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끼 매니저→덤프트럭 모는 36세 신인 가수 "이제는 제대로 해볼게요 "

조회수 2020. 9. 18. 14:5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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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끼·마이크로닷 매니저, 36세에 신인 트로트 가수로 데뷔한 사연
댄서, 연기자, 연예인 매니저로 연예계 전전
돈 벌려고 보험영업, 막노동, 덤프트럭 기사 등 안 해본 일 없어
'할까말까'로 트로트 가수 시작, "1평 남짓 트럭 운전석이 연습실"

보기만 해도 압도적인 크기의 25톤 덤프트럭. 이 트럭으로 매일 건축자재·폐기물을 실어 나르면서도 운전석에서 쉴 새 없이 노래를 흥얼거리는 이가 있다. 지난해 7월 디지털 싱글 ‘할까말까’를 내놓은 트로트 가수 현범(36·본명 허현범)이다. 그를 뭐라고 불러야 할까 고민했다. 가수라고 부를까, 기사라고 부를까. 현범은 “한 곡 발표했을 뿐이라 아직 가수라고 불리기엔 민망하다”며 “그냥 ‘현범씨’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출처: jobsN
덤프트럭 모는 트로트 가수 현범

30대 중반인 현범씨는 지금까지 무던히 방황했다고 한다. 댄서, 연기자로 활동했지만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고, 연예계에 미련을 버리지 못해 매니저로 일하며 스타들 언저리를 맴돌기도 했다. 서른 이후엔 생계를 위해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출처: 현범 제공
현범과 현범이 모는 25톤 트럭

보험회사 직원, ‘노가다’로 낮잡아 불리는 일용직 근로자, 지금은 덤프트럭 기사다. 이제 미련을 버릴 법도 한데 그는 왜 30대 중반의 나이에 다시 트로트 가수가 되겠다고 나섰을까.

고교 수학여행이 연예인 꿈꾼 계기…가수 보아 발탁된 대회서 입상도

현범이 ‘연예인이 되겠다’고 결심한 건 고등학교 때다. 경기도 남양주 금곡고등학교 1학년 수학여행 때 장기자랑 무대에 올랐다.


“원래 춤과 노래를 좋아했지만, 누구 앞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춰본 적은 없었어요. 얼굴도 까맣고 키도 작아서 자신감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친구 중에 제가 춤추는 걸 아는 애가 있었어요. ‘장기자랑 같이 나가서 상품 타보자’며 하도 조르길래 눈 딱 감고 무대에 올랐죠.” 

출처: 현범 제공
학창시절 현범

젝스키스의 ‘학원별곡’을 췄다. 여기저기서 “오빠”소리가 터져 나왔다. “동급생끼리 갔는데 오빠라니 좀 우습지만, 짜릿했어요. 수학여행 전엔 존재감 없는 ‘쭈구리’였는데 말이죠.”


이후 본격적으로 춤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여기저기서 댄스 경연 대회가 많이 열릴 때였다. 꽤 많은 대회에 나가 상도 많이 받았다. “춤과 노래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게 좋았던 거 같아요. 요샛말로 ‘관심 종자’라고 하나요. 제가 딱 관심 종자입니다. 무대에 오르면서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줄 때 너무 행복해서 계속 무대를 찾아다녔거든요.”

출처: 현범 제공

그는 고등학교 1학년 때 경기도 구리의 한 백화점에서 열린 댄스 경연 대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제가 속한 팀은 그때 2등을 했는데요, 그때 1등 한 팀이 가수 보아의 오빠가 속한 팀이었어요. 행사 중간에 사회자가 ‘참가자보다 더 춤 잘 출 수 있는 사람은 나와보라’고 했고, 마침 오빠를 응원하러 왔던 보아가 나와서 춤을 췄어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해요. 보아가 디바의 ‘그래’라는 노래에 맞춰 춤을 췄는데, 초등학생이 어찌나 춤을 잘 추던지요.”


보아는 그때 기획사 관계자의 눈에 띄어 데뷔했다고 한다. “주위에서 춤 잘 춘다고 하니 어깨에 힘 엄청 들어갔었어요. 그런데 보아를 보면서 재능의 차이를 실감했죠. 진짜 재능 있는 사람은 다르더라고요.” 

도끼·마이크로닷 매니저 때려치우고 연기에 도전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동아방송예술대에 입학해 1년만 다니고 휴학했다. 연기자가 되기 위해서다. “춤으로는 성공하지 못하겠다고 생각했어요. 냉정하게 말해 재능이 부족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관심은 받고 싶었어요. 연기를 해보겠다고 나섰죠.” 

출처: 현범 제공
연기자를 꿈꾸던 시절 현범의 프로필 사진

배용준, 송승헌 등 스타를 배출한 연기 아카데미에 무작정 등록했다. 이때 함께 연기 공부를 한 사람이 배우 이보영씨다. “보영 누나랑은 지금도 가끔 연락할 정도로 친하게 지냈습니다.”


