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속사 망했다"며 울던 아이돌 가수가 찾은 새로운 직업

조회수 2020. 9. 23. 10:21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아이돌 가수·UCC스타·뮤지컬 배우 거쳐 쇼호스트로 제 2의 인생
NS홈쇼핑 장성민 쇼호스트
2004년 아이돌 데뷔→2007년 UCC스타
쇼호스트로 새로운 도전

NS홈쇼핑 쇼호스트 장성민(32)씨는 매주 수요일 저녁 5시45분 ‘투맨스토리’ 방송을 진행한다. 파트너는 전석민 쇼호스트. "최근 3주 연속 완판 행진 중입니다. 6만원짜리 갈치 3500개를 40분만에 팔기도 했습니다."


이제 3년차 쇼호스트 장씨의 첫 직업은 아이돌이었다. 2004년 데뷔한 3인조 아이돌 그룹 지샵의 멤버였다. 전국을 돌며 방송과 공연을 했다. 하지만 동방신기·이승기·SG워너비·장윤정·린 등 쟁쟁한 가수들에 묻혀 1년 반 만에 활동을 접었다. 말하자면 망한 아이돌이다.


그도 인기를 끈 때가 있었다. 인기의 이유는 슬프지만 망했기 때문이다. 2007년 솔로 앨범을 준비하다 소속사가 망했다. 회사가 망했다는 영상을 찍어 인터넷에 올렸더니 세상이 그를 봐줬다. 하지만 잠깐이었다. 군대에 다녀오니 알아보는 사람들이 사라졌다.


뮤지컬에서 단역을 맡았다. 결혼식 축가를 불러 받은 돈으로 배를 채운 적도 있다. 청원경찰로 밤에 다른 사람의 재산을 지키는 일도 해봤다. 고생 끝에 찾은 직업이 바로 '쇼호스트'다. 그를 만나 쇼핑호스트의 삶에 대해 물었다. 

출처: 본인 제공
장성민 쇼호스트.

아이돌 가수, UCC스타 늘 최선을 다했다 

-어릴 적 꿈은 가수였나요.

“아뇨. 노래 부르길 좋아했지만 ‘음치’였어요. ‘네 노래 듣기 싫다’는 친구 말에 충격을 받아서 ‘음치클리닉’에 다니기 시작했어요. 동네 주민센터에서 여는 그런 강의요. 그런데 강사분이 ‘노래를 못하지만 목소리 톤이 좋고 힘이 있다’고 하셨어요. 음치가 가수 꿈을 꾸기 시작했어요. 노력하고 좋아지는 모습을 강사분이 기획사에서 일하던 지인에게 '아이돌 멤버'로 추천했죠.”


그는 2003년 단국대 뮤지컬학과에 수시합격을 했다. 그해 중순부터 6~7개월 동안 연습생 기간을 거쳐 2004년 2월 데뷔했다. 그러나 1년 반만에 팀이 해체됐다. 별 반응이 없었기 때문이다. 소속사를 옮겨 솔로 데뷔를 준비했다. 하지만 2005년 말 소속사가 망했다.


“부모님이 동네 사람들에게 ‘아들 앨범이 곧 나온다’고 말하고 다니셨답니다. 방송 데뷔 날짜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집에 앨범과 홍보 포스트가 5000장씩 쌓여 있었어요.” 

출처: 본인 제공
아이돌 그룹 지샵으로 활동할 때.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다’는 생각에 직접 홍보에 나섰다. 음반을 들고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으로 나갔다. 종로·명동·광화문·강남을 돌아다니며 길거리 공연을 했다. 카페나 의류매장에 들어가 ‘앨범을 그냥 드릴 테니 노래를 틀어달라’고 부탁했다.


2006년은 UCC(사용자 제작 콘텐츠·User Created Contents)가 한창 인기를 끌 때였다. UCC는 지금 유튜브나 아프리카TV 같은 1인 방송의 시초다. 자신의 어려운 상황을 보여주는 영상을 직접 찍기로 했다.


‘소속사가 망했어요’라는 문구가 적힌 종이를 벽에 붙이고 마이크 대신 숟가락을 들고 카메라 앞에 섰다. 검은 선글라스를 꼈다. ‘앞날이 깜깜하다’를 상징하는 소품이었다. 여러 포털사이트에 영상을 올렸다. 포털사이트가 ‘화제의 영상’으로 소개했다. 댓글이 수백 개씩 달렸다. 같은 콘셉트로 영상을 두어개 더 찍어 올렸더니 이름 석자가 검색어 1위를 차지했다. 각종 방송에서 그를 앞다투어 소개했다. 

