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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 걸고 5천만원 들이면 2개월 걸려 도착할 수 있는 곳은?

네 번 죽을 뻔했지만 계속 도전하는…세계적인 산악인 허영호 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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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산악인이자 탐험가 허영호 대장
죽을 고비 넘기며 '불가능해 보이는' 모험 강행
환갑 넘긴 나이에도 경비행기 세계일주 꿈 꿔

산악인이자 탐험가인 허영호(63) 대장은 세계 최초로 지구의 3극점(남극점, 북극점, 에베레스트 정상)에 도달하고, 7대륙 최고봉에 오른 사람이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인 에베레스트(해발 8848m)를 여섯 번이나 올라,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에베레스트를 정복한 사람이기도 하다.  

1987년 세계에서 세 번째로 겨울철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한 허영호 대장

이 외에도 그는 세계 등반사상 세 번째이자 국내 최초로 겨울철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했다. 또 국내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을 무산소로 밟았다.


그는 경비행기를 타고 ‘양평-제주도-양평’ 구간(250km), ‘제천-독도-마라도-가거도-제천’ 구간(400km) 비행에 성공했다. 이것도 국내 최초다. 연료를 많이 싣기 위해 2인승 경비행기를 1인승(무게 300~400kg)으로 개조해 날았다.


환갑을 넘긴 나이에도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 올해 5월 그는 생애 여섯번째로 에베레스트에 올랐다. 고(故) 김성봉 대장(66세)에 이은 국내 두번째 최고령 기록이다.


미국 워싱턴대학 연구진에 따르면, 60세 넘은 사람은 에베레스트 등반 중 사망할 확률이 3배 이상 높다. 정상까지 오르는 비율도 13%에 불과하다. 에베레스트 등반을 시도하는 10명 중 3명이 정상에 도달하는 반면, 60대 산악인은 10명 중 1명만 정상을 밟는다.


“에베레스트 정상을 여섯 번이나 밟았지만, 새로운 목적없이 오른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올해는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텐트 치고 하루 자고 오려고 했던 겁니다. 그런데 4시간 만에 내려올 수밖에 없었어요. 2시간 지나니까 발가락이 차가워지고 시작하고, 맥박이 올라가고 안되겠더라고요. 이러다 죽겠구나 싶어서 내려왔는데 얼마나 분했는지 모릅니다. 조금만 젊었어도 할 수 있었을텐데….” 

등정 기록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허영호 대장

출처jobsN

잡스엔(jobsN)이 늘 새로운 도전에 목말라있는 허영호 대장을 만나 그의 인생 역정을 들었다. 불안의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환한 등불’과도 같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줬다.


-30년 넘는 산행과 탐험에서 네 번 죽을 뻔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1982년 첫 해외원정으로 마칼루봉(8463m·히말라야의 다섯번째 봉우리) 정상에서 사진 찍고 내려오다가 셰르파(Sherpa·길잡이)가 미끄러지는 바람에 추락해서 200m를 굴렀습니다. 눈 있는 곳에 겨우 서서 살았죠.


1983년 마나슬루(8156m·세계에서 일곱번째로 높은 봉우리) 무산소 등정 때는 눈사태가 나서 45m 크레바스에 빠졌는데 천운으로 살았습니다. 1986년 에베레스트 갔을 때는 발을 헛디뎌서 죽을 뻔 했고, 1987년 에베레스트 등정 때는 빙벽(氷壁)에 추락했습니다. 나도 내 목숨이 몇 개인지 모르겠어요.”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면서도 다소 무모해 보이는 도전을 계속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열정과 호기심이 가장 큰 동력입니다. 달성하기 어려운 일일수록 좋은 도전거리죠. 그게 우리가 말하는 ‘가치’이고, ‘창조’입니다. 누구나 한 번쯤은 꿈꾸지만 쉽게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일들이 많죠.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을 계속 시도하고, 결국에는 해내고야 마는 것이 사람들에게 용기와 자신감을 불어넣어준다고 생각해요.


‘불가능할 줄 알았는데, 제가 죽을 둥 살 둥 해보니 되더라고요. 당신도 주저하지만 말고 한 번 도전해보세요’라고 말하는 거죠. 인간의 한계에 도전한다는 숭고한 가치, 체험에 대한 호기심이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감을 잠재우고 저를 끝없이 모험의 길로 이끄는 것 같습니다.”


