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상회담' 스타 출연진에게 한국어 가르친 이 청년

조회수 2020. 9. 24. 00:0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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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현우 톡투미인코리안 대표

추석 연휴가 두 주 앞으로 다가왔다. 명절이 마냥 흥겹고 유쾌한 사람도 있겠지만, 취업 준비는 잘 되고 있는지 연애는 하는지 거듭 물어올 부모님과 친척 뵙기가 막막한 이도 적지 않을 게다.


이처럼 취직도 연애도 어려운 시대지만, 자기 일 덕에 이역만리 남의 나라 땅에서 온 영상 러브레터를 받는 잘나가는 젊은이가 있다. 선현우(37) 톡투미인코리안 대표다.

200개 나라에서 보는 콘텐츠

출처: 조선DB
선현우 톡투미인코리안 대표.

  선씨는 한국어 강사다. 웹사이트와 SNS를 통해 전 세계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친다. 그는 2009년 온라인 한국어 학교 ‘톡투미인코리안’을 세웠다. 이 곳을 거점으로 한국어 교육 팟캐스트(디지털 오디오·비디오 파일), 전자책, 유튜브 영상 등을 세계인에게 제공한다. 현재까지 미국·호주·싱가포르·프랑스 등 200개국 넘는 나라에서 접속한 기록이 누적 1억회를 넘겼다. 지난 2013년엔 콘텐츠 대상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

출처: 선현우씨 유튜브
JTBC 예능 '비정상회담' 출연진 안드레아스 바르사코풀로스씨와 선현우씨가 함께 찍은 동영상 중 일부,

JTBC 예능 ‘비정상회담’ 출연진인 안드레아스 바르사코풀로스, 마크 테토, 크리스티안 부르고스 등이 한국에 오기 전 선씨가 만든 콘텐츠를 통해 한국어를 익혔다. 주한 인도 대사관 직원이 “톡투미인코리안을 통해 한국어를 공부해 대사관에 취업했다”며 인사를 건넨 적도 있다.

출처: 부르고스, 바르사코풀로스, 테토 인스타그램, 선현우씨 플리커
(왼쪽부터)비정상회담 출연진 크리스티안 부르고스, 안드레아스 바르사코풀로스, 마크 테토. 이들은 한국에 오기 전 선현우 대표(가장 오른쪽)가 만든 콘텐츠를 보고 한국어를 익혔다 한다.

한국에서 영어 배운 '토종' 강사


-유학파 출신이신가요?

  아니요, 오히려 유학을 다녀왔으면 한국어 강사 일을 못했을지도 몰라요.


  -어떤 의미지요.

  톡투미인코리안 통해 영어 배우는 외국인이 줄잡아 200만명 정도인데, 90%는 한국 땅을 밟아본 적 없거든요. 즉, 자연스레 접할 기회가 없던 언어를 맨바닥부터 배워야 한다는 거죠.


제가 유학을 다녀왔다면 이들이 느낄 고통을 이해하는 게 쉽지 않았을 거에요. 하지만 저도 남의 나라 언어를 말 그대로 실습 없는 공부만으로 배웠으니, 그런 식으로 외국어를 배울 때 어떤 점이 어려운지 속속들이 잘 알 수 있었죠.


  우리 회사에서 일하는 정직원이 6명, 프리랜서가 7명인데 이들도 전부 유학 경험이 아예 없거나 단기 유학자입니다. 물론 모두 영어는 잘합니다. 힘들게 배워본 사람이 남을 더 잘 가르칠 수 있다는 거죠.


전 그래서 한국어 가르치는 분들은 모두 외국어 공부를 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언어 배우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아야, 학생 심정을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생초보가 외국어를 공부로만 배울 때, 어떤 점이 가장 어렵다 생각하시나요.

