 빼고 매일 경마가 있다. 4월부터 10월은 평지경주, 10월 중순부터 3월까지는 장애물 경주가 열린다. 이런 환경에서 그에게 경마는 하나의 취미로 자리 잡았다.


“한국에서 가족끼리 야구를 보러 가듯이 영국에선 경마를 보러 갑니다. 멋지고 아름다운 말을 보는 게 좋았고 경주도 흥미진진했어요. 특히 베팅을 하면 그 말과 함께 뛰고 있는 느낌이었죠.”


보험회사 직원→영어 강사..한국 정착


영국에선 보험회사에 다녔다. 3년 동안 같은 일을 하니 지루했다. 다른 일을 해보고 싶었다. 대학생 때 잠시 방문했던 한국이 떠올랐다. 한국에서 일을 해봐도 좋을 것 같았다. 마침 구직 사이트에 한국 영어학원 강사를 구하는 글이 올라왔다.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영어학원이어서 회사경력이 있는 강사를 선호했다. 바로 지원했다. 합격하자마자 보험회사를 그만두고 한국으로 왔다.


“한국 생활에 적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서울과 영국이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다만 누굴 가르치는 일은 처음 해보는 거라 어려웠죠. 첫 수업에서 학생에게 영어로 이름이 뭐냐고 물어봤는데 못 알아 듣더군요. 목소리와 발음, 어휘 수준 등을 학생에게 맞춰야 했어요. 처음엔 힘들었지만 1년 뒤에 적응했습니다. 일도 적성에 맞아 아예 한국에 정착했죠.”


한국에 온 뒤 좋아했던 경마를 잠시 잊고 살았다. 그때 직장동료의 추천으로 처음 경마장을 찾았다. 한국 경마장 시설에 감탄했다. 관중석, 마권 발권 등을 편하게 이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 경마, 마사회, 경주마 등에 관한 설명이 모두 한국어였다.

출처: Horse racing in Korea 블로그 캡처
미들턴씨 한국 경마 블로그. 경주마, 국제경기, 부산과 제주 경기 소식 등 한국 경마 정보를 찾아볼 수 있다.

“경마 정보를 영어로 찾아볼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았어요. 2007년, 한국 경마 블로그(korearacing.live)를 시작했습니다. 경마장 정보나 그날의 경기를 블로그에 올렸어요. 처음엔 그냥 일기였습니다. 꾸준히 올리다 보니 하나의 정보 저장소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당시 블로그에 이메일 주소를 적어 놨습니다. 주소에 접속할 때마다 한국 경마에 관해 묻는 메일이 엄청 쌓여있었어요. 외국 경마 매체에서도 연락이 왔죠. 하나하나 답장해줬습니다. 영어로 된 한국 경마 블로그가 유일해서 그랬던 것 같아요. 이후 흥미와 책임감이 생겼습니다. 경마장도 더 자주 찾아갔고 그만큼 글도 더 많이 썼어요.”


마사회와 맺은 인연..입사까지


2013년, 블로그를 본 마사회가 미들턴씨에게 먼저 연락을 했다. “마사회에서 제 콘텐츠를 써도 되냐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해외 동시 중계를 하는데, 영어 중계를 도와달라고 부탁했죠. 한다고 했어요. 생애 첫 중계였습니다.”


당시 마사회는 처음으로 한국경마실황 해외 수출 사업을 진행했다. 렛츠런파크 서울에서 진행하는 경기를 싱가포르 크란지경마장 외 17개 장외발매소에 동시 송출하는 방식이다. 미들턴씨가 중계를 도와준 것은 2013년 시범 중계였다. 2014년 6월부터 정식으로 수출했다. 이후 말레이시아, 호주 그리고 올해부터 미국에도 수출을 시작했다.

출처: 마사회 제공
경마주로 앞 미들턴씨

2014년 중순, 미들턴씨는 그동안 블로그 활동했던 경험을 토대로 마사회에 이력서를 보냈다. 그해 12월, 마사회에서 면접을 보자고 연락이 왔다. 그는 면접에서 한국에서의 경력, 경마 지식, 한국어 구사 수준 등의 질문을 받았다. 한국 경마 블로그 운영 6년 경험을 바탕으로 막힘없이 대답했다.


결과는 합격이었다. 2014년 12월 24일, 마사회에 첫 출근했다. 해외마케팅팀으로 배정받았다. 적응은 어렵지 않았다. 부서 특성상 국적이 달라도 영어로 소통해 문제가 없었다. 다만 취미가 직업이 됐다는 현실이 어색했다.


“항상 놀러 오던 곳에 일하러 오니까 기분이 이상했어요. 출근 첫날 컴퓨터로 경마를 보고 있었는데, 제 뒤로 팀장님이 지나가서 재빨리 보던 창을 껐어요. 전 회사에서 몰래 경마를 보다 급히 창을 숨기던 습관이 나온 거죠. 그런데 생각해보니 여기선 경마 보는 게 일이에요. 아직도 그때 생각하면 창피합니다.”


발전하는 한국 경마..목표는 스포츠 해설자


그는 “마사회의 장점은 출근해서 경마를 볼 수 있는 것”이라며 “다만 그것 때문에 토요일에도 일을 해야 하는 게 단점”이라고 말한다. 경마는 토요일과 일요일, 오전 11시부터 5시30분까지 진행한다. 미들턴씨는 중계를 위해 주말에 출근하고 월요일과 화요일에 쉰다. 코리아컵(Korea Cup)과 같은 국제행사가 있을 땐 휴일과 퇴근을 반납하기도 한다.

출처: 마사회 홈페이지 캡처·jobsN
경마 모습과 지난 2016 코리아컵 당시 꽉찬 관중석

코리아컵은 한국에서 열리는 국제경마대회다. 지난해 한국이 경마국가 파트2로 승격하면서 제1회 대회를 열었다. 전 세계 100여 개국이 경마를 진행한다. 국제경마연맹과 국제경매회사협회 기준에 따라 ‘파트1·2·3’와 ‘미분류’로 나눈다. 기준은 경주마 국제적 능력, 경주계획 및 편성, 경주마 생산산업 규모 등이다. 파트1은 최고수준으로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등이 속해있다. 한국은 지난해 4월, 파트3에서 파트2로 승격했다.


“10년 전엔 한국에서 국제대회가 열릴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그만큼 한국 경마가 발전했습니다. 이대로 파트1까지 간다면 좋을 것 같아요. 하지만 먼저 극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경마가 도박이라는 인식입니다. 경마도 충분히 취미로서 즐길 수 있는 스포츠예요. 사실 이것은 한국뿐 아니라 모든 경마 국가들이 풀어야 할 숙제기도 하죠.”

그는 “쇼트트랙 중계가 경마 중계와 비슷하다”며 “시간이 지나면 다른 스포츠 중계도 해보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현재 목표는 마사회가 글로벌 사업을 펼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경마중계를 하고 싶은 후배에게 조언도 잊지 않았다.


“항상 보고 듣고 배워야해요. 다른 사람의 중계를 듣는 것도 중요하죠. 어휘력을 키우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또, 길을 걸을 때 주변 상황을 중계하는 것도 좋아요. 가령 '길 반대편에 있는 빨간 모자를 쓴 남자가 빨리 걷기 시작했습니다. 정장을 입은 남자 앞으로 길을 건너 시청역으로 들어갑니다'처럼 주어진 상황을 즉석에서 중계하면 도움이 많이 될 겁니다.”


jobsN 이승아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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