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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아·불량 소년→세계를 놀라게 한 30대 한국인

조회수 2020. 9. 18. 15:1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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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베테랑 카레이서가 말하는 직업과 삶

한국 레이싱의 전설 유경욱

2016-2017 아시안 르망 시리즈 한국인 최초 우승

15일 2017 아우디 R8 LMS 컵 출전


중학 2학년 불량 학생으로 학업 중단. 미래가 없을 것처럼 보이는 꼬마였던 그는 10년이 지날 때쯤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에서 한국 최고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이제는 세계 최고를 노린다. 카레이서 유경욱(37·팀 아우디 코리아)이 이 인생역전 스토리의 주인공이다.


그가 속한 세계는 속도로 모든 것을 말하는 곳이다. 시속 300km를 넘나드는 속력. 차량 내부 온도는 60도 이상. 체감 무게 20kg의 핸들. 일반인이라면 움직이기도 힘든 중력 5배에 달하는 압력. 귀를 때리는 굉음. 이 모든 것에 맞설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용기. 카레이서란 직업의 업무 환경과 지원요건이다.


그는 한국 카레이서 가운데 독보적이다. 2001년 데뷔하자 마자 한국오프로드챔피언십 신인전 등 각종 신인무대를 휩쓸었다. 2011년엔 한국 모터스포츠 어워즈에서 '올해의 드라이버 대상'을 받았다. 후배 카레이서들은 그를 ‘존경하는 선수’로 꼽는다.


올 초에는 세계를 놀라게 했다. 한국인 최초로 2016-2017 아시안 르망 시리즈(Asian Le Mans Series) 최종전(4라운드)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아시안 르망 시리즈는 세계적인 권위를 지닌 ‘르망 24’의 아시아 버전이다. 오는 15일 전남 영암에서 열릴 ‘2017 아우디 R8 LMS컵’ 경기를 앞두고 있다. 5년 연속 출전으로 우승을 노린다.


이제 방송에서도 그의 얼굴을 자주 볼 수 있다. '무한도전'(MBC) '더 벙커' '탑 기어'(이상 XTM) 등에서 '스포테이너' 활약한다. 올해 16년차 베테랑 카레이싱 선수의 삶과 직업에 대해 들었다. 

출처: 유경욱 선수 제공
2016-2017 아시안 르망 시리즈 최종전에서 우승할 때 모습

◇화려한 전적: 육상선수→문제아→미케닉→선수 데뷔


초등학생 시절 유망한 육상선수였다. 하지만 갈수록 성적이 떨어져 중학교 1학년 때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운동만 알았던 터라 공부엔 관심이 없었다. 진로를 잃어버린 소년은 이른바 ‘불량 청소년’으로 지냈다. 파출소를 자주 드나들었고 문신도 했다. 공부는 더욱 안중에 없었다. 그러다 동네 오토바이 정비소 바닥에 널려진 부품을 보고 마음을 뺐겼다.


"주먹 만한 부품 3개를 분해하니까 톱니바퀴가 우수수 떨어졌어요. 그 작은 거 하나 들어있는 세계가 신기했습니다. '학생은 안된다', '졸업하면 오라'는 사장님에게 매달려 설득했어요."


학업을 중단했던 그는 중학교 3학년에 복학해 졸업까지 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동네 오토바이 정비소에서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한달에 15만원을 받았다. 학교는 머지 않아 그만두었다. “다른 친구들이 공부할 시간에 이걸 하면 ‘성공하겠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출처: XTM 인사이드 수퍼레이스 캡처
유경욱 선수와 유경사 감독

문제만 일으키던 동생이 진로를 찾자 친형도 나섰다. 당시 형은 프로레이싱팀 이레인에서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었다. 8살 차이 나는 형은 일찍 아버지를 여읜 집안의 가장이었다. 지금 이레인팀을 이끄는 유경사(45) 감독이다.


