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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 인생→매달 1000만원까지 버는 직업 찾은 30대

조회수 2020. 9. 22. 11:4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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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직업'이라는 편견 깨는 34세 젊은 간판업자
불황에도 타격 덜받는 '간판업자' 정원근씨
"전주 일대 간판 대부분 만들었다"
25세 때 간판일 시작해 11년차 베테랑

'간판업'은 경기 불황에 영향을 덜 받는 업종 중 하나다. 불황이면 구조조정을 당하거나 권고사직으로 퇴직하는 40~50대 가장들이 자영업을 시작하면서 오히려 간판 제작 수요가 늘어난다. 최근에는 취업난까지 더해져 창업에 뛰어드는 20~30대 젊은 사장들도 많다.


전주에서 간판업을 하고 있는 정원근(34)씨는 이 업에 뛰어든지 11년차다. 2007년 일을 배우기 시작해 2008년 창업했다. 옥외광고·간판 등을 제작하고 설치한다. 명함과 전단지도 만든다. 회사는 전주에 있지만 서울, 부산, 천안, 제주도에서도 그를 부른다.


"전주에만 광고업체가 700개, 전북 전체에 3000군데 넘게 있는데 저희가 메이저라고 자부합니다. 한달에 15건 정도 간판을 설치하는 것 같습니다."


불황기인 지금 그의 월수입은 최대 1000만원. 10년 전 15평짜리 사무실은 2층짜리 건물로 바뀌었다. 젊은 나이에 간판업을 시작해 자리 잡기까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청년들에게 간판업에 도전해보라고 조언한다. 그는 "학력, 스펙이 변변치 못해 직업을 구하기 어려웠다"며 "가진 것 없더라도 간판은 도전해볼만하다"고 말한다. 

출처: 정원근씨 제공
"전주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저희가 만든 간판을 많이 봐요. 희열과 보람을 느낍니다." 그는 전주에서 'LED광고백화점'이란 옥외광고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공부에 영 소질 없던 청년의 간판업 도전기

그는 전북 부안 '위도'라는 섬에서 자랐다. 부모님은 '김' 양식을 했다. 학창시절 공부보단 운동에 관심이 많았다. 체육관에 다니며 태권도, 유도 같은 운동을 배웠다. 하지만 형편이 어려워 운동을 계속하지 못했다.


대학 시절엔 '알바 인생'이었다. 전주의 한 대학 경영학과를 다니며 주차 요원, 과일 장사, 경호·보안 아르바이트를 했다. 주로 시급을 많이 주는 야간 알바를 했다. 새벽에 알바갔다 학교 가고, 수업이 끝나면 다시 알바를 하러 갔다. 학비를 벌기 위해 알바를 했지만 시간이 없어 공부를 더욱 멀리할 수밖에 없었다. 졸업 후 백화점에서 보안요원으로 일했다.


"군대에 다녀온 후에는 알바 경력을 살려서 관련 기업에 취업하려 했어요. 백화점 보안 일을 한 이유는 한달에 6번 있는 휴무일을 마음대로 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때 면접을 보러 다닐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GS리테일, 삼성 에스원 같은 곳 기업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번번이 탈락했다. 미래가 암울했다.


"백화점 9층 옥상에서 밖을 내다봤어요. 광고 간판이 정말 많더라구요. '저렇게 많으니 굶어 죽을 일은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아무것도 없는 제가 도전하기에 비교적 문턱이 낮다고 생각했어요."

출처: 정원근씨 제공
간판을 설치하는 모습.

2007년 8월 사표를 내고 한 광고 자재 업체에 취직했다. 그는 "과거나 지금이나 간판업을 처음 배우려면 학원보다는 업체에 취직해서 실무를 배우는 게 낫다"고 했다. 정 사장도 채용공고를 보고 입사지원을 했다.