-언제부터 산을 좋아하셨나요.

“원래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격입니다. 중학생 때부터 그냥 산 오르는 게 좋더라고요. 정직하게 걸어서 정상에 도달한다는 성취감이 좋았습니다. 고향인 충북 제천의 금수산(1016m)을 많이 올랐죠.


고등학교 때 충북 단양의 소백산(1439m)을 다녀온 적이 있는데, 일주일동안 잠이 안 올 정도로 벅찬 기분이 들었어요. 어릴 때 산악인, 탐험가와 같은 구체적인 꿈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그저 마냥 산이 좋았고, 대학 가서도 틈만 나면 전국의 산을 돌아다녔습니다. 암벽·빙벽 등반도 했고요.


제가 대학 다녔던 1970년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히말라야를 다녀온 선배님들이 20~30명 정도밖에 안 될 때였어요. 항상 속으로 ‘누가 나를 히말라야만 보내주면, 내가 귀신같이 올라갈텐데’ 생각했죠. 자신 있었어요.”  

2016년 다섯 번째 에베레스트 등정에 나선 허영호 대장

-첫 해외 원정은 언제 어떻게 가셨나요.

“1981년 고(故) 함탁영 선배가 히말라야 원정대를 전국에서 뽑았어요. 체력테스트를 거쳐서 10명을 선발했죠. 그 중 저도 있었습니다. 함 선배를 대장으로 1982년 5월 세계에서 다섯번째로 높은 마칼루 등정을 했습니다. 10명의 대원 중 저만 정상을 밟았어요.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던 제가 첫 해외 원정에서 마칼루봉에 오르자 산악인들의 관심을 많이 받았어요. 한국인 최초로 1977년 에베레스트 정상에 선 고(故) 고상돈 선배님 다음으로 제가 가장 높은 곳에 올랐으니까요. 자신감이 더 붙었죠.”


-그 이후의 주요 등정 기록들을 소개해주세요.

“1983년 ‘마나슬루’를 셰르파없이 혼자서 무산소로 올랐습니다. 당시 8000m 이상급 산을 ‘무산소 단독’ 등반한 것은 세계에서 세 번째였습니다. 제 등정 이력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성과는 1987년 12월 세계 등반사상 세번째로 ‘겨울철 에베레스트’ 정복에 성공한 것입니다. 보통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시기는 봄·가을입니다. 겨울은 너무 춥고, 위험해서 모두가 피하는 계절입니다. 그래서 더 겨울에 하고 싶었습니다. 남들이 할 수 없는 것을 성공해야 가치있는 것이니까요.


1987년 에베레스트 다녀와서는 한국에서 카 퍼레이드까지 했어요. 김포공항에서 서울 종로까지요. ‘겨울철 에베레스트’ 등정은 30년 지난 지금까지도 국내에서는 성공한 사람이 없습니다. 이후 1995년 12월까지 남극포함 7개 대륙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들을 모두 정복했습니다.”


-등정 대원들을 뽑을 때의 기준이 있습니까.

“등반 경험과 기술도 중요하지만, 심성(心性)을 첫 번째로 봅니다.” 

극점 탐험에서의 허영호 대장

-1990년대 들어서는 남극·북극 탐험에 집중하셨죠.

“높은 산을 오르는 ‘수직 탐험’에서는 어느 정도 이룰만한 것들은 이뤘다고 생각했어요. 혹한의 북극해와 남극대륙에 도전하는 수평 탐험을 해보자고 생각했죠. 지구의 가장 남쪽(남위 90° 지점)인 ‘남극점’과 지구의 가장 북쪽(북위 90° 지점)인 ‘북극점’에 도달해 보기로 했어요. 당시만 해도 3극점(남·북극, 에베레스트)과 세계 7대륙봉 완등을 달성하는 ‘어드벤처 그랜드슬램’ 기록을 가진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새로운 도전에 대한 열망이 타올랐습니다.”


-극점 탐험은 등산과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극점 탐험은 전자 GPS를 보면서 정확한 위치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남극점보다는 북극점 도달이 더 어렵습니다. 유빙(물 위에 떠도는 얼음덩어리)때문입니다. 얼음땅이 계속 움직이기 때문에 하루 종일 걸었어도 오히려 뒤로 가버린 꼴이 된 경우도 생기죠.


