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가 며느리 선생님인 이 남자의 직업은?

조회수 2020. 9. 23. 10: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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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내'가 되기 위해 그동안 꼭 해보고 싶고,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일들을 원 없이 해봤다"
콘텐츠 기획·개발 전문 연구소 탤런트 랩 허병민 대표

이런 사람이 있을 수 있나 싶었다.


이제 갓 마흔을 넘은 나이이지만 상상을 뛰어넘는 수많은 경력과 이력을 갖고 있다. 대학 재학 시절에는 가수(보컬 겸 작사가) 활동을 했고, 비보이 활동도 했다. 한 사진 전문지에서는 평론 활동을 했다. 졸업 후에는 국내 최대 광고대행사에서 PD로도 일했다. 이어서 한 대기업 그룹의 계열 출판사에서 편집기획자로 일했고 한 엘리베이터 대기업에서는 사내홍보 담당자로, 한 대기업 홍보팀에서는 기업PR 담당자로도 일했다. 직장에 합격하고도 안 간 곳도 있고, 한 중앙일간지에는 최종 면접에서 불합격해 못 간 곳도 있다. 이 틈틈이 신춘문예에 당선돼 문학평론가로도 등단했다. 한 철학에세이 공모전에 가작으로 입선하기도 했고, 한 기획사에 작사가로 소속돼 있기도 하다.


끝이 아니다. 2008년에 직장을 나와서는 경제경영서 《넥스트 컴퍼니》를 시작으로 저술 활동을 시작해 자기계발서 《1년만 버텨라》, 《최고의 석학들은 어떤 질문을 할까》, 자녀교육서 《최고의 석학들은 어떻게 자녀를 교육할까》를 출간하는 등 총 11권의 책을 냈다. 재벌가 사람들을 대상으로 라이프 코칭도 했던 그는 2011년 1월 콘텐츠 기획·개발 전문 연구소인 탤런트랩(Talent Lab)을 설립했다. 1인 회사인 이곳에서 그는 저술과 강연, 컨설팅, 라이프 코칭 활동을 하고 있다. 물론 작가로서의 길도 여전히 걷고 있다.


탤런트랩 허병민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허 대표는 지난해 9월 해외 석학·리더 에이전시인 티랩(T-Lab)도 설립했다. 인터뷰를 통해 그의 삶을 들여다본다.

출처: 본인제공
허병민 대표.

2011년에 1인 기업인 탤런트랩을 설립했는데요.


“2008년 말에 작가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는데, 한 권 두 권 책을 펴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외부에서 이런저런 요청들이 들어오더군요. 기업이나 기관들로부터는 강연 의뢰가, 개인들로부터는 코칭이나 컨설팅, 상담, 자문 등의 의뢰가 많이 들어왔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저만의 소위 ‘지식생산 팩토리’ 같은 걸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콘텐츠 기획·개발 전문 연구소인 탤런트랩을 창업하게 된 겁니다. 사업 부문은 좀 다양한데요, 콘텐츠 기획·개발을 중심축으로 집필, 강연, 라이프·책쓰기 등의 코칭, 퍼스널 브랜딩·취업·북큐레이션 등의 컨설팅, 강독(講讀), 크리에이티브 디렉팅, 자문 등 여러 가지 영역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신춘문예 당선, 제일기획 PD, LG생활건강 기업PR 담당자, 전문기자, 작사가, 라이프 코치, 퍼스널 브랜딩 컨설턴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그 외 여러 출판사의 기획위원까지 그동안 쌓아온 경험과 경력이 다채로운데 이런 경험들이 자신의 삶에 어떤 도움을 준다고 보는지요.


“2014년 4월에 《나의 꿈은 내가 되는 것이다》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했어요. 사실 이 책에 붙인 제목이 그간 제가 살아오면서 간직해온 저만의 모토입니다. 말 그대로 ‘내가 되기’ 위해 그동안 꼭 해보고 싶고,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일들을 원 없이 해왔지요. 저는 제 자신이 너무 궁금했거든요. 뭘 할 수 있는지, 그걸 어느 정도로 잘할 수 있는지, 뭘 할 때 행복한지 혹은 집중력이 배가 되는지 등등. 각각의 경험이 저에게 어떤 ‘도움’을 줄 거라고 생각해서 했던 게 아니라, 저라는 사람을 좀 더 제대로 정확하게 알고 싶어서 했던 거예요.