미용실에 가위나 약품을 파는 회사처럼, 광고 업체에 간판·현수막을 만들 때 쓰는 재료를 파는 곳이었다. 월급은 115만원. 공구 다루는 법, 앙카볼트·피스 박는 법, 선팅하는 법을 배웠다. 글자를 조각하는 씨앤씨(CNC)나 컴퓨터로 설계하는 캐드(CAD) 작동법을 익혔다. 전기 배선을 깔고 간판을 조립하는 법도 배웠다. 옥외광고사 같은 관련 자격증도 땄다. 옥외광고사 자격증 없이 회사를 차리면 불법이다.


정씨는 이곳에서 1년 동안 '수련 기간'을 거친 후 2008년 창업했다. 졸업 후 차곡차곡 모은 돈으로 월세 80만원, 보증금 1000만원에 15평짜리 작업실을 구했다. 주변에선 바로 회사를 차리는 건 '무모한 일'이라고 말렸다.


"프리랜서로 일한다면 자본금은 필요 없습니다. 저는 간판 디자인, 제작, 시공까지 다하고 싶어서 회사를 차렸습니다. 또 회사가 있어야 영업하기 쉬울 거라 생각했어요. 돈을 모두 까먹는다 해도 '다시 모으면 그만'이라 생각했습니다."   

출처: 정원근씨 제공
"패션 유행이 돌고 돌 듯 간판도 비슷해요. 70~80년대 유행했던 네온 사인을 요즘 많이 원하세요. 2000년대에는 고화질 사진이나 그림을 이용한 간판이 많았어요. 최근에는 단순하게 만듭니다. 옷매장이면 옷그림만, 안경점이만 안경 그림만 그려놓습니다."

착각이었다. 영업망을 뚫는 것은 쉽지 않았다. 간판업은 한번 계약한 고객이 다른 고객을 소개해주면서 거래처를 늘려간다. 고작 1년 동안 일을 배운 청년에게 일거리를 줄 사람은 없었다. 인터넷에서 입소문이 날 수 있도록 블로그를 운영했다. 간판 만드는 과정을 올려 고객이 신뢰할 수 있도록 했다. 프랜차이즈 박람회, 신축 상가를 돌아다니며 명함을 돌렸다.


"거래처 1~2곳을 뚫으면 그다음부터 신뢰가 생겨서 다음 고객이 찾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영업하러 다닐 때 '새벽에 급하게 물건이 필요하면 연락해달라'고 했어요. 큰 건물에 전날 없었던 현수막이 그 다음날 걸려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야간에 작업해서 새벽에 겁니다. 이런 작업물은 힘들어서 간판업자가 많이 꺼리죠. 꺼리니까 제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새벽 2~3시에 전화가 와도 고객에게 빵과 음료수를 사들고 달려갔다. 잠들 때 고객 연락을 받지 못할까 불안해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남들이 꺼리는 틈새시장을 공략하니 고객에게 신뢰를 빨리 쌓을 수 있었다. 한 고객이 다른 고객을 소개해주는 식으로 고객을 불려나갔다. 입소문이나 이디야 커피·투썸플레이스·두끼 같은 프랜차이즈 업체, 지역 건설사가 짓는 아파트에서 의뢰도 받았다. 지금은 같이 일하는 직원이 5명인 어엿한 '회사'가 됐다.  

출처: 정원근씨 제공
회사 직원들과 함께. (왼쪽) 맨 왼쪽 사람이 정씨다.

간판업자가 지켜야 할 원칙 

전국에 간판업체는 2만개로 추정한다. 수많은 간판업체 사이에서 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는 간판업을 하면서 몇 가지 원칙을 지킨다.


그와 회사 직원들이 간판 디자인·제작·설치까지 도맡는다. 보통 간판업체는 광고회사에서 제작을 의뢰한다. 광고회사에서 주는 디자인과 재료대로 '하청'을 받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회사는 하청이 아닌 '원청'회사다. 직원 중 디자이너가 2명 있고, 나머지 직원 3명은 정씨는 설계·용접·도색·설치를 한다.


