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모델 대상→살 뜯기는 6년 공부로 '사시패스'

조회수 2020. 9. 22. 15:1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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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고시 합격한 슈퍼모델 출신 변호사 이진영
1997년 SBS 슈퍼모델 대상 이진영
연예계 떠나 2014 사법시험 합격
피트니스 대회 준비하는 등 도전은 '현재진행형'

"1997년 SBS 슈퍼모델, 영예의 대상은 이진영! 축하합니다."


스물 한 살 대학생 이진영은 어안이 벙벙했다. 큰 기대없이 출전한 대회였다. 무대에 오른 서른 다섯명 중 열다섯 안에만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결과는 3500명 중 1위였다.


1990년대는 미스코리아, 슈퍼모델을 비롯한 각종 선발대회가 텔레비전의 주요 컨텐츠였다. 대회 입상자들에겐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다. 연예기획사들은 억대 계약금을 제시하며 모셔가기 바빴다. 남들보다 훨씬 유리한 위치에서 연예계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이진영도 예외가 아니었다. 여러 곳에서 연예계의 '러브콜'을 받았다. 180㎝의 큰 키, 조막만한 얼굴, 서구적인 몸매와 마스크로 기대감을 한 몸에 받았다. "제2의 이소라"라는 기대가 나왔다.


20년이 지난 지금, 그는 '런웨이'가 아닌 '법정'에 서 있다. 슈퍼모델 1위에 올라 카메라 세례가 터지는 가운데 축하 꽃다발과 트로피를 받을 때만 해도 그가 변호사가 될 거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잡스엔(jobsN)이 2014년 제56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현재 'LnC법률연구소'에서 일하는 이진영(41) 변호사를 만났다. 

출처: 본인 제공
이진영 변호사의 변호사 신분증

-어려서부터 슈퍼모델을 꿈꿨나

"전혀 아닙니다. 어렸을 때는 농구를 했어요. 중학교 1학년 때 키가 이미 176㎝였습니다. 인천 부일여중 농구부 선수였습니다. 국가대표를 꿈꾸며 훈련에 매진했지만 훈련 중 부상을 입어 허리를 다쳤어요. 병원에서 디스크 진단을 내렸죠. 농구선수의 꿈은 그 때 포기했어요. 허리 때문에 고생하면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대학 입학 시험에서 본고사와 논술까지는 볼 수 없었고 수능을 치러 1995년에 동국대 영문과에 전액장학금 받고 수석입학했어요."


-슈퍼모델 대회에 출전하게 된 계기는

“어렸을 때부터 키가 크다보니 주목 받을 일이 많았습니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감각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죠. ‘모델같다’, ‘모델 해보지 그러냐’는 말을 자주 들었어요. 대학 입학 후에도 딱히 뚜렷한 꿈이 없었구요. 당시 크고 작은 모델 선발대회가 많았습니다. 무대 위 모델들을 지켜보며 '예쁜 추억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훈련을 받으면 허리디스크 때문에 틀어진 자세도 교정하고 살 또한 뺄 수 있을 것 같았죠. ‘모델라인’이라는 아카데미이자 에이전시를 찾아갔습니다. 아카데미에서 모델 대회 출전을 준비했습니다.”


-처음 출전한 대회에서 어떻게 대상까지 수상하게 됐나

“어릴 때 농구선수로 뛰어서인지 승부욕이 강한편입니다. 한 번 도전한 것은 끝을 봐야만 직성이 풀려요. 1997년 SBS 슈퍼모델 대회에 출전 하기 전, 백화점과 대형 쇼핑몰 주최 모델대회에도 출전했습니다. 1년간 출전한 세번의 대회에서 모두 1위를 수상했습니다. 재능이 아주 없지는 않다고 느꼈습니다. 슈퍼모델 대회를 준비할 때도 그랬습니다. 대회 후보자들은 3개월동안 합숙에 참가해야 했습니다. 하이힐 한 번 신어본 적 없던 제가 발에 물집이 잡힐 때까지 워킹연습을 했죠. 탄수화물은 모두 끊고 각종 효소만 먹어 살을 12~13kg 정도 감량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4년제 대학에 다니는 학생이 전문 모델대회에 출전하는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대회 경쟁자들의 따돌림에 오기가 생겨 이 악물고 준비했죠.”


-슈퍼모델 대상 수상자가 된 후의 생활은 어땠나

“학교를 휴학하고 얼마 정도 모델 활동을 했습니다. 모델의 진로를 확실히 결정하지 않은 상황에서 많은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니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대상 트로피가 '정말 내 것이 맞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이 나를 과대평가하는 것 같았어요. 살 빼고 워킹 연습하는 등 노력을 했다고는 하지만, 키와 외모라는 타고난 것만으로 평생을 살아가도 괜찮은 걸까하는 고민이 들었습니다.