몇몇 드라마, 영화에 흔히 ‘엑스트라’라고 부르는 보조출연자로 출연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드라마 ‘명성황후’였단다. “화장하고 수염도 붙이고 몇 시간을 기다리다 잠깐 찍고 또 기다리고… 그 뒤론 사극을 보기가 싫더라고요.” 계속 보조출연자로 활동하면서 오디션도 보러 다녔지만, 빛을 보지 못했다. 결국 2004년 입대했다.

출처: 현범 제공
현범의 '올블랙' 매니저 시절, 녹음실에서 찍은 사진. 사진 왼쪽이 도끼, 가운데가 현범, 오른쪽이 마이크로닷이다. 이들은 이때 10대 중반의 청소년이었다.

제대한 뒤엔 한동안 연예인 매니저 생활도 했다. 한 방송 관계자가 “연예계에서 계속 있으려면, 이 바닥에 어떻게든 붙어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 말이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범은 힙합듀오 ‘올블랙’의 매니저를 맡았다. Mnet의 ‘쇼미더머니’로 유명해진 도끼(Dok2)와 마이크로닷이 올블랙 멤버다.


“두 사람이 10대 때죠. 형이라고 부르며 저를 잘 따랐습니다. 지금은 두 사람 모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졌죠. 그땐 물론 이 정도는 아니었지만, 마니아층이 꽤 많았습니다.”


하지만 현범은 넉 달 만에 매니저 생활을 그만뒀다. “처음엔 두 사람을 향한 환호가 마치 제 것처럼 느껴졌어요. 환호가 들리면 제가 잘나서 듣는 것 같기도 했고요. 그런데 그 친구들과 떨어져 있을 때 저는 아무것도 아니잖아요. 두 사람과 같이 있을 때와 아닐 때의 차이가 너무 나는 겁니다. 우울하더라고요.”

출처: 뮤직비디오 캡처
가수 길미의 '사랑은 전쟁이다'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현범

현범은 다시 연기자의 꿈을 이루겠다고 나섰다. 닥치는 대로 오디션을 봤고, 또 보조출연자 생활도 이어졌다. 그러던 2010년 현범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가수 길미의 ‘사랑은 전쟁이다’와 포스트맨의 ‘다른 여자에게 눈길도 가네요’ 등의 뮤직비디오에 잇달아 출연한 것. 

출처: 뮤직비디오 캡처
포스트맨의 '다른 여자에게 눈길도 가네요'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현범

“이제야 좀 풀리는구나 싶었습니다. 뮤직비디오긴 하지만, 주연으로 출연했으니까요. 사실은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지만, 길을 갈 때 마치 스타인 것처럼 다른 사람 눈을 의식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거짓말처럼 일이 뚝 끊기더라고요. 지금 와서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짧은 뮤직비디오 연기도 제대로 못하는 연기자를 다시 찾아줄 것이라 기대했던 게 말이 안 되는 거죠."

보험영업, 공사장 전전하다 아버지 권유로 트로트 시작

하루하루 나이는 먹어가는데, 연예계에서는 자리를 잡지 못하자 연예계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2012년 한 생명보험사에 들어가 2년 정도 보험영업을 했다. 한 달에 받은 돈은 150만~170만원 남짓. 그 돈으로 생활하긴 쉽지 않았다. 


“받는 돈이 오롯이 다 수입이 되는 게 아닙니다. 광고 전단도 만들어야 하고, 사은품도 만들어야 하죠. 돈을 써야 영업이 되는 구조입니다. 물론 영업을 잘해서 돈을 많이 벌면, 영업에 돈을 써도 많이 남았겠죠. 하지만 연예계를 기웃거리며 만난 사람들에겐 차마 ‘보험 하나만 들어달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어요. 연예계 사람이 아닌 지인들에게 부탁해서 근근이 실적을 쌓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마저도 부탁할 사람이 없더라고요. 자신감이 완전히 바닥을 친 상태라 ‘지인 영업’에서 벗어날 엄두도 못 냈고요. 결국 그만뒀죠.”

출처: 현범 제공
공사장에서 일하던 현범

보험사를 관두고 공사장을 전전하며 일용직 노동자로 살았다. 특별한 기술이 없어 잡일만 하던 현범은 기술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2015년 대형면허를 땄다. 그리고 한 레미콘 회사에 면접을 봤고, 일을 시작하기로 했다. 이때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트로트 가수에 도전해 볼 생각이 없느냐”고 했다.


“아버지가 넉넉지 않은 살림에 많이 밀어주셨는데요, 막상 아들이 꿈을 접으니 당신의 아들 뒷바라지가 부족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셨나 봐요. 아버지도 어렸을 때 가수가 꿈이었지만, 처자식 먹여살리느라 꿈을 접었기 때문에 더 그렇게 생각하셨을 것도 같고요.”