"하청을 맡기면 의사소통이 늦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저희는 처음부터 끝까지 할 수 있기 때문에 작업이 빠르고, 고객이 원하는 대로 나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안전'을 우선으로 한다. 3.5톤짜리 크레인 같은 고가 장비를 갖고 있는 이유도 '안전'을 위해서다. 크레인은 높은 곳에서 안전하게 작업할 수 있도록 돕는 '고도 작업차'다. 대부분 간판을 설치할 때 높은 사다리를 쓴다. 가격이 1억원을 넘기 때문에 소규모 간판업체에서는 크레인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지 않다.

출처: 정원근씨 제공
작업중인 정씨.

"실제로 주변에서 작업하다 다치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안전하게 작업해야 작업물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습니다. 이외에 간판을 만드는 다른 억대 장비 여러개 갖고 있습니다.


사고가 나면 간판을 달지 못하고, 간판이 없으면 고객이 영업을 할 수 없어요. 간판을 만드는데 짧으면 하루가 걸리지만 길게 한달이 걸리기도 합니다. 불량이나 사고를 최대한 줄여야 해요. 작업자의 생명을 위협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이런 부분에 투자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출처: 정원근씨 제공

'천한 직업'이라는 편견 깨야

국내에서 소위 말하는 '단순노동'·'막노동'같은 몸을 쓰는 일은 외국인 근로자가 대신하고 있다. 제조업이나 건설 현장직에서는 한국의 젊은이를 구경하기 힘들다.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시작할 수 있는 천한 직업'이라는 편견이 있다.


간판업자는 기본 일당 20만원(하루 8시간 기준), 숙련자는 40만원을 받는다고 한다. 하지만 막상 겪어보면 돈 벌기 쉬운 분야는 아니다. 시작하기 전 꽤 오랜 시간 연습하고 공부해야 한다. 배워야 할 기술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일을 시작했을 때도 만만치 않다. 길바닥에서 일하기 때문에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더울 때나 추울 때나 작업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 정씨의 회사에서 일을 배우다 3~4개월 만에 그만두는 젊은이가 많다. "처음에는 간판 만드는 일을 재밌어해도 나중에는 힘들어하고 지루해하는 것 같아요. '내가 이 일대 간판, 현수막은 다 만든다'는 마음으로 도전하면 일을 훨씬 즐겁게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돈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간판업에 오래 종사하다 보면 거래처가 '외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 회사가 부도나면 돈을 받을 길이 없죠. 간판업에서는 이런 문제점이 제법 있습니다. 또 계약서상 사업주와 실제 사업주는 다른 경우도 있어서 처음 간판업을 시작하는 청년들은 꼼꼼히 따져봐야 합니다." 

출처: 정원근씨 제공
충남 내포 신도시에 있는 공무원 아파트 간판 작업 모습.

편견도 있고 일하기 수월한 분야도 아니지만 정씨는 누구보다 '간판업'을 귀히 여긴다. "뭘 하든 단번에 무언가를 이룰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다만 온갖 노력을 다해도 안되는 경우가 있죠. 하지만 간판업은 그렇지 않습니다. 땀 흘린 만큼 정직하게 돈버는 직업입니다. 가진 것 없이 노동력 하나로 먹고살아야 한다면 '간판업'만한 일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미래 전망도 좋다. 새 프랜차이즈가 생기면 간판 수요가 늘어난다. 경기가 안 좋으면 내부 인테리어와 간판만 살짝 바꿔 창업하는 경우가 많다. 간판도 유행을 타서 유행이 지나면 새롭게 제작해야 한다. "간판 제작은 단순노동도 아닙니다. 설계하고 제작, 설치까지 기술 없인 절대 할 수 없어요. 간판 만들기 위해 배운 기술이라면 앞으로 평생 먹고사는 데 지장 없습니다. 장담합니다."


그는 앞으로 형편이 어려운 자영업자들에게 무료로 간판을 제작하고 설치해줄 예정이다. "너무 낡아서 제역할을 하지 못하는 간판이 많습니다. 무엇보다 안전하지 못하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지금 전주시에선 자영업자가 시에 신고하면 간판을 무상철거해줍니다. 하지만 재설치를 해주진 않아요. 여력이 없어 간판을 쉽게 바꾸지 못하는 자영업자분들에게 작지만 큰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글 jobsN 이연주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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