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림질 안해도 칼주름 순면셔츠로 연매출 350억원

조회수 2020. 9. 18. 15:1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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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물산 출신, '상사맨'으로 중동 누비며 수출

다림질 필요 없는 논 아이언 셔츠 개발하려 진땀

국내선 외면받은 중소기업 옷, 해외 브랜드 달면 12만원

‘Non-iron’


국내 한 중소기업에서 생산한 셔츠에는 이런 표시가 붙어있다. ‘다림질하지 마세요’ 혹은 ‘다림질할 필요 없어요’라는 뜻이다.


“구겨지지 않는 면 셔츠라고 하면 의아해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면은 원래 구겨집니다. '가능한 기술일까?', ‘폴리’를 섞었구나' 하고 생각하시는 거죠. 하지만 저희 셔츠는 100% ‘면’이지만 구김 걱정 없이 입을 수 있습니다.”


김기상 덕양 무역 대표는 “순면으로 잘 구겨지지 않는 셔츠를 만드는 회사는 전 세계에 10곳이 채 되지 않는다"라고 했다. “처음엔 제 아내도 안 믿었습니다. 어떻게 면이 구겨지지 않느냐고 하더군요, 이제는 다림질할 일이 줄어서 편하다고 합니다.”


면은 좋은 옷감으로 분류하지만 잘 구겨지는 성질 때문에 격식을 차릴 때 입는 신사복 셔츠 재료로 쓰기 어렵다. 그래서 셔츠는 보통 혼방으로 만든다. 이른바 '폴리'로 불리는 폴리에스터와 면을 섞은 옷감이 ‘혼방’이다. 덕양무역은 이 구김 걱정 없는 '논 아이언' 순면 셔츠를 만든다. 

출처: jobsN
김기상 덕양무역 대표가 셔츠를 살펴보고 있는 모습.

◇연간 300만장 셔츠 생산, 올해 6월 산업부장관상 받아


덕양무역은 논 아이언 셔츠를 주문자위탁생산(OEM) 방식으로 해외 브랜드에 납품한다. 스페인 엘꼬르떼 백화점 산하 브랜드 에미디오 투치(Emidio Tucci), 미국 의류 전문 업체 맨즈웨어하우스(MEN’S WEARHOUSE)도 거래처 중 한 곳이다. 엘꼬르떼는 스페인에서 가장 큰 백화점, 맨즈웨어하우스는 연매출 2조원에 달하는 미국 의류 업체다.


회사는 셔츠 한벌을 14달러(약 1만6000원)에 맨즈웨어하우스에 준다. 맨즈웨어하우스는 이 제품에 자사 브랜드를 달고 한 벌에 100달러(약 12만원)에 판매한다. 기술적으로 뛰어난 제품을 저가에 받아 자기 브랜드를 달고 고가에 파는 것이다.


덕양무역의 2016년 매출액은 3260만달러(약 350억원). 2015년 매출보다 50억원 정도 늘었다. 영업이익은 매출액의 10% 수준이다. 올해 예상 매출액은 3600만달러(약 400억원). 지난 6월 1일 한국-아세안 FTA 10주년 기념식에서 회사는 산업통상자원부장관상을 받았다. 회사에서 만드는 셔츠는 연간 약 300만장에 이른다. 인천광역시 인구(약 294만명)가 모두 입고도 남는 숫자다.

출처: 엘꼬르떼 홈페이지 캡처
엘꼬르떼 백화점에서 판매되는 에미디오 투치 브랜드의 논 아이언 셔츠.

과거 주로 미국과 캐나다로 물건을 보냈지만 지난해부터 이탈리아, 스페인 등 유럽에서도 주문이 밀려 들어온다고 했다.


"유럽 바이어들은 처음에 '우리는 그런 옷 잘 안팔린다, 필요없다'고 했는데 요즘은 태도를 바꿨습니다. 다림질을 하지 않아도 되는 옷을 찾는 소비자가 늘면서 우리 제품이 필요해진 겁니다. 작년 매출의 34%가 유럽에서 나왔습니다."