전문 모델인도 아니고 대학에서 공부하는 학생도 아닌 애매한 제 정체성도 버겁게 느껴졌습니다. 함께 일하는 모델 동료들 사이에서 겉도는 것 같았구요. 한번은 외국 모델들과 같은 무대에 서게 된 적이 있었습니다. 영어로 외국 모델들과 백스테이지에서 대화를 나눴는데 그 일로 선배 및 모델 동료들에게 '공부 좀 한다고 잘난척 한다'며 욕을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딸을 낳는다면 항상 경쟁자들의 시기와 질투를 견뎌야만 하는 모델 활동을 추천해주진 않을 것 같아요."

출처: 본인 제공
LnC 법률연구소에서 회의를 진행하고 있는 이진영 변호사

-학교에 복학해서는 어떻게 생활했나

"모델 활동을 하며 억울한 상황들을 경험한 뒤, 나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었습니다.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공식적인 절차를 통해 대항하는 방법을 알아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법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2000년 학교에 복학한 뒤 교양과목으로 법학개론을 들었어요. '슈퍼모델이 법전을 들고다닌다' 며 말들이 많았죠. 오해와 소문이 무성했습니다. 이제는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것에 크게 신경쓰지 않지만 당시는 힘들었습니다.


법학과 수업을 수강하는데 뒤에서 ‘법대생을 유혹해 결혼하려 한다’는 말이 들렸습니다. 그럴수록 ‘성적으로 증명하자’며 마음을 다잡았죠. 학교에 복학한 뒤 다음 중간고사와 기말고사에서 전교 1등을 했습니다. 처음엔 한자로 된 법전이 정말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하루에 30페이지 정도 읽는 것도 엄두가 안났습니다. 옥편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공부했던것 같아요. 그래도 외면적인 것으로 늘 평가받고 비교당하는 연예계 생활보다 지식을 쌓아가는 공부가 심적으로 더 편하게 느껴졌습니다."


-고시생활 중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중학교 때부터 앓던 고질병인 허리디스크 때문에 가장 힘들었습니다. 학원에 의자와 책상이 고정된 교실이 있었는데, 키가 커서 불편했던 기억이 납니다. 꼼짝 않고 8~9시간 이상 앉아 공부하는데 허리 통증이 정말 심했습니다. 짬을 내 걷기 등의 운동을 하며 버텼습니다. 나중엔 허리에 파스를 하도 붙여서 살갗이 다 떨어져 피가 나더군요. 사법고시에 최종 합격하기까지 1차 시험을 총 3회 합격했습니다. 2차 시험은 5번 본거죠. 2014년 사법고시를 치를 땐 1차 합격 후, 2차 시험을 보기 전까지 8개월동안 갇혀지냈습니다. 주택에 살았는데, 꼭대기 3층 옥탑방에 저를 가뒀거든요. 식사는 어머니가 2층에서 쟁반에 담아 넣어주셨구요. 정말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온 정신을 집중해 꼭 시험에 통과하고 싶었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깜깜한 터널 속을 간신히 숨쉬며 걸어가는 기분이었습니다.”


-시험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나

“한 번 시작했으니까 포기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돌이켜보면 힘들었던 모델 활동의 기억이 한편으로는 힘이 됐던 것 같습니다. SBS슈퍼모델 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뒤 세계모델 대회에 한국 대표로 출전했었습니다. 미국의 방송인 겸 모델인 타이라 뱅크스(Tyra Banks)가 진행하는 쇼였는데, 전 세계에서 최고의 슈퍼모델이 모여 경합하는 자리였죠. 그곳에서 워킹 잘한다고 칭찬도 받았습니다. 대회 당시 룸메이트가 인도 모델이었는데, 그 친구가 3일간 안씻어서 나중에 스태프가 방에 들어오자마자 헛구역질을 하더군요. 냄새가 너무 나서요. 그런 젊은 시절 즐거운 기억들이 팍팍한 고시생활의 버팀목이었습니다.”

출처: 본인 제공
이진영 변호사의 평소 모습

-2014년도 사법고시 합격 이후 큰 화제가 되었다.

“수백 군데서 연락이 왔습니다. 기사가 쏟아지고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한동안 내 이름이 오르내렸습니다. 그 날은 밖에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휴대전화 전원도 꺼놨죠. 전 6년간 고시공부를 하면서 폐쇄적인 생활을 보냈습니다. 세상에 나오기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다고 느꼈습니다. 사법연수원에 입소하기도 전이었는데, 슈퍼모델 대회 출신 법조인이라는 타이틀로 집중 조명을 받으면 연수원 동기들에게 피해를 줄 것 같았습니다.”


