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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만 110억원 내다 사업 9개 들어먹고 월세 사는 사나이

한때 소득세 한국 1위‥33년간 2번 성공 후 9번 망하고도 다시 도전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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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사원 출신으로 '피자헛' 처음 도입
한해 매출 500억…소득세만 110억 내기도
실패한 사업만 9개, 일흔에도 계속 도전중

'한해 소득세만 110억원 냈던 한국인' '30년간 2번 성공하고 9번 망한 사나이' '한국 피자업계의 대부'….


1984년 피자헛을 국내에 처음 들여와 수백억을 번 성신제(70)씨를 수식하는 말이다. 1960~70년대 경기고와 서울대 정치학과를 나와 대기업 비서실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2004년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1984년) 회사가 부도나는 바람에 퇴직금 7만2000원 들고 나와 사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한때 수백억원대의 돈을 굴렸지만 아이 돌반지를 팔아 생계를 꾸릴 정도로 망해봤다.


한국은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사회다. 실패자로 낙인찍고, 재기할 수 있는 안전장치도 부족하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창업 기회 인식' 부문에서 33위였다. 실패가 두려워 창업을 꺼리는 분위기 때문이다.


지난 7월 2일 SBS스페셜은 성씨의 사업 흥망성쇠를 소개했다. '외식업계 대부’로 불리다 '실패의 아이콘'이 된 그는 왜 자꾸 도전할까? 

'SBS스페셜-달콤한 인생' 캡처

성씨는 1984년 한국에 ‘피자헛’을 처음 들여와 대박을 냈다.명동점 한달 매출만 2억~3억원이었고 한해 500억원이 넘는 매출을 내며 승승장구했다. '요리책'에서만 보던 피자를 한국의 보편적 외식 메뉴로 만드는데 공헌했다. 하지만 1993년 피자헛 미국 본사가 한국에 진출하면서 경영권을 넘겨야 했다. 당시 본사로부터 320억원을 받았다. 개인종합소득세만 110억원을 냈다. 국내 개인소득세 순위 1위였다.


이후 미국 가수 케니 로저스에게 투자 받아 치킨전문점을 차렸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로 폐업했다.


이후 토종 한국 피자 브랜드 ‘성신제 피자’로 재기에 성공했다. 한 인터뷰에서 "피자는 먹어도 먹어도 물리지 않는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사업에도 적극적이었다. 점심과 저녁엔 주방에서 직접 앞치마 두르고 일하고, 22개 전국 직영점과 가맹점을 관리했다. 당시 TV 교양·요리 프로그램과 소셜미디어(SNS)에서 활발히 활동했다. 각종 기업과 대학에서 창업과 외식 경영에 대해 강연해 달라는 요청이 쏟아졌다.


사업을 하면서 '나는 50에 꿈을 토핑한다', '달콤한 모험' 등 책을 여러 권 냈다. '사람이 지나가다가 보는 게 아니라 제발로 찾아와야만 하는 지하점포나 병원, 주유소 옆을 피하라' '심한 오르막이나 내리막길에 있는 점포는 소비자가 불편함을 느낀다' '버스정류장 바로 앞 보다는 양쪽 15~20m사이 점포 수익성이 더 높다' 등 영업 노하우를 소개했다.


하지만 성신제피자는 2007년 부도가 났다. 시장 상황에 적응하지 못한 탓이었다. 당시 피자 대신 아웃백스테이크하우스, TGIF 등 패밀리레스토랑이 인기를 끌었다. 가격을 저렴하게 하거나 배달 전문 피자가게가 생기면서 성신제피자에 대한 수요가 줄었다.


이후 2015년 '지지스 컵케이크' 도전했지만 1년 반 만에 문을 닫았다.


그가 30여년간 망해본 사업은 피자, 치킨, 컵케이크 등 9개다. 피자헛과 성신제피자로 2번 크게 성공했지만 실패 경험이 더 많다. 현재 일흔인 그는 몸도 성한 데가 없다. 사업을 하면서 대장암, 간암, 폐암, 위암, 횡경막암을 앓았다. 여러 차례 수술을 했다. 혼자서 청소를 할 수 없을 만큼 으리으리 하던 집은 작은 월셋집으로 바뀌었다.


수많은 실패에도 굴하지 않고 10번째 사업에 도전하고 있다. 간판도 달지 않은 작은 매장에서 컵케이크를 굽는다. 여러 가게들이 모여 제품을 파는 곳에 입점하기 위해 손자·손녀 뻘 청년 사업가들 틈에서 열심히 자신을 소개한다. 출장을 갈 수 없으니 스마트폰으로 SNS를 보며 최신 트렌드를 익힌다.


32년 전 사업을 시작했을 때부터 그가 매장에 걸어 놓는 문구가 있다. ‘나라면 먹겠는가.’ 그는 자신이 만든 컵케이크를 한입 먹어보더니 “안되겠네”라며 모조리 버렸다. 손님들이 컵케이크를 먹을 때 “맛있다”고 말하자 아이처럼 좋아했다. 

출처'SBS스페셜-달콤한 인생' 캡처

“돈 세느라 잠도 못잤다”고 말하는 과거에 비하면 초라하다. 계속 도전하는 이유를 묻자 성씨는 “왓 엘스(What else)?, 다른 방법이 없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넘어졌을 때 마냥 드러누워 있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성공보다 실패를 더 많이 했지만 성씨는 “그 모든 시간을 사랑한다”며 “훗날 실패마저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싶다면 희망을 가져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새로움’이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뛴다”고 했다. '흑역사'마저도 빛나게 하는 그를 이제는 '도전의 아이콘'으로 불러야 할 것 같다.


글 jobsN 이연주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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