김 대표는 '논 아이언' 셔츠를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갖춘 곳은 전세계에 10곳이 채 안된다고 했다. "회사 규모로 치면 저희가 제일 작을겁니다. 그래도 기술력만큼은 다른 곳과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을 자신 있습니다." 비슷한 기술을 보유한 기업 중 가장 큰 곳은 중국 루타이 그룹으로 셔츠 생산인원이 3만명에 이른다.


◇삼성물산 출신, '상사맨'으로 중동 누비며 수출


그는 1970~1980년대를 종합상사에서 ‘상사맨’으로 일했다. 해외를 누비며 셔츠를 팔았다. 20대에는 삼도물산에서, 이후 30대에는 10년간 삼성물산에서 근무했다. 당시 셔츠를 보따리로 싸 들고 중동을 누볐다. 쿠웨이트, 두바이, 사우디, 이집트…, 안 가본 곳이 없다.


1990년, 원화가치가 오르면서 상사의 인기가 사그라들자 김 대표는 회사를 나왔다. "1달러당 원화가 1500원대 수준이었다가 갑자기 800원대로 떨어졌습니다. 수출하면 오히려 적자가 났습니다." 당시 삼성물산에서 받던 월급은 100만원을 조금 웃돌았다. 2016년 기준 삼성물산 임직원 평균 연봉은 8100만원이다. 말하자면 연봉 1억 전후를 받다가 회사를 나와 창업에 도전한 것이다. 

출처: 덕양무역 제공
덕양무역 직원이 실제 하루 종일 입고 있던 다림질 하지 않은 셔츠의 모습.

◇사업초기, 원단 불량 문제로 고생…"중국이 낫더라"


사업초기엔 평범한 셔츠를 만들어 팔았다. 대구에서 옷감을 사다가 충청도 공장에서 셔츠를 만들어 팔았다.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국내외 의류업체에 OEM 방식으로 납품했다.


"그땐 원단 불량으로 많이 고생했습니다. 원단 공장에서 원가를 절감한다고 사람을 줄였다는데 최종 검사 인력을 없앴더군요. 불량이 많아서 항의했더니 '복불복'이니 감수하란 황당한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1994년, 중국에 사무소를 세우고 현지 원단 공장을 물색하던 그는 충격을 받았다. 우리나라보다 중국 공장이 품질관리를 더 엄격하게 했다. “한국에선 염료를 바가지로 퍼다가 부었는데 중국 공장은 컴퓨터로 배합했습니다. 최종 검사하는 사람들도 많아서 원단을 하나하나 들춰보며 이물질을 골라내고 흠집을 짚어내더군요."


결국 값 싸고 품질 좋은 중국 업체에서 원단을 받기 시작했다. 덕양무역은 현재 중국과 미얀마에 셔츠 생산공장을 세워 운영하고 있다. 현지 직원은 각각 200여명, 1200여명에 달한다. 본사가 있는 한국에서 근무하는 직원은 20여명이다. 

출처: jobsN
김기상 대표.

◇IMF 직격탄, 부진했던 국내 판매 포기


한동안 잘 나갔지만 1997년, 'IMF사태' 때 큰 타격을 받았다. 당시는 국내 기업에도 셔츠를 납품하던 때였다. 원단을 수입해 셔츠를 만들었는데 원화가치가 급락했다. 1달러당 800원이던 환율이 1800원까지 뛰었다.


"손해를 보면서도 옷감을 수입해 거래처에 납품했는데 국내 업체가 대금을 한꺼번에 못주겠다고 하더군요. 타격이 컸습니다. 국내에서는 제품도 많이 팔리지 않았습니다. 결국 국내 사업을 접기로 했습니다. 이제 한국에서는 지인들이 사겠다고 직접 연락해오면 파는 정도만 하고 있습니다."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기로 했다. 성인 남성용 셔츠만 만들었다. 품질에 자신이 있었고 가격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다림질 필요 없는 셔츠 개발하려 진땀


-다림질 필요없는 셔츠는 어떻게 개발했습니까


“2000년대 중반까지 일반 셔츠 납품만으로도 사업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미국 주문이 줄었습니다. 이유를 알아보니 홍콩 업체가 논 아이언 셔츠를 개발했는데, 미국에서 인기였습니다. 구김 방지 기술이 없으면 사업을 못할 위기였죠. 그래서 아예 기술 특허를 샀습니다.”

