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한현민, 국내 1호 혼혈 모델입니다"

조회수 2020. 9. 23. 10:2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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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과 달라도 노력하면 할 수 있다
국내 1호 흑인 혼혈 모델 한현민
야구선수 꿈 포기→주목 받는 신인 모델
목표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모델이 되는 것'

2016년 3월, 한상혁 디자이너 ‘2016 F/W HEICH ES HEICH 패션쇼’. 검은 피부를 가진 모델이 런웨이에 나타났다. 검은 피부에 핑크색 머리. 그는 단연 돋보였다. 사람들은 외국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순대국밥을 가장 좋아하는 한국 사람이었다. 국내 1호 흑인 혼혈 모델 한현민(16)군 그렇게 세상이 자신을 알렸다. 데뷔한 지 약 1년 5개월. 국내 패션쇼 총 30개 이상, 해외 화보 촬영 등으로 정신없이 바쁜 한 군을 만났다.


인터뷰 내내 그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평소에 웃음이 많냐고 물었다. "항상 웃으면서 긍정적으로 생활하려고 노력한다"며 다시 한번 웃어 보이는 한 군. 영락없는 10대 소년이었다. 그는 나이지리아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말을 안 하면 외국인으로 착각하세요. 하지만 우리말 밖에 할 줄 모릅니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순대국밥입니다."

출처: jobsN
한현민 군

다른 사람의 시선이 싫었던 어린 시절

-다른 피부색 때문에 마음고생을 했나요.

"이태원에 살고 있어요. 워낙 혼혈인들이 많아서 친구들은 이상하게 느끼지 않았습니다. 다만 공공장소에 가면 모두 저를 쳐다보더군요. 싫었습니다. 길 가던 할머니들은 '왜 남의 나라에 와있냐'고도 하셨죠.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해지고 싶었어요."


-가장 힘을 준 사람은 누구인가요

"어머니입니다. 힘들었던 일을 이야기하면 ‘무시하면 된다’고 하셨어요. ‘그런 말에 발끈하면 너만 손해’라고 말씀해 주셨죠."

야구선수 포기하고 꾼 꿈, 모델

이제 그는 오히려 사람들의 시선을 즐긴다. 하지만 처음부터 모델을 하고 싶었던 건 아니다.

출처: 소속사 제공
어린 한현민 군과 항상 힘이 돼주었던 어머니

-원래 꿈은 무엇이었나요.

"야구선수를 하고 싶었습니다. 초등학생 때 야구부였습니다. 투수와 삼루수였죠. 아마 계속했으면 투수를 했을 거예요. 하지만 돈이 많이 들어서 포기했습니다. 밑으로 형제가 4명 있습니다. 졸업하면서 자연스럽게 그만뒀습니다. 아쉽긴 합니다. 이제 야구는 TV 중계나 경기장 관중석에서 즐기고 있어요."


-언제부터 모델에 관심이 생겼나요.

“중학생이 되고 패션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그때 자주 가던 PC방 아르바이트 형의 지인이 쇼핑몰을 운영했습니다. 저에게 ‘피팅 모델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어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5시간 동안 촬영했습니다. 재미있었습니다.”

DDP에서 한 결심 5개월 만에 이루다

'꼭 모델을 하고 싶다'고 다짐하게 된 계기가 있다. "2015년 10월, 체험학습을 갔어요. 사진 찍어 주시는 사진사 아저씨께서 꿈이 뭐냐고 물었습니다. 모델이라고 대답했죠. 2015년 봄·여름(S/S)시즌 서울패션위크 마지막 날인데 안 가냐고 묻더군요. 체험학습이 끝나자 마자 DDP(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로 달려갔어요."


서울패션위크는 서울시가 주최하는 패션 이벤트다. 1년에 2번, 봄·여름(S/S)과 가을·겨울(F/W)시즌에 맞춰 3월과 10월에 DDP에서 열린다. 디자이너들의 패션쇼가 메인 행사다. 패션 관련 팝업스토어와 다양한 이벤트도 진행한다.

출처: 소속사 제공
한 군의 데뷔 무대였던 한상혁 디자이너 ‘2016 F/W HEICH ES HEISH 패션쇼’

-DDP에 간 기분이 어땠나요.

"개성 강한 모델들과 소위 말하는 패션 피플이 많았어요. 모두 멋있게 차려입고 있었죠. 사진 작가들도 많았습니다. 패셔너블한 사람들을 찍으러 오는 거죠. 다들 플래시 세례를 받고 있었습니다. 저는 찢어진 청바지에 후드티를 입고 갔어요. 사진작가들이 거들떠보지도 않았죠. 제 자신이 초라해 보였습니다. '3년 안에 꼭 DDP 패션쇼에서 데뷔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요.

"학생 때라 돈이 많지 않았어요. 좋은 옷을 사 입을 수는 없었습니다. 모델처럼 포즈를 잡고 일상을 찍어 SNS에 꾸준히 올렸어요. 유튜브에서 패션쇼 영상을 유심히 봤습니다. 모델 워킹을 익혔습니다."


-성과가 있었나요.

"5개월 뒤, 모델 에이전시에서 만나자고 연락이 왔습니다. 연락받자 마자 바로 약속장소로 달려갔습니다. 만나자마자 대뜸 걸어보라고 하더군요. 보시더니 바로 계약하자고 했습니다. 그때 절 캐스팅 한 사람이 지금 SF 모델스 대표님입니다."

“달라도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습니다.”

2016년 3월, 패션쇼 무대에 처음으로 올랐다. 소속사와 계약한 지 2주도 안 됐을 때였다. 신인으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그게 시작이었다. 워킹도 고쳐야할 부분이 많았다. 수많은 모델 사이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노력했다.


"가을·겨울 한 시즌에만 HEICH ES HEICH, 슈퍼콤마비 등 16개 무대에 섰습니다. 화보 촬영도 많이 했어요. 처음으로 해외 촬영도 나갔습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습니다. "

출처: SF 모델스
한현민 군은 "무대에 설 때마다 즐겁고 촬영할 때마다 행복해서 힘든 줄 모른다"고 말한다. 런웨이를 걷는 한 군과 블링 화보

-가장 기억에 남는 쇼나 촬영이 있나요.

"올해 영국에서 한 슈퍼콤마비 화보 촬영입니다. 처음으로 해외에서 한 화보 촬영이었어요. 같은 촬영인데도 느낌이 다르더군요. 날씨, 장소, 촬영 분위기 모든 게 좋았습니다."


-모델로서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가요.

"장점은 긍정적인 성격이라고 생각합니다. 촬영장에서 좋은 분위기를 만들죠. 단점은 혼혈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한국 활동은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동양적인 컨셉의 쇼나 화보 촬영은 할 수 없죠."


-앞으로의 목표는요.

"해외 진출입니다. 비비안웨스트우드, 돌체가바나 같은 큰 무대에 서고 싶습니다. 혼혈 친구들에게 ‘남들과 달라도 노력하면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모델이 되고 싶습니다. 미래에는 그들을 위한 재단도 만들고 싶습니다."


글 jobsN 이승아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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