-사법연수원 생활은 어땠나

“조용히 생활하고 싶었는데 부회장이라는 직책을 맡았습니다. 의례적으로 여성 합격자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이 부회장이 됩니다. 남성 최고령 합격자가 회장을 맡구요. 연수원 동기들을 보면서 ‘다들 이래서 시험에 통과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험은 끝날때까지 끝난게 아니었습니다. 사법연수원에 입소하면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7시간씩 2주간 시험이 이어집니다. 시험 중간에 점심을 먹으라는 방송이 나오면 모두 웃죠. 점심을 먹으러 다녀올 수 있는 시험 분량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2주내내 초콜릿이나 김밥 등으로 끼니를 때우는데 살이 3~4kg은 쭉쭉 빠집니다. 글씨를 너무 많이 써서 손목과 팔에 모두 마비가 온 적도 있습니다. 화장실 갈 시간조차 없어 방광염에 걸린 연수원 동기도 있었습니다. 세상엔 독한 사람들이 정말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출처: 본인 제공
"20대보다 지금의 여유롭고 편안한 모습이 더 마음에 든다"는 이진영 변호사

-최근 변호사 시장도 많이 어렵다고 하던데

“변호사가 매년 1500명씩 쏟아지는 시대입니다. 돈 벌겠다는 생각을 했으면 법조인의 길을 가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투철한 사명감이 없다면 이 길을 추천하고 싶지 않아요. ‘이럴 줄 알았으면 고시 안봤다’고 말하는 분들도 봤습니다. 특히 여성 법조인에 대해서는 아직 의뢰인들의 신뢰가 약한편입니다. 의뢰인 입장에서는 수임료가 부담스러운데 여성 법조인에게 맡기기엔 위험이 크다고 느끼는거죠. 수임료를 기본 500만원정도 받는다고 하면 1심까지 기본적으로 6개월이 걸립니다. n분의 1을 하면 한달에 100만원이 채 안되는 금액입니다. 그 기간동안 계속해서 의뢰인과 상담하고 법정에 가야 합니다. 자신만의 전문적인 분야를 특화시켜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게 현실입니다. 이타심이나 사회에 기여한다는 고민 없이 단지 안락한 삶을 바라고 법조인의 길에 들어선다면 분명 후회할 겁니다.”

출처: 본인 제공
오랜 고시공부 끝에 상해버린 오른손

-앞으로 계획은

“변호사 활동을 열심히 하며 계속 새로운 분야에 도전할 계획입니다. 올해나 내년쯤 피트니스 대회 출전 계획도 갖고 있습니다. 제가 도전하는 모습을 보며 다른 사람들도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도전은 두려운 게 아니라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농구선수를 꿈꿨다가 모델이었다가 변호사가 된 사람도 있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지금 모습에 안주하고 싶지 않아요. 도전을 통해 제 자신을 깨뜨릴 때 가장 큰 행복을 느낍니다. 현재 한국모델협회, 뷰티스스타 피트니스대회, 아놀드홍짐, 토리코리아 등의 고문변호사로 활동중입니다. 모델출신이다보니 관련 업계에서 법률적으로 문제가 생겼을 때 자문을 받기 위해 의뢰가 들어오는 편입니다. 저만의 독특한 커리어로 개성있는 변호사 활동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요즘 20대들 사이에서 욜로 (You Only Live Once) 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그 단어에서 공허함을 느낍니다. 물론 젊은 세대들에게 놓인 길이 사회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압니다. 인생에 어려움이 있고 그걸 이겨낼 때 즐거운 것 아닌가요? 남들이 다 하니까, 누가 시켜서 선택하는 길에는 고민이 없습니다. 깊은 고민이 없으면 그만큼 포기와 타협도 쉬울 수밖에 없죠. 자신만의 길에 도전해 그 길의 끝에서 성취감을 맛보라는 조언을 하고싶습니다. 

출처: 본인 제공
피트니스 대회에 출전 준비중인 이진영 변호사

단순히 경쟁레이스에서 승리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저는 모델 활동을 했던 20대의 화려한 모습보다 지금이 더 아름답고 편안하게 느껴집니다. 당시 사진들을 보면 치열한 연예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잔뜩 가시가 돋아나있던 제 모습이 보여요. 한 사람을 밟고 올라가야만 설 수 있는 연예계보단 나만의 실력을 갈고닦아 시험을 치르는 고시생활이 더 편했습니다. 아마 연예계의 길을 갔다면 지금처럼 주위를 둘러보고 다른 사람들을 도와줘야겠다는 마음을 갖진 않았을 것 같습니다. 지금 현재 자신만의 쾌락과 즐거움을 위해 살기보단 어려움이 수반되더라도 보다 의미있는 일, 가치있는 일을 찾기를 바랍니다.”


글 jobsN 김지아 인턴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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