-문제가 쉽게 해결됐군요


“저도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당시 홍콩업체는 셔츠의 몸통과 팔 부분을 이어주는 어깨라인에 주름이 생기지 않게 하는 기술만 특허를 냈습니다. 저는 당연히 그 특허 기술로 다른 부분의 주름까지 없앨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니였습니다. 특허를 판 기업에서 그 기술은 비밀이라며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특허를 내면 남들이 보고 따라한다고 아예 특허도 내지 않았더군요.”


-어떻게 해결했습니까


“화학 회사와 프레스 회사들을 오가면서 어떤 공정을 거쳐야 면이 구겨지지 않는지 조언을 들었습니다. 약품을 첨가해 면의 성질을 바꾸고, 고온의 프레스 기계로 면을 꾹 눌러 이 성질이 바뀌지 않도록 했습니다."


특수 약품을 배합해가면서 숱하게 시험했다. 약품은 모두 인체에 무해한 것들만 사용했다. "20번을 빨았다가 말린 뒤 입었을 때 구김이 없어야 거래처에서도 구겨지지 않는 옷이라고 인정을 해줍니다.”

출처: 덕양무역 홈페이지 캡처
덕양무역에서 생산하는 다림질 필요없는 셔츠, 다양한 디자인으로 생산해 해외 브랜드에 납품한다

-구김이 하나도 생기지 않습니까


“소매를 접거나 가방에 눌리면 주름이 생깁니다. 하지만 셔츠를 입고 20~30분 정도 있으면 펴집니다. 셔츠가 쫙 펴지려면 일정 수준의 온도가 필요한데 체온에 반응합니다. 제가 입은 셔츠도 아침에 다림질하지 않고 입은 겁니다.”


그가 입고 있는 옷은 세탁기에서 꺼낸 뒤 그냥 말렸다가 입은 옷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깔끔했다. "저녁때 퇴근길에도 빳빳한 셔츠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신기해 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김 대표가 입은 셔츠 팔 부분에 다림질 한 자국처럼 칼 같이 선 자국이 보였다. 그런 자국은 어떻게 나오느냐고 묻자 "셔츠에 처음 구김방지 처리를 할때 다림질 한 것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해 일부러 프레스로 눌러 작업했다"고 말했다. 이 자국 역시 아무리 빨아도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출처: 덕양무역 홈페이지 캡처
미얀마에 있는 덕양무역의 셔츠 생산공장 모습

◇연 1억달러 수출, 직원 복지 챙기는 게 목표


-목표가 있습니까


“세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연간 1억불 수출이고, 다른 하나는 저희 브랜드로 셔츠를 파는 것입니다. 직원들 복지도 늘릴 계획입니다.”


그는 종합상사에 다닐때 개인 목표로 1억불어치 수출을 하겠다고 마음먹었지만, 꿈을 이루지 못했다. 그 꿈을 이루는 게 목표다. “세계 최고 품질의 셔츠를 만들면 목표도 이룰 수 있지 않겠습니까. 기회가 되면 국내기업과 협업하든, 독자 브랜드로 판매하든 판로를 다변화 할 계획도 있습니다.”


덕양무역의 대졸초임은 2500만원, 중소기업 평균 수준이다. 하지만 인센티브를 제외한 모든 임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고 매년 성과급으로 월급의 90~100%을 준다.


통상임금은 연장근로와 야간근로, 휴일근로에 대한 가산금과 유급 휴가시에 지급하는 임금을 산출하는 기준이 된다. 현행 근로기준법에서는 연장근로·야간근로·휴일근로에 대하여 통상임금의 50% 이상을 가산하여 지급하도록 한다.


덕양무역은 야근도 없앴다. 직원들은 오전 9시까지 출근해 늦어도 오후 6시 30분이면 퇴근한다. 출산휴가는 최대 6개월, 1년 이상 다닌 직원에게는 500만원까지 무이자 대출을 해준다.


“대기업만큼 직원들에게 잘 챙겨주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근로기준법이 정하는 것들은 직원들이 눈치보지 않고 누릴 수 있도록 해주려 합니다. 매출이 늘어 본사 직원도 더 뽑을 계획입니다. 직원과 함께 성장하는 회사를 만들겠습니다.”


글 jobsN 이병희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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