소속사가 망했어요 1편 영상 캡처
출처: 본인 제공
각종 포털사이트 실시간 인기 검색어에 올랐을 때.

-하루아침에 벼락스타가 됐네요.

“이순재 선생님과 UCC 홍보대사로도 활동했어요. 전국에 공연을 하러 다니느라 차 뒤에 무대의상이 꽉 차 있었죠. ‘소속사가 망했어요’라는 제목으로 앨범도 냈어요. 1년 동안 6~7개 정도 영상을 올렸는데 조회수를 다 합치면 1000만건을 나올 겁니다.


삶의 첫번째 전성기였고 나름 보람도 느꼈어요. 암 투병 중인 환자분이 한라봉 한 상자를 보내주시면서 ‘인생을 포기하고 있었는데 당신 덕에 힘이 난다’는 편지를 써주신 적도 있습니다.”

출처: 본인 제공
'소속사가 망했어요'로 활동할 때 모습.

-왜 계속 앨범을 내지 않았나요.

“부모님이 ‘망한 가수’라는 이미지를 싫어하셨습니다. 어머니가 불면증, 우울증 치료를 받으실 정도였어요. 운영하던 식당도 접으셨죠. 게다가 ‘망한 가수’ 이미지 때문에 새 소속사를 찾지 못했어요. 관계자 한 명이 저를 마음에 들어해도 다른 관계자들이 곤란하다고 했습니다.”


2007년 초 입대했다. 제대를 해도 23세이니 다시 시작해도 늦지 않은 나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제대 후 잘못된 생각임을 깨달았다. 트랜드가 달라진 것이다. 소녀시대·빅뱅·원더걸스가 등장했다. 이전 아이돌과는 차원이 다른 ‘새로운 아이돌 시대’였다.  

'쇼호스트'로 새로운 도전 

-당시 생계를 어떻게 꾸렸나요.

“뮤지컬 오디션을 보러 다니면서 배역을 땄어요. 중요 배역은 아니지만 무대에 오르고 노래를 부를 수 있으니 좋았습니다. 공연 한번에 2만~3만원을 받았어요. 뮤지컬은 보통 한 배역에 2~3명을 캐스팅해요. 그러다 보니 일주일에 공연을 한번 할 때도 있습니다. 생계를 꾸리기에 부족했죠.


주말에는 결혼식 축가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한번에 10만원을 받았어요. 많으면 하루에 5~6건을 할 때도 있었습니다. 은행에서 청원경찰 일도 했구요.”

출처: 본인 제공
뮤지컬 배우로 활동했던 시절

먹고 사느라 정신없이 지내다 정신을 차리니 나이 서른 직전이었다. 기업 취업을 생각하다가 포기했다. 토익 점수도 자격증도 없었다. 스펙이랄 게 전혀 없었다. 뮤지컬 전공과 연예 활동 경력은 기업 입사엔 쓸모가 없었다.


-쇼호스트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가 있나요.

“2014년 여름 ‘홈쇼핑 방청 알바’를 했습니다. 남자 쇼호스트 2명이 ‘장어’를 팔았는데 방송 전 계속 공부하고, 상품 배치를 두고 토론을 했습니다. 그 모습이 프로 같았어요. 평소 홈쇼핑 방송이 재밌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요. 방청객과 대화도 주고받으면서 즐겁게 방송을 하더라구요. 대본도, 프롬프터도 없었어요. 그때 가슴에서 뭔가 끓어오르면서 ‘하고 싶다’,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각을 실행으로 옮겼다. 학원이나 아카데미에 다니는 대신 인터넷에서 동영상을 보고, 자료를 찾아 연습했다.


2014년 가을 NS홈쇼핑 채용 공고가 떴다. 이력서에 연예 활동 경험을 적긴 했지만 ‘연예인 출신이니까 잘 할 수 있다’는 점을 어필하진 않았다. 그보다 UCC 영상 제작, 자체 홍보 활동 같은 과거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아이디어가 풍부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서류 전형을 통과한 후 카메라 테스트 겸 상품 PT를 10분 동안 치렀다. 심사위원이 지켜보는 가운데 10여개 상품 가운데 한개를 골라 쇼호스트처럼 상품을 파는 시연을 해야 했다. 그는 대부분 지원자들이 패션·미용 상품을 고를 때 ‘쌀’을 골랐다. 옷은 직접 입으면 되고, 화장품은 직접 바를 수 있었다. 하지만 쌀은 그 자리에서 먹을 수 없었고 화려해 보이지도 않았다. 

출처: 본인 제공
전석민 쇼호스트와 투맨스토리를 진행하고 있다.