스티브 잡스가 과거 한 대학의 연설에서 ‘connecting the dots’라는 표현을 써서 회자가 된 적이 있지요. 쉽게 말해 과거의 경험들이 모이면 하나의 선이 되어 결국 내 인생이 된다는 건데요, 내가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경험이든, 실패라고 생각하는 경험이든 그것이 하나하나 모여 결국 현재의 내가 된다는 거예요. 그동안 제가 쌓아온 경험들이 일관성이 있는 듯, 없는 듯 좀 정신없게 보일 수도 있지만 스스로 돌이켜보면 하나하나 다 제가 작가가 되는 데 조금씩 기여를 한 것 같아요. 그 과정에서 저는 제 자신을 굉장히 정교하고 자세하게 파악할 수 있었던 것 같고요. 세상에 쓸데없거나,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고 생각해요.” 

울산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청춘극장 GoStop 강연 토크 콘서트’에서 ‘나를 알고 내 삶을 알면, 내 꿈에 가까워진다’를 주제로 강연하는 허병민 대표.

젊은이들에게 자신처럼 다채로운 삶을 살라고 권하고 싶은가요.


“한 가지 전제를 붙여야 할 것 같아요. ‘다채로운 경험을 왜 하고자 하는가.’ 사람마다 어떤 경험을 하는 목적이나 이유가 다 다를 수 있으니까요. 다양한 경험을 쌓는 게 단순히 스펙이나 ‘쌓기 위한 쌓음’인지,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인지, 내면의 자아를 좀 더 단단하게 만들기 위한 것인지, 혹은 제가 그랬던 것처럼 ‘나’를 좀 더 잘 알기 위한 것인지. 이제 와서 고백하자면, 저도 과거에 가수활동을 하면서 자랑을 하고 싶었어요. 법대를 다니면서 노래도 잘한다는 ‘잘난 척’ 말이지요. 신춘문예에 당선된 것도 비슷해요.


많은 분들이 ‘20대 때는 이것저것 후회 없이 많이 해봐야 한다’고 하는데, ‘나’와 좀 더 친해질 수 있는 과정으로서 이해한다면 저 역시 같은 생각이에요. 다양한 일들을 해봐야 나의 장단점이나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 등을 알 수 있고, 그 결과 자신이 진짜로 원하고,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좀 더 빨리 찾을 수 있게 되지요.”


작가로서 팬 메일을 많이 받을 텐데 그 메일들을 통해서 느낄 수 있는 요즘 젊은이들의 가장 큰 고민은?


“저에게 오는 메일의 99%가 거의 비슷한 내용이에요. ‘저는 이렇게 살아왔고, 현재 이걸 하고 싶은데, 이러저러한 고민이 있습니다. 제가 이걸 하는 게 맞을까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대부분 A4로 두세 장은 족히 넘는, 소위 리포트 수준으로 정성 들여 써서 보내와요. 흥미로운 건, 처음엔 저에게 고민 상담을 요청하는 것으로 이해를 하고 읽어내려 가는데 다 읽고 나면 제가 해드릴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결론이 나와요. 본인들이 이미 누구보다도 현재의 자신에 대해, 또 자신의 미래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해왔기 때문이겠지요. 그런 고민 없이 그런 장문의 글이 나올 수는 없거든요. 마지막에 저에게 던지는 질문, ‘제가 이걸 하는 게 맞을까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는 정확히 말해 제 대답을 원하는 거라기보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용기를 줄 수 있는 한마디, 소위 토닥거림을 해달라는 거예요. 요컨대, 본인이 이미 해답을 갖고 있어요. 요즘 젊은이들의 가장 큰 고민이 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각자가 그 고민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접근하고 있느냐가 더 중요한 얘기인 것 같아요. 이미 스스로 진정성을 갖고 성실하게 고민을 하고 있다면, 그 고민의 무게만큼 자신을 들여다보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면, 그 고민은 이미 고민이 아니겠지요?”