“형이 자격증을 따면 프로팀 미케닉으로 넣어준다고 했어요. 열 여덟살 때 경기도기술학교에서 6개월 만에 자격증 3개를 땄습니다. 태어나서 그렇게 열심히 공부해본 적이 없었죠. 그렇게 1년 후 형이 일하는 이레인에서 미케닉으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2001년 어느날 인생을 바뀌어 놓는 사건이 터졌다. 군입대를 준비하기 위해 원래 일하던 곳을 그만두고 WRC 랠리팀에서 잠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제가 미션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드라이버가 이상하다고 하더라구요. 손보고 다시 타봐도 랩타임이 자꾸 뒤로 밀렸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멀쩡한데 이상했죠. 답답한 마음에 제가 직접 타봤습니다.”


프로 선수보다 랩타임이 1.7초 빨랐다. 깜짝 놀란 감독이 3일 뒤 오프로드 레이스 신인전에 그를 내보냈다. 그는 출력이 낮은 구형 스쿠프를 타고 나가 우승을 차지했다. 모터스포츠계 역사적 사건이었다. 레이싱 훈련을 받아본 적 없는 미케닉이 우승이라니. 하루아침에 드라이버로 전향했다.

출처: 유경욱 선수 제공
(왼쪽) 2016 아우디 R8 LMS 컵 7라운드 3위 트로피와 함께.

◇슈퍼 루키의 등장


드라이버라고 신세가 나아지는 건 아니었다. 당시 한국 모터스포츠는 막 알려지던 참이었다. 월급없이 훈련을 받았다. 생활비는 아르바이트로 충당했다. 상황이 열악할수록 '성공하고 말겠다'는 투지에 불탔다.


그는 천생 레이서였다. 육상선수일 때 기른 민첩함과 순발력, 미케닉으로 일하며 쌓은 전문지식이 그를 더 빛나게 했다. 대회에 나갈 때마다 우승했다. 주변에선 그를 ‘천재’라 불렀다.


자신감이 하늘을 찌를만 했다. 3년 동안 출전한 18번 경기에서 예선은 모두 1등, 14번은 최종 우승을 차지했다. 2004년 바레인에서 열린 '포뮬러 BMW 아시아 시리즈'에서 종합 2위를 차지했다. 이 대회에서 높은 성적을 받으면 세계적인 F1팀 BMW-윌리엄스에서 테스트를 받을 수 있었다.


아시아 무대를 주름잡고 세계 무대에 도전하기로 했다. 2005년 독일로 떠났다. 그는 3년 연속 F3 챔피언을 한 독일선수와 함께 F3 테스트를 받았다.


F3는 4기통 이하 2000CC 이하 차량이 달리는 온로드(포장도로) 경기다. F2는 8기통 이하 3000CC 차량이, F1에서는 10기통 이하 3000CC 차량이 달린다. 보통 F3에서 실력을 쌓아 F2를 거쳐 F1 선수가 된다. 이틀 동안 한번은 상대편이 이기고 다른 한번은 그가 이겼다. 또 다른 한번 상대 선수가 이길 때도 간발차였다.

출처: MBC 무한도전, XTM 더벙커 캡처
방송에 출연했을 때 전문MC 못지 않은 진행실력 덕에 인기가 높았다.

모든 일이 잘 풀리는 듯했지만 갑자기 문제가 생겼다. 후원을 약속했던 곳에서 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전성기’를 맞았다고 자신할 때 쯤 제동이 걸린 셈이다.


“저말고도 계약할 선수가 많다고 했어요. 원래 분기별로 3억원씩, 1년에 총 12억원을 받기로 약속했어요. 그 약속만 믿고 한국에서 빚을 내 떠났는데 6일 만에 계약을 못하겠다는 통보를 받고 귀국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왔을 땐 이미 국내 시즌이 시작됐을 때 였다. 이미 선수가 정해져 그가 뛸 자리는 없었다. 2006년엔 소속팀 사장이 우승금을 갖고 달아나는 사기까지 당했다. 당장 빚을 갚기 위해 1년 반 동안 차를 시험 운행하는 브랜드 행사를 하고 공사장, 주유소를 전전했다.


2007년 포르셰 GT3 시리즈에서 선수로 복귀했지만 오랫동안 쉰 탓에 성적은 좋지 않았다. 하지만 재능과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다. 그해 2007-2008년 GT 마스터즈 시리즈 챔피언, 올해의 베스트 레이싱 드라이버 상을 받았다.