-경험이 없었을 텐데 어떻게 했나요

“PT시험 전 상품 분류별로 어떤 내용으로 말할지 준비했어요. 식품이면 설렁탕 가게를 했던 어머니 이야기를 하고, 의류면 ‘제일 중요한 날 입고 싶은 옷’이라는 식으로 말하고, 건강기능식품이라면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는 말을 해야겠다고 미리 생각했어요. 쌀아 나오면 이리 하겠다 생각해둔 대로 ‘저희 집을 설렁탕 가게를 한 적이 있어서 밥맛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다’는 말을 했어요.


당시 심사위원 중 한분이 ‘왜 쌀을 골랐냐’고 물어보셨어요. ‘NS홈쇼핑이 식품을 많이 파니까’라는 뻔한 대답을 하지 않을까 해서 질문했을 겁니다. ‘다른 회사 면접에서도 쌀이 있다면 쌀을 선택했을 거’라고 답했습니다. ‘제 경험을 빗대어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상품이어서 골랐다’고 답했습니다.”


그는 임원 면접과 연수 기간을 거쳐 2015년 1월 정식 입사했다. 대부분 쇼호스트는 1~2년 동안 계약직으로 일하며 회사에 출퇴근한다. 계약이 끝나면 1년마다 계약을 다시 하는 전속 프리랜서로 일한다. 회사와 쇼호스트가 1대1 연봉 계약을 한다.


매출 실적, 업체와 직원의 평가를 바탕으로 연봉 계약을 한다. 장씨는 2년 동안 계약직 사원으로 근무했다 2017년부터 NS홈쇼핑 전속 프리랜서로 활동 중이다. 보통 홈쇼핑 쇼호스트 초봉은 3500만원 전후인 것으로 알려졌다. “NS홈쇼핑 초봉은 다른 홈쇼핑 업체보다 조금 높다고 알고 있어요. 평가가 좋아서 계약 연봉이 꽤 올랐습니다. 억대 연봉은 아닙니다. 억대 연봉을 받는 스타 쇼호스트는 극히 일부입니다.” 

출처: NS홈쇼핑 제공
장씨가 고정으로 맡아 진행하는 '투맨스토리'와 '건쇼'.

도전을 망설이지 않으면

-직업, 진로를 두고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쉬운 성공은 해도 인정받기 힘든 것 같습니다. 어려움과 도전이 있어야 남들도 인정합니다. 과거 실패를 곱씹기보다 지금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것만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최근 장씨처럼 아이돌·뮤지컬 배우 출신 이외에도 개그맨, 아나운서 등 방송경력을 가진 사람들이 쇼호스트에 도전하고 있다. 인지도 있는 쇼호스트들이 시청자들에게 신뢰를 주기 때문이다.


-연예인이 쇼호스트 영역을 침범한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단순히 인지도가 있다고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노력해야 합니다."


홈쇼핑에서 허위나 과장 상품 소개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제재를 받는다. 소비자를 현혹하는 표현을 쓰지 말아야 한다. ‘최고’, ‘최상’이라는 단어도 쓸 수 없다. ‘상위 0.1%만 먹을 수 있다’는 식의 근거 없는 말을 해서도 안된다.

출처: 본인 제공
장씨는 2016년 롯데홈쇼핑 한빛나 쇼호스트와 결혼했다.

-장성민 쇼호스트만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제품을 만드는 과정을 취재하러 갑니다. 그 모습을 영상에 담아 소개해요. 또 상품을 일정 기간 써봐요. 물건을 어떻게 관리하고 배달하는지 물류 공장에도 갑니다. ‘소비자 대신 물건 품질을 확인해 본다’는 신뢰감을 줄 수 있어요.”


고객상담센터에도 자주 들릅니다. 소비자들이 궁금해하는 부분이 뭔지를 알기 위해서예요. 가령 남성 전립선 제품이나, 여성 청결제 같은 경우에는 고객상담센터에 ‘택배에 상품 이름이 적혀있나요’라는 질문을 해요. 남들에게 보여주기 민망할 수 있으니까요. 방송만 하다 보면 소비자들이 뭘 궁금해하는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기 힘듭니다. 고객상담센터에 가면 놓쳤던 부분을 알 수 있습니다.”


-쇼호스트를 준비하는 후배들에게 조언한다면

"프로필 사진을 미리 찍어뒀으면 좋겠어요. 살 빼고 피부관리한 다음 프로필 사진을 찍는다며 미루는 경향이 있어요. 프로필 사진을 찍는 전문 스튜디오는 얼마 없어서 채용공고가 뜨면 붐벼요. 그렇다고 몇 년 전 사진을 내면 안됩니다. 회사마다 선호하는 이미지가 있으니 때에 맞춰서 찍어 두세요."


글 jobsN 이연주

jobarajob@naver.com

잡스엔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