혹시 그동안 해온 일들 중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생각되는 일이 있는지요.


“20대 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해보고 싶은 것? 솔직히 없어요. 적어도 개인적으로 해보고 싶은 건 다 해봤기에. 하지만 오히려 너무 많은 것을 하다 보니, 그중엔 분명 조금은 후회 아닌 후회로 남는 일들도 생기더라고요. 하나는, 제일기획을 그만두고 1년 뒤인 2002년에 모교(연세대) 철학대학원에 입학한 것. 철학에 애정을 갖고 있는 사람이긴 하지만 소위 ‘때’가 맞지 않았던 것 같아요. 사람마다 관점이 좀 다를 순 있겠지만 제 생각엔 지식이 좀 더 농익었을 때, 좀 더 폭넓은 관점을 갖췄을 때 대학원에 갔다면 중퇴하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싶어요. 아울러 석사학위나 박사학위를 따는 것에 대한 저만의 목표나 생각이 전혀 정립돼 있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냥 공부가 좋아서, 좋아하는 교수님과 토론할 수 있어서, 나아가 직장은 나와는 맞지 않는 것 같아서(저 역시 다른 분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아요)가 이유의 전부였던 것 같은데, 너무 순진했던 거지요. 둘째는 2008년에 LG생활건강에 입사한 것. 사실 그 전에 제일기획, 두산동아, 오티스 엘리베이터와 같은 대기업들을 경험하면서 직장생활은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다시 회사에 들어갔어요. 사실 이때가 ‘직장생활은 정말로 더 이상 하지 말아야겠다’라는 생각을 80% 정도 머릿속에 갖고 있던 때였는데도 입사를 했던 거지요. 물론 회사에도 죄송해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나 자신에게 미안해해야 하는 선택이었어요. 그때는 하고 싶었던 일이 거의 명확해졌지만 결정적으로 ‘어딘가에 소속돼 꼬박꼬박 월급을 타지 않아도 충분히 먹고살 수 있다’는 용기와 자신감이 2% 부족해서 그랬던 것 같아요.”


본인이 다닌 여러 대기업들 외에도 과거 헤이그룹(Hay Group)이라는 글로벌 인사조직 컨설팅 펌도 합격하고, 포항공대의 교직원에도 합격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군데, 조선일보(기자직) 최종 면접에서는 떨어졌는데요, 그때는 어떤 생각이 들던가요.


“‘아주 잘 떨어졌다’고 생각했어요. 하하. 제가 어릴 적 미국에서 7년간 살다 왔는데요, 면접을 정식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한 임원분께서 제 이력서를 잽싸게 살펴보시더니 뜬금없이 다른 임원분들께 자랑을 하시더라고요. ‘허병민 씨가 미국에서 살다 왔는데, 영어가 아주 그냥…’ 옆에서 그 말을 들은 사장님께서 저에게 바로 물어보시더군요. ‘영어로 지원 동기를 얘기해보세요.’ 드디어 끝내줄 때가 왔구나, 싶었는데 웬걸요. 갑자기 머릿속이 하얘지더니 영어로 막 버벅대기 시작하는 거예요. 뭐, 그 길로 다 끝난 거지요. 집에 돌아오면서 처음엔 분하고 억울하더라고요. 누구나 준비해두는 그깟 지원 동기 하나 영어로 말을 못 해서 떨어졌다고 생각하니 열 받더라고요. 그런데 곰곰이 다시 생각해보니, 당연한 결과였어요. 왜냐? 제가 기자라는 직업에 대해서 별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거예요. 저에겐 국내에서 소위 가장 파워가 센 신문사에 들어가는 게 중요했던 거지, 기자라는 직업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거지요. 내가 무엇을, 왜 하고 싶은지, 그 일과 관련해 어떤 그림을 그려나가고자 하는지에 대한 최소한의 자기만의 생각이 있어야 하는데, 완전히 주객이 전도됐던 거예요.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국 내가 갖고 있는 욕망이나 욕구와 같은 ‘본질적인 것’보다는 주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바라보는지와 같은 ‘비본질적인 것’에 매달렸던 거지요.”