출처: 유경욱 선수 제공
그는 신인 시절 경기 중 차가 전복됐을 때 연료통에서 기름이 흐르는데도 전원 차단기를 누르지 않았다. '우승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분했기 때문이다. 차가 하늘로 날아갔을 때도, 어머니가 보는 앞에서 6중 추돌 사고가 났을 때도 몸이 아픈 것보다 '우승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괴로웠다.

다시 제 2의 전성기를 누리다 2013년 아우디로 이적 했다. 하지만 이때부터 슬럼프가 시작됐다. 2013 아우디 R8 LMS 컵 종합 6위, 이듬해 종합 7위를 했다.


“모터스포츠 규정상 비시즌에는 경주용 차를 타고 실전 연습을 할 수 없어요. 비시즌이 5~6개월 정도니 선수생활 반 동안 경주용 차량을 못탑니다. 할 수 있다 해도 훈련 비용이 수천만원씩 깨져서 함부로 할 수 없어요. 각종 대회에 참여해 '감'을 유지하는 수밖에 없어요.


상황이 이렇다보니 어느 순간 ‘연습도 못하는데 이정도면 잘하지 않나’하고 생각했어요. 경기를 앞두고는 ‘연습할 시간도 없는데 언제 차를 분석하냐’는 생각도 했습니다. 멘탈 관리가 안됐죠. 작년에 현실을 직시하고 나서는 근력 운동, 차 분석까지 빠짐없이 챙겼어요.”


덕분에 그는 오랜 슬럼프를 깼다. 2016-2017 아시안 르망에서 우승은 '한국인 최초'라는 의미도 있지만 그에겐 '죽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는 증표와도 같다. 

출처: 유경욱 선수 제공
(왼쪽) 아시안 르망 시리즈 우승 트로피와 함께.

◇레이싱 선수의 세계


그는 팀 아우디 코리아와 5년째 함께 하고 있다. 억대 연봉을 받는다. 레이싱 경기는 여러 라운드 시합에서 사장 많이 이기면 종합 우승을 차지한다. 종합우승을 해야 상금을 받는다. 보통 국제대회 상금은 6억~7억원 수준. 한국의 르망24로 불리는 'RACE123' 통합 우승자의 상금은 20만달러(약 2억3000만원)이다.


연봉보다 훈련과 시합을 지원해준다는 게 의미가 크다. 레이싱 선수는 일종의 연예인과 같다. 실력을 인정받아 레이싱팀에 스카우트를 받은 사람만이 최고 대우를 받는다. 최정예 기술자들이 경주용 차를 개조하고 정비한다. 아우디 슈퍼카(R8) 한대 가격은 2억원이나 경주용으로 개조하면 7억원으로 훌쩍 뛴다. 선수를 주축으로 한팀에 미케닉 3명, 엔지니어 1명, 매니저 1명이 있다. 헬멧·레이싱 수트·슈즈·글러브까지 선수가 몸에 걸치는 것만 1000만원 대다. 이렇게 따지면 소속팀에서 해주는 지원금 규모만 한해 수십억원이다. 

출처: 아우디코리아 제공

“타이어 한 개에 400만원인데 20분 만에 닳아버립니다. 욕심내면 1시간 정도 쓸 수 있어요. 3시간 훈련한다면 3600만원이 들죠. 브레이크 하나만 바꿔도 500만원이고, 경기장 대여료도 어마어마합니다.”


훈련도 사뭇 다르다. 레이싱 선수는 다른 종목 선수와 달리 실전 훈련을 하지 않는다. 근력운동을 할때도 우락부락한 근육보다 지구력을 기르는 훈련을 한다. “온 몸에 힘을 주는데 그중에서도 목 근육이 중요해요. 자칫 압력에 목이 꺾일 수도 있습니다. 20kg 짜리 추를 낀 벤치프레스를 목 위에 두고 윗몸일으키기를 해요. 또 제 차 운전석 뒤에 밴드가 걸려 있어요. 신호가 걸렸을 때 이마에 끼고 까딱까딱하며 운동하기도 합니다.” 

출처: 유경욱 선수 제공
경주용 차량 내부 모습. 사고가 났을 때 경주용 차는 산산조각 난다. 차가 부서지면서 충격을 흡수하기 때문이다.