  우선은 정말 재미가 없다는 점입니다. 웬만큼 언어에 취미가 있거나 재능을 타고나지 않은 이상, 배움이 오래도록 흥미롭긴 어렵죠. 게다가 한국인이 영어 배우는 거야 밥줄과 직결되니 죽지 못해서라도 하지만, 대부분 외국인에겐 한국어는 그저 취미거든요. 취미 때문에 지루한 공부에 매달려야 한다면, 어지간하면 때려치우고 마는 게 보통이죠.


  그래서 배우는 과정 자체를 취미로 즐기도록 했어요. ‘스트레스 푸는 법’ ‘여자들의 수다’ 같은 말랑말랑한 주제를 많이 다뤘죠. 요새는 잘 안 하는 편이지만, 초창기엔 한국 드라마와 예능을 즐기는 외국인을 위해 경상도·전라도 사투리 강좌를 올린 적도 있고요.

  -하지만 다른 한국어 교육 강좌에서도 갖가지 흥미로운 주제를 다룹니다


  교육의 핀트 자체를 달리했죠. 가령 K-POP을 교육한다 해 보죠. 대부분은 노래를 들려주며 가사를 통째로 한국어로 번역해 줍니다. 그 노래만큼은 확실히 배울 수 있죠. 그런데 곡마다 가사가 천차만별인데, 그걸 일일이 다 익힐 수 있을까요? 배우고 배우다 결국엔 지쳐 나가떨어지기 일쑤죠.


  이런 사태를 피하고자, 저희는 노래 가사 중 한국어에서 널리 쓰이는 부분을 뜯어내 집중적으로 가르쳐요. 가령 방탄소년단(BTS) 노래 ‘봄날’ 가사 중 ‘보고 싶다’ 부분을 잘라 ‘-고 싶다=I want to’라고 가르치는 거죠. 이 점만 확실히 숙지한다면, ‘자고 싶다’ ‘먹고 싶다’ ‘퇴근하고 싶다’ ‘날고 싶다’ 등 다양한 바리에이션을 이끌어 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으니까요.

사무실까지 찾아온 외국인 팬도 있어


-열성적인 팬층도 있나요?


  지난달엔 회사에 찾아온 사람까지 있었어요. 미국인 앨리사(Alica)와 에바(Eva) 모녀(母女)였어요. 지난달 미국에서 열린 KCON 2017 LA 행사에 다녀왔는데, 앨리사가 연단까지 쫓아오더니 자기 딸 에바가 톡투미인코리안을 통해 한국어를 배웠다며 부탁 하나만 들어 달라더라고요.

이야기인즉슨, 다음 주에 에바의 17번째 생일을 맞아 둘이서 여행을 갔다 오려는데, 서프라이즈로 한국에 있는 우리 회사 견학을 시켜주고 싶다더군요. 에바한테는 플로리다 여행을 간다며 속여 뒀다나요.


  앨리사와 연락처를 교환하고 회사 주소를 가르쳐 줬더니, 정말 에바를 데리고 사무실까지 찾아왔어요. 에바는 이번이 한국 첫방문이었대요. 그래서 여행 목적지가 한국인 걸 알고 한 번 울었고, 자기가 쓰는 한국어 교재를 만든 회사 와서 감격해 한 번 더 울었다더군요. 이런 일이 종종 있죠.

출처: 선현우씨 제공
톡투미인코리안 촬영 스튜디오에 방문해 기념사진을 찍고 간 앨리사와 에바 모녀.

-‘영국남자’로 알려진 조슈아 다릴 캐럿(Joshua Daryl Carrott)씨와도 영상을 같이 찍으셨던데, 그분도 대표님 팬이었는지요?


  팬이었는지까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조슈아씨가 함께 영상을 찍자고 제게 먼저 제안해온 건 사실이에요. 조슈아씨가 방송을 시작하기 전이던 2013년 7월쯤, 제가 영국 여행을 갈 예정이라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어요. 그랬더니 조슈아씨가 연락해 “영국에 오면 같이 영상을 찍자”고 하더군요. 그래서 다음 달 영국에 가서 함께 영상을 찍었던 거고요. 신기한 게 7월까지만 해도 조슈아씨는 무명이었는데, 그 한 달 사이에 동영상 3~4개를 올리고 슈퍼스타가 돼 있더군요. 아무튼 그 이후로도 계속 연락을 주고받고 가끔 영상도 같이 찍습니다.