출처: 현범 제공
행사장에 가는 현범

고민 끝에 현범은 레미콘 회사를 포기하고 아버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아버지의 꿈을 물려받는다는 거창한 생각은 아녔어요. 저도 미련이 남았고, 그래도 대형면허가 있으니 어떻게든 먹고 살 수는 있겠다는 생각도 있었어요.”


아버지가 물어물어 아들을 지도해 줄 ‘스승’을 찾았고, 현범은 1970년대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사랑은 계절 따라'를 히트시킨 가수 박건의 지도를 받게 됐다. “발성부터 무대 위에서의 움직임까지 하나하나 다시 배웠고요, 선생님을 따라다니면서 관객을 대하는 태도도 다시 배웠습니다.”

1년을 준비해 ‘할까말까’ 냈지만, 아버지 사업 기울어 다시 트럭 기사로

1년을 준비해 직접 작사·작곡한 디지털 싱글 앨범 ‘할까말까’를 내놨다. “사실 전문적으로 작곡을 배운 적은 없어요. 그냥 입에서 나오는 대로 흥얼거리면서 멜로디를 만들고, 이걸 스마트폰으로 녹음해 음악 하는 친구에게 보냈습니다. 친구가 이걸 편곡해줬습니다.” 

출처: 현범 제공
현범의 첫 싱글 앨범 '할까말까' 앨범 재킷 사진

고백을 할까말까 할까말까 망설이다가//내 심장이 콩딱콩딱 뛰고 있는데//그녀와 눈이 마주쳐//이때가 기회라고 한마디 했죠// 첫눈에 반했다고//처음 내 가슴에 들어온 그녀//너무나 아름다운 모습 나를 설레게 해//하지만 용기가 나지 않아//한참을 생각하다가 다짐을 했네

할까말까는 한눈에 반한 여자에게 고백하는 남자의 심정을 다룬 노래지만, 사실은 그의 삶이 묻어 있는 노래다. “이것저것 집적대기만 하고, 제대로 해본 게 없어요. 매번 자신감이 없어서 망설이며 할까말까 고민하고요. 하기로 마음먹었지만, 제대로 못한 제 인생을 돌아보며 트로트만큼은 후회 없이 해보겠다는 생각을 녹여냈습니다.”

출처: 현범 제공
현범은 무대의 크기에 상관없이 자신을 불러주는 곳이 있으면 어디든 달려간다

앨범을 내고, 가리지 않고 무대를 찾아다녔다. 할아버지, 할머니 5~10명이 앉아있는 경로당부터 구청에서 하는 체육관 행사까지. ‘행사비’로 10만원, 20만원을 받아도, 때론 ‘공짜’ 라도 행사장으로 달려갔다. 10만~20만원 받아봐야 메이크업·헤어(머리 손질) 교통비까지 빼면 남는 게 없지만, 그래도 무대가 좋다.


하지만 올해 초 예상치 못한 시련이 찾아왔다. 현범을 묵묵히 ‘밀어주던’ 아버지의 사업이 어려워진 것이다. 이젠 집 생활비를 보태야 할 처지다. “아버지가 족발집을 하셨는데, 적자가 계속 쌓였나 봐요. 원체 얘기를 안 하시는 분이라 잘 몰랐는데, 하루는 행사 갔다가 집에 돌아가니 ‘빨간 딱지’가 붙어있더라고요.”


그래서 구한 직업이 덤프트럭 기사다. 현범은 자신의 또 다른 직업인 덤프트럭 기사에 만족한다고 했다.

출처: jobsN
넓은 25톤 트럭의 운전석은 그만의 전용 연습실이다.

“한 달에 300만원쯤 받으니 다음 앨범을 준비하는 자금으로 쓸 수도 있고, 집에 어느 정도 돈을 가져다줄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사장님이 배려해 주셔서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가 생길 땐 일을 빼주기도 하고요.” 일을 시작하고 보니 생각지도 못한 장점도 있단다. “마음껏 노래 연습을 할 수 있어요. 트럭이 크다 보니 운전석도 엄청 넓은데요, 여기서 노래를 부르면 마치 제 전용 연습실을 가진 듯한 느낌입니다.”


현범은 트럭을 몰면서도 트로트 가수의 꿈을 계속 이어가겠다고 했다.


“잘 모르는 노래를 따라 부르며 춤을 추는 할아버지, 같이 기념사진 찍자며 ‘스타’ 대접을 해주시는 할머니를 보면서 ‘이런 게 진짜 관심이구나’ 싶었습니다. 더 이상 관심을 받기 위해 연예계 주위를 맴도는 현범이 아닌 트로트 가수 현범이 되겠습니다. 꼭 기억해주세요. ”


글 jobsN 안중현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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