대학 재학 중 가수 및 비보이 활동, 전국 연합서클 회장, MBC 라디오 보조작가, 하이텔 온라인 잡지 편집위원, 여성신문 대학통신원, 월간 《사진》 평론 활동 등 다양한 활동을 했는데 사회생활에 도움이 되던가요.


“사회생활이라는 게, 결국 ‘혼자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가 본질이거든요. 제가 대학을 다닐 때 다양한 활동을 했던 건 사실이지만, 그것이 사회에 나와서 도움이 됐던 측면은 딱 하나였던 것 같아요. 좀 더 빨리 사람들과 친해지고 익숙해졌다는 것. 쉽게 말해 센스와 눈치를 갖췄다는 거지요. 사회생활은 남과 어울리는 것이 핵심이고, 그건 이전의 ‘나 중심’에서 ‘너 중심’ 혹은 ‘우리 중심’으로 프레임이 바뀐다는 거예요. 대학을 졸업하는 것도 ‘졸업’이지만, 이거야말로 진정한 ‘졸업’이자 또 다른 의미에서의 ‘입학’이지요. 주변 사람들과 함께 발맞춰 나가기 위해 뭘 갖추고 보완해야 하는지, 뭘 좀 더 주의하고 신경 써야 하는지, 뭘 놓치지 말아야 하는지, 이런 요령들을 남들보다 더 빨리 캐치했다는 게 적지 않은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울산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청춘극장 GoStop 강연 토크 콘서트’에서 ‘나를 알고 내 삶을 알면, 내 꿈에 가까워진다’를 주제로 강연하는 허병민 대표.

지금까지 펴낸 저서들을 보면 대부분 자기계발서인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요.


“첫 번째 책은 경제경영서, 가장 최근에 펴낸 책은 자녀교육서, 그 외 나머지 아홉 권이 자기계발서이지요. 2004년에 신춘문예를 통해 문학평론가로 등단한 후, 쭉 평론집을 낼 거라고 생각했어요. 혹은 아예 소설 쪽으로 가든가. 그런데 2008년에 마지막 직장이었던 LG생활건강을 그만두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평생 직업으로서 평론가는 소위 노력 대비 너무 지치고 위험하고 힘든 직업이더라고요. 저도 기왕이면 돈을 좀 벌면서 일하고 싶어 하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거든요. 소설가도 그다지 ‘안전’하게 느껴지진 않았어요. 제가 지금껏 해온 일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독자들과 나눌 수 있는 이야기들이 적지 않은데, 그것을 어떻게 풀어내는 것이 제 적성에도 맞고 독자들이 받아들이기에도 적절할까를 고민해보니 결국 자기계발서 혹은 에세이로 귀결되더라고요. 그때 에세이가 아닌 자기계발서를 최종적으로 선택한 이유는 에세이를 쓰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어깨에서 힘을 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제가 아직 그 정도의 그릇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해서이지요. 작가가 된 지 올해로 햇수로 9년째인데요, 최근에 에세이집을 한 권 계약하긴 했어요. 에세이 분야, 솔직히 100퍼센트 자신감이 있는 건 아니지만 마치 주사를 맞듯 언젠가는 맞닥뜨려야 한다고 생각했고, 마침 주변의 출판사 대표님 두 분이 ‘에세이를 쓸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해서 조금씩, 틈틈이 준비해놓았는데, 아무튼 이미 엎질러진 물, 잘 해봐야겠지요?”


지금까지 400여 명의 세계적인 석학·리더들과 컬래버레이션으로 책 작업을 해왔는데 특별한 동기가 있나요?