그는 선수 중에서도 전투적이고 거칠게 운전하는 편이다. 사고를 여러번 당했지만 입원한 적은 없다. 그는 기억에 남는 경기로 2014 아우디 R8 LMS 컵을 꼽았다.


“1라운드 때 다른 차와 충돌해 중도포기 했어요. 2라운드에서 이전 라운드 성적대로 순서를 배정하는데 22대 중 19번째였어요. 한국에서 열린 경기라 꼭 잘하고 싶었는데 절망적이었죠. 이 악물고 달렸어요. 한바퀴 마다 한대씩 추월 해서 결국 4위로 들어갔습니다. 매니저랑 눈물을 한참 쏟았습니다. 역사를 썼다고 생각합니다. ”

출처: 유경욱 선수 제공
유경욱 선수는 경기 때마다 새 속옷을 입어야 하는 징크스가 있었다. 서랍장에 팬티만 400개가 있을 정도였다. 이외에도 10개가 넘는 징크스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얼마 전 이런 징크스를 모두 깼다. "징크스는 한번 생기기 시작하면 끝이 없어요. 시합을 앞두고 오히려 징크스 때문에 불안해집니다. 최근에 '오늘 한번 다 깨보자' 마음먹고 징크스를 깼습니다."

◇선수 한명을 정해놓고 즐기기 시작하라


모터스포츠는 월드컵, 올림픽과 함께 세계 3대 스포츠로 꼽힌다. 유럽에서는 한 회 2800유로(약 360만원)짜리 티켓이 매진될만큼 인기가 높다. 격렬하고 짜릿한 스포츠로 대중이 즐길만한 요소가 충분하지만 한국에선 인기가 없다.


“레이싱을 검색했을 때 선수보다 모델이 더 많이 떠요. 상대적으로 선수는 언론에 노출이 덜 됐어요. 레이싱 모델이 한국에 모터스포츠를 알렸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지만 선수 입장에서는 아쉬운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국내 모터스포츠도 마음만 먹으면 즐길 방법이 많다. 그는 모터스포츠를 즐기기 위해 ‘선수 한명을 지목하라’고 했다. 선수를 응원하면 관심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는 15일 영암에서 열릴 경기의 관람권 가격은 1만원이다. 페이스북 라이브(Facebook Live)로도 생중계한다.

출처: 유경욱 선수 제공

그의 꿈은 ‘드라이빙 스쿨’을 만드는 것이다. 카레이싱 선수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이 아닐까 했다. 하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계획이었다.


“일반인, 특히 공무원 대상 국가교육기관을 만들고 싶어요. 가령 저희 스쿨에서 운전교육을 받아야만 공무원이 될 수 있는 거예요. 일본 경찰들은 레이싱 단체에서 교육을 받아요. 범인이 차를 타고 도주할 때 차의 어느 부분을 부딪혀야 시민이 다치지 않게 차를 멈출지, 대통령을 경호할 땐 차가 어떤 대열로 가야 하는지 등을 배우죠.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습니다.”


화려한 겉모습에 레이싱 선수를 하겠다는 이들이 많다. 하루에도 '선수가 되는 법'을 알려달라는 메일이 수백통씩 온다. 처음에는 일일히 답변해줬지만 이젠 '(사)대한자동차경주협회'같은 단체를 알려준다. 한번에 수천만원씩 깨지는 훈련비를 말하면 그를 '사기꾼'이라 표현하는 이들도 있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일로 성공한 그에게 천운이 따랐다고 생각할 이들도 있다.


“저는 운칠기삼을 믿어요. 운이 7, 기술이 3이고, 기술에서도 사람이 미치는 기술은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우연히 정비소를 지나 간 것도, 홧김에 랩타임을 재봤다가 뜻밖에 재능을 발견한 것도 운이었죠. 하지만 운이 따른 다음에도 노력해야 합니다. 선수 생활 초반 4년 간 수입이 없어 알바와 막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빚 져서 나락까지 떨어진 적도 있어요. 노력과 운 중에 누가 먼저인지를 따지지 마세요. 준비되지 않아도 할 수 있습니다.”


글 jobsN 이연주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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