출처: 선현우씨 페이스북
선현우 대표가 영국남자(오른쪽 끝)과 함께 찍은 사진.

  -톡투미인코리안 애독자가 온 세계에 많으니, 매출도 상당할 것 같은데요.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저희가 펴낸 교재는 23권 정도고 전자책이나 오디오 타이틀은 100개쯤인데, 무료로 푼 콘텐츠가 1400개나 되거든요. 그러다 보니 매출은 연 20억원이 좀 안 되는 수준이에요. 어차피 큰돈 벌려고 하는 일은 아니니, 그다지 상관없긴 하지만요.


하다 보니 어느덧 한국어 강사


  -원래부터 영어 교육에 뜻이 있으셨던 건가요.

  처음부터 그렇진 않았어요. 그냥 제가 좋아서 영어 공부를 했을 뿐이었어요. 남 가르칠 생각을 한 건 군 복무 시절부터였어요. 교범 만드는 업무를 했는데, 하다 보니 제가 남을 가르치는 일에 재주가 있는 것 같더라고요.


  그 종목을 영어로 정한 건 군 전역 이후 일이에요. 외국인 친구를 만들어 보고 싶어 무작정 해외 사이트 게시판에 이름·국적·이메일을 밝히고 나와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은 연락해달라 했는데, 정말 말 거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들이 던지는 질문 대부분이 '한국인들은 왜 나이를 묻지?' '밥 먹었는지는 왜 물어보지?' 등 '한국 문화'에 대한 거였어요. 막상 대답하려 하니, 한국 문화나 한국인 정서에 대해 설명한 외국어 자료가 거의 없더라고요. 내가 만들어 보지 뭐, 라고 생각했던 게 지금 여기까지 왔습니다.

출처: /선현우씨 페이스북

-여러모로 영어에 관심이 많으신 듯한데, 전공은 불문학을 하셨더군요.


  고3 때 교육부 주최 전국 고등학생 영어 학력 경시대회에서 1등을 해 장관상을 받았고, 특기자 전형으로 고려대 서양어문학부에 입학했습니다. 사실 남들이나 저나 처음엔 영어로 대학 갔으니 당연히 영문과 갈 거라 생각했죠. 하지만 막상 수업을 들어보니, 영문과에선 문학 위주로 가르치더군요. 저는 문학엔 별로 관심이 없고, 순전 어학에만 흥미가 있었는데 말이죠.


  하지만 영문과 이외 다른 학과는 어문 위주 교육을 하더군요. 왜냐면 해당 학과로 입학했어도 그 언어를 제대로 아는 학생이 거의 없으니, 문학 수준은 손도 못 대고 기초부터 가르치는 판이었으니까요. 도리어 제겐 적합한 교육환경이었지만요. 그래서 그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불문학을 택해 진학했습니다.

출처: /선현우씨 제공

-향후 사업계획은?


  오프라인 강의에도 도전해 보려 합니다. 학교나 어학원을 차리는 방향으로 구상 중입니다. 솔직히 아직 구체적인 계획까진 없지만요.


  사실 저는 장기적인 계획을 미리 짜두고 일에 뛰어드는 타입이 아니에요. 당장 마주한 일에 최선을 다하다 보면, 일부러 길을 내지 않아도 자연히 갈 방향이 떠오를 거라 믿거든요. 이제까지도 항상 그래 왔고요. 그러니 우선은 현재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려 합니다. 군 교범을 열심히 만들었더니 교육 쪽에 길이 열리고, 외국인과 대화를 해보려 노력했더니 어느덧 한국어 강사가 됐듯, 해오던 일에 힘을 쏟다 보면 언젠가는 또 생각지도 못했던 활로가 열리지 않을까요?


글 jobsN 문현웅

사진편집 jobsN 육선정 디자이너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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