“앞으로 펴낼 《호모 콰렌스》와 《마지막 강의(가제)》, 《아이비리그 공부법(가제)》 등 최소 10년 이상은 해외의 세계적인 석학·리더들과의 컬래버레이션 기획작들을 계속 펴낼 계획이에요. 작년 하반기에는 그동안 컬래버를 통해 연을 맺어온 석학·리더들, 그 외 직·간접으로 함께 협업을 진행해온 다양한 전문가들과의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티랩이라는, 해외에서 활동 중인 해당 분야의 최고의 지식인들의 강연 및 전문 분야를 주선·연결해주는 프리미엄 에이전시도 설립했고요. 제가 이런 협업을 하는 이유는, 결국 제 목표의 종착지가 영미권이기 때문이에요. 제가 2008년에 작가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을 때 저 스스로 세워둔 목표가 바로 ‘영미권에서 작가 겸 연사, 컨설턴트, 코치로서 살아가기’였어요. 그동안 콘텐츠를 기획하는 것과 관련해 내공과 맷집을 키울 시간이 필요했고, 《최고의 석학들은 어떤 질문을 할까》를 준비한 2013년쯤부터 영미권에서 활동을 하기 위한 작업, 그 시동을 슬슬 걸기 시작했지요. 영미권에서의 제 인지도는 사실상 제로에 가깝기에 그동안 각 분야의 내로라 하는 석학·리더들과 함께 협업을 통해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여 왔던 것이고, 그렇게 조금씩 제 나름대로 그쪽 ‘바닥’에 다가가고 있었던 셈이에요. 아직은 숙성의 시간이 좀 더 필요하지만, 그간 쌓아온 네트워크와 그 과정에서 생산해온 콘텐츠가 이런 제 목표에 든든한 뒷받침이 되고 있는 건 확실해요.”

그동안 석학·리더들과 만들어온 책들 중 가장 많이 알려진 책이 《최고의 석학들은 어떤 질문을 할까》인데 허 대표가 보기에 최고의 석학들이 던지는 질문들의 공통점은 무엇이었나요.


“원래 이 책은 ‘석학·리더들이 자기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 아니라, ‘독자들이 자신의 인생을 한층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단 하나의 질문’을 석학·리더들이 직접 던져보는 것을 콘셉트 삼아 기획한 책이에요.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나 이 책에 참여한 석학·리더들 모두에게 하나의 도전이었던 셈이지요. 석학·리더들이 던진 질문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느낀 점은 크게 세 가지였어요. 첫째, 자신을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 것. 이것은 많은 경험을 통해 계속 자신과 맞닥뜨리면서 스스로 자연스럽게 깨달은 거라 생각돼요. 둘째, 의문을 갖는 것의 힘을 과소평가하면 안 된다는 것. 그들의 질문들을 보면서 평소에 의문을 갖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절감할 수 있었어요. 끝으로 자신을 존중할 것. 남의 시선이나 관점, 기준보다는 자신의 시선과 관점, 기준을 우선적으로 갖춰야 한다는 거예요.”


그들과 컬래버레이션 작업을 할 때 어려움은 없었나요.


“어려움은커녕 매 순간이 신났어요. 컬래버레이션을 해온 지도 햇수로 벌써 5년이 지나가고 있지만, 여전히 매일 매일이 기대되고 즐거워요. 그간 이것저것 재고 따지는 까탈스럽고 까칠한 분이 거의 없었어요. 워낙 유명하고 인지도가 있으신 분들이라,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처럼 대부분 굉장히 친절했고, 기본적으로 극강의 겸손함이 몸에 배어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이 어떤 일을 함에 있어 스스로가 거기에 어느 정도로 의미와 가치를 두고 있는지, 아울러 그것이 결과적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등을 무척 세심하게 고려하고 또 고민해요. 때때로 제가 기획자로서 ‘저렇게까지 생각할 건 아닌데’ 하고 생각할 정도로 깊게 파고들어가더라고요. 오히려 이런 게 어려움이라면 어려움이었던 것 같아요. 워낙 생각의 깊이와 넓이가 일반인들과는 다르다 보니 그런 것 같아요.”


1990년대 후반에는 가수 활동을 하며 앨범까지 냈는데요, 가수 활동은 왜 접었는지요.