1990년과 1991년 연속으로 걸어서 북극점 도달에 도전했지만 실패했습니다. 그 후 1992년 남아메리카의 아콩카과, 북아메리카의 매킨리, 아프리카의 킬리만자로를 차례로 올랐습니다. 1994년 오세아니아의 푼착자야에 오르고, 1년 후 유럽의 엘브루스도 등정했지요. 뒤이어 1994년 1월 걸어서 남극점을 밟았고, 여세를 몰아 1995년 얼어붙은 북극해(1800km)도 걸어서 횡단했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북극점에도 닿았습니다.


등산은 올라가는 것이 여의치 않더라도 베이스캠프 등에 식량이 비축돼 있고, 쉬었다 가는 것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극점은 영하 40~50도 추위를 견디며 항상 계획한 거리만큼 이동해야만 합니다. 베이스캠프가 없기 때문에 준비해 간 식량이 동날 때까지 탐험을 마무리 지어야 합니다. 북극곰이 나타나 위협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총을 들고 다닙니다.” 

허영호 대장이 아들과 함께 출연한 방송

출처mbc화면 캡처

-등반이나 탐험 갈 때 경비는 어느 정도 듭니까.

“떠나는 사람 수에 따라서 경비가 달라집니다. 기업 후원금 규모에 따라서 몇 명의 대원을 모을지 정합니다. 예컨대 에베레스트를 5명이 간다고 하면 3억원 정도 들어갑니다.


기업이 후원을 해준다고해서 개인 비용이 ‘0원’인 것은 아닙니다. 최하 한 사람당 1000만원씩은 써야 합니다. 기업에서 돈을 대주지 않는 장비와 물품도 있기 때문입니다. 극점 탐험도 비용은 비슷하고요. 올해 에베레스트 다녀왔는데 후원없이 제 돈만 6000만원 썼습니다. 요즘은 예전보다 기업들 후원이 많이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산에 올랐다고 누가 돈을 주는 것도 아닌데, 다른 소득원이 있어야 하지 않나요.

“당연히 그렇습니다. 산 타는 분들 대부분 직업이 따로 있죠. 산악인, 탐험가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직업’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제 ‘이상’을 실현하는 것이 전부인 일입니다.


저도 대학 졸업 후, 1981년 ‘성신양회’라는 시멘트 회사에 취업했어요. 회사 다니면서 산을 다닌 겁니다. 1987년 ‘겨울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한 이듬해(1988년) 퇴사했죠. 퇴사 후, 주수입원은 강연입니다. 1990년대는 강연 요청이 쇄도했죠. 기업과 지방자치단체에서요. 요즘도 한 달 5~6회 정도는 강연을 나갑니다.”  

허영호 대장

-모은 돈은 탐험하는데 거의 다 쓰시는건가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미안할 때가 많아요. 아이들에게도 돈을 물려주지는 못하지만 많은 경험을 선물해줬어요. 아이들 어렸을 때부터 해외여행을 자주 나갔어요. 저축은 거의 못했어요. 큰 아들이 올해 서른 셋인데, 대학 가기 전까지 13개국을 여행했어요. 돈 모으는데는 관심도 없고, 재주도 없어요.”


-앞으로 도전하려는 목표는 무엇인가요.

“1990년대 후반부터 경비행기 조종을 배웠습니다. 국내 비행은 자주 했는데, 목표가 경비행기로 세계 일주를 하는 겁니다. 단순히 세계일주가 아니라 남·북극점 착륙, 에베레스트 정상을 경비행기로 넘는 것도 함께 하고 싶어요.

2년을 목표로 잡고 있는데, 경비는 15억원 정도를 예상하고 있습니다. 벌써 10년 넘게 이 도전을 후원해 줄 기업들을 찾고 있는데, 쉽지가 않습니다. 나이 들었다고 쉬고 싶은 생각 전혀 없어요. 기회만 주어진다면 눈 감는 순간까지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고 싶습니다.” 

남극점에 꽂힌 팻말

-젊은 친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열심히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어요. 무엇이든 해보는거죠 한 번. 청년들은 시간과 젊음이 모두 있는데 뭐가 두렵겠어요.


직장은 직장이고, 자신의 재능이란게 있는데, 그걸 썩히지 말고 발휘하면서 사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회사 안이든 밖이든요. 시도하지 않으면 변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글 jobsN 김지섭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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