“1998년 초, 한 기획사의 오디션을 통해 그룹 ‘피아노’라는 발라드 그룹의 3기 멤버로 발탁이 됐어요. 사실 멤버가 되기 전엔 몰랐는데, 과거 ‘오렌지 향기 속으로’(슈가의 ‘오렌지 향기 속으로’의 원곡), ‘체념’(샤크라의 ‘난 너에게’의 원곡)으로 좀 알려졌었던 그룹이더라고요. 저는 보컬 겸 작사가로서 4집에 참여했는데, 아쉽게도 저희 앨범은 상업적으로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어요. 앨범 준비는 1년 정도 했고, 1999년 상반기에 방송 활동도 좀 했었지요. 그리고 해산을 했습니다. 사실 ‘접었다’라고 할 수가 없는 게, 저는 가수가 되기 위해 오디션을 본 건 아니었어요. 대학가요제를 준비하다가 우연히 오디션 공고를 보게 됐고, 제가 개인적으로 추구하고 지향하는 음악적 색깔이 저와 맞는 것 같아서 지원했던 거거든요. 말해놓고 보니, ‘어쩌다 보니’ 한 게 되네요. 하하. 당시 그런 말은 했던 것 같아요. 해산할 때쯤이었나요, 나중에 각자 자기 분야에서 잘 자리 잡게 되면 다시 뭉치자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 저도 궁금하네요.”

재벌가 며느리를 대상으로 라이프 코칭을, 준재벌가 3세를 대상으로 유학 컨설팅을, 병원 원장을 대상으로 리더십 코칭을 진행하는 등 다양한 리더들을 대상으로 코칭을 진행해왔는데요, 무엇을 코칭하는 겁니까.


“말 그대로예요. 유학 컨설팅은 에세이나 자기소개서, 인터뷰 쪽으로 컨설팅을 하고요, 리더십 코칭은 리더십 쪽으로 컨설팅을 하지요. 다만, 제가 하는 유학 컨설팅은 주로 MBA나 로스쿨 쪽을 지망하는 분들에게 좀 더 포커스가 맞춰져 있고, 리더십 코칭의 경우 제가 작가로서 펴낸 첫 책인 《넥스트 컴퍼니》를 바탕으로 기업·조직 문화 혹은 CEO의 퍼스널 브랜딩 쪽을 주된 영역으로 파고들지요. 간혹 이러한 관계가 확장돼 자문역이나 사외이사 혹은 그와 유사한 역할을 맡겨주시기도 해요. 라이프 코칭의 경우 큰 틀에서 보자면 ‘자기계발·자기관리’이고, 세부적인 틀로 들어가 보면 셀프리더십, 변화·혁신, 동기부여, 마인드 리셋·리프레시, 잠재력의 발견, 비전, 성공적인 인생 설계, 삶의 자세, 프로의식 함양, 자존감·자신감 등의 토픽들로 세분화할 수 있어요. 사실 일반인을 대상으로 코칭을 하는 것과 리더들을 대상으로 코칭하는 것 사이에 큰 차이는 없어요. 단지 좀 더 정교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과, 만만치 않은 눈높이와 기대 수준을 충족시켜줄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는 것 정도?”


앞으로 또 어떤 변화를 보여줄 생각인지요.


“지금까지 해온 일들, 앞으로도 초심을 지키면서 스텝 바이 스텝, 묵묵하게 해나가고 싶어요. 지금까지 그래온 것처럼 한국에서는 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연사, 코치, 컨설턴트로서 최선을 다할 거고요. 향후엔 영미권에서 활동하는 작가가 되는 것. 목표는 간단명료해요. 해외에서도 작가가 되면 제가 가진 콘텐츠를 바탕으로 국내에서와 마찬가지로 강의와 컨설팅, 코칭 등을 해나갈 거고요. 결국 해외의 석학·리더들과 다양한 작업을 하는 것이 중·장기적으로 영미권에서 활동하기 위한 하나의 일환이자 포석이거든요. 원래는 2015년에 돌아가신 《마시멜로 이야기》로 유명한 호아킴 데 포사다 씨와도 영어로 공저를 펴내기로 했지만 지병으로 돌아가시는 바람에 스톱이 됐고, 내년엔 소설 《오두막》으로 널리 알려진, 저와도 친분이 있는 소설가 윌리엄 폴 영과 영어로 책 한 권 같이 저술하기로 한 상태인데, 이것이 아마 제 목표의 실질적인 출발점이자 초석이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상해봅니다. 앞으로 지켜봐주세요.”


글 jobsN 김성동 조선뉴스프레스 기자, 사진